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31화 〉1부 (231/315)



〈 231화 〉1부
그야말로 온몸이 욱씬거렸다.

어떤 느낌이냐면 대충 3일 정도 잠을  자다가 불편하기 그지없는 자세로 두어시간 정도 쪽잠을 자고 일어난 것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어찌보면 이불같은 걸로 돌돌 말린 다음에 흠씬 두들겨맞은 것 같기도 했다.

 정도로  쑤시는 곳이 없었다.

그 와중에 팔쪽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또 이질적이기 그지없어서 그게 은근히 신경에 거슬렸다.

뭔가로 둘둘 말려서 갑갑한 느낌이 드는 것이 꼭 좁은  같은데에 팔이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그래서 슬쩍 팔을 움직여봤더니만 농담하는게 아니고 진짜로 눈물이 찔끔하고 새어나올 정도로 어마어마한 통증이 숨을 턱 막히게 만들었다.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침대같은 푹신함은  뭐고.

아직 채 가시지 않은 통증 때문에 속으로 끙끙거리고 있던 것도 잠시, 의식과 함께  끊어져버렸던 생각이 다시금 이어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다.

까무룩 기절하기 전까지 자신이, 그리고 유한이 어떤 상황에 놓여져 있었는지를.

'···유한이는?!'

뒤통수에서 푹신푹신한 감각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집 아니면 병원인  같은데 그렇다면 유한은 어떻게  걸까.

혹시 많이 다친 걸까.

이럴 줄 알았다면 무턱대고 뛰어드는 대신 소리라도 고래고래 지른 다음에 뛰어들었을텐데.

'혹시 상태가 심각한 건···'

생각이 자꾸만 불안한 쪽으로 뻗어나갔다.

여전히 몸 곳곳을 두들겨대고 있는 통증 때문에 질끈 감고 있던 눈을 억지로 황급히 떴던 것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진짜로 기절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제  깨어난 탓일까.

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들의 모습이 안개라도 낀 것마냥 흐릿한 것이 어째 초점이 잡히질 않았다.

그래서 몇 번이고 눈을 깜빡대고 있으려니까ㅡ

"누나? 정신이 들어?"

걱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한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반응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유한이 마치 죽었다가 깨어난 사람이라도 바라보는 듯한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눈빛을 받고 있으려니 뭔가 좀··· 기분이 요상했다.

실수로 깃털같은 거라도 잘못 삼킨 것마냥 가슴 언저리가 간질간질하면서도 은근 황당하다고 해야할까.

대체 누가 누굴 걱정하고 있는 걸까 지금.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왠지 유한이 괘씸하게 느껴졌다.

걱정을 받아야하는 쪽은 자신이 아니라 유한일텐데 왜 쟤가 나를 걱정하고 있는 걸까.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상황이 뭔가  어색했다.

유한과 마지막으로 나누었던 대화가 하필이면 그런 식이다보니까 더 그랬다.

"···누구세요?"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을 얼굴 위에다가 띄워놓은 채 그 표정하고 잘 어울릴  같은 목소리를 내서 그리 물었던 것은 그렇게라도 해서 이 어색하기 그지없는 분위기 속에서 벗어나고자 함이 컸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장난으로 그랬던 거였는데···

그리 내뱉은 순간 걱정이라는 감정이 그득하게 눌러붙어있던 유한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변하는 걸 보고 깨달았다.

다른  몰라도 이런 상황에서 쳐도 될만한 장난은 아니었다는 걸.

누가봐도 크게 놀랐다는  눈에 훤히 보일 정도라서 덩달아 이쪽도 가슴이 철렁할 정도였다.

"야, 그··· 자, 장난이야. 장난···"

시간을 되돌려서 이미 입밖으로 내뱉어버린 걸 없던 걸로 바꿔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대신 한시라도 빠른 수습을 위해 황급히 그리 내뱉었다.

내뱉었는데··· 유한이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인 것도 다름아닌 그때였다.

'설마···'

우는 건··· 아니겠지?

다른 남자같으면 진작에 울고 불고 난리를 쳤을 일을 당하면서도 끝끝내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 바로 유한이었다.

그렇기에 유한이 고작 이런 걸로 눈물을 흘릴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심장이 불안하게 두근거리는 것만큼은 스스로도 어쩔 수가 없었다.

'에이, 아니겠지···'

그 불안하기 짝이 없는 두근거림을 어떻게든 가라앉혀보고자 속으로 그리 중얼거리고 있으니 유한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꼭··· 진짜로 울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 저기요···?"

"···장난?"

"선생님···?"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탓에 평소랑은 다르게 보이지 않는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가 상당히 음산했다.

그렇기에 몸을 오들오들 떠는 것말고는  수 있는 게 딱히 없었다.

"장난··· 하, 장난이었단 말이지···"

"야, 그, 미, 미안···"

"나는 순간 누나가 잘못된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는데··· 장난··· 하하··· 하···"

한숨인지 헛웃음인지 알  없는 것의 소리가  끊기고 나서 주변으로 내려앉은  어색하고도 싸늘한 침묵이었다.

순식간에 주변을 둘러싼 그 무겁기 그지없는 분위기에 몸이 욱씬거리는 것조차 잊은 채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죽어."

살벌하기 그지없는 중얼거림과 함께 눈물이 찔끔하고 새어나올 정도로 끔찍한 고통이 허벅지 쪽에서 솟구쳤다.

"악ㅡ!"

졸지에 허벅지를 잡혀버린 세나가 아파 죽겠다며 그나마 멀쩡한 손을 이용해 침대를 팡팡 두들기고 있을 때 유한은 연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를 보고 누구냐고 묻는 세나의 모습이 진심으로 철렁했었으니까.

"야, 나···! 나 환자거든?!"

"아, 그러세요? 그래서 어쩌라고요."

"아악ㅡ!"

거짓말을 할  따로 있지 감히 기억상실 코스프레를 해?

이건 환자고 뭐고를 떠나서 쉬이 용서할 수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환자기에 더 괘씸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다리에도 깁스하게 해줄게. 이 참에 질릴 때까지 푹 쉬자. 응?"

그렇게 세나가 눈물을   때까지 혼내고  후에야 비로소 제대로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아줌마는 어떻게 됐냐···?"

 아줌마라고함은 필시 그 스토커년을 말하는 것이겠지.

"···잡혀갔지. 아마 지금쯤 지나 누나한테 탈탈 털리고 있을 걸."

"그, 그래···?"

오늘 있었던 일이 벌써 지나의 귀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니 후폭풍이 걱정되기라도 했던 걸까.

세나의 얼굴이 살짝이지만 핼쑥해졌다.

"걱정하지마. 혹시 지나 누나가 누나한테 뭐라고 그러면 내가 막아줄테니까."

"으음··· 그, 너는? 다친 데는 없고?"

"나야 괜찮은데···"

슬쩍 말꼬리를 늘어뜨리면서 허연 붕대로 감싸인 세나의 오른팔을 힐끔거렸다.

그런  시선이 민망했던 걸까.

세나가 어색하게 웃으며 깁스로 감싸인 팔을 등뒤로 숨기려고 했다.

"악ㅡ!"

문제는 그러다가 또 옆구리에 팔을 부딪혀버렸다는 것이었고.

"으휴··· 잘 하는 짓이다."

"씨이이··· 야! 내가 그래도 어?! 어찌보면 네 생명의 은인이거든?!"

다친 것도 억울한데 구해준 사람인 나한테 한소리까지 들으니 더 억울했던 걸까.

그새 또 눈꼬리에 눈물을 그렁그렁하게 매단채 세나가 억울해죽겠다는 표정과 목소리로 본인이 응당 누려야할 권리를 주장해왔다.

그 말을 듣고는 내심 잘 됐다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그것하고 관련해서 한 마디 해야겠다고 벼르고 있던 참이었으니까.

"그래, 맞지. 그런데 누가 도와달래?"

"···뭐?"

설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몸까지 던져가며 구해줬던 나한테 그런 말을 듣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던 걸까.

언제 씩씩대고 그랬냐는 듯 세나의 얼굴이 단숨에 멍하게 변했다.

"누가 누나한테 구해달라고 했냐고."

"아니, 그, 야···"

얼떨떨함하고 황당함이 하도 커서 말이 잘 나오질 않는 걸까.

더듬더듬거리는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누나 싸움 잘해?"

"어···?"

"싸움 잘하냐고."

"그으···"

그래도 아직 양심이라는 걸 완전히 갖다버리지는 않은 모양인지 차마 본인 입으로 잘한다고 그러지는 못하더라.

"누나 쫄보에다가 싸움도 못하잖아."

"···너, 말이 좀 심하다?"

"당분간 쭉 그럴 예정이니까  닫고 듣기나 해."

"하···!"

"싸움도 못하면서 대체  믿고 달려든 건데?"

"그러면 가만히 있냐? 그런 상황에서?"

"누가 가만히 있으래? 사람을 불렀어야지! 직접 달려들지 말고 사람부터 불렀어야지!"

다른 건 몰라도  부분에서만큼은 할 말이 없었던 걸까.

세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어쩔 수 없었어."

그러더니 그렇게 중얼거리더라.

"뭐가 어쩔 수 없었는데?"

"아, 그러면 나보고 어떡하라고! 당장 눈앞에 있는 게 더 급한데!"

"그래, 그랬겠지. 아마 나라도 그랬을 거야. 그런데··· 그러지 말았어야지."

"정신 차리고 보니까 이미 달려들고 있었는데 나보고 뭐 어쩌라고!"

"왜?"

"···뭐?"

세나와 똑바로 시선을 맞춘  그리 물으니 살짝 당황했는지 세나가 눈가를 파르르 떨면서 그리 반문해왔다.

"왜 그랬냐고."

"그야, 그··· 가, 가족이잖아."

"가족··· 그래, 가족이지."

내 중얼거림과 함께 잔뜩 날이 서 있던 분위기가 다시금 어색하게 변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살짝 숙이고 있던 고개를 세나를 향해 홱 치켜들며 물었다.

"그런데··· 그것 뿐이야?"

"무, 뭐?"

대답대신 돌아온 건 황당해하는 반응이었다.

그래서 나도 목소리를 차분하게 가다듬어 다시 한  물었다.

"그것 뿐이냐고."

"그, 그럼··· 뭐 더 있냐?"

그리고 그게 세나가 답이랍시고 내놓은 것이었다.

그런 것치고는 아까 전부터 유독 내 시선을 피하고 있긴 했지만.

볼에도 살짝이지만 홍조가 어려있었고.

"누나."

"···뭐."

"내가 누나 쓰러져있는  보고 무슨 생각했는  알아?"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후회했어."

무엇에 대한 후회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을 뿐더러 지금 중요한 건 그딴 게 아니었으니까.

내 말을 듣고는 어깨를 흠칫하고 떠는 세나를 향해 슬쩍 손을 뻗었다.

그러자 내 손을 피하듯 세나가 작게 몸을 움츠렸다.

그러면서 또 팔쪽에서 통증이 올라오기라도 했는지 인상을 살짝 찌푸리는 것이 귀여우면서도 안쓰럽더라.

슬그머니 뻗은 손으로 살짝 터져있는 세나의 입술을 부드럽게 쓸었다.

"입술도 이렇게 다 터져가지고는···"

"무, 뭐하는 거야···"

"이러면 내가··· 너무 미안하잖아."

"갑자기 그건 또 뭔···"

"그냥, 다."

한숨과 함께 탁 내뱉으니 세나가 습관처럼 입술을 슬쩍 깨물었다.

"또또, 입술 깨문다. 그러다가 입술 터지겠네."

"남이사 터지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이냐는  중얼거린 것치고 세나는 순순히 턱쪽에서 힘을 풀었다.

대신 고개를 옆으로 돌려버리긴 했지만.

"···뭐가, 그렇게, 미안한데."

그러더니 자그마한 목소리로 더듬더듬 묻더라.

"글쎄··· 누나한테 화낸 거? 방금도 그렇고··· 이전에도 그렇고···"

"그, 뭐, 그건··· 나도 잘못하긴 했으니까···"

"그리고 누나한테 심한  한 것도 마음에 걸리네."

"그으, 나도, 너한테 이상한   적 있으니까···"

"그것들끼리 서로 퉁치자?"

내 물음에 세나가 옆으로 돌려놓고 있던 고개를 슬쩍 끄덕였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나와의 관계를 확실하게 정리할 생각인 걸까.

"그러면··· 내가 누나  가지고 논 건? 누나 몸에다가 막··· 그런 짓  건?"

아무래도 그런듯해서 그리 물었더니만 그 질문에는  답을 못하더라.

"그거는 어떻게 할 건데?"

"그으··· 그거는···"

"누나도 내  가지고 놀래?"

옆으로 돌아가있던 세나의 고개가 내쪽으로  돌아온   입에서 그런 말이 흘러나온 직후였다.

"야, 너 무슨 말을···"

"나는 상대가 누나라면 상관없는데."

"무, 뭔 헛소리야··· 이상한  주워먹기라도 했냐?"

어느새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채 더듬더듬대는 세나를 향해 몸을 바짝 들이밀며 속삭이듯 말했다.

"아까도 말했었잖아. 누나랑··· 하고 싶다고."

"그, 그거는···"

"난 진심이었는데."

툭 내뱉은 순간 어디선가 꼴깍하고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도둑이  발이라도 저리듯 세나가 어깨를 움찔하고 크게 떨어대길래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한 번 속삭였다.

"아까 하려고 했던 거···"

세나의 몸에 깃들어있던 떨림이 한층 더 진해졌다.

"여기서 마저 할까?"

"야, 나, 화, 화, 환자거든···?"

그리고 그 떨림 속에 깃들어있는 건··· '망설임'이라는 감정이었다.

"그래, 누나는 환자니까···"

"그, 그래! 그러니까 이런 건···"

"그러니까 아무 것도 안 해도 돼."

싱긋 웃으며 망설이는 세나의 몸을 부드럽게 떠밀어 다시 침대에다가 눕혔다.

"편하게 누워있어.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탐스러운 갈색의 머리칼이 침대 위로 흐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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