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5화 〉1부
"화났어 누나···?"
한쪽 팔만으로 어색하게 팔짱을 끼고 앉아있는 세나를 향해 슬쩍 고개를 들이밀며 그리 물으니 그 즉시 세나의 고개가 반대방향으로 팩 돌아갔다.
덕분에 원래 입고 있던 것에 비하면 한참 헐렁헐렁한 환자복이 살짝 펄럭거리며 그 아래다가 숨겨놓고 있던 새하얀 속살을 슬쩍 드러냈지만 사실 그보다는 세나의 얼굴 쪽에 더 시선이 갔다.
절대 나와 얼굴을 마주하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팩 돌리고 있는 꼴이 꼭 '나 화났어.'라고 시위라도 하는 듯 했으니까.
그러고 있는 게 이상할 정도로 귀엽더라.
'하여간에 진짜 얼굴이 사기라니까.'
다른 년이 저랬으면 짜증만 났을텐데 세나가 저러고 있으니까 왠지 더 놀리고 싶기도 하고 달래주고 싶기도 했다.
"응? 누나···?"
그래서 이번에는 반대쪽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그리 말했더니만 순간 나와 눈이 마주친 세나가 읏하고 헛숨 들이키는 소리를 내며 얼굴을 확 붉혔다.
"···아, 말 걸지 말라고!"
그러더니 또 고개를 반대쪽으로 팩하고 돌리면서 빼액하고 외치더라.
볼이 아까 전보다 부풀어오른 것 같은 건 과연 기분 탓일까.
"아, 왜에 실수한 것 때문에 그래?"
여기서 실수란 세나가 섹스가 끝나갈 때 쪼르르륵 흘린 걸 말했다.
말해 무엇하랴.
세나는 실금절정이라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피날레를 보여주었다.
물론, 그렇다고 막 콸콸콸콸 쏟아냈다는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쭐쭐쭐쭐 수준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실례를 해버렸다는 것과 그 실례를 하면서 절정에 올랐다는 사실은 변치 않으니까.
그리고 세나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철저히 내 탓으로 돌리고 있는 중이었다.
"사람이 살다보면 실수도 좀 할 수 있고 그런 거지 뭘 그래."
그래서 그리 말했더니만 세나 쪽에서 뿌득하고 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니가 먼저 건드렸잖아!"
"뭐··· 그렇긴 한데··· 누나가 그만하라고 해서 그만했잖아."
다른 건 몰라도 그 부분만큼은 반박할 수가 없었던 걸까.
세나가 윽하고 허를 찔린 듯한 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얼굴을 살짝 붉게 물들인채 황급히 말을 돌리더라.
"···아, 아무튼 팔 치워라."
"싫은데? 계속 이러고 있을 건데?"
"···치우라고."
살짝 이를 꽉 깨물면서 그리 말하길래 평소랑은 다르게 살짝 바람이 들어가있는 볼에다가 기습적으로 입을 맞췄다.
그리고는 세나가 움찔하는 틈을 타 머리카락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는 귀에 대고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래서··· 어땠는데?"
"뭐, 뭐가."
"별로였어?"
그 말에 세나는 답을 하지 못했다.
그저 입술을 꾸욱하고 깨물기만 할 뿐.
굳게 닫혀버린 입을 대신해 내 물음에 답을 한 건 다름아닌 세나의 얼굴이었다.
안 그래도 발그레하니 홍조가 어려있던 얼굴 위로 조금씩 붉은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기분 좋았지?"
그리고 그 붉은 기운은 내가 그리 물은 순간 그대로 폭발했다.
그럴 리 없건만 퍼엉하는 소리가 귓가로 울려퍼진 것 같달까.
"와, 완전 별로였거든? 아프기만 했거든?"
세나가 뒤늦게 그리 항변하긴 했지만 여전히 얼굴이 새빨갛다보니까 설득력이 전혀 없었다.
"그랬어?"
"···어, 이제 너랑 안 할거야."
너랑 안 놀아도 아니고 너랑 섹스 안 할거야라니.
웃음이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어서 세나의 어깨에다가 턱을 괸채 쿡쿡 소리를 내며 웃었더니만 그럴 때마다 세나의 턱에 힘이 들어가는 걸 볼 수 있었다.
저러다가 괜히 예쁜 입술만 망가질 것 같아서 웃는 걸 멈추고 딱 두 마디만 했다.
"진짜로? 진짜 안 할 거야?"
일부러 진지한 목소리로 그리 물었더니만 세나는 그런 내 물음에 차마 답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는 건?
그만큼 나쁘지 않았다는 소리겠지.
덕분에 내심 안도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구멍이 많이 좁기도 했고, 그에 비해 넣어야하는 건 압도적으로 크다보니까 솔직히 세나가 첫경험에서 만족스러운 기억을 가져갈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으니까.
"···쓸데없는 소리하지말고 저거나 치워."
"와, 정말 쓸데없이 당당하시네요?"
"니가 알아서 하겠다며···!"
"내가? 그랬었나?"
일부러 고개를 옆으로 기우뚱하며 금시초문이라는 듯 뻔뻔하게 대응해보였더니 세나가 갸름하기만 하던 평소랑은 다르게 살짝 바람이 들어가있는 볼따구를 꿈틀하고 떨어댔다.
그러더니ㅡ
"···뒤져!"
그리 외치면서 아까 몸 닦을 때 썼던 수건을 내쪽으로 홱 던져버리더라.
그리고 수건은 시작에 불과했다.
맞게되면 틀림없이 철퍽하고 습기어린 소리를 낼 게 뻔한 수건을 내가 간신히 피했더니만 내 화려하기 짝이 없는 회피기동을 보고 더 열이 받았는지 세나가 주변에 있는 것들을 날 향해 집어던지기 시작했으니까.
"잠깐···! 진정해! 진정하고 우리 일단 그것부터 내려놓을까?"
"닥쳐."
그렇게 유한이 화난 고양이마냥 갸르릉 대는 세나와 알콩달콩한 한때를 보내고 있던 바로 그 시각 공방 촬영현장은 얼음 위를 걷는 것마냥 조마조마한 분위기 속에 휩싸여있었다.
나름대로 괜찮았었던 분위기가 단 한순간에 그런 식으로 곱창이 나버린 건 말할 것도 없이 남자화장실에서 있었던 습격사건의 탓이 컸다.
플랫폼 측에서 진행을 위해서 나온 직원들도 생각이 없는 건 아닌지라 그때 현장으로 찾아왔던 경찰의 뒤를 쪼르르 따르다가 현장을 목격하게된 스트리머들에게 되도록 함구해줄 것을 '부탁'하긴 했지만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 그런 식으로 입을 틀어막는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뭣보다 플랫폼 측 직원들이 신경을 쓴 것은 해당 사실이 방송을 보고 있는 이들, 그러니까 '시청자'들쪽으로 새어나가는 것이었지 같은 스트리머들끼리는 해당사항이 전혀 없었다.
따라나서지만 않았을 뿐이지 어지간한 이들은 경찰이 찾아온 걸 목격한 상태였기에 사실 그 부분은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아무튼 스트리머 사이에서 이야기가 도는 것까지는 막지 않았다보니까 그 이야기가 공방에 참여한 스트리머들 사이로 알음알음 퍼져나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은 필요치 않았다.
그러니까 '스태프'중에 한 명이 '칼'을 든채 출연자인 유한을 습격하려고 했다가 세나에게 저지당했다는 내용의 이야기가 공방에 참가한 스트리머들 사이에서 쫙 돌았고 그것이 그대로 분위기를 박살내버렸다.
사실 그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고,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공식방송에 초대된 이들은 플랫폼 측에서 심혈을 기울여 선별한 이들이었고, 그렇다보니 다들 하나같이 뛰어난 네임밸류를 자랑했다.
쉽게 말해서 유명하다는 소리였고, 그런만큼 그들을 시기하거나 싫어하는 이들의 숫자 또한 상당했다.
그런 판국에 스태프 중에 한 명이 칼을 든채 출연자 중 한 명이었던 유한을 습격하려고 했다는 사실이 전해지니 사람 심리상 '설마 나도···?'라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상상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
결국 공방에 참여한 이들 중 대부분의 눈 속에 경계심이 어리기 시작했고, 그런 상황에서 처음과 같은 텐션이 나올 리 만무했다.
게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정신병자 한 명 때문에 같이 싸잡아서 의심과 경계의 눈길을 받게된 스태프들이라고 마음이 편했겠는가.
그나마 이성적인 이들은 출연자들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하긴 했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실제로 받아들이는 건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는 법.
이성적인 이들마저도 그럴진데 그렇지 않은 이들이 태반이다보니까 결국 곳곳에서 불협화음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렇게 발생한 삐걱거림이 방송을 통해 드러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거기에 진행 측의 설명으로 인해 모종의 사정으로 방송 현장을 이탈하게 되었다는 꼬리표를 달게된 둘이 하필이면 방송에 출연한 이들 중에 화제성이 가장 뛰어난 이들이다보니 이미 각 방의 채팅창은 세나와 유한의 행방에 대해 묻는 이들과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한 이들로 인해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
인방관련 커뮤니티 중 한 곳에 촬영현장에 경찰들은 물론 구급차까지 왔다 갔다는 목격담 하나가 올라온 건 그 와중이었다.
안 그래도 방송을 보고 있는 이들의 수가 어마어마했기에 그 사실이 각 방 채팅창으로 전해지는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은 필요치 않았다.
[아니 갤에 글 올라온 거 진짜임?]
[리아야 말 좀 해봐라 경찰차랑 구급차 출동한 거 팩트?]
[그럼 ㅅㅅ 듀오 갑자기 방송에서 빠진 것도 설마 그것 때문임?]
[다쳤냐?]
[아니 쉬는 시간에 대체 뭘 했길래;;]
[그러고보면 오늘 세나 상태가 좀 안 좋아보이긴 했어]
[ㄹㅇ 얼굴 계속 빨갛더라]
[않이 그러면 구급차만 와야지 경찰차는 머임?]
[대체 머선129;;]
세나와 친한 걸로 알려져있는 이들은 말할 것도 없었고,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이들은 물론 별로 관계가 없는 이들의 채팅창까지 저러니 플랫폼 측에서 나온 직원들의 '부탁'때문에라도 입을 꾹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이들의 표정은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특히나 합방도 자주 하고 오프라인에서도 자주 만나서 어울려 지내곤 했던 이들의 불만이 가장 컸다.
그들 입장에서는 조용히 넘어가길 원하는 플랫폼 측의 행태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듣자하니 정식 스탭은 아니고 알바로 잠시 고용한 이었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플랫폼 측에서 일손을 받을 때 좀 더 꼼꼼하게 살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테니까.
그리고 뭣보다 그들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만약 이대로 계속 입을 꾹 닫고 있을 경우 나중에 이와 관련된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졌을 때 그와 관련해서 논란이 생기지는 않을까하는 불안감.
왜 모르는 척 입 꾹 닫고 있었냐고 사람들에게 추궁을 받게 되지는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세나와 친한 이들 사이에서 공유되었고, 결국 참다참다 못한 이들 중 한 명이 총대를 메고 나섰다.
"하아··· 이거 원래 말하면 안 되는 건데···"
[왜? 뭔데?]
[진짜 뭔일 터졌음?]
[심각한 건 아니죠?]
[경찰하고 구급차 출동한 시점에서 이미 심각한 일인 건 확정 아님?]
[뭐 사생 한 명이라도 난입했나?]
[ㄴㄴ 그건 아닐듯 갤에 목격담 올라온 거 보니까 입구 무숴운 언냐들이 지키고 있더라]
"그, 이거 직원분들이 말하지 말라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아무래도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뭔데? 뭔데!!]
[말해줄 때까지 숨 참겠읍니다 흡···!]
[라고 묘비에 적혀있는데요 교수님?]
[아 ㅋㅋㅋ 어쩐지 아까부터 분위기가 좀 그렇더니만 단체로 아봉당해서 그런 거였음?]
[발언 통제 ㄷㄷㄷㄷ]
"아까 누가 채팅으로 사생 한 명이라도 난입한 거 아니냐고 그러셨는데··· 비슷해요."
난입과 사생.
그리고 경찰과 구급차.
흥미가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는 조합이었고, 정확히 그 때부터 채팅창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ㅅㅂ 어케 뚫었누 ㄷㄷㄷ]
[와;; 그걸 뚫네]
[난입룬 에반데;;]
"그···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세오 님이 외모가 워낙··· 압도적이시잖아요?"
[않이 갑자기 드리프트 무엇?]
[이런 식으로 빌드업하는 거야?]
[내가 올케가 된다!!]
[아 세나 올케하고 싶다! 올케!]
"아니, 그런 거 아니니까 조용히 좀 해봐요. 뭔 설명을 못하게 하시네."
[아 닥치고 ㄹㅇ ㅋㅋ만 치시라고요~]
[ㄹㅇ ㅋㅋ]
[알겠으니까 빨리 좀 말해조;; 나 현기증 날 것 같애]
[아까 숨 참겠다고 한 련 슬슬 숨 넘어가기 직전일듯]
"아무튼 그렇다보니까 그 스토커? 같은 년 하나가 붙어 있었나봐요."
[;;;]
[아 씨 왜 벌써 불안하냐]
[설마 세오 다침? 많이 다쳤나?]
[나 세오 못 잃어 우리 세오 못 잃어]
[스토커 ㅆㅂ련 내 앞에 있었으면 바로 죽빵 갈겼다]
"그런데 그··· 스토커가 평범한 알바인 척 위장하고 있다가 세오님한테 그··· 나쁜 짓을 하려고 했는데··· 다행히 세나가 그 근처에 있었던거죠. 그래서 뭐···"
말끝을 흐리며 자세한 언급을 피하는 대신 주먹끼리 부딪히는 시늉을 해보이는 스트리머의 행동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방송을 주시하고 있던 시청자들이 안도어린 채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세나 한 건 했누]
[장하다 유세나!]
[아 ㅋㅋ 이건 솔직히 훈장감이지]
[ㄹㅇ 국보 손실되는 거 막았자너~]
[세나 쫄보인줄 알았는데 용감하누;;]
[그런데 나중에 방송켜서 우쭐댈 생각하니까 벌써부터 킹받는 것 같은데 정상임?]
[삐삑 정상입니다]
[그래서 그 정신나간 스토커련이 구급차에 실려갈 정도로 잔뜩 정의구현을 당했다는 말씀이신거죠?]
[이건 솔찍히 정당방위 인정해줘야 한다 ㅇㅈ?]
[어 ㅇㅈ]
[인정함미다]
"아니, 그··· 실려간 건 세나··· 긴 한데···"
[뎃···?]
[앗..?]
"아, 그, 그렇다고 많이 다치거나 그런 건 아니고요··· 그··· 제가 대충 들어보니까 스토커하고 같이 넘어질 때 팔이 밑에 깔려버리는 바람에 거기에 금이 좀 갔다고 하더라고요."
내심 본인들이 상상했던 모습하고는 많이 달랐기 때문일까.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채팅창 분위기가 단 한순간에 어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