〈 237화 〉1부
문은 간호사가 열어준 걸까.
아무튼 막 병실 안으로 뛰어들어온 가영의 얼굴은 내가 내심 걱정하고 있었던 것보다는 훨씬 괜찮아보였다.
쉽게 말해서 당장이라도 의식을 잃고 졸도할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는 소리다.
그 이유는 아마도 뒤이어 병실로 입장하고 있는 지나 덕이겠지.
상대적으로 늦게 소식을 접했을 가영과는 다르게 내가 연락을 한 덕분에 일찌감치 내 상태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겸사겸사 내게서 세나의 상태까지 들었었던 지나기에 가영의 동요에 덩달아 흔들리지 않고 그녀를 진정시킬 수 있었을테니까.
'···아.'
그리 생각하고 난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가영한테 연락을 넣어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해 알리는 걸 그만 깜빡해버렸다는 걸.
'아이고···'
그 부분은 명백히 내 실수라 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직접 알린다고 해도 결국 결과는 똑같았을 거다.
하지만··· 내게 직접 듣는 쪽이 남을 통해 전해드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안심이 되지 않았을까.
애초에 그런 일을 겪었음에도 직접 연락을 해서 그 사실을 알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사태가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흘러가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좀 미안하네···'
아니, 좀 미안한 게 아니라 많이 미안했다.
내가 제때 연락을 취하기만 했어도 가영의 몰골이 지금 눈에 보이는 수준까지는 아니었을테니까.
말해 무엇하랴.
지금 가영은 누가봐도 일하는 와중에 그대로 뛰쳐나온 듯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동그란 모양으로 땋아서 올려놓은 머리카락 사이에 꽂혀있는 얇은 빗의 존재가 그녀가 얼마나 급박하게 움직였는지를 대변해주고 있었다.
"괜찮니? 다친 곳은?"
어느 타이밍에 지나와 합류하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병실 앞에서 바로 마주친 게 아니라면은 내가 입은 피해나 상태에 대해서도 들었을텐데 그럼에도 가영은 덜덜 떨리는 손을 날 향해 내뻗으며 그 질문부터 던졌다.
본인이, 본인의 눈으로 직접 보고 괜찮다는 걸 확인해야 그나마 좀 마음이 놓일 것 같았던 걸까.
"살짝 까진 게 전부에요."
표정이나 눈빛을 보니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서 가영이 안심할 수 있도록 살짝 웃기까지 하면서 그리 말했건만 그럼에도 가영의 손은 어느새 내 몸을 더듬고 있었다.
이제는 가영도 나와의 관계에서 어느 정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그녀가 내 몸을 손으로 더듬는 거야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되었지만 지금 느껴지는 건 뭔가 좀 달랐다.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것까지는 똑같은데 그 안에 담겨있는 것이 본질적으로 달랐으니까.
다른 것따위는 끼어들지 못하게 하겠다는 듯 순도 백퍼센트를 자랑하는 걱정이 그 안에 내재되어 있었으니까.
"진짜 괜찮아요. 혹시 몰라서 파상풍 주사도 맞았는 걸요."
그리 말하며 자그마한 밴드로 덮여있는 부분을 가영의 눈앞에서 살짝 흔들어보이니까 그제서야 후우하고 안도의 기색이 짙게 느껴지는 소리가 살짝 메말라있는 연분홍빛 입술을 뚫고 튀어나왔다.
"사실 저보다는··· 세나 누나가 걱정이죠. 하필이면 오른팔을 다쳐버려선···"
따지고보면 길가다가 넘어졌을 때보다 덜 다친 수준인데 이런 식으로 과한 걱정을 받고 있으려니까 좀 민망하더라.
그래서 같이 좀 민망하자는 의미에서 화살을 잽싸게 세나 쪽으로 돌렸다.
그 다음에는 뭐··· 익히 예상한대로였다.
오른팔에 깁스를 차고 있는 딸내미의 모습에 가영이 언제 안심하고 그랬냐는 듯 세나를 부여잡고 방금 내게 했던 것과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으니까.
물론, 그에 대한 세나의 대응도 만만치 않았다.
따지고보면 제일 크게 다친 건 자신인데 가영이 나부터 신경쓰는 듯한 모습을 보이니까 내심 섭섭하고 그랬던 것일까.
"딸내미는 서러워서 살겠나아."
거의 폭격처럼 쏟아지기 시작한 가영의 걱정이 오히려 도화선이 되었는지 세나가 입술을 오리마냥 삐죽하고 내민 채 섭섭하다는 티를 팍팍 내기 시작했다.
"미안, 세나야. 엄마가 워낙 경황이 없어서···"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지만 세나한테 미안한 점이 없지는 않은 가영이었기에 가영은 그런 세나를 상대로 쩔쩔매기 바빴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가영의 구원투수로 나선 것이 바로 지나였다.
"아주 그냥 다친 게 벼슬이지? 엄마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히끅!"
담당일진의 등판에 세나가 언제 삐진 티를 내고 그랬냐는 듯 잽싸게 가영의 뒤로 몸을 숨겼지만 그럼에도 지나의 입은 닫힐 줄을 몰랐다.
"솔직히 나같았으면 지금쯤 쪽팔려서라도 입 꾹 닫고 있었을 거야."
"···"
"스토커 년한테 멋지게 한 방 먹여준 것도 아니고 밀어내려다가 나란히 넘어져서 그대로 같이 기절했다면서? 팔도 그러다가 다친 거고?"
"아니··· 칼 들고 있는데··· 어떡해 그럼···"
"그러면 사람이라도 부르고 덮치든가 했었어야지. 그 년도 같이 기절해서 망정이지 만약 너만 혼자 기절했었으면 유한이가 어떻게 됐을 것 같아?"
지나의 말에 세나가 아랫입술을 삐죽하고 내밀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푹 숙이는 것이 꽤나 속상한듯 했다.
그런 세나의 모습을 보다 못한 나와 가영이 지나를 멈추기 위해서 나서려 했지만 그마저도 타이밍 좋게 들어올려진 손에 의해 가로막혀버렸다.
그렇게 나와 가영을 나서지 못하도록 만든 지나가 차가운 표정을 얼굴 위에다가 띄운 채 팔짱을 척 꼈다.
"ㅡ안 되겠어."
"···"
"팔 다 나으면 너도 유한이처럼 나한테 운동 좀 배워."
"···엥?"
"뭐냐? 그 표정은?"
지나의 지적에 '엉···?'하고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던 세나가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리면서 잽싸게 표정을 수정했다.
덕분에 이도저도 아닌 어색하기 그지없는 표정이 되어버린 세나를 상대로 스리슬쩍 쏟아진 것은ㅡ
"그래도 뭐··· 용기있게 나선 건 잘했어. 솔직히 쉽지 않았을텐데···"
그토록 무서워하는 언니의 인정이었다.
"흠흠, 아니 뭐··· 누나니까! 남동생 정도는 지켜야지."
"그래, 앞으로는 더 확실하게 지킬 수 있도록 만들어줄테니까 팔에 금간 거 붙는대로 체육관 꼬박꼬박 나오시구요."
"엑···"
"왜? 싫어? 그러면 너도 엄마처럼 홈트할래?"
"아, 아니요···"
다른 건 몰라도 집이 체육관화 되어버리는 건 세나로서는 꼭 피하고 싶은 결말일 것이다.
체육관에서야 정해진 시간만 딱 소화하면 끝이지만 집에서는 에너자이저마냥 지치지 않는 체력을 가진 지나에게 시도때도 없이 달달 볶이게될 가능성이 크니까.
'그건 나도 좀···'
아무튼 아슬아슬하기 그지없었던 자매의 분위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훈훈한 냄새를 물씬 풍기게 되니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둘의 대치를 지켜보고 있던 가영의 얼굴에도 안도하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뭐, 그 부분은 그렇게 한다고 치고··· 슬슬 진짜 중요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하는데."
안도하기 무섭게 지나가 또 앞으로 나서서 화제를 전환해버렸지만.
진짜 중요한 이야기라.
또 무슨 이야기를 할 생각이길래 저렇게 막 분위기를 잡고 그러는 걸까.
괜히 사람 쫄리게 말이다.
"자, 다들 이리와서 앉아봐. 엄마도 여기 앉으시고."
그렇게 지나의 개최로 뜻밖의 가족회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회의 안건으로 올라온 건 바로ㅡ
"세나 너도 그렇고 유한이도 그렇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응?"
"뭘?"
"니네 방송하는 거 말이야."
세나와 내 방송에 관한 것이었다.
정확히는 앞으로의 방송 계획이라고 해야할까.
"이런 일까지 터졌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방송하긴 솔직히 힘들 거 아니야."
"어···"
"그렇··· 지?"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해본 적 없다는 티를 팍팍 내듯 눈동자를 데록데록 굴리는 세나와 애매하게 긍정하는 날 한 번씩 번갈아보던 지나가 대뜸 한숨을 푹 내쉬었다.
"딱 보니까 알겠네. 니네 둘다 아직 인터넷같은 거 들어가본적 없지?"
"어? 어···"
문제는 그 한숨소리 뒤로 따라붙은 말에 답을 하는 세나의 모습이 굉장히 어색했다는 것이었고.
언니인 지나의 말을 들으니 인터넷따위 신경 쓸 겨를조차 없이 내게 막 휘둘렸던 순간에 대한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실시간으로 되살아나고 있기라도 한 건지 볼을 살짝 발그레하게 물들인채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 모습을 보다 못해 앞으로 나섰다.
"그, 아무래도 둘다 쉬느라고 바빠서···"
"그래, 표정 보니까 왠지 그럴 것 같더라."
그렇게 세나 쪽으로 향할 뻔 했었던 지나의 관심을 무사히 내쪽으로 낚아채는데 성공한 순간 잠자코 침묵을 지키고 있던 가영이 본인의 휴대폰을 우리가 가운데다 끼고 앉아있는 테이블 위에다가 탁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휴대폰 속에는ㅡ
"엑?"
"허···"
나와 세나에 관한 기사들이 수두룩했다.
솔직히 그것만으로도 이게 대체 뭔 일인가 싶었는데 이어진 지나의 말을 들으니 지금 눈에 보이는 것들은 말 그대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또한 알게 되었다.
"오면서 보니까 벌써 뉴스도 탔더라. 일단은 그래도 케이블이긴 한데···"
뉴스라면 그··· 생방송으로 하는 그걸 말하는 거겠지.
"엄마가 일하다가 너희 둘 소식 듣고 얼마나 놀랬는지 아니?"
어쩐지.
한창 일하느라 바쁘실 분이 어떻게 나나 세나의 소식을 접했나 했더니만··· 이래서였구만.
케이블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뉴스로까지 나갔을 정도라면 일이 진짜 어마어마하게 커졌다는 소리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실시간 검색어같은데도 올라가지 않았을까.
그러니 가영의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이나 가게를 찾은 손님들 중 한 명이 그런 식으로 나나 세나에 관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해도 그리 이상할 건 없겠지.
그리고 그 소식을 접하자마자 그대로 가영에게 달려가서 그 사실을 전하지 않았을까.
내가 속으로 그런 추측을 하고 있는 동안 세나는 손으로 턱을 살살살살 쓰다듬으며 열심히 뭔가를 고심하고 있었다.
"끄응··· 이건 어쩔 수 없이 당분간 방송 좀 쉬어야겠네···"
그리고 그게 세나가 고민 끝에 내놓은 결론이었다.
"그래, 잘 생각했어."
더불어 지나가 내심 바랬던 결론같기도 했고.
"유한이 너는? 너도 쉴 거지?"
그게 아니고서야 세나가 고심 끝에 그런 결론을 내놓자마자 내쪽을 홱 돌아보며 그리 물을 이유가 없었다.
"어··· 뭐··· 그래야겠지···?"
"그럼, 그 부분은 그렇게 하는 걸로 하고··· 유한이 너, 진짜로 괜찮아?"
"···응? 나?"
"어."
진짜로 괜찮냐라.
몸 상태를 말하는 건 아닐 거다.
그건 아까 경찰서에서 만났을 때 이미 구석구석 확인을 당했었으니까.
그러니 이건 몸보다는 정신 쪽과 관련된 질문이겠지.
"음··· 솔직히 놀라기는 했는데···"
사실 그 부분은 사람인이상 당연한 것이긴 했다.
내 입장에서 보면 생전 처음보는 여자가 얼굴에 칼빵을 놔주겠다면서 칼을 들고 덮치려 한 꼴이니까.
그런 일을 겪었는데 안 놀랄 수가 있나.
실제로 경찰서에 막 도착했을 때는 심장 벌렁대는게 진정이 안 되서 상점에서 예전에 한 번 사먹은 적 있는 청심환 비슷한 물건까지 사서 먹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 덕분에 놀란 건 어느 정도 진정이 되긴 했는데ㅡ
"글쎄··· 잘 모르겠어."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히 나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섣불리 답을 할 수도 없었고.
그래서 그리 말했던 것인데 다행히도 잘 먹혀들었는지 유심히 날 바라보고 있던 지나와 가영의 얼굴 위로 씁쓸함이 떠올랐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러더니 지나는 그리 말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가영은 어느새 손을 뻗어 내 손을 꼬옥하고 붙잡고 있었다.
조심스레 손등을 토닥여주는 손길은 덤이었다.
"그러면··· 당분간은 유한이 너도 병원에서 지내는 건 어떻겠니?"
가영의 입에서 그 말이 흘러나온 건 그 직후였다.
"네? 병원에서요?"
"응··· 혹시 모르니까. 그··· 세나가 여기서 얼마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그래도 집에 있으면은 어쩔 수 없이 혼자 있을 때가 많을테니까···"
그리고 의외로 지나가 그런 가영의 의견을 거들고 나섰다.
"그래,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 옷이랑 필요한 건 누나가 그날그날마다 가져다줄테니까."
"어, 뭐···"
솔직히 나야 사양할 이유가 없긴 한데ㅡ
"···그럴까요? 그럼? 어차피 세나 누나 수발 들어줄 사람도 필요하긴 할테니까."
문제는 역시 세나였다.
"엑? 뭔 소리야. 수발은 무슨··· 됐어. 그런 거 필요없으니까 걍 집에 있으라 그래."
이대로 나와 이 병실에서 단둘이 생활하게 되면 오늘 있었던 일들이 몇날며칠이고 반복될 거라 생각한 걸까.
세나가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억지로 숨기고는 대신 질색하는 듯한 표정을 해보였다.
"그러지 말고··· 유한이랑 같이 있으면 세나 너도 이래저래 편할테니까···"
"아니, 그 쟤··· 가 불편할까봐 그렇지. 간병인 침대 딱봐도 엄청 딱딱해보이던데 거기서 어떻게···"
"그럼, 병원에다가 말해서 침대 하나만 더 놔달라고 하면 되잖아."
"아니, 그게 무슨···"
"돈 더 낸다고 하면 해주지 않을까?"
"어···"
참으로 안타깝게도 그런 세나의 주장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아무튼 일이 그리 되어버린 탓에··· 당분간 세나와 병원에서 단둘이 지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