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화 〉1부
출근시간대도, 점심시간대도 아닌 그 사이에 걸친 절묘한 시간대다보니 도로는 서울치고는 굉장히 쾌적했다.
그래서 속이 뻥 뚫릴 정도로 시원하게 쭉쭉 뻗어나가는 차와는 달리 채팅창에서는 속이 터져서 죽으려고 하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물론, 전부 세나의 복장 때문이었다.
[아니 씨발 후드티 보면 볼수록 킹받네^^]
[ㄹㅇ 그 와중에 깨끗한 걸로 골라입은 게 더 킹받음]
[아 얼굴 그렇게 막 쓸 거면 나 달라니까?]
[이게 요즘 유행한다던 나쁜 여자인가 뭔가 하는 그거냐?]
[나쁜 여자인지 뭔지는 모르겠고 일단 얼빠진 련은 맞는듯 ㅇㅇ]
[제발 후드티 멈춰!!!]
[그나마 가상 데이트라서 망정이지 진짜 데이트인데 저렇게 입고 나갔다고 생각하면 ㅋㅋ]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지누 ㅋㅋ]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그러겠냐고]
[ㄹㅇ ㅋㅋ 컨셉하고 실제 구분 못하는 련들 개많네]
[그치 세나야? 컨셉이지? 제발 컨셉이라고 해!!! 내가 다 쪽팔려서 뒤질 것 같으니까!!]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긴 했다.
컨텐츠를 제안한 나조차도 세나가 저딴 식으로 입고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시청자들이라고 알았겠는가.
내가 풀어제낀 썰 때문에 시청자들은 남매간의 자존심을 건, 자강두천 구도의 박진감 넘치고 흥미진진한 대결을 생각했을텐데 정작 뚜껑을 오픈해보니 참가자 중 한 명이 저러고 있는 꼴이니ㅡ
'화날만 하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벌써부터 채팅창에 '나'와 '락'이 도배가 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간간히 올라오는 비교적 정상적인 채팅들이 킬링 포인트였다.
저런 생각은 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 싶을 정도로 절묘하게 비꼬아대는 채팅들을 보고 있으려니 어이가 없어져서 나도 모르게 쿡쿡 소리를 내며 웃고 있었더니만 세나가 내쪽을 흘깃대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왜? 시청자 분들이 뭐래?"
정말 몰라서 묻는 걸까.
그런 거라면 들어서 좋을 게 없을텐데 말이다.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일단은 알려주기로 했다.
"누나."
"뭐."
"사람들이 누나보고 포보쓰 선정 후드티 찢어버리고 싶게 만드는 스트리머 1위라는데?"
"···뭐?"
"아, 그리고 여자친구로 삼고 싶지 않은 스트리머 분야에서도 1위래."
절묘하게 비꼬아대는 채팅이 눈에 띌 때마다 직접 읊어주었더니만 그때부터 나락대신 각종 드립들이 채팅창 위로 빗발치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뇌절기가 다분한 채팅도 꽤나 섞여있었지만 그것들은 일찌감치 업무를 시작한 매니저들에 의해 실시간으로 갈려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살아남은 것들 중에 유달리 눈에 띄었던 것 하나를 읊어보자면ㅡ
"혹시 후드티 뒷광고냐는데?"
"뭐···?"
"차라리 뒷광고였으면 좋겠대."
그랬다.
현실부정식 채팅이라고 해야할까.
"아니, 아무리 뒷광고라도 누가 이런 식으로 광고를 해···"
"그러니까 내 말이."
허나 참으로 안타깝게도 이건 분명한 현실이었다.
그런 식으로 신랄하게 까이다보니까 이제서야 좀 자기 복장이 적절치 못하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일까.
안 그래도 어색하던 세나의 얼굴이 한층 더 어색하게 변하더니 그 상태로 흘깃흘깃하고 내 눈치를 살펴대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차는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내달려서 어느새 목적지에 근접해 있었다.
컨텐츠를 진행할 장소, 그러니까 데이트 장소를 고른 건 다름아닌 세나였다.
맘 같아서는 나도 거기에 한 손 보태고 싶었지만 그 부분만큼은 세나에게 일임할 수밖에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소 섭외나 이런저런 허가를 받아내는 건 말할 것도 없이 세나 쪽이 전문가였으니까.
경험도 많았고.
아무튼 이것도 나름 데이트는 데이트인데 저따구로 입고 나온 양반이 고른 장소다보니까 기대감을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가 없는 게 현실이었는데ㅡ
'오···?'
그런 내 예상과는 달리 실제로 확인해본 데이트 장소는 느낌이 꽤 괜찮았다.
일직선으로 길게 쭉 뻗은 도로를 따라서 벚나무가 가지런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사방으로 뻗은 벚나무 가지에는 흰색하고 분홍색의 중간 쯔음에 서 있는 색의 옷을 곱게 차려입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활짝 핀 벚꽃과 아직 꽃봉오리 상태에 머물러있는 것들의 조화는 이런 쪽으로 별로 관심이 없는 나조차도 감탄하게 만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특히나 살짝이라도 바람이 불 때가 압권이었다.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던 것이 휘잉하고 부는 바람을 따라 흩날리는데 그 광경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이상할 정도로 두근거렸다.
'이래서···'
커플들이 봄만 되면 그렇게 꽃구경이니 뭐니 하면서 지랄을 해댔던 거구나.
확실히 이건 커플들을 위한 경치가 맞았다.
그렇게 감탄하고 있으려니까 본능적으로 후드티 때문에 잃어버린 민심을 회복하는데 성공했다는 걸 눈치챈 세나가 언제 눈치를 보고 그랬냐는 듯 우쭐대기 시작했다.
"어때? 쩔지?"
저놈의 입만 좀 어떻게 하면 참 좋을텐데.
확 틀어막아버릴 수도 없고 말이다.
뭐, 확실히 세나의 말대로 쩌는 경치긴 했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이제 한강공원까지 쭉쭉 가는 거야."
후드티에 짤막한 반바지만 달랑 입고 나온 것치고는 세나에게도 나름의 계획이라는 게 있긴 한 모양이다.
대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자신감을 뿜뿜해대며 대략적인 코스를 읊기 시작하는데 그 모습이 왠지 좀 웃겼다.
우쭐대는 건 좋은데 이마 쪽에 찰싹 달라붙은 벚꽃잎부터 좀 어떻게 하고 하는 건 어떨까 싶었으니까.
꽃잎이 붙은 위치가 하필이면 이마 정중앙이다보니까 뭔가 외국 스님같았다.
그 왜 무협 만화나 영화같은 거 보면 소림사니 아미파니 뭐니 하면서 이마에 빨간 점 찍고 나오시는 분들 있지 않은가.
시청자들도 나와 비슷한 감상을 느낀 건지 벌써부터 채팅창에는 스님이니 어쩌니 하는 말이 우수수 쏟아지고 있었다.
[아니 ㅋㅋㅋ 이마에 ㅋㅋㅋㅋ]
[이걸 눈치 못 채넼ㅋㅋㅋㅋ]
[세나 스님 ㄷㄷㄷ]
[세나 스님...? 줄여서 세... 스...? 어...?]
[멈춰!!! 야한 말 멈춰!!!]
[안 그런척 하더니만 나름 긴장했나 보네 ㅋㅋㅋ 저걸 눈치 못 채네]
어찌나 잘 붙었는지 이대로 가만 내버려두면 데이트가 끝날 때까지 저걸 달고 있을 기세였다.
그렇다고 명색이 아바타 데이트인데 내 맘대로 무작정 움직이기도 그래서 고민하고 있으려니 타이밍 좋게 내 등을 떠미는 도네 소리가 귀에 낀 이어폰을 통해 귓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짤랑-!
[ㅇㅇ님이 5,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이거 기회다 꽃잎 떼주는 척 하면서 한 방 드가자~
조종사 중 한 명으로부터 지령도 떨어졌겠다 손까지 파닥파닥 흔들면서 본인의 대단함을 어필해대고 있는 세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누나."
"응? 왜? 뭐 궁금한 거 있냐?"
"아니, 그건 아니고··· 누나 얼굴에 꽃잎 붙었어."
"어? 얼굴에? 여기?"
여기가 맞냐고 물으면서 양쪽 볼을 손으로 한 번씩 더듬어대는게 어벙함 그 자체였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고 말았다.
"웃기냐? 웃겨?"
자길 비웃는 거라 생각한 모양인지 세나가 얼굴을 살짝 붉게 물들인채 씨근덕거렸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쿡쿡 소리를 내며 웃었다.
웃다가ㅡ
"가만히 좀 있어봐. 내가 떼줄테니까."
입가에서 미소라는 걸 완전히 지우지 않은 채로 세나를 향해 손을 슥 뻗었다.
설마 내가 그렇게 대뜸 손을 뻗어올 거라고는 생각 못했던 걸까.
세나가 어깨를 움찔하고 떨면서 뒤로 주춤 물러났지만, 그녀가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리는 것보다 내 손이 둥그스름한 이마에 닿는 게 훨씬 더 빨랐다.
"진짜··· 이런 것도 혼자 못 떼고 말이야. 누나가 애야?"
말릴 때 대충 말리기라도 했는지 살짝 흐트러진채 내려와있는 갈색의 앞머리를 손으로 슬쩍 걷어내면서 이마에 찰싹 달라붙은 꽃잎을 손가락 끝을 이용해 톡 건드려주었다.
다른 목적같은 게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고 그 정도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뭐 본드같은 걸로 붙여놓은 것도 아니니까.
"···응, 에?"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세나가 요상하기 짝이 없는 반응을 선보이면서 몸을 살짝 뒤로 물리는 바람에 원래는 자연스럽게 바닥을 향해 떨어졌어야 할 것이 오똑하게 선 코끝에 딱 걸려버렸다.
"아, 진짜··· 가만히 있으라니까? 기껏 떨어뜨려줬더니만 또 붙었잖아."
핀잔하듯, 하지만 웃음기만큼은 지우지 않은 채 말하며 천천히 뒤로 물리던 손을 다시 세나 쪽으로 슥 뻗으니 그 타이밍에 맞춰 세나가 경기를 일으켰다.
퍼억ㅡ!
꽤나 둔탁한 소리가 났다.
물론, 세나의 얼굴 쪽에서 난 소리였다.
많이 당황한 걸까.
보아하니 내가 떼어내기 전에 혼자서 어떻게 해보려고 했던 것 같은데 당황한 나머지 힘조절을 깜빡하기라도 했는지 코에 붙은 걸 떼어내는게 아니라 코를 후려치는 꼴이 되어버렸다.
"으, 씨이···"
강하게 후려친만큼 코 끝에 달라붙어있던 건 확실하게 떨어지긴 했지만.
"그, 셀프함하고 그러시면 방송 정지 먹거든요?"
하는 짓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리고 있었더니만 코에서 올라오는 욱신거림만큼이나 억울하기라도 했는지 세나가 코를 감싸쥔채 이 악문 소리를 냈다.
"조용히 해라··· 진짜아···"
손가락 사이로 얼핏 보이는 세나의 코는 루돌프의 그것마냥 새빨갰다.
그리고 딱 그만큼 아팠던 모양이다.
저렇게 눈꼬리 끝에다가 눈물 한 방울을 대롱대롱 매달고 있는 걸 보면 필시 그런 거곘지.
"씨이···"
"아니, 도와줘도 난리야. 아니면 설마··· 두근거리기라도 했어?"
울컥한게 쉬이 풀리질 않는지 자꾸만 씨근덕대길래 슬쩍 눈웃음을 지어보이며 농담삼아 그리 말했더니만 어째 세나는 답이 없었다.
"···누나?"
"무, 뭔 개소리야! 두근거리긴 무슨!"
"그런 것치고는 방금 침묵이 좀··· 많이 길지 않았나?"
"그, 그건···! 하···!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런 거지!"
쏘아붙이듯 내뱉은 세나가 반대쪽으로 고개를 팩 돌렸다.
어찌나 세게 돌렸는지 순간적으로 뚜둑하고 뭔가 꺾이는 듯한 소리마저 터져나올 정도였다.
"악ㅡ!"
소리가 그토록 요란하게 났는데 당연히 목이 멀쩡할 리가 없었고 아니나 다를까 세나가 목을 부여잡으며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니, 뭐하는 거야···"
"으으···"
아까처럼 따지지도 못하는 걸 보면 많이 아프긴 한가 보다.
"으이구··· 가지가지 한다 진짜."
이러다가 데이트를 시작하기도 전에 말아먹겠다 싶어서 주저앉은 세나를 향해 슬쩍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목을 감싸쥐고 있던 그녀의 손을 옆으로 걷어내 치운 뒤 조심스레 목을 주물러주었다.
"많이 아파?"
"으··· 읏···"
"많이 아프면 잠깐 병원이라도 가볼래?"
마침 근처에 한의원 간판 하나가 걸려있어서 그리 제안해봤더니만 세나가 그 정도는 아니라는 것처럼 슬며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게 참 웃긴 게 그런 식으로 세나를 도와주다 보니까 볼 수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코 위에만 머물러있던 붉은 기운이 어느새 그녀의 볼 전체를 점령하고 있는 모습을 말이다.
'어쩐지···'
이상할 정도로 고개를 황급히 돌려댄다 싶더라니만.
이걸 안 들키려고 그랬던 거였구만.
뭐, 일단은 모르는 척 해주기로 했다.
'그나저나 이 정도면은···'
심박수가 어느 정도로 찍히고 있으려나.
문득 그게 궁금해졌지만 그렇다고 세나의 방송에 접속해서 확인한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모르는 척 해주기로 했으면 확실하게 해줘야지.
"어때? 이제 좀 괜찮아?"
"···어."
"그러지 말고 혹시 모르니까 카페같은데서 좀 더 쉬는 건 어때? 어차피 시간이야 넉넉하니까···"
"아냐, 이 정도면 충분해. 그··· 땡큐."
그리 말하면서 뒷목을 점령하고 있던 내 손을 슬쩍 걷어내는데 차마 탁하고 거칠게 쳐내지는 못하고 내 눈치라도 보는 것처럼 살살 밀어내는게 은근히 귀엽더라.
그렇게 무사히 내 손안에서 벗어난 세나가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스리슬쩍 몸을 움직여 그런 세나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한 발 늦게 내 접근을 알아차린 세나가 순간 움찔하고 손을 떨더니 나만큼이나 은밀하게 몸을 움직여 슬그머니 거리를 벌렸다.
그 은밀하고도 잽싼 움직임에 내심 감탄하고 있으려니 뭐라도 가다듬듯 큼큼하고 헛기침을 해대던 세나가 순식간에 평소 모습을 회복했다.
"그러면 시작할까?"
평소처럼 보고 있다보면 왠지 모르게 꿀밤을 한 대 꽁하고 때려주고 싶어지는 얄밉기 그지없는 모습.
그렇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살짝이지만 어색한 느낌을 풍기는 모습을 한채 세나가 날 향해 손을 척 내밀었다.
마치 방금 전까지는 리허설같은 거였고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라고 주장하기라도 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