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91화 〉1부 (191/315)



〈 191화 〉1부

'이게 대체···'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된 걸까.


중간에 깜빡 잠들었던 것도 아니고 분명  두 눈을 멀쩡하게 뜨고 있었던 것 같은데 대체 일이 왜 이렇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기억에 공백이 생겨버린 듯한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혹시 외계인한테 납치라도 당했던 건가?'


오죽하면 그런 말도  되는 망상마저 그럴 듯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현실이 그렇다보니 온통 이해가 안 되는 것들 뿐이었다.

불과  분 전에 유한의 가슴팍에다가 내팽개치다시피 했던 수건은  다시 자신의 손으로 돌아와있고, 또 유한은 왜 저러고 있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안 닦아줄거야?"

그 탓에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건만 그런 자신의 속도 모르고 얼른 안 닦고 뭐하냐며 재촉질이나 해대는 유한이 은근히 얄미웠다.

얄미운데··· 훤히 드러나 있는 등으로부터 선뜻 시선을 떼어낼 수가 없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아까보다 몇 배는 더 이상했다.

특히나 살짝 움츠러들어있던 아까와는 달리 활짝 펴져서 얼마나 넓은지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유한의 새하얀 등 때문에  그랬다.

'이거 정말··· 괜찮은 건가?'


걸친 것 하나 없이 훤히 드러난 남자의 등을 이렇게 실물로 접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게 설마 유한의 것이 될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어쨌든 난생처음 접한 남자의 등은 뭔가 좀 달랐다.

막 엄청 울퉁불퉁하고 그런  아닌데 묘하게 각진 느낌이 든다고 해야할까.

거기에 어깨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ㅡ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상념에 몸을 살짝 떨며 고개를 휘휘 젓고 있으려니 유한의 등이 덩달아 떨렸다.


"으···"

살짝 앓는 듯한 소리는 덤이었다.

아직 손도 대지 않았는데 저 반응은 대체 뭘까.


"있잖아. 누나."

"어··· 어?"


"창문 혹시 누나가 열어둔거야?"

설마 추운 걸까.


하긴 바로 조금 전까지 땀으로 홀딱 젖어있었으니까.

말하자면 실컷 운동하고 나서 선풍기 앞에 서 있는 거나 다름없는 꼴이니 감기걸린 몸으로는 오싹오싹함을 느낄 수 밖에 없겠지.


"어, 냄새 때문에 환기  시키려고 열어놨는데 왜? 추워?"

물론, 춥다고 말해도 닫아주긴 힘들 것 같았다.


여기서 문을 닫아버리면 아까 그 묘한 냄새가 순식간에 주변을 가득 채워버릴테니까.

그 묘하게 달콤하면서도 찐득찐득해서 코에 한 번 들러붙으면 잘 안 떨어지는 냄새 말이다.


그래서 만약 유한이 그렇다고 말을 하면 좀 참으라고 받아칠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대답이랍시고 돌아온  부정의 의미가 담겨있는 몸짓이었다.

"아니, 시원해서 기분 좋네···"


참 이상하게도 분명 좀 더 길게 말했던  같은데 앞의 말은 들리지 않고 '기분 좋네.'라는 말밖에는 귀에 들리지 않았다.

왜 그 말만 귀에 들렸던 걸까.

알 수가 없었다.

알 수가 없어서 당혹스러웠다.

얼굴이 살짝 달아오르면서 심장이 콩콩하고 난생처음 느껴보는 박자로 뛰어댈 정도로 당혹스러웠다.

"그, 닦는다?"


그렇기에 한시라도 빨리  상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계속 이래버리면  이상함이 어딘가로 옮아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어."

유한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하고는 수건을 움켜쥔 손을 조심스레 등을 향해 내뻗었다.


물론, 그러는 와중에도 정말 이래도 괜찮은 건가하는 의문은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있긴 했지만··· 그게 머릿속에서 흐려지는 것보다 수건과 함께 뻗어져나간 손이 유한의 등과 맞닿는 게 훨씬 빨랐다.

분명 움츠릴 거라 생각했다.

헌데 의외로 유한의 반응은 의연했다.


몸이 힘들어서 다른 데 신경 쓸 겨를같은게 없는 걸까.

아니면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진짜로 신경을  쓰고 있는 걸까.


둘 중에 어느 쪽이 진실일지야 오직 유한만이 알겠지만 왠지 모르게 좀 억울했다.


뭐가 그리도 억울한 건지는 설명할 수 없었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래··· 신경쓰는  이상한 거지.'

가족 아닌가 가족.

가족끼리 힘들 때 땀 좀 닦아주고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역시나 기분의 문제였던 것일까.

억지로라도 그렇게 생각해보려고 하니까 요상했던 기분도 좀 가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스스로가 보기에도 살짝 머뭇대는 감이 있었던 처음과는 달리 비교적 자연스럽게 손을 놀릴 수가 있었다.

"으···"


 소리가 들려온 건 등을 대충 절반 정도 닦았을 때였다.

허리를 굽히지 못하는 병에라도 걸렸는지 줄곧 꼿꼿함을 유지하고 있던 유한의 등이 갑자기 부르르 떨렸다.

아까는 시원하다고 하더니만 계속 등을 훤히 드러내고 있으려니 새삼 오한이라도  것일까.

어쩌면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려 하기 무섭게 눈으로 들어온 건··· 살짝 곱슬기가 도는 갈색의 머리카락 사이로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있는 새하얀 귀였다.

아니, 꼭 새하얗다고는 할 수 없었다.

본래는 그랬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그런 색이 아니었으니까.

빨갰다.

본래는 여태껏 닦아낸 등만큼이나 새하얗고 뽀얀 색이었을 귀가 빨갛게 물이 들어있었다.


홀린다는 감각이 이런 느낌일까.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유한의 얼굴을 향해 시선을 던져봤다.


그렇게 눈으로 들어온 얼굴은 아까하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멀쩡해보였다.

적어도 겉으로 볼 때는 그랬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귀쪽을 쳐다보았다.


빨갰다.

얼굴 쪽을 쳐다보았다.

멀쩡했다.

번갈아서 바라보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둘 사이의 간극이 점점  또렷해졌다.

덤으로 전까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귀만큼 발그레한 색을 뜨고 있는 목덜미라던지··· 아까보다 살짝 움츠러든 상체라던지··· 슬금슬금 이불을 끌어당기는 유한의 손이라던지···


뭔가를 숨기기라도 하듯 상체를 살짝 앞으로 기울인채 조심스레 이불을 끌어당기는 유한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그 모습을 차마 더 쳐다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 누, 누나··· 나머지는 그냥 내가 닦을게."

"어, 어··· 그래···"


대체 뭘 저렇게 숨기려고 하는 건지는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야 솔직히 뻔했으니까.

답이 너무 뻔해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니까···'

선 거지 지금···?


하지만 왜···?

설마 내가··· 등을 만진 거 때문에?

순간 머릿속으로 떠오른 생각에 반사적으로 실소를 터뜨렸다.

물론, 겉으로 내지 않고 속으로만 그랬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등좀 만진다고 남자가 흥분하면 뉴스에서 허구헌날 저출산이니 뭐니하며 떠들어대지도 않았을 거다.


그러니 저건··· 처음에는 분명 괜찮았는데 슬슬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간 정신으로 다시 생각해보니까 새삼 부끄러워져서 저러는 거겠지.

그래, 그렇고 말고.

"자."

틀림없이 그런 거라고 되뇌이며 손에 들고 있던 수건을 다시 유한을 향해 내밀었다.

"그, 고마워."

"뭘."


"죽이랑 약도···  먹을게. 아, 음료수도!"

아무래도 이만 자리를 비켜주는  좋을  같아서 피식 웃으며 잠시 신세를 지고 있었던 침대 끄트머리로부터 조심스레 몸을 일으킨 순간이었을 것이다.

높이가 달라진 탓일까.

앉아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불현듯 시야 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그렇기에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내심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이  눈으로 확인해버리고 말았으니까.

유한의 하체를 덮고 있는 이불  한 부분이 다른 부분과 비교하면 티가 확 날 정도로 우뚝··· 솟아있었다.


그 높이가 어찌나 높은지 그냥 이불이 붕 떠서 그런 거라고 치부하며 못 본 척하며 넘어가고 싶어도 그러기 힘들 정도였다.

'저게, 저렇게···'

크다고···?


지금 보고 있는 걸 선뜻 믿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자꾸만 그쪽으로 눈길이 갔다.


"앗···"

당혹감이 듬뿍 담긴 목소리가 귓속으로 흘러들어온 건 그 와중이었다.

그 소리를 듣고 나서야 새삼 깨달았다.

포식자보다는 차라리 피식자에 가까운 입장이다보니 남자는 여자보다 타인의 시선이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걸.


하물며 여자가 자신의 은밀한 곳을 그토록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눈치없는 남자따위  세상에 존재할 리 없었다.

우뚝 솟은 곳을 어떻게든 손으로 가려보려고 허둥지둥하기 시작한 유한의 움직임이 그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미, 미안···!"


"아, 아냐··· 그, 나도 미안···"


따지고 보면 잘못한  이쪽인데 왜 덩달아서 사과를 하는 걸까.


대체 무슨 표정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유한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탓에 확인하고 싶어도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질 않아서 차마 그 자리에 더 있을 수가 없었다.


"그, 쉬, 쉬어···! 죽이랑 약은 꼭 채, 챙겨 먹고."

어느새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느끼며 도망치듯 유한의 방을 빠져나왔다.


마스크도 안 쓰고 감기환자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더니만 그새 옮기라도 한 것일까.

목 안쪽부터 명치 부근이 까끌까끌하고 간질간질했다.

꼭 마치 깃털이라도 집어삼킨 듯한 느낌이었다.

그게 막 가슴 안쪽에서 돌아다니는 것 같은 게··· 그 느낌이 하도 이상해서 목에서부터 가슴께에 이르는 부분을 손바닥으로 조심스레 쓰다듬어 보았다.

몇 번이고 그리 해도 그 이상한 느낌은 선뜻 진정이 되질 않았다.

오히려··· 진짜 열이라도 있는 것처럼 아까부터 화끈거리던 얼굴은 물론이거니와 몸 전체가 의아할 정도로 뜨끈거렸다.

솔직히 그것만으로도 견디기가 힘든데 진짜로 견디기 힘든 건··· 자꾸만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무언가였다.


"으으···"


제법 두꺼운 이불을 가볍게 들어올릴 정도로 커다랗고 힘이 좋던 무언가.

그것의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려서 당혹감을 쉬이 잠재울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눈을 질끈 감아도 그것의 모습이 새카맣게 물든 시야 위로 아른아른거리는 건 매한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방해되는 것들이 없다보니까 눈을 뜨고 있을 때보다 더 선명하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으으으···!"

윗층에 있는 유한에게까지 들릴 까봐 차마 소리는 지르지 못하고 아쉬운대로 침대를 팡팡 소리가 나도록 팔다리를 바동거렸던 건 그래서였다.

다른 이도 아니고 동생인 유한의 것을 한 번 봤다고 그걸 못 잊어서 아둥바둥하고 있는 꼴이라니.


이래서야 꼭 야한 만화나 야설에 나오는 변태 누나같지 않은가.


자신이 그럴 리가 없었다.


자신은 지극히 정상이니까.


정상인만큼 가족인 유한의 성기를 좀 본 것 가지고 흥분하거나 그럴 리 없었다.

이건 그냥··· 그래, 실제로 보는  처음이라 당혹스러워서  잊혀지지 않는 것 뿐이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괜찮아질 거다.

이건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으니까.


'아니면 차라리···'


야한 거라도 좀 봐서 그걸로 덮어버릴까.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이긴 했지만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급하게 휴대폰을 꺼내들어 손에 쥐었던 것은  그걸 위해서였다.

이 망할 놈의 나라가 제약을 하도 걸어놓은 탓에 이런저런 절차를 거쳐야하긴 했지만, 원래 20살 정도 되면 여자는 누구나 이쪽의 전문가가 되는 법.


그렇게 허울뿐인 방화벽을 가볍게 비웃어주며 야한 걸 찾아보기 시작했지만ㅡ

'작아···'


생각했던 것만큼의 효과는 없었다.


'별로야···'

오히려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대비가 되었다.

'못 생겼어···'

그래서 이렇게하면 지워질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머릿속에 화인처럼 새겨진 것이 점점 더 또렷해졌다.


또렷해지면 또렷해질수록··· 호기심이라는 것도 같이 고개를 치켜들기 시작했다.

그것을 꾸짖기라도 하듯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 화면이 갑자기 새까맣게 물들더니 그것이 맹렬하게 진동해대기 시작했다.

웅웅웅웅ㅡ

벌들이 무리지어 날아다닐 때나 날법한 소리와 함께 휴대폰 화면 위로 떠오른 것은ㅡ


-엄마.

지금 이 순간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두 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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