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화 〉1부
'아니···'
대체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서로 몸을 포갠 채 화장실 바닥에 몸을 고이 뉘이고 있는 두 여자를 보고 있으려니 지금 보고 있는 걸 수습해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머리가 막 지끈거렸다.
거기에 얼굴을 노리고 다가오는 칼날을 막기 위해 동원했던 팔들은 오른팔, 왼팔 가릴 것 없이 둘다 막 후들거리지··· 심장은 이제서야 뒤늦게 쿵쾅대고 있지···
맘 같아서는 나도 저 둘처럼 화장실 바닥에 쓰러지고 싶을 지경이었다.
솔직히 세나의 도움을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세나가 날 찾아올 거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허나 내가 기대했던 건 세나가 나와 스토커년의 대치상황을 발견하고는 특유의 그 목청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도와줄 수 있을만한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것이었지 방금처럼 세나가 직접 몸을 날리는 게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내가 아는 세나는 세계 최고의 쫄보였으니까.
그런데 커터칼이라고는 하지만 사람 한 명 좆되게 만들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굵은 날을 가진 칼을 든 괴한을 상대로 몸을 날린다?
솔직히 그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틀림없이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설마 그렇게 망설임없이 몸을 날릴 줄이야.
'싸움도 못하면서 대체 뭘 믿고···'
럭키펀치가 제대로 터졌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둘다 위험했을 거다.
사람 얼굴을 향해 망설임없이 칼을 내지르는 년이 다른 곳이라고 망설이진 않을테니까.
'아.'
생각해보니까 이렇게 한가하게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즉시 뒤늦게 얼어붙어버린 몸을 움직여 일단 스토커 년의 손에 쥐어져있는 칼부터 회수했다.
물론, 기절한 척 연기를 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었기에 가까이 다가가서 빼내지는 않고 발로 손을 사뿐히 즈려밟는 식으로 빼냈다.
덕분에 난생처음 사람 손을 고의로 즈려밟는다는 특별한 경험도 하게 되었지만 솔직히 그리 기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더러웠으면 더러웠지.
'어, 이제···'
뭘 해야할까.
아니, 뭘 하면 좋을까.
이런 상황은 처음이기 때문일까.
꼭 바보가 된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냥··· 휴대폰을 꺼내 경찰에 신고를 넣은 다음 그대로 화장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와중에 칼날하고 닿았던 팔뚝 쪽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린다는 헤프닝이 벌어지긴 했지만, 그보다는 차라리 세나의 상태가 더 신경쓰였다.
둘이 넘어질 때 어떻게 넘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스토커년도 그렇고 세나도 그렇고 둘다 나란히 기절한 상태였으니까.
뭐, 머리에서 피라도 줄줄 쏟아지고 있는 중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고서야 스토커년의 상태가 어떻든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었기에 세나의 상태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혹시 몰라 상점을 불러내 도움이 될만한 것을 사서 먹여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상황이 종료된지가 언제인데 이제와서 놀란 티라도 내는 것처럼 몸에서 점점 힘이 빠져가는 걸 느끼며 화장실 벽에 등을 기댄 채 숨을 고르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바깥서부터 웅성거림이 전해져왔고, 그 순간 깨달았다.
아까 제멋대로 떨리는 손가락을 채찍질해서 넣어두었던 신고가 드디어 효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혹시 몰라 스토커 년의 목하고 얼굴 위에다가 올려놓았던 다리를 옆으로 즉시 옆으로 치운 것도 그래서였다.
그리고는 팔뚝에서 새어나온 것으로 빨갛게 변해버린 소매를 일부러 꾹 부여잡고 있으니 찌직하고 테이프같은 걸 떼어내는 소리와 함께 일단의 사람들이 화장실 안으로 우르르 들어섰다.
개중에는 스토커 년처럼 명찰을 목에 걸고 있는 이들도 있었고, 경찰마크가 새겨진 모자를 푹 눌러쓴 이도 있었으며, 오다가다 한 번 정도는 마주쳤었던 다른 스트리머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뭐··· 난리도 그런 난리가 또 없었다.
나는 피로 셔츠 소매를 붉게 적시고 있지, 어찌보면 오늘 방송의 핵심 출연진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는 세나는 누가봐도 기절해있지··· 심지어 그 현장 한 가운데는 스태프라 적힌 명찰을 보란듯이 내걸고 있는 년 하나가 기절해있기까지 하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긴 했다.
아마 오늘 공식방송을 기획하고 진행한 이들 입장에서는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지 않았을까.
스트리머들끼리 이랬어도 수습할 생각에 골머리를 싸매야했을텐데 알바라고는 해도 어찌되었든 스태프 중에 한 명이 칼을 든채 출연자 중에 한 명을 습격하려고 했던 꼴이니까.
뭐, 그 문제야 플랫폼 측에서 알아서 할 일이었기에 더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어찌보면 그쪽도 책임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었으니까.
진행측 입장에서는 그래봐야 잡일이나 하는 알바일 뿐인데 걔들 때문에 문제가 생겨봐야 얼마나 크게 생기겠냐고 생각하고 대충 넘긴 걸테지만 만약 그쪽에서 조금만 더 꼼꼼하게 체크했어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니까.
결국 내가 관심있는 건 두 개였다.
세나의 몸 상태와 스토커년을 좆되게 만드는 것.
일단 세나의 몸 상태는 당장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조사 차 경찰서로 향해야만 했던 나와는 다르게 세나는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으니까.
맘 같아서는 나도 세나를 따라가고 싶었는데 상황이 그걸 허락하질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플랫폼 측에서 내어준 직원에게 세나의 보호자 역할을 일임해야만 했다.
그렇게 경찰서로 오게 되고 나서는 어떻게 되었냐고?
그야말로 한편의 모노드라마를 감상하게 되었다.
물론, 드라마의 주인공은 그 스토커년이었고.
계속 기절해 있었다면 경찰서보다는 병원으로 먼저 향하게 되었을텐데 하필이면 현장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정신을 차린 덕분에 그대로 경찰서로 끌려오게된 스토커는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설명하기 위해 했던 말들을 전부 개소리라 부정하며 오히려 자신이야말로 억울한 피해자라 열심히 주장하고 계신 중이었다.
"저 놈이 먼저 자지 흔들면서 유혹했다니까요?! 예? 형사님!"
"네네···"
"그래놓고서는 자긴 아무 것도 안 했다고 사람을 스토커로 몰아서는···"
물론,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에 스토커년의 말을 믿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지만.
과거에 날 스토킹해서 내게 피해를 입혔던 전적이 고스란히 조회될 뿐더러 애초에 칼을 들고 날 찾아온 시점에서 저년이 빠져나갈 수 있는 구석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긴 했지만··· 그래도 되도 않는 개소리를 지껄여대는 걸 계속 듣고 있다보니까 내심 기가 막히는 건 어쩔 수가 없더라.
제 딴에는 최선을 다해 억울함을 주장하고 있는데 주변에 있는 그 누구도 자기 말을 믿어주지 않으니까 순간 울컥하기라도 했던 걸까.
"그리고 그···! 저 놈 저거! 사실은 지 누나라는 년하고 붙어먹을 정도로 걸레같은 놈이에요!"
갑자기 그런 식으로 빼액하고 소리를 지르더라.
다른 건 몰라도 그 말에는 솔직히 좀 흠칫하긴 했다.
잽싸게 주변의 반응을 살펴보니까 다들 궁지에 몰린 이가 흔히 하곤 하는 헛된 발악 중 하나라 판단한 건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눈치라서 안도할 수 있었지만.
"나이도 드실만큼 드신 분이··· 후우··· 참···"
딱봐도 제정신이 아니라는 게 눈에 훤히 보이다보니까 사건을 담당하게된 입장에서도 내심 골치가 아팠던 걸까.
눈밑에 드리운 다크서클이 퍽 인상적인 여형사가 고개와 함께 하나로 모아묶은 머리카락을 절레절레 흔들며 손에 들고 있던 볼펜으로 본인의 이마를 툭툭 두들겨댔다.
또각- 또각-
그런 소리와 함께 지나가 플랫폼 측에서 보내주겠다던 변호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건 다름아닌 그 와중이었다.
그 순간 지나가 보여주었던 포스는 정말로··· 무시무시했다.
오죽하면 내 편이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하고 삼키게 될 정도였다.
"···괜찮아? 유한아? 다친데는?"
"그··· 팔뚝만 살짝···"
"팔뚝? 어디 한 번 봐봐."
보여달라고 하길래 보여주려고 하니까 자기가 먼저 나서서 내 소매를 걷어올리더라.
걱정이라는 감정이 그득그득하게 눌러담겨있던 지나의 눈동자 속으로 불꽃이 튀어오른 건 다름아닌 그 직후였고.
"죽여버릴까···"
팔뚝을 베이긴 했어도 크게 베인 정도는 아니고 살짝 찔린 정도라서 그쪽에 붙여놓은 밴드의 크기도 내 손바닥의 반의 반만한 크기였는데 그럼에도 그리 중얼거리는 지나의 목소리는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아마 이곳이 경찰서만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일을 치뤘을 것 같은 느낌?
"누나?"
"응? 아··· 아냐··· 그, 많이 아파? 병원 가봐야 되는 거 아냐? 아니다.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그냥 병원에 가 있어. 누나가 택시 불러줄테니까."
그래도 되는 걸까.
아직 조사할게 남았다고 들은 것 같은데 말이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같이 등장한 이와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던 지나가 다시 내 앞으로 돌아와 날 자리에서 일으켰다.
"그, 잠시···!"
"지금부터는 저랑 이야기 하시죠. 사실 지금 이것도 나중에 문제될 수 있는 건 아시죠? 원래 이런 식의 사건 같은 경우에는···"
변호사한테 가로막혀서 이도저도 못하는 형사를 뒤로한채 경찰서 밖으로 날 데리고 나온 지나가 마침 경찰서 앞을 지나가던 택시를 불러세워 그 안에 날 태웠다.
"나머지는 누나가 저 분이랑 상의해서 다 알아서 할테니까. 그, 일단 병원에 가 있어. 병원에서 치료도 더 받고, 세나 옆에 누워서 놀란 것도 좀 추스리고."
솔직히 이래도 되는 건가 싶기는 했지만··· 지나가 내게 해가될만한 행동을 할 리도 없을 뿐더러 세나의 상태가 궁금한 것도 사실이었기에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이내 지나를 향해 조심스레 물었다.
"그, 누나?"
"응?"
"혹시 고모한테는···"
아무래도 한창 바쁘게 일할 시간대다보니까 가영에게까지 이 소식을 전하긴 좀 그래서 일단 지나한테만 연락을 해뒀는데 혹시나 지나가 가영에게 이 사실을 알렸을까 싶어서 그리 물으니 지나가 갑자기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이내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엄마한테는 아직 말 안 해놨으니까 놀란 거 좀 추스리고 나면 유한이 네가 직접 말해."
"아, 응."
"그렇다고 또 너무 늦게 하지는 말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더 끄덕이니 그대로 내 몸을 슬쩍 떠밀어 택시 안으로 구겨넣은 지나가 손으로 붙잡고 있던 문을 탁 소리가 나도록 닫았다.
그렇게 택시를 타고 세나가 향했다던 병원에 도착하니 세나는 응급실 침대 하나를 떡하니 차지한채로 누워있었다.
오른쪽 팔에 붕대를 둘둘 감은 채로.
상황 전달을 위해서 잠시 자리를 비웠던 모양인지 때마침 돌아온 플랫폼 측 직원이 말하길 넘어질 때 상대방 몸에 오른팔이 깔리면서 넘어지는 바람에 팔에 금이 가셨단다.
기절한 것 때문에 혹시 몰라서 간단하게라도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돌려봤는데 딱히 문제가 되거나 다친 곳은 없다고 했고.
"그래요?"
"네, 그··· 기절한 것도 넘어지면서 느낀 통증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아···"
"그러니 너무 걱정 안 하셔도···"
슬쩍 말꼬리를 늘어뜨리면서 자꾸만 내 얼굴을 힐끔대는 꼴이 딱봐도 상사한테 무슨 말이라도 좀 해보라고 한 소리 들은 눈치였지만 모르는 척 하며 지나가던 간호사를 호출했다.
참고로 남자더라.
"그, 혹시 여기 이 환자 입원 가능할까요?"
"입원이요? 입원 문제라면 여기서 말씀하지 마시고···"
"왠만하면 1인실이었으면 좋겠는데요. 여긴 너무 시끄러워서···"
들어올 때 봤던 병원 규모를 생각하면 1인실에 입원할 경우 적잖은 비용이 깨지게될 가능성이 컸지만 그거야 뭐··· 플랫폼 측에서 알아서 해주겠지.
그쪽에 이 문제를 최대한 원만하게 수습하고자하는 의지가 있다면 말이다.
아무튼 여긴 좀 아니었다.
시끄럽기도 시끄러울 뿐더러 일단 주변에 커튼을 둘러놓기는 했는데 그런 식으로 정체를 숨기는데에도 한계는 있을테니까.
참으로 다행히도 1인실 카드가 제대로 먹혀들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친절하게 1인실까지 날라다주었다.
"그러면 일단··· 오늘은 이만 좀 돌아가주시겠어요? 저도 좀 쉬고 싶어서···"
"아, 네네!"
할 말이 참 많아보이는 플랫폼 측 직원에게는 참 미안하지만 그녀까지 돌려보내고 난 후에야 좀 편하게 앉을 수 있었다.
"으으음···"
숙면이라도 취하는 사람마냥 묘하게 평온해보이던 얼굴을 하고 있던 세나가 눈썹을 꿈틀대기 시작한 건 넓은 병실 안에 둘만 남겨지고 난 직후였다.
슬슬 깨어나려는 걸까.
자꾸만 눈가를 꿈틀꿈틀하고 떨어대는 걸 보니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서 살짝 숨을 죽인 채 세나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랬더니 이내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그것이 스르륵 열렸다.
막 깨어난 탓에 초점이 불분명하기라도 한 것일까.
자꾸만 눈을 깜빡거리길래 더 참지 못하고 조심스레 말을 붙여봤다.
붙여봤더니ㅡ
"누나? 정신이 들어?"
"그··· 누구···?"
돌아온 건 의아함으로 가득 찬 목소리였다.
"···누구세요?"
살짝 흐리멍텅한 눈빛과 함께 의문어린 목소리가 귓속으로 흘러들어온 순간, 가슴 속에서 뭔가가 덜컥하고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