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화 〉1부
분명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천국의 한복판을 거닐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단 한 순간에 지옥 밑바닥에 처박힌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 정도로 섬찟한 타이밍이었다.
거기에 문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하필이면 지나의 것이라서 더 그랬다.
들려온 게 세나의 목소리였다면 당황은 했을지언정 섬찟함까지는 느끼지 않았을테지.
그래서일까.
덩달아서 놀라버린 심장이 어느새 쿵쿵하고 크고 빠르게 뛰어대고 있었다.
그 와중에 환장하겠는건 나만큼이나, 아니 나보다도 더 흠칫했는지 가영이 몸에 힘을 꽈악하고 힘을 준채 그걸 풀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미친···'
개조여···!
꼬옥꼬옥 수준을 가볍게 뛰어넘어 거의 손으로 쥐어짜는 것처럼 꽈악꽈악 조여대는 보지가 요도 안에 남아있던 것들을 말끔하게 뽑아냈다.
"읏···♡"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자지 안에 남아있던 것이 찌익하고 뿜어져나와 몸 안 어딘가를 두들겨대니 놀랄 수밖에는 없었던 것일까.
작게 신음성을 흘리며 몸을 부르르 떨어대던 가영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변하더니 그녀가 내 어깨 위에 올려놓고 있던 손 중에 하나를 황급히 떼어내 본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런 가영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아마 내가 가영이라도 그렇게 했을테니까.
허나 공감가는 것과는 별개로 좋은 선택이었다고 말해주긴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린 이미 지나로부터 '질문'을 받은 상황이니까.
그런데 답은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어버린다?
다른 곳도 아니고 화장실에 단둘이 들어가있다는 걸 확인한 시점에서 지나는 이미 뭔가 심상찮다는 느낌을 받았을텐데?
지금 입을 다물어봐야 이 안에서 우리 둘이 엄한 짓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고 광고 때리는 꼴밖에는 안 된다.
그러니 지금은 침묵하기 보다는 차라리 적극적으로 지나의 말을 받아줄 필요가 있었다.
"고모, 일단은 옷부터 입으세요. 그러면서 누나 물음에 답하시고요."
가영을 상대로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비책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하긴 했지만 그 부분은 솔직히 나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해결할 수 있을까.
가영과의 관계를 들키지 않고 무사히 이 상황을 넘길 수 있을까.
그 어떤 것도 쉬이 확신할 수가 없었다.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쓸만한 카드 정도는 몇 개 있었다.
이를테면 벗어둔 옷의 위치같은게 그랬다.
화장실 구석에 곱게 처박혀있는 가영의 것과는 달리 내 옷들은 문밖에 널브러져 있는 상태였으니까.
가영에게 일단 옷부터 입으라고 했던 것도 그 점을 부각시키기 위함이었다.
'문제는···'
이 집에서 유일하게 지나만이 내가 진짜로 아픈 게 아니라 꾀병을 부린 거라는 걸 알고 있다는 건데ㅡ
딱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쿵쿵ㅡ
문 두들기는 소리가 다시 한 번 화장실 벽을 타고 메아리쳤다.
자그마했던 이전과는 달리 그 소리는 한결 크게 변해있었다.
"엄마? 유한이랑 그 안에서 뭐하냐니까?"
뒤이어 들려온 지나의 목소리에서 인내심같은 감정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역시나 가영과 내 관계를 의심하게 된 걸까.
생각이 거기까지 도달한 순간 허둥지둥 내게서 몸을 떨어뜨려 바닥에 떨어진 옷을 주워입고 있던 가영과 눈이 딱 마주쳤고, 그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전·· 일단 피곤해서 골아떨어진 걸로 할게요."
문 너머에 있는 지나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작게 말하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가영이 입술을 한 차례 꾸욱하고 깨물고는 그대로 입을 열어 지나의 물음에 답했다.
"으응? 지나니?"
"어, 안에서 대체 뭘 하고 있길래 이렇게 대답하는게 늦어?"
"음···? 불렀었니? 물 소리에 묻혀가지구 못 들었나봐."
솔직히 가영이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걱정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다르게 지나를 상대하는 가영의 목소리는 퍽 자연스러웠다.
놀라서 쿵쿵하고 뛰어대는 심장을 아직 완전히 추스르지는 못했는지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긴 했지만 확 티가 나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안에서 둘이 뭐하는데?"
생각외로 잘 해내던 가영이 어깨를 움찔하고 떨며 처음으로 동요하는 반응을 내보였던 건 다름아닌 그 질문이 튀어나왔을 때였다.
바로 조금 전까지 나와 몸을 겹친채 보지로 내 정액을 받아내고 있었다보니 그 말에 움찔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일까.
혹시라도 문 너머에 있는 지나에게 들릴세랴 조심조심하며 아까 벗은 원피스를 다시 몸에 걸치던 가영의 손이 처음으로 멈췄다.
그 상태로 눈을 데록데록 굴리던 것도 잠시, 가영이 아까보다 한결 떨림이 짙어진 목소리로 지나의 물음에 답을 했다.
"그··· 유한이가 땀을 너무 많이 흘려가지구··· 씻고 싶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혼자서는 힘들 것 같다고 그래서···"
"그래서?"
"어, 엄마가 좀··· 도와주는 중이었어."
가영이 어렵사리 내놓은 대답을 최선이라고 말하긴 힘들었다.
'그래도 최악은 아니니까.'
여기서 최악은 지나의 물음에 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거겠지.
"다 큰 애를?"
"그, 엄마니까··· 그리고 몸도 안 좋은데 괜히 그··· 혼자서 무리하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기도 하고···"
"흐음, 그래? 그래서 유한이는? 왜 말이 없어?"
줄곧 가영 쪽을 향하던 지나의 화살이 대뜸 방향을 돌려 내쪽으로 날아왔다.
그 순간, 가영이 내쪽을 돌아보았고 그렇게 그녀와 다시 한 번 눈이 마주쳤을때 나는 가영으로 하여금 보란듯이 기도하듯 모은 손을 얼굴 옆에다가 가져다붙였다.
그리고는 눈을 꼭 감고 자는 시늉을 해보이니 내 뜻이 무사히 전해진 모양인지 가영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곧 날 대신해 지나의 의문에 답을 했다.
"쉬잇···! 유한이 자."
"응? 뭐라고?"
"끙끙 앓느라고 많이 힘들었는지 욕조 안에 앉자마자 꾸벅꾸벅 졸더라구, 그래서 내버려뒀더니만 그대로 골아떨어져버렸지 뭐니."
"···그래?"
납득한 건가?
일단 말하는 것만 보면 그런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만큼··· 절묘하게 딱 걸려버린 상태였으니까.
라고 생각한 순간 지나에게서 가영을 기겁하게 만드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면 나도 도와줄까?"
"으, 응···?"
"아니, 엄마 혼자서는 힘들잖아. 걔가 그래보여도 꽤 무거울텐데."
"아, 아냐···!"
많이 당황한 걸까.
목소리가 살짝이지만 튀었다.
전과 같은 침착함도 더는 느낄 수 없었고.
"왜?"
"응?"
"내가 도와주면 더 빨리 끝나고 좋잖아."
"그, 그래도··· 나중에 유한이가 민망해할테니까···"
"그럼 엄마는? 엄마는 괜찮다는 거야?"
"그, 엄마는···"
뭐라 말을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던 걸까.
연분홍빛을 띈 가영의 입술이 지금 이 순간 제 주인이 느끼고 있는 곤란함을 대변하듯 쉬지않고 움찔거렸다.
"···엄마잖니."
그리고 그게 가영이 고민 끝에 내놓은 대답이었다.
엄마니까 괜찮다.
나쁘지 않은 대답이긴 했지만 찌를 수 있는 구석이 너무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지나는 바로 가영의 빈틈을 찌르고 들어왔다.
"엄마나 누나나 그게 그거지."
"그, 그래도··· 한 명이랑 둘은 다르잖니··· 그, 엄마랑은 다르게 지나 너하고는 나이 차이도 많이 안나서 유한이도 더 민망해할테고···"
"내가 지 어렸을 때부터 업어 키웠구만 이제 와서 무슨··· 흐음··· 그래서 얼마나 남았는데?"
"응?"
"다 씻기려면 얼마나 남았냐구."
하나하나 꼬치꼬치 캐묻는 기세가 매서웠다.
나조차도 그럴진데 하물며 가영에게는 어땠겠는가.
그럼에도 가영은 쉬이 밀리지 않았다.
"그 일단 거의 다 하긴 했는데···"
그런 유한의 생각과는 다르게 가영은 한 마디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궁지에 몰리는 듯한 심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에게는 이 상황이 그만큼 당혹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평생 이 비밀을 남들에게 들키지 않고 간직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했다.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니까.
언젠가는 누구에게든 이 관계를 들킬 수 밖에 없으리라고 생각했고, 그 때를 대비한 마음의 준비도 나름대로 하고는 있었다.
헌데 설마 그 순간이 이토록 빨리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생각 못 했기에··· 그만큼 심장이 미친듯이 뛰고 있었다.
꼭 몸 전체가 심장으로 변해버린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심장이 어찌나 빠르게 뛰어대는지 그것만으로도 머리가 어질어질거릴 정도였다.
그 느낌이 너무나도 생경하고 불안해서 맘 같아서는 이대로 풀썩 쓰러지고 싶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정신을 꼬옥하고 부여잡고 있는 건 잘 하면 이 상황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자꾸만 눈앞에서 아른거렸기 때문이었다.
'아직··· 아직은···'
유한과의 관계를, 이 비밀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게 지나나 세나라면 더 그랬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마음의 준비가 끝나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그리고 그건··· 유한도, 지나도, 세나도 같을 거다.
그런데 여기서 유한과의 관계를 지나에게 들키게 된다면?
지나가 받게될 충격이 얼마나 될지 감히 상상할 수 조차 없었다.
딱 하나 확실한 건 어마어마하게 충격을 받을 거라는 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나의 입장에서 보면 알고보니 엄마가··· 평생 동생이라 생각했던, 앞으로도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던 아이와 몸을 겹치고 있던 셈일테니까.
그러니···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뾰족하게 날이 선 모서리같은 것이 가슴 안쪽을 콕콕 찔러대는 느낌이 들어 괴로울지언정 지금은 그래야만 했다.
"그래서 말인데··· 그, 엄마가 경황이 없어가지구 갈아입을 옷을 못 챙겼거든? 지나 네가 유한이 옷장에서 좀 꺼내다줄래?"
"···아무거나 꺼내다 주면 돼?"
"으응···"
"그럼 티셔츠하고 반바지로 챙긴다?"
"그, 소, 속옷도 좀···"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유한과 단둘이 욕실 안에 있노라고 스스로 실토한 거나 다름없는 꼴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자, 가져왔어. 문 앞에다가 두면 돼?"
"그으, 그러렴. 이제 엄마도 슬슬 유한이 깨워야겠다."
사실 이미 깨어있는 상태였지만··· 일부러 목소리를 내어 잠든 유한을 깨우는 척을 했다.
부디 그 목소리가 문 너머에 서 있는 지나의 귀에 어색하게 들리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으음··· 고모···?"
"일어났으면 그, 옷부터 입으렴. 지나가 문 앞에다가 놔뒀다고 그랬으니까."
"누, 누나가요?"
지나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온 건 유한이 말을 더듬는 척을 한 순간이었다.
"야, 이유한."
"지, 지나 누나?"
"가뜩이나 피곤하실 엄마를 힘들게 하고 말이야. 너어··· 나와서 봐."
상황이 그리 된만큼 더이상 이곳에 발 붙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읏···♡"
그에 맞춰 자궁 안에서 새어나온 유한의 정액이 질구를 비집고 주륵하고 흘러나오는 게 느껴졌다.
그것이 가뜩이나 축축하게 젖은 팬티를 적시는 느낌에 그만 반사적으로 이상한 소리를 내버리고 말았다.
그 소리가 문 너머에 있는 지나의 귀에도 닿았던 걸까.
"엄마? 왜 그래?"
"그, 계속 쪼그려 앉아있었더니 다리가 살짝 저려서···"
"그래? 다리에 쥐난 거 아니야? 일단 그 안에서 좀 나와봐. 내가 봐줄테니까."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그리 말하는 지나의 말을 차마 떨쳐낼 수가 없어서 결국 화장실에 유한을 내버려둔채 그곳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리는? 괜찮아?"
그리고 그것이 화장실을 벗어나자마자 받게 된 질문이었다.
걱정스러워하는 듯 하면서도 어딘가 집요하게 느껴지는 시선이 천천히 몸을 훑는 게 느껴졌다.
그 순간 처음으로 옷을 밖에다가 벗어두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었다.
지금 발에 채이는 유한의 티셔츠처럼 화장실 밖에다가 옷을 벗어두었다면 이렇게 둘러대는 것도 불가능했을테니까.
"으응···"
"음··· 보니까 많이는 안 젖었네."
지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자꾸만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바로 내려가서 옷부터 갈아입으셔요. 괜히 엄마까지 감기에 걸리면 큰일이니까."
"그, 지나 너는···"
"나? 아··· 신경쓰지마. 난 저 괘씸한 꼬맹이 좀 혼내주고 내려갈테니까. 감히 우리 엄마를 부려먹어?"
말은 저리하지만 진짜로 그런 목적일리는 없었다.
그보다는 차라리 유한의 부주의함을 꾸짖을 생각이겠지.
"그··· 아픈 애 너무 괴롭히지 말고. 그러다가 더 안 좋아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그렇기에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것밖에는 없었다.
"걱정하지 마셔. 설마 내가 그러겠어?"
허공을 휘적휘적 휘저어대는 손놀림 속에 담겨있는 건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그렇기에 더는 그곳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유한의 방을 떠나 2층으로 내려왔는데ㅡ
"응? 뭐야? 엄마 설마 여태까지 유한이 방에 있었어?"
2층에 도착하기 무섭게 이번에는 세나와 마주치게 되었다.
목이라도 말랐던 걸까.
세나의 손에는 방송할 때마다 챙겨가곤 하는 컵이 들려있었다.
"옷은 또 왜 그렇게··· 젖었어?"
꿈뻑꿈벅거리는 눈꺼풀의 움직임에 따라 모습을 드러냈다가 자취를 감추기를 반복하던 눈동자가 이내 슬그머니 이쪽의 모습을 훑기 시작했다.
"위에서 뭐 했어?"
그리고 그 말과 함께 자신의 것과 꼭 닮은 눈동자 속으로 의구심이라는 감정이 스며들기 시작한 순간··· 더는 평정을 유지할 수가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