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9화 〉1부 (189/315)



〈 189화 〉1부
오늘은 해야할 일이 참 많았다.

누구는 방송을 끄기만 하면 그 시점에서 할 일이 싹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자신은 그렇지가 않았으니까.

각 편집자들이 보내온 1차 편집본을 확인한 다음 거기에 대한 피드백도 해줘야하고 이런저런 루트를 통해 들어오는 광고의뢰같은 것도 검토해야만 했다.

그러니 그것들을 한시라도 빨리 끝내기 위해서라도 집중해야만 하는데··· 집중이 되질 않았다.


"하···"

세나가 '탁ㅡ!'하는 소리가 나도록 스페이스바를 거칠게 두들겨 보고 있던 영상을 정지시켰던 것도 다 그래서였다.


분명 눈은 영상을 향하고 있는데도 어째 그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았다.

그렇다고 영상 퀄리티가 바닥이냐면 그렇지도 않았다.

세심하기 짝이 없는 편집을 거쳐 완성된 영상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당장 채널에 올려도 상관없겠다 싶을 정도로 뛰어난 퀄리티를 자랑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이건 그냥···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가득해서 그런 거다.

'미치겠네 진짜···'


답답한 마음에 뒤통수를 벅벅 소리가 나도록 거칠게 긁어보기까지 했지만 살짝 따끔거리는 느낌과는 별개로 여전히 머릿속은 어떠한 생각으로 가득  있었다.

그러니까··· 머릿속이 유한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걱정이었지만.


'진짜 괜찮은  맞나?'

본인이 본인의 입으로 직접 괜찮다고 말했으니 믿어주고 싶지만 선뜻 그럴 수가 없는 것은 이전에 몇 번이나 똑같은 말에 속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건 몰라도 유한의 입에서 흘러나온 '괜찮다'라는 말만큼은 쉬이 신뢰할 수가 없었다.

'설마 또 그 병이 도진 건 아니겠지···'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한때 유한은 자신의 속내를 쉬이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특히나 아프거나 힘들 때 그랬다.

열이 펄펄 나도, 이상한 년이 달라붙어서 힘들게 해도 괜찮다는 말로 숨기곤 했던  바로 유한이었다.


그러니 믿을 수가 있겠는가.

차라리 이 두 눈으로 상태라도 직접 확인할  있었다면 이다지도 신경이 쓰이진 않았을텐데.


저번에 그런 일도 있었고 하니 문을 꽁꽁 잠궈놓은 거야 이해하지만 그래도 유한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는  어쩔 수 없었다.

유한이 아픈 게 어쩌면 이쪽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으로 고개를 치켜들어서 더 그랬다.

만약, 정말로 만약에 유한이 아픈 게 저번에 자신이 했던 말 때문에 무리한 것 때문이라면?


공방 건과 관련해서 어쩌면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했던 게 신경쓰여서 무리해서 방송 시간을 늘려보려다가 그로인해 체력이 다해서 몸살이  것이라면?

그런 생각들이 자꾸만 머릿속으로 떠올랐고, 그렇다보니 눈앞에 있는 것에 집중하고 싶어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아."

괜히 초조한 마음에 유한에 대한 걱정과 함께 엄지손가락 끝부분을 잘근잘근 곱씹고 있으려니 유한을 대신해 엄마에게 유한의 상태를 전하기로 했던 것을 깜빡해버렸다는 사실이 뒤늦게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굳게 잠겨있던 문 앞을 떠나 2층으로 내려오기 무섭게 편집자 중 한 명한테 급하게 연락이 오는 바람에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 머릿속으로 떠오르자마자 내심 아차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침  됐다 싶었다.

'이왕 이렇게  거···'


엄마한테 유한의 상태를 전하는 김에 겸사겸사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보면 되겠다 싶었으니까.


그래서 곧바로 휴대폰을 집어들어 전화를 걸었건만ㅡ


-지금은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  없어 소리샘으로···


타이밍이 애매하게 꼬여버리기라도 한 것인지 전화가 연결되는 일은 없었다.


'바쁘신가···?'

무려  번이나 반복해서 전화를 걸어봤음에도 그랬다.


해서 일단 문자로라도 유한의 소식을 남겨놓긴 했지만, 대신 조언을 구할 대상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간병하는 법이야 대략적이나마 알고 있긴 했다.

바보도 아니고  그걸 모르겠는가.


다만··· 애매하게 알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이래저래 주워들은  많다보니까 그게 정말 맞는 건지 선뜻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으니까.

휴대폰 자판을 토도독 두들겨 몸살 환자 간병하는 법이라고 검색해봤던 건 그래서였다.

엄마의 지혜를 빌리지 못하게 되었으니 집단지성의 힘이라도 빌려야겠다 싶었으니까.


그렇게 검색해서 나온 것들을 하나하나 읽어내려가다가 그대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딱 보니까 이래저래 필요한  많아보였으니까.

'죽이랑 약 사오고··· 이온음료도···'

워낙 뜻밖의 외출이라서 좀 귀찮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어쩌면 자신 때문에 아픈 걸지도 모르는데 최소한 그에 대한 책임은 져야겠지.

그렇게 집을 빠져나와 아까 머릿속으로 메모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쓸어담기 시작했다.

"이건 뭐예요?"


"아, 그건 그··· 쿨링 시트라고 왜 열나면은 머리에 물수건 올려서 식혀주잖아요? 그거 대용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음, 그럼 이것도 하나 주시겠어요?"

겸사겸사 계획에 없던 물건들도 좀 샀고.

"씨이··· 차 끌고 나올걸···"

덕분에 짐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불어나긴 했지만 어찌어찌 끙끙대며 집까지 옮길 수 있었다.

자고 있는 걸까.


거의 두 시간만에 재회하게된 집 안은 울려퍼지는 소리라고는 하나도 없이 고요했다.

그렇다보니 문득 언니의 행방이 궁금해졌지만 그렇다고 감히 언니의 방문을 두들긴다거나 하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랬다가 혹시 자고 있는 중이기라도 하면  분노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으니까.

이왕 이렇게  거 아싸리 잘 된 일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밖에서 사온 것들을 언니가 봤다면 그것들은 또 왜 사온 거냐고 물어봤을게 뻔하니까.

그리 되었다면 자신은 대답할만한 말이 궁색했을 것이고.


언니의 방이 있는 쪽을 힐끔 한 번 쳐다본  발뒤꿈치를 들어올려 몰래 2층으로 올라갔던 것도 다 그래서였다.

중간중간에 난 부스럭부스럭하는 소리까지야 불가항력같은 거라서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들키지 않고 무사히 2층에 입성할 수 있었다.

'약은 먹었으려나···'

어쩌면 외출해있는 동안 잠깐 내려와서 먹고 다시 올라간 것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전부 챙겨서 올라가기로 했다.


특히나 보온백에다가 포장해달라고 특별히 요청했던 죽은 더욱 꼼꼼히 챙겼다.

약이야 먹었을 수도 있지만 골골대는 와중에 밥까지 챙겨먹지는 못했을테니까.


그렇게 바깥에서 사온 것들을 손에 든채 낑낑대며 3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랐다.


그리하여 마침내 유한의 방 앞에 도착한 순간, 전에 방문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굳게 닫혀있는 문을 조심스레 두들겼다.

똑똑ㅡ


"야, 자냐···?"


당연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두어번 정도 문을  두들겨봤지만 그래도 답이 없는 건 똑같았다.


힘든 나머지 완전히 골아떨어져버린 걸까.

그래도 준비해온 것들이 있는데 이대로 그냥 돌아가자니 그것도 뭔가 좀 그래서 밑에 내려가서 스페어키를 챙겨올까를 고민하면서 습관적으로 문고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별 기대없이 옆으로 돌렸는데ㅡ


달칵-!


아까하고는 다르게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역시나 잠깐 내려와서 약만 주워먹고 다시 방으로 올라갔던 것일까.


문고리야 곧바로 손에서 놓아버렸지만 한 번 열린 문은 닫히지 않았다.


닫히기는 커녕 끼익하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그렇게 울려퍼지는 소리와 서서히 벌어지는 문틈 사이로 드러나는 유한의 방 내부 풍경을 보고 있으려니 뭔가 좀 기분이··· 이상했다.


"그··· 나, 들어간다?"

 주인으로부터 대답이 돌아올리 없다는  알고 있음에도 굳이 거기다가 대고 그렇게 말했던  다 그 때문이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요상한 기분을 주체할 수가 없을  같았으니까.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들어가도 되냐고 허락을 구한 다음 입성하게된 유한의 방에서는 뭐랄까 굉장히 묘한 냄새가 났다.


달콤하면서도 살짝 비릿한 것이 공기 사이에 섞여있었다.

거기에 약간이지만 땀냄새도 좀 났고.

그렇다고 기분이 불쾌하냐면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심장이 대체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콩닥콩닥하고 빠르게 뛰어대는데··· 그래서 당혹스러웠다.


"자, 자냐···?"

유한은 자고 있었다.


많이 힘들었는지 이불을 어깨까지 뒤집어 쓴채 완전히 골아떨어져 있었다.


"어우, 땀냄새··· 그, 환기  시킨다?"

그 사실을 이미 확인했건만 자꾸만 유한에게 허락을 구하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이렇게 환기도 잘 안 하고 사니까 쓸데없이 감기같은 거나 걸리는 거지··· 쯧쯧···"

맡으면 맡을수록 심장을 빠르게 뛰도록 만드는 이상한 냄새를 방 안에서 몰아내기 위해 서둘러 창문부터 열었다.

그렇게 제일 커다란 창문까지 빼놓지 않고 활짝 열어젖혔건만 냄새는 가실 줄을 몰랐다.

그럴 리 없건만 냄새가 찐득찐득거리는 느낌이었다.


코같은 데에 찰싹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야할까.


보아하니 환기가 되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같았기에 자꾸만 콧속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을 애써 외면하며 유한이 누워있는 침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와 함께 냄새가 한층 더 짙어졌다.


설마 이건 유한의 땀냄새일까.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더 요상해졌다.


다른 이도 아니고 동생의 땀냄새를 맡으며 묘한 기분을 느끼는 누나라니.

그래서야 완전 변태같지 않은가.


아니,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냄새가 이렇게 짙게 풍길 정도면은 대체 땀을 얼마나 흘렸다는 걸까.

얼굴이 화악하고 달아오르는 느낌을 애써 외면하며 유한을 향해 시선을 던져보니 확실히 얼굴이 땀으로 좀 젖어있긴 했다.


"으이구···"


이제 겨울도 아닌데 저렇게 두꺼운 이불을 목까지 덮고 있으니까 당연히 땀을 뻘뻘 흘리지.


얼굴이 저 정도니 이불 아래에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게 어떨지야 솔직히  봐도 뻔했다.


보나마나 땀으로 쫄딱 젖어있겠지.

'···괜찮은 건가?'


그래서 걱정이 됐다.

아까 봤던 글들을 떠올려보면 환자 몸이 젖어있으면  좋다고 그랬으니까.

 왜 영화같은데서도 보면 피치못할 사정으로 환자를 몸이 젖은 상태로 방치해뒀다가 환자 상태가 더 나빠지기도 하지 않던가.

유한의 몸을 덮고 있던 이불을 향해 슬그머니 손을 뻗었던 건 다 그런 점이 걱정돼서 그런 것이었다.

절대 다른 목적같은 건 없었다.

절대로.


'확인만 하는 거니까···'


어쩌면 생각했던 것보다 땀을 많이  흘렸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럴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조심스레 이불을 걷어올렸는데··· 냄새가 났다.

아까 맡았던 것과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짙은 냄새가 이불 밑에 갇혀있다가 사방으로 확 퍼져나갔다.

맡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빠르게 뛰고, 얼굴이 확 달아오르게 만드는 냄새.

콧속이 그것으로 가득 찬 후에야 비로소 깨달을  있었다.

그 냄새가 바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야한, 남자의 냄새라는 걸.

"읏···"

그런 것이 유한으로부터 물씬 풍겨져나오고 있었다.

왠지 더 맡으면 안 될  같아서 다급하게 숨을 멈춰봤지만 그럼에도 이미 사방에 그 냄새가 가득했다.


그래서 한참동안이나 숨을 참고 있어야만 했다.


그렇게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기 직전까지 숨을 참고  후에야 비로소 유한의 상태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여러모로 간신히 확인하게된 유한의 몸은 짙게 풍기는 냄새만큼이나 흠뻑 젖어있었다.

식은땀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입고 있는 옷이 몸에 찰싹 들러붙을 정도로 땀을 잔뜩 흘린 상태였다.

그렇다보니 걱정이 안 될래야  될 수가 없었다.


이게 어디 괜찮은 사람이 흘릴 수 있는 양이란 말인가.


누가보면 샤워하고 나서 몸  닦고 옷만 대충 걸친 다음에 그대로 이불 속으로 기어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이 정도로  상태가 안 좋은데 뭐?


괜찮다고?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괜찮기는 무슨···!'

역시나 또 그놈의 '괜찮다.'병이 도져버린 게 틀림없었다.

하여간에 진짜 쓸데없이 걱정만 많아서는.


이렇게 상태가 안 좋은데  숨겼어야만 했나 싶어서 짜증나고 섭섭한 것과는 별개로 그만큼 걱정이 됐다.

땀을 이렇게 잔뜩 흘릴 정도로 상태가  좋은데 이러고 있으면 상태가 더 안 좋아졌으면 안 좋아졌지 결코 나아지지는 않을테니까.

최선은 역시 깨워서 몸을 씻든 닦든 아무튼 깔끔하게 하도록 하는 것이겠지만··· 선뜻 손을 뻗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고 있는 유한을 깨운다한들 유한이 필요한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으니까.

괜히 간신히 잠드는데 성공한 애를 깨워서 더 힘들게 만드는 건 아닐까.


그렇다고 이대로 내버려둘 수도 없고ㅡ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괜히 초조하고 불안해져서 맘 같아서는 발이라도 동동 구르고 싶었지만 유한이 잠에서 깰까봐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하다못해 누가 대신 닦아주기라도 한다면 괜찮을텐데.

'···대신?'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생각에 슬그머니 시선을 밑으로 내려 스스로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물끄러미 손을 내려다보다가ㅡ


꿀꺽-

침을  번 삼키고는 조심스레 유한의 방에 딸려있는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그 안에 비치되어 있던 수건들 중에서 제일 깨끗하고 보들보들한 것을 골라서 다시 유한 쪽으로 향했다.


'그래도 팔하고 다리 정도는···'


절대 이상한 게 아니라는 말을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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