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90화 〉1부 (190/315)



〈 190화 〉1부

잠에서 깬 건 어느 순간부터 느껴지기 시작한 묘하디 묘한 감각 때문이었다.


땀으로 젖어서 찝찝한 부분을 보들보들한 천같은 것이 쭉 가로지른다.

'이건··· 수건인가?'


아무튼 뭐, 수건인지 뭔지 모를 것이 지나쳐간 부분 위로 시원한 느낌이 화악하고 번져나갔다.


지나의 허접보지를 자지로 잔뜩 찔러서 혼쭐을 내준 다음 오늘도 촬영이 있다며 팔다리를 허우적대던 지나를 내려보내고 난 후 피곤하고 노곤노곤해서 그대로 골아떨어졌었던 내가 잠에서 깨어난 건 전적으로  느낌 때문이었다.


'지나인가 보네.'


어디까지나 내 느낌이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오래 잔  같지는 않으니 아마 그럴 가능성이 크겠지.

지금 이렇게 몸을 닦아주고 있는  뭐··· 촬영을 끝마치고 돌아와보니 자길 혼내주느라고 땀으로 흠뻑 젖은 채 골아떨어진  모습이 보기 안쓰러워서 그런 게 아닐까.


꽤 깊게 잠들었다가 깨어난 것 같은데 그럼에도 노곤노곤함과 피로감은 여전했다.


그래서 몸을 닦아주는 지나의 손길을 굳이 쳐내지 않고 오히려 기껍게 받아들였다.

이불 속에 파묻힌 채 잠들었더니만  안에서 뜨끈뜨끈하게 익어버린 몸 위로 시원한 느낌이 번져나가는 게 꽤 기분 좋았으니까.

남자가 밤일을 잘하면 다음날 아침 반찬이 달라진다고 하더니만 그것도 그 일환인 걸까.


대충 슥슥 닦아버리고 끝낼  같은 이미지와는 다르게 섬세하고 꼼꼼한 손놀림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다만 딱 하나 거슬리는 점이 있다면ㅡ

'왜 이리 손을 떨어?'

다름아닌 그것이었다.

중간중간에 수건을 움켜쥔 손이 흠칫 부르르 떨려대니 그 느낌이 묘하게 거슬렸다.

한두 번 만진 것도 아닐텐데 여전히 내 몸에 손을 댈 때마다 긴장이 되는 걸까.


아니면 내가 자는 척을 하고 있어서?


동생이 잠든 틈을 타서 이렇게 몸을 닦아주고 있으려니까 잠든 동생을 상대로 나쁜 짓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아 흥분이 되기라도 했던 걸까.


다른 이라면 개소리 말라고 코웃음을 쳤겠지만 상대가 지나라면 가능성은 충분했다.

'귀엽네.'

그래서 속으로 피식하고 웃었다.

동시에 궁금해졌다.

대체 어떤 얼굴을 하고서  몸을 닦고 있을지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왼팔이야 진작에 끝낸 상태였는지 오른팔을 전부 닦기 무섭게 스윽하는 소리를 내며 하체 쪽으로 자리를 옮기는 지나의 움직임에 맞춰서 슬쩍 실눈을 떴던 건 그래서였다.


그랬는데ㅡ

'···엉?'


눈을 뜬 순간 가물가물한 시야 속으로 파고 들어온 건 익숙한 노란색이 아닌 낯선 갈색이었다.

허리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게 늘어뜨린 갈색의 머리칼이 살짝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제발 좀 버리라고 몇 번이나 읍소를 했었던 베이지색의 후드티로 감싸인 뒷태는 덤이었다.


 순간 깨달았다.


지나라 생각했던 것은 사실 지나가 아니고 세나였다는 것을.

하지만 어째서?

 지금 세나가 내 몸을 닦아주고 있는 걸까.

틀림없이 지나일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는데 막상 답을 확인해보니 '짜잔! 사실은 세나였답니다!'라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니 뇌가 그대로 굳어버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 설마···'


몸살이라고 대충 둘러댔던 말을 믿었던 건가?


그리 가정하고 생각해보니 가능성이야 충분했다.


나야 어디까지나 책상 밑으로 몰래 숨어든 지나의 존재를 들키지 않게 그리 둘러댔던 것뿐이지만 방송 끄기 직전에 내가 보였던 행동같은 걸 생각해보면 정상인 사람이 할만한 행동은 절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급방종을 때린 동생이 올라와서 확인해보니까 몸이 땀으로 홀딱 젖은  잠들어있었던 거다.

실은 전부 지나를 혼내주느라 흘린 것들이지만 그 사정을 알리 없는 세나의 입장에서는 내 몸을 적시고 있는 것들이 전부 끙끙 앓느라 흘러나온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겠지.

그만큼 상태가 심각해보이니 땀으로 흠뻑 젖은 채로 내버려두기도 좀 그랬을 것이고.


"후우··· 진짜 아프면 아프다고 솔직하게 말을 하든가···"

조심스레 하체 쪽으로 향하는 세나에게서 흘러나온 속상함과 걱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가 그런 내 추측에 힘을 보태주었다.

"하여간에 쓸데없이 고집만 세 가지고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그리 중얼대는 것치고는 퍽 세심하게 내 팔을 닦고 있는 세나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기분이 뭔가 좀 요상했다.

몸 안쪽에 깃털같은 게 잘못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분명 그것 때문에 가슴 안쪽이 참기 힘들 정도로 근질근질한데 내가 할 수 있는  딱히 없었다.


'그러고 보니까 처음이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이런 식으로 간병을 받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전생까지 포함해도 그랬다.

아팠던 적이야 많지만 매번 혼자 드러누워서 끙끙대기만 했었지 지금처럼 누군가 옆에 앉아서 곁을 지켜준다거나 한 적은 없었다.


그러니 이 근질근질한 느낌은 아마도 이런 경험이 처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 그런 게 틀림없었다.

어느새 내 발목서부터 다시 내 몸을 닦기 시작한 세나에게서 시선을 떼어내 다른 곳으로 돌렸던 건 그쪽을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 그 요상한 근질거림이 더 심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마침 또 옆에 관심을 주기에 적당한 것들이 몇 개 있었다.


'죽도 사온 건가···'

뿐만 아니라 약국의 로고가 새겨진 비닐봉투도, 아마도 이온음료일  같은 것이  안을 채우고 있는 편의점산 비닐봉투도 있었다.


밖에 좀 나가라고 하면 그렇게 치를 떨어대더니만 뭘 또 저렇게 많이 사온 걸까.


약봉투는 또  저렇게 묵직해보이고 말이다.

'아.'


 순간 깨달았다.

요상하고 낯선 근질거림에 휘말리지 않고자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던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는 걸.


그도 그럴 것이 열심히 바깥을 돌아다닌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것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까 그 근질거림이 더 심해졌으니까.

그래서 살짝··· 짜증이 났다.


내가 손을 쓸 수 없는 것이 가슴 안쪽에서 기승을 부려대니 그 사실이 자꾸만 신경에 거슬렸다.

저것들을 전부 사는데 몇 시간이나 걸렸을까.

오늘 바쁘다고 했던  같은데 그건  처리하고 이러고 있는 걸까.


이런 상황이 되면 틀림없이 기쁘기만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기쁘긴 한데 뭔가 좀··· 그렇달까.


대체 뭐가 좀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렇게 점점  심해지는 근질거림과 함께 요상한 기분에 먹혀들어가던 날  안에서 끄집어낸 건 어디선가 들려온 '꿀꺽'하는 소리였다.


맛있는 것을 눈앞에 두고 군침이라도 삼키는 듯한 그 소리에 곧바로 그것이 들려온 방향을 향해 시선을 내던져보니 어느새 허벅지까지 올라온 세나가 그곳을 수건을 쥔 손으로 짚은 채 어딘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세나의 얼굴은 뭔가에 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발그레하니 달아올라 있었다.


그렇다고 이성이 날아가버린  같지도 않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을 리 없으니까.


일단 어찌어찌 허벅지까지 닦긴 했는데 그러면서 동생의 은밀한 곳하고 가까워지니 기분이 좀 싱숭생숭하기라도 했던 걸까.

"으음···"


세나의 입에서 난감함이 듬뿍 담긴 침음성이 흘러나올 때마다 허벅지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무릎 바로 윗부분을 짚고 있던 세나의 손이 움찔움찔하고 떨렸다.

그게··· 묘하게 자극적이었다.

"다, 닦아야 되는데···"


그래서 닦겠다는 걸까 말겠다는 걸까.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세나가 자꾸만 요리조리 흔들어대던 눈동자를 눈꺼풀 아래로 감춰버렸다.


동시에 슬그머니 내게서 손을 떼어내는  보면 아무래도 이 이상은 무리였던 모양.


그에 안도감과 아쉬움을 동시에 느끼고 있으려니 스윽하고 뭔가가 느릿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귓속으로 흘러들어왔다.

그와 함께 나와 세나의 몸을 동시에 떠받치느라고 죽상을 하고 있던 침대가 살짝이지만 떠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전부  닦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닦기는 했으니 이제 닦는 건 여기까지 하려는 걸까.


틀림없이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ㅡ


'흠?'


땀으로 젖어 몸에 철썩 들러붙어있던 티셔츠를 조심스레 잡아당기는 손길이 느껴지기 시작한 건  직후였다.

그렇게 내 티셔츠 끝자락을 손에 넣는데 성공한 세나가 이내 그것을 살살살살 잡아당겨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아니, 이걸···?'


예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전개에 당혹스러워하고 있으려니 그새 생겨난 틈 사이로 수건을 움켜쥔 손이 쑥 밀고 들어왔다.


정확히 그 시점이었을 것이다.

내가 더는 참지 못하고 감고 있던 눈을 떴던 게.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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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팔다리를 닦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래야··· 어쩔  없다 치더라도 저렇게 몸에 철썩 들러붙을 정도로 땀으로 흠뻑 젖은 티셔츠를 그대로 내버려둔다?

그래버리면 여태껏 고생했던게 수포로 돌아가게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내가 뭐 때문에 손을 움직일 때마다 올라오는 당혹스러운 느낌을 억지로 외면해가며  고생을 했던 건데.


이제와서 그리 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옷을 벗기거나 갈아입히는 건 무리더라도 어떻게 그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땀이라도 닦아보려고 했던 것이었는데ㅡ

"···누나?"

하필이면 그 때 유한이 눈을 떠버렸다.


그 순간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눈동자를 또르륵 굴려서 현재 손이 어디에 위치해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유한의 옷 속으로 파고 들어가있는 스스로의 손을 확인하게된 순간 가슴 언저리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던 것이 철퍼덕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말,  해야···'

상대방이 오해하기에 딱 좋은 상황이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한시라도 빨리 말을,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할 필요가 있다는 점또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래서 미칠 것 같았다.

차라리 거짓말을 할 예정이었다면 서로 딱 들러붙은채 떨어질  모르는 것들 때문에 이토록 답답함을 느끼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뭐해···? 지금···?"


그리고 결국 유한의 입에서  말이 흘러나와 버리고 말았다.

의구심이 느껴지는 목소리.

자연스레 귓속으로 흘러들어와 순식간에 머릿속을 점령해버린  한 마디는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더욱 복잡하게 꼬아놨다.

뭐라고 해야할까.

여기서 뭐라고 해야···

"손에 수건은 또 뭐고."

"그, 그게···! 그, 네가 땀을! 그래 땀을 너무 많이 흘리니까 좀 닦아줘야할 것 같아서···!"

이번에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면 그대로 끝이었을텐데 참으로 다행히도 이번에는 입이 열렸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땀으로 흠뻑 젖은 티셔츠와 은근히 단단한··· 유한의 상체 사이에 갇혀있던 손부터 빼냈다.

그리고는 손에 움켜쥐고 있던 손을 황급히 유한을 향해 내던졌다.


"아, 아무튼 이제 일어났으니까 나머지는 그으, 네가 알아서 해!"


"어, 어···"


얼떨결에 받아든 수건을 양손으로 움켜쥔채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유한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그나마 좀 안심할 수 있었다.

저 어벙하기 짝이 없는 반응을 보아하니 이상한 오해를 사는 것만큼은 어찌어찌 피한  했으니까.


그래서 내심 안도하고 있었는데ㅡ


스으윽···

"너, 너···"

유한이 대뜸 옷을 벗기 시작하는  아닌가.


티셔츠 자락이 천천히 말려올라가며 의외로 탄탄해보이는 상체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이상할 정도로 또렷하게 눈에 박혀들었다.

그래서 당혹스러웠고, 유한으로부터 황급히 몸을 돌렸던 것도 그 당혹스러운 느낌 때문이었다.

"뭐하냐 지금?!"

"응? 땀 닦으라며?"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왜 하필 지금 벗냐고?

왜 여기서 벗는 거냐고?

수만가지 말들이 머리를 스치듯 지나갔지만 그 중에 어떤 것도 입밖으로 꺼내들 수는 없었다.


"아무튼 나, 나중에 해."


"아, 왜? 찝찝하단 말이야."


"나중에 하라고···"


나름 강력하게 말해보고 싶었는데 목소리에 이상할 정도로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몰라. 지금 할 거야."


하여간에 진짜 사람 속도 모르고···


속으로 원망이라는 것을 잘근잘근 곱씹고 있는 동안 유한이 마침내 티셔츠를 벗었다.

"으아··· 엄청 젖었네."


자신의 것이라고는 하지만 땀으로 흠뻑 젖은  계속 들고 있긴 싫었던 걸까.

손이 휙하고 휘둘러지더니 이내 티셔츠가 철퍼덕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안착했다.


괜히 사람을 흠칫하게 만드는 소리를 낼 때는 언제고 유한이 수건을  움켜쥐고 있는 손을 등뒤로 가져갔다.

허나 생각했던 것만큼 잘 되지는 않았던 걸까.

"끄응···"


곤란함이 듬뿍 담긴 소리가 어느새 뒤로 돌아앉은 유한으로부터 흘러나오더니만ㅡ

"그, 누나."

"···뭐."

"앞에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그, 등만 좀 닦아주면  될까? 손이 안 닿아서."

정신 차리고 보니 아까 내던지다시피 했던 것이 다시 손으로 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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