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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7화 〉1부 (227/315)



〈 227화 〉1부

손풀기 삼아 참가했던 첫 종목에서 점수를 따내지는 못했지만 개의치 않고 미리 염두해두었던 종목을 찾아나섰다.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뭘 보고 그렇게 꽂힌 건지는 모르겠지만 제니아라는 여자가 렐 좀 제대로 배워볼 생각 없냐고 자꾸만 치근덕거렸으니까.

그래서 그런 식의 대화를 나누기에는 장소도 때도 적합하지 않은 것같다는 말로 둘러대서 돌려보내야만 했다.

그렇게 은근히, 아니 상당히 신경쓰이던 존재를 옆에서 치워버리고서 리듬게임 코너로 향했다.

해당 종목이 진행되는 부스에는 애석하게도 이미 선객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야, 맵 진짜 빡세게 만들어놓으셨네."

단발머리를 가진 여성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이쪽도 세나가 경계해야할 대상이랍시고 뽑아준 사람이더라.

리듬게임을 그렇게 잘한다나.

이왕 이렇게 된 거 리듬게임 종목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될지도 모르는 이의 실력이나 한 번 구경해볼 생각으로 조심스레 그쪽을 향해 접근했다.

"그럼, 슬슬 시···"

"그, 안녕하세요?"

뚜둑뚜둑 소리를 내며 풀던 손가락들을 그대로 키보드 위로 옮기려던 것도 잠시, 내 목소리에 반응한 단발녀가 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눈에 껴놓은 것 덕분인지는 몰라도 아주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왜 방해냐고 묻는 듯한 표정이었던 것이 내 얼굴을 확인하고는 언제 그랬냐는  친절해보이는 미소로 싸악하고 바뀌는 광경을 말이다.

그야말로 가면이라도 바꿔쓴 것 같은 급격한 변화라서 순간 헛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꾹 참고 하려던 말을 이어나갔다.

"그, 실례가 안 된다면 하시는 거 옆에서 좀 구경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실례일 거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그렇게 물은 것은 어지간하면 거절할 리 없다는 점과 그렇게 강력한 경쟁자라면 그런 식으로라도 좀 정신공격을 해서 집중력을 흐트러뜨려 놓는 편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네? 아, 네네···"

"감사합니다."

표정도 몸짓도 어색하기 그지없긴 했지만 아무튼 구경해도 된다길래 놀고 있던 의자 하나를 끌어와 적당히 거리를 두고 앉았다.

그러는 동안 목에 '레이니'라 쓰여진 명찰을 걸고 있던 여자는 자기 방 시청자들하고 투닥거리고 있더라.

"아니, 내가 언제 헬렐레 했다고···"

소근소근 속삭이듯 말하면  들릴 거라 생각한 모양인데 안타깝게도 전부 다 들렸다.

물론, 모르는  딱 잡아떼면서 적당히 웃어넘겼다.

그러고 있으려니 내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긴장이라도 되는지 후하후하하고 심호흡을 해대던 레이니가 이내 스페이스바 버튼을 탁하고 눌렀다.

아무래도 사람은 많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보니까 이런 식으로 기록을 측정해서 그걸 가지고 경쟁하는 종목같은 건 도전횟수가 한정되어 있었다.

이 종목같은 경우에는 다 합해서 총 세 번까지 도전할  있는 식이었고.

아무튼 타닥하고 경쾌하기 짝이 없는 소리와 함께 시작된 첫트에서 레이니라는 여자는 본인이 리듬게임 전문 스트리머를 자청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아니···'

분명 처음 플레이하는 걸텐데 왜 이렇게 능숙한 걸까.

세나였다면 틀림없이 20퍼도 못 찍고 찍하고 죽었을게 뻔한 맵을 레이니는 비교적 능수능란하게 헤쳐나가고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 구간에서  절긴 하더라.

"와··· 이거 좀 어렵네···"

 어렵다니.

고작 그것밖에는  된다는 사실에 그만 헛웃음이 나오려고 했지만 꾹 참고 대신 감탄하는 듯한 표정을 얼굴 위로 띄워올렸다.

그러자 그런 내 반응을 흘깃하고 곁눈질을 통해 확인한 레이니가 '흐응!'하고 콧김을 내뿜었다.

"아무튼 이제 맵도 얼추 눈에 익은 것 같으니까 진짜로 해보겠습니다."

방금 그게 첫 시도였을텐데 그걸 그새  다 외웠단 말이지···

'이러니까 사람들이 우승하겠다는 말에 그렇게 코웃음을 치지.'

확실히 그럴 만 했다.

다른 이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눈앞에 있는 레이니도 그렇고 아까 상대했던 제니아도 그렇고 어느 하나 만만한 상대가 없었으니까.

그에 비해 이쪽은··· 세나가 있다고는 하지만 누가봐도 약자인 내가  옆에 찰싹 달라붙어있으니 당연히 약해보일 수밖에.

그런 생각을 하며 속으로 쓴웃음을 짓고 있는 동안 자꾸만 내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보던 레이니가 이내 두 번째 시도를 시작했다.

그리고 끝에 가서 실수해서 죽었던 첫 시도와는 다르게 레이니는  번째 시도를 완벽하게 완수해냈다.

그렇게 나온 기록은 당연히 1위 자리에 랭크되었다.

아직 시도한 이가 그리 많지 않기는 했지만··· 솔직히 도전자가 더 늘어난다고 해서  기록이 쉽게 깨질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 어지간한 이들은 맵을 완주하는 것조차 힘들지 않을까.

"아··· 뭔가 좀 아쉽네···"

그래놓고서 한다는 소리가 저러니 옆에서 지켜본 입장에서는 당연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이거 기회가 세 번까지였죠? 그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봐야겠다."

그러더니 거기서 기록을 더 줄여버리더라.

"흐음, 좀 긴장했나?"

모니터 위에 찍힌 기록을 바라보며 그리 중얼거리던 것도 잠시, 레이니가 '아'하고 탄식인지 탄성인지 모를 것을 한 번 흘리더니 그대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세오 님도 하실거죠?"

 향해 생글생글 웃으며 그리 말하는 것이  자기보다 잘 할 자신이 있으면 어디 한 번 해보라고 의기양양해하는 듯 했다.

"네, 뭐··· 해보긴 해야죠."

"어떻게 이 게임은  해보셨어요?"

"네, 연습삼아서 조금···?"

"흐음, 그러시구나."

어느 정도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 하더니만 이내 흥미 가득한 표정으로 딱 자리를 잡고 서는 것이 꼭 '칭찬 일발장전!'이라고 외치는 듯 했다.

내가 하는 걸 지켜보고 있다가 더 잘  수 있다고 위로를 하든 아니면 잘 한다고 칭찬을 하든 해서 내게 점수를 따보려는 속셈인 걸까.

의도가 빤히 보이니까 얄밉게 느껴지기 보다는 오히려 귀엽더라.

'뭐, 이만하면 나도 충분히 보기는 했으니까···'

말마따나 한  도전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이번 기회를 날린다 쳐도   더 도전할 수 있으니까.

'아까 몇배속으로 했었지?'

8배속이었나?

그래서 나도 8배속으로 세팅해봤다.

그러니까 바로 뒤에서 딴지를 걸어오더라.

"흐음, 저랑 똑같이 해보시려고요? 힘드실텐데···"

그 말을 듣고 배속을 더 올려볼까하고 순간 고민했지만 일단은 8배속으로 도전해보기로 했다.

"후우···"

시작하기 전에 가볍게 심호흡을 해준 뒤 손을 뻗어 스페이스바를 슬며시 눌렀다.

그와 함께 모니터 화면 위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고, 그게 0으로 변함과 동시에 화면이 정신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정신없이 움직인다는 건 어디까지나 남들이 볼 때 그렇게 보일 거라는 뜻이고 나한테는 그냥 다 보이더라.

그래서 굳이 소리를 듣지 않고 '보고', '쳤다.'

"···어?"

살짝 헐렁하게 쓴 탓에 그 사이로 흘러들어온 얼빠진 소리가 참으로 듣기 좋았다.

헤드셋을 통해 울려퍼지는 시끌시끌하기 그지없는 음악하고는 비교가  될 정도로 감미롭더라.

"으아··· 이거 확실히 맵이 좀 어렵긴 하네요."

덕분에 무사히 첫트를 끝마친 순간 진심으로 미소를 지어보일 수가 있었다.

"그런데 속도를  더 올려도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가 그리 중얼거리고는 최대 배속인 16배속으로 세팅한 뒤 바로 두 번째 시도를 시작했다.

그리고 딱 그걸로 충분했다.

두 번째 시도를 무사히 끝마친 순간 화면 위에 떠오른 기록을 보고 직감했으니까.

이 기록은 리듬게임 전문 스트리머 할애비가 와도 깨지지 않으리라는 걸.

"오, 1위."

그렇게 할부의 마법을 시전해서 풀로 땡겨둔 상점의 힘을 이용해 여기저기서 점수를 파밍했다.

물론,  그런 건 아니었다.

상점의 힘으로 어쩔  없는 종목도  개 있었으니까.

야추처럼 운이 크게 작용하는 종목같은 게 그랬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네잎클로버 아껴놓을 걸···'

그러면 주사위 굴릴 때마다 상대방한테 사기치지 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그 사실이 새삼 아쉽게 느껴지긴 했지만, 생각외로  운도  나쁘진 않더라.

'6번 붙어서 4번 이길 정도면 좋은  아닌가?'

거기에 오목에서도 점수를 꽤 달달하게 벌 수 있었다.

야추하고 마찬가지로 오목도 상점의 힘을 빌리기 애매한 종목 중 하나였는데 학교하고 군대에서 노트에 줄 그어놓고 야매 오목을 한 짬이 어디 가지는 않았는지 무려 7연승을 했으니까.

"연승 점수가 진짜 크네요. 아, 8연승 했으면 좋았을텐데···"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음 ㅋㅋㅋ]

[근데 첫 번째판이랑 아홉 번째판 솔직히 좀 아깝긴 했음 ㅋㅋ]

[ㄹㅇ 둘 중에 한 판만 이겼어도 8연승 보너스 달달하게 땡겼을텐데]

[근데 연습할 때보다 훨 잘하시네 실전 체질이신가]

"실전 체질이라기 보다는 그거죠. 그 왜 무협소설 같은 거 보면 나오잖아요."

[??]

[여기서 갑자기 무협이 나온다고?]

[남주··· 무협··· 으윽 머리가···]

[세오  그런  보니···?]

[무렵 로맨스 우욱;;]

[이딴 건 무협이 아니야!]

"평소에 본인 실력의 3할은 숨기고 다니라고. 그런 거죠."

아무튼 뭐, 이 정도면 나는 벌만큼 벌어둔 것 같은데 세나 쪽은 어떨까.

이 넓은 곳에서 세나  명을 찾겠다고 무작정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차라리 시청자들에게 묻는 것이 빠를 것 같아 그대로 손에 들고 있던 액션캠을 향해 물었다.

"그나저나 세나 누나는 지금 뭐하고 있어요? 어떻게 점수는 좀 땄대요?"

[ㄱㄷ 보고옴]

[아까 잠깐 보고 왔는데 식칼피구 조지고 있던데]

[세나가 평소에 좀 얻어맞고 다니는 편이긴 해도 어디가서 피지컬로 딸리지는 않지 ㅋㅋ]

[ㄹㅇ ㅋㅋ]

[보고 왔는데 지금도 식칼피구 중인데? 연승 달리고 있는 듯]

"그래요?"

다행히 나도 한 번 가본  있는 곳이라서 찾아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해당 부스를 찾아가니까 과연 한쪽 부스를 떡하니 차지하고 앉아있더라.

한창 경기 중이라서 입을 앙 다문채 바짝 집중한 얼굴로 말이다.

내가 자길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채 바짝 집중하고 있는 그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까 왠지 모르게 주머니 안에 숨겨놓은 걸  눌러보고 싶다는 욕망이 불쑥 솟구쳤지만 일단은 참았다.

언제 집중하고 있었냐는 듯 당혹감으로 어쩔 줄 몰라하는 얼굴을 보고 싶기는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우승 못해서 슬퍼하는 얼굴은 그리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해서 아쉬운대로 애꿏은 리모컨만 꽉 붙잡고 있으려니까 생각 외로 경기가 빨리 끝났다.

"아앗! 엄청난 피지컬 컨트롤!!!"

위기 상황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하기라도 했는지 세나가 식칼을 던질 때마다 그게 상대방 캐릭터에게 가서 착착 달라붙었으니까.

[나왔다 엄.피.컨!!]

[각성 세나 ㄷㄷㄷ]

[공방의 유세나는 다르다!]

[팀 ㅅㅅ! 팀 ㅅㅅ! 팀 ㅅㅅ! 팀 ㅅㅅ!  ㅅㅅ!]

[지금 이 팀 몇 등임?]

"그러게요. 혹시 지금 저희  등인지 아시는 분?"

이겨서 기쁜 걸까.

눌러쓰고 있던 헤드셋이 뒤로 날아가버릴 정도로 팔을 크게 들어올리면서 앉아있던 의자에서 몸을 폴짝 일으키길래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리모컨 버튼을 꾹 눌렀다.

아무래도 나와 세나가 있는 곳 사이의 거리가 꽤 되다보니까 리모컨의 전파가 부스 안에 있는 세나에게도 닿을지 솔직히 확신이 없었는데ㅡ

'닿았네.'

참으로 다행히도 닿기는 닿더라.

내가 리모컨 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의자에서 벌떡 몸을 일으키던 세나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털썩 주저앉았으니까.

당혹감으로 젖어서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은 덤이었다.

그러더니 그대로 고개를 휙휙 돌려가며 뭔가를 찾기 시작하는데··· 그런 세나가 간과한 게 하나 있다면 공식방송의 메인 카메라가 여전히 그녀를 비추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 유세나 참가자가 많이 기쁜가 봅니다! 그런데 뭘 저렇게 찾는 거죠?"

그렇다보니까 캐스터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었고··· 마침내  발견한 세나가 눈을 확 크게 뜨는 모습마저도 고스란히 방송에 송출되어서 나가버렸다.

"뭘 그렇게 찾나 했더니 같이 한 팀을 이룬 동생 분을 찾고 있었군요! 동생 분한테 승리를 자랑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부스 안에서는 캐스터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인지 살짝 떨리는 눈동자를 내게서 떨어뜨릴 줄 모르는 세나를 향해 싱긋하고 웃으며 격려의 의미로 손을 살짝 들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아직 시작도 안한 상태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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