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화 〉1부
미시녀의 판촉멘트가 하도 찰져서 결국 사버렸다.
사고 보니까 플라스틱 곽 안에 고이 누워있는 것들이 내게 속삭여왔다.
-어떻게 정신이 좀 들어?
마치 누군가 내 귀에 대고 직접 속삭이기라도 한 것처럼 아주 그냥 또렷하게 울려퍼지는 그 속삭임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더라.
'으음···'
그렇게 잠시 가출했었던 이성이 돌아오고 나니까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스터키처럼 느껴졌던 것이 갑자기 애물단지처럼 느껴지더라.
'고작 이것밖에 안 한다고?'라고 생각했던 가격도 어딘가 좀 비싸게 느껴졌고.
애초에 그쪽 전용 기구라고 해봐야 결국 스테인리스인지 뭔지로 만든 얇은 막대기에 지나지 않은가.
그런데도 이 가격대라니.
그제서야 좀 아차하긴 했지만 솔직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미시녀의 홍보가 찰져도 너무 찰졌으니까.
물론, 본인은 절대 자기 이야기가 아니라고 하기는 했는데··· 솔직히 믿기지는 않았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친구하고 왜 그런 이야기를 나누냐고.'
야한 이야기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할 수 있지만··· 그건 친구끼리 나누기에는 너무 딥한 이야기 아닌가.
뿐만 아니라 미시녀가 설명이랍시고 늘어놓았던 체험담들은 그녀의 말마따나 남한테 전해들은 것이라고 하기에는 생생해도 너무 생생했다.
그러니 아마 높은 확률로 본인이 직접 경험한 것이겠지.
친구를 팔아먹은 건 쪽팔리고 민망해서 그런 것일 거고.
'뭐, 아무튼···'
이거 정말 쓸 수는 있는 걸까.
경험자가 그게 그렇게 쩐다고 열변을 토했던 것이 바로 조금 전이니만큼 솔직히 나도 궁금하긴 했다.
궁금하기는 한데··· 그런 걸 실제로 한다고 생각하니 내심 망설여질 수밖에는 없었다.
'애초에 거기는 넣는 구멍이 아니잖아···'
그런데 거기를 쑤신다니.
그러다가 자칫 문제라도 생기면 쪽팔려서 병원도 못 갈텐데 말이다.
'그렇다고 사놓고 안 쓰기도 좀 그렇고···'
마치 홈쇼핑에서 충동적으로 운동기구를 지른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일단 멘트에 혹해서 지르기는 했는데 막상 실물을 접하고 나니까 머지 않아 빨래 건조대 3호쯤으로 전락할 것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그, 혹시 사용법을 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건 누가봐도 그 분야에서 상당한 경지에 올라있음이 분명한 미시녀에게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네?"
물론, 미시녀는 그런 내 요청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동요를 내보였지만.
그녀가 그러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됐지만 얼굴에 철판을 깔고 꿋꿋이 밀어붙였다.
손님이 사용법을 묻는데 물건을 팔아먹은 사람으로써 협조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니곘는가.
"아무래도 좀··· 걱정이 되서요. 솔직히 쓸 수 있긴 할까 싶기도 하고···"
"아, 음···"
"안 될까요?"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그렇다고 생각한 걸까.
상자를 옮기다가 말고 덜컥하고 멈춰버린 미시녀가 망설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길래 어쩔 수 없이 필살기를 쓰기로 했다.
'가영이 누나한테만 보여준 건데···'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어쩔 수 없지.
속으로 그리 되뇌이면서 망설이는 미시녀를 간절하게 쳐다보았다.
"부탁드릴게요."
"그으···"
마스크로 얼굴 절반이 가려진 상태긴 하지만 그럼에도 필살기의 효과는 확실했다.
가영도 이거에 한 번 당하면 얼굴을 확 붉히면서 어쩔 줄 몰라하곤 했는데 미시녀는 더 심했다.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더니만 이내 어쩔 줄 몰라하기 시작했으니까.
"저, 저도 잘은 모르는데···"
"아까 보니까 그, 친구분한테 이것저것 많이 들으신 것 같던데요?"
"으, 그건···"
"그거라도 좋으니까 어떻게 안 될까요?"
"으음···"
아직 좀 부족하다 이거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필살기만으로 부족하다면 금기까지 동원하는 수밖에.
"네? 누나,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그걸로 충분했다.
누나 소리를 들은 미시녀가 결국 더 버티지 못하고 함락되어 버렸으니까.
"어, 어떤 게 궁금하신대요?"
"뭐, 사용법같은 것도 그렇고··· 아, 여기 이 구멍은 왜 있는 거예요?"
세나에게 건네준 정조대에도 무슨 동전 넣는 곳처럼 생겨먹은 의문의 구멍이 하나 있더니만 새로 산 것에도 동그랗게 구멍이 하나 뚤려있었다.
그게 양쪽으로 뚫려있었다면 고리같은 걸 거는 용도라 생각했을텐데 구멍은 딱 한쪽 방향으로만 뚫려있었다.
그래서 내 하찮은 지식으로는 그 구멍의 용도를 감히 추론해낼 수가 없었다.
해서 전문가한테 물었더니만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구멍의 정체를 확인한 미시녀의 얼굴이 다시금 확 달아올랐다.
"그, 거기는 그러니까··· 오줌, 나오는 구멍이에요."
"오줌이요?"
"···네, 보시면은 그 막대기 안이 관처럼 비어있는 거 보이시죠?"
"아, 네네."
"그게 그··· 기구를 쓰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싸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막혀있으면은···"
"아."
역시 전문가라고 해야할까.
탁월하기 그지없는 설명 덕분에 바로 구멍의 용도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걸로 그쪽 구멍을 자극하다보면 막대기에 달린 자그마한 구멍으로 오줌이 나온다는 소리 아닌가.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나 확인이나 할겸 미시녀에게 머릿속을 맴도는 추측을 그대로 읊어주었더니만 그녀가 어색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한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전문가답게 꿀팁도 하나 얹어주더라.
"그··· 그래서 그거 쓰실 때는 밑에다가 수건이나 시트같은 걸 깔아두고 하시거나 아싸리 화장실 같은 곳에서 하시는 게 좋아요."
"하긴 밑에 뭐 안 깔아두면은 다 젖겠네요."
"그, 그렇죠."
미시녀의 입장에서는 남자가 하기에는 너무나도 노골적인 발언이었던 것일까.
대화를 주고받을수록 미시녀의 얼굴이 어딘가 멍하게 변해갔다.
마치 지금 자기가 처해있는 현실을 믿지 못하는 그런 얼굴이라고 해야할까.
"그, 사용하는 법이나 쓸 때 주의할 점같은 것도 알려주시겠어요."
"아, 네··· 그게 그러니까···"
그런 얼굴을 한채 미시녀가 더듬더듬대며 그쪽 구멍을 개발하는 방법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설명 덕분에 확신할 수 있었다.
아까 그녀가 말했던 '친구'는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존재라는 걸.
"아무래도 처음에는 구멍이 좁다보니까 무리하기 보다는 최대한 작은 걸 써서···"
가영이나 지나, 세나만큼은 아니어도 충분히 미인이라 할 수 있는 얼굴에 농염한 몸매까지 지닌 미인한테 매니악하기 짝이 없는 플레이를 하는 방법에 대해서 듣고 있자니 뭔가 좀 꼴렸다.
그래서 미시녀가 하는 말들이 귀에 잘 들어오질 않았다.
'···한 번 직접 보여달라고 해볼까?'
문득 그런 욕망이 머릿속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던 것도 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말이라도 꺼내볼까 말까 망설이다가 일단 세나가 들어간 체험방 쪽을 향해 힐끔하고 시선을 던졌다.
들어간지 꽤 지났음에도 굳게 닫힌 문은 열릴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도 그렇겠지.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런 걸 입는 게 쉬울 리가 없으니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지금쯤 내가 건네준 정조대를 손에 든채 열심히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지 않을까.
세나가 그 상태에서 벗어나 결심을 굳히려면 틀림없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잠깐 정도는 딴 짓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
이건 어찌보면 세나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데 욕망만 앞서서 무턱대고 그쪽을 건드리다가 문제가 생기는 것보다는 시청각 교육이라도 한 번 받아서 느낌이라도 익혀두는 편이 훨씬 안전할테니 말이다.
"그··· 설명이 잘 이해가 안 되서 그러는데요."
"네? 아, 네··· 그, 처음부터 다시 해드릴까요?"
"으음, 그보다는 차라리 사용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면 바로 이해가 될 것 같은데···"
목소리에다가 아쉬움을 담아서 중얼거리듯 내뱉으니 시종일관 어색한 미소를 머금은 채 날 상대하고 있던 미시녀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렇다고 영상같은 걸 찾아보기도 그렇고··· 어떻게 쳐야 나오는 지도 잘 모르겠고··· 난감하네요···"
그런 그녀의 반응을 모르는 척 하며 혼자서 중얼거리듯 내뱉는 걸 이어나갔다.
그러자 굳어있던 미시녀의 목덜미 위로 붉은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 그렇긴 하겠네요."
"그래서 말인데요···"
꼴깍하고 어디선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미시녀의 얼굴은 그녀가 몸에 걸치고 있는 붉은색 시스루 드레스 만큼이나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혹시···"
그 모습을 눈으로 힐끔거리며 일부러 말꼬리를 늘어뜨렸다.
"실례가 안 된다면···"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조금 더 붉어졌다.
"사용하는 걸 한 번 보여주실 수··· 있으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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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세나가 체험방에서 나오기 전에 무사히 시청각 교육의 이수를 끝마칠 수 있었다.
뭐, 확실히 한 번 맛들리면 절대 못 끊을 거라는 말은 과장이 아닌 것 같더라.
'진짜 개 쩔었지···'
얇은 막대가 질구하고 비교해도 한참 좁은 구멍을 드나들 때마다 막대에 난 구멍으로 투명한 오줌이 쪼르륵 쏟아지면서 동시에 보지에서도 희끄무레한 애액이 왈칵 터져나왔으니까.
특히나 마지막에 내가 손잡이 부분에 달려있던 진동 버튼을 엄지로 꾹 누른 채 직접 쑤셨을 때는 정말로··· 반응이 엄청났다.
사람 몸이 그 정도로 격하게 떨릴 수도 있다는 걸 미시녀의 반응 덕분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으니까.
거의 뭐 발작하듯 몸을 떨어대더라.
제 몸까지 희생해가며 내게 요도플의 멋짐을 깨우쳐준 미시녀는 지금 뒷수습에 힘쓰고 있는 상태였다.
생각치도 못하게 엄청난 광경을 봐버린 만큼 맘같아서는 그런 걸 보여준 것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라도 좀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나가 들어간 방쪽에서 똑똑하고 신호가 전해져왔으니까.
그게 내가 지금 그쪽으로 향하고 있는 이유기도 했다.
그렇게 문앞에 도착하자마자 그 너머에 서 있을 세나를 향해 말을 걸었다.
"다 입었어 누나?"
대답이 돌아온 건 시간이 좀 지나고 난 후였다.
"···으, 응."
어찌어찌 입기는 했지만 그런 걸 입고 있는 모습을 내게 보인다고 생각하니 망설여질 수밖에는 없었던 걸까.
살짝 떨리는 목소리가 문틈 사이로 흘러나와 귓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그러면 들어간다?"
"그, 자, 잠깐만···!"
다 입었다고 해놓고서는 들어간다고 하니까 그건 또 안 된다며 만류하는 이유가 뭘까.
궁금한 마음에 당장이라도 문을 벌컥 열어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고 세나로부터 들어와도 좋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고 있으니 문 너머에서부터 부스럭부스럭하고 분주하게 움직일 때나 날법한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허락이 떨어진 건 제법 오랫동안 울려퍼지던 그 소리가 뚝 멎은 직후였다.
"그, 이제 들어와도··· 돼."
그러더니 찰칵하고 잠궈놓은 문을 열어주길래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미시녀가 말하기를 체험용 방이라 했던 곳 안으로 들어가니 가장 먼저 눈으로 들어온 건 가게보다 더 야릇한 색으로 물들어있는 방 안의 풍경이었다.
러브호텔 방 하나를 살짝 축소만 시킨 다음에 그대로 가게 안에다가 이식해놓은 듯한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날 방 안으로 초대한 장본인은 제 주변을 둘러싼 풍경들이 많이 어색한 건지 우물쭈물하는 모습으로 그 안에 서 있었다.
그런 세나의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은ㅡ
"뭐야, 옷 입고 있었네?"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후드티와 핫팬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