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8화 〉1부
"그래? 그러면ㅡ"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도 여전히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세나를 상대로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웃었다.
그러자 멍한 느낌을 물씬 풍기는 시선이 얼굴로 날아와 박혀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얼굴로 그걸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자니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 세나의 눈에는 미소 짓고 있는 내 모습이 어떤 식으로 비춰질까.
시청자들이 간혹가다 말하는 것처럼 천사처럼 보일까?
아니면 천사의 탈을 뒤집어 쓴 악마처럼 요사하게 보일까.
저 눈동자 속에 비춰지고 있는 것이 둘 중에 어느 쪽일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세나가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벗어."
이제는 얼굴까지 멍하게 물들이고 있는 세나의 귀에 대고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그리 속삭였던 건 그래서였다.
말을 구성하는 목소리와 내용 사이의 간극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수락의 의사를 밝히긴 했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바로 그런 쪽의 요구를 받게 될 거라고는 생각치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무, 뭐···?"
어느새 멍해보이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경악으로 눈을 크게 흡뜨고 있는 미녀 한 명만이 내 앞에 무릎을 꿇은 채로 앉아있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내가 본인을 상대로 그런 요구를 했다는 것이 그리도 믿기 힘들었던 것일까.
동그랗게 변한 채 평소보다 훨씬 커진 눈동자의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했고.
"분명히 들었으면서 왜 못 들은 척을 하는 거야?"
"···"
정곡이었던 걸까.
세나는 말이 없었다.
그저 어깨를 움찔하고 떨어대며 본인이 동요한 상태라는 걸 은연 중에 드러낼 뿐.
"다시 말해줘야해?"
"···"
"벗어. 누나. 한 번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으니까."
내 말을 듣고 대체 무슨 상상을 했길래 얼굴이 저렇게 새빨개지는 걸까.
덕분에 나까지 기분이 요상해질 지경이었다.
그 기색을 얼굴 위에서 몰아내며 세나를 향해 기울여놓고 있었던 상체를 다시 바로했다.
어차피 난 아쉬울 게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 사실을 세나에게도 철저하게 일깨워 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 아쉬운 쪽은 그녀라는 사실을 말이다.
어지간해서는 끼지 않는 팔짱까지 낀채로 무릎을 꿇고 앉은 세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던 것도 다 그걸 위함이었다.
위에서부터 내려꽂히는 내 시선이 무겁게 느껴지기라도 했던 것일까.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안절부절 못하는 기색또한 짙어졌다.
특히나 손쪽의 반응이 인상적이었다.
힘이 잔뜩 들어가서 손등 부분이 새하얗게 질린 손이 무릎을 꾸욱하고 움켜쥐고 있었는데 거기로 점점 더 힘이 들어가고 있었으니까.
아마 이대로 조금만 더 내버려둔다면 무릎 쪽에 손모양대로 벌겋게 자국이 남지 않을까.
그 변화를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조금은 서두르기로 했다.
"안 할 거야?"
내게 했던 말들은 상황을 면피하기 위한 변명일 뿐이었느냐.
꼭 그리 따지는 듯한 투로 툭 내뱉었더니만 세나의 어깨가 흠칫하고 튀어오르더니 이내 그녀의 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아, 알, 겠어."
간신히 쥐어짜낸 듯한 목소리가 귓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어렵사리 입밖으로 밀어낸 듯한 그 소리를 들은 순간 입꼬리가 제멋대로 솟구치려고 했지만 꾹 참고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생각했어 누나."
"···"
"좀 민망하긴 하겠지만 내가 이러는 것도 다 누나를 위해서니까."
부디 이런 날 이해해줬으면 좋겠다는 투로 그리 내뱉긴 했지만, 솔직히 스스로 느끼기에도 궤변 그 자체였다.
허나 전혀 개의치 않았다.
중요한 건 세나가 내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것이었다.
"물론, 누나가 민망해 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이해해. 그러니까··· 옷 벗는 동안은 이렇게 눈 감고 있을게."
시범이라도 보여주듯 말하는 와중에 눈을 꼭 감으니 어디선가 꼴깍하고 작게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나서 얼마나 지났을까.
스윽하고 누군가 조심스레 몸을 일으키는 소리가 느릿하게 울려퍼지더니 이내 스륵하고 부드러운 천같은 것이 살결을 스칠 때나 날 법한 소리가 귓속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바로 앞에서부터 들려오는 그 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남자라면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정복욕에 부채질을 해대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아, 맞다. 누나."
작고, 느릿하기까지 한 그 소리를 만끽하다가 대뜸 세나를 불렀다.
당연한 말이지만 세나는 대답이 없었다.
옷을 벗는 소리또한 어느새 뚝 멎은지 오래였다.
어차피 대답을 바라고서 불렀던 것도 아니었기에 개의치 않고 내 용건을 전했다.
"위에는 벗을 필요 없어. 오늘은··· 딱 하나만 확인하고 끝낼 거니까."
그렇게 내뱉어진 내 말을 듣고 세나는 상당히 당혹스러워 했다.
그야 당연히 그렇겠지.
어찌보면 홀딱 벗고 알몸이 되는 것보다 더··· 민망한 꼴이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그걸 노리고 일부러 그렇게 주문한 것이었다.
'솔직히 좀 아깝기는 한데···'
알몸이야 나중에도 볼 수 있는 거니까.
당장 보지 못한다는게 아쉬울지언정 아깝지는 않았다.
아무튼 아래만 벗어도 된다는 지시를 내린지 얼마나 지났을까.
"그··· 다, 했어···"
민망함과 수치심으로 젖어든 목소리가 귓속으로 흘러들어왔다.
그에 감고 있던 눈을 슬그머니 떠보니 가장 먼저 눈으로 들어온 건ㅡ
"읏···"
수치심으로 새빨갛게 달아오른채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세나의 얼굴이었다.
그 다음으로 눈으로 들어온 건 후드티 끝자락을 꽈악하고 움켜쥔채 치마자락 내리누르듯 밑으로 꾹꾹 잡아당기고 있는 모습이었고.
혹시라도 후드티 밑에다가 꽁꽁 숨겨놓은 것이 내게 보이기라도 할까봐 걱정이 됐던 걸까.
아예 엉덩이까지 살짝 뒤로 빼서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모습이 존나게 꼴렸다.
차마 내쪽을 똑바로 바라볼 자신이 없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눈동자만 살짝 들어올려서 내쪽을 힐끔대는 모습도 그랬다.
"팬티까지 다 벗었어?"
"···으, 응."
"그래? 그러면 이리와."
세나의 아랫도리 사정에는 관심없는 것처럼 미련없이 돌아서서 컴퓨터 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뒷쪽에서부터 주춤주춤대며 따라붙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렇게 세나를 뒤에 단채 컴퓨터 앞에 도착한 순간 바로 컴퓨터부터 켰다.
"커, 컴퓨터는 왜···"
내가 뜬금없이 컴퓨터를 키니 오만가지 상상이 다 들기라도 했던 것일까.
당혹감과 불안함이 딱 반씩 뒤섞인 목소리가 등뒤에서부터 들려왔다.
물론, 대답해주지 않고 무시했다.
그러자 아까 전부터 느껴지던 안절부절 못하는 기색이 한층 더 강해졌다.
부팅에는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말 그래도 순식간에 켜진 컴퓨터를 조작해 세나에게는 꽤 익숙할 창을 모니터 위로 띄워올렸다.
스트리머들이 흔히 후원내역이라고 부르는 창.
"자, 이제 누나 차례야."
그것을 화면 위에다가 띄워놓은채 세나에게 컴퓨터 앞자리를 양보했다.
"누나가 그 아이디로 후원한 내역 쫙 띄울 수 있지?"
아니라고는 못할 거다.
세나가 흔히 부검이라고 부르는 행위를 할 때 자주 사용하던 방법이니까.
"띄워봐."
그리 말하며 얼른 한 번 해보라는 뜻으로 턱짓까지 살짝 곁들여주니 안 그래도 당혹감으로 젖어있던 눈동자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야 당연히 그렇겠지.
그동안 자기가 날 상대로 보냈던 도네의 내용들이 지금 이 순간 머릿속으로 메아리치고 있을테니까.
그런데 그것들을 한 번에 마주한다?
그것도 희롱당한 당사자인 내가 지켜보는 앞에서?
'어우···'
입장을 바꿔서 한 번 생각해보니까 절로 몸서리가 처질 정도로 끔찍했다.
상상이 그 정도인데 세나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어떻겠는가.
솔직히 저렇게 멀쩡하게 두 다리로 서 있는 게 용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뭐해? 얼른 띄워보라니까?"
그렇다고 봐줄 생각은 없었지만.
내가 뭐 없는 사실을 가지고 이러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동안 어떤 도네들을 쐈는지 한 번 확인이나 해보자는 거 아닌가.
그리고 옆에서부터 등을 팍팍 떠미는 내 기세를 버티지 못한 세나가 결국 덜덜 떨리는 손을 움직여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탁··· 타닥···
평소에는, 특히나 렐을 할 때는 키보드가 불이 날 정도로 타자가 빠르더니만 오늘따라 왜 이렇게 느릿한 걸까.
살짝 답답했지만, 꾹 참고 세나가 엔터를 누르는 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 순간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찾아왔다.
탁···!
덜덜 떨리는 손가락이 엔터키를 꾸욱하고 누른 순간이었을 것이다.
새하얘서 깨끗한 느낌을 물씬 풍기던 창 위로 새까만 글자들이 우수수 떠올랐다.
"이야···"
그 양이 내심 예상하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많아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많을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확인해보니까 상상 이상이라고 해야할까.
"참··· 많이도 쐈네···"
일부러 어처구니 없어하는 목소리를 내봤더니만 이번에는 엉덩이 쪽을 가린 채 어색하게 서 있던 세나가 몸을 흠칫하고 떨었다.
그러더니 차마 모니터를 마주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여버리더라.
그래서 세나의 뒤로 가서 섰다.
거의 책상 위에 엎어지다시피 한채로 서 있는 그녀의 등뒤에 자리를 잡은 뒤 양손으로 팔뚝을 움켜쥐어 억지로 일으켜세웠다.
"뭐해? 누나? 똑바로 봐야지."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하체에서 느껴지는 내 몸의 감촉이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세나가 안 그래도 세게 잡아당기고 있던 후드티를 찢어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거세게 잡아당기며 그대로 몸을 피하려 했다.
"다 누나가 쏜 것들이잖아."
물론, 허락해주지 않고 그녀의 몸을 내 몸과 책상 사이에다가 가둬서 고정시켰다.
"지금부터 하나씩 읽어야되는데 그래가지고 읽을 수 있기나 하겠어?"
하나하나가 흑역사나 다름없는 것들을 지금부터 하나도 빼놓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읽어야 한다는 내 말 때문일까.
세나가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퍼뜩 치켜들었다.
그러더니 그대로 내쪽을 돌아보는데 덕분에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 얼굴로 날아와 푸욱하고 박혀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확인해둬야 될 거 아니야."
"···"
"누나가 정말··· 동생한테 이런 말이나 하면서 흥분하는 변태인지 아닌지."
속삭이듯 내뱉은 말에 무슨 뒤통수라도 거하게 얻어맞은 사람마냥 날 응시하던 세나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거칠게 흔들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게서 시선을 떨어뜨리지 않는 세나를 향해 보란듯이 입꼬리를 쓱 말아올렸다.
"뭐해? 얼른 안 읽고."
그리고는 그리 말하며 세나를 일으키는데 썼던 손 중에 하나를 그녀의 다리 사이로 쑥 밀어넣었다.
물론, 대놓고 보지를 건드리지는 않았다.
그저 그 밑에다가 손을 받쳐놓기만 했다.
그 왜 애기들 보면은 밥먹을 때 턱받이같은 걸 하지 않던가.
약간 그런 느낌으로 보지 밑에 보지받이를 하나 설치해주었다.
만에 하나 세나가 흥분해서 보지를 적신다면 그걸 느낄 수 있도록 적당한 거리감까지 유지한채로 말이다.
그럼에도 세나는 허벅지를 움찔움찔 떨어대면서 어쩔 줄 몰라했다.
덕분에 의외로 살집이 좀 있는 허벅지 사이에 딱 끼어버린 것이 행복한 비명을 질러댔다.
손대신 자지를 끼워넣고 싶게 만드는 그 사치스럽기 짝이 없는 압박감을 만끽하면서 다시금 세나를 재촉했다.
"자, 제일 처음 쏜 것부터 하나씩 또박또박 읽어보자. 누나."
속삭이듯 내뱉은 말에 호응하기라도 하듯 세나의 허벅지가 그 사이로 파고 들어가 있는 손을 양쪽에서 꼬옥꼬옥하고 조여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