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화 〉1부
시간을 살짝 뒤로 되돌려 유한이 한창 시청자들과 노가리를 까고 있을 때, 세나는 그런 유한의 모습을 휴대폰 화면 위에다가 띄워놓고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후우···"
대체 뭐가 그리도 마음에 안 들고 못마땅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세나의 미간에 패인 골은 시간이 지나도 깊어지기만 하지 결코 얕아지지는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찌보면 유한을 이 세계로 끌어들인 장본인이니만큼 그 누구보다 작금의 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다름아닌 세나, 그녀였으니까.
'미치겠네 진짜···'
유한의 방송은 나날이 순항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다른 건 전부 제쳐놓고 수치만 보면은 그랬다.
이게 어떻게 방송을 시작한지 2주도 안 된 이가 기록할 수 있는 수치란 말인가.
아무리 시청자가 많이 나오는 방송이라고 해도 그 숫자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자연스레 정체구간이 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제 거기서 줄어들었다가 늘어나길 반복하는게 보통인데··· 유한의 방송은 그 법칙에서 홀로 벗어나 있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슬슬 답보상태에 이를만도 한데 그럼에도 시청자 수가 꾸준하게 늘어나고 있단 소리다.
그래서 걱정이었다.
'성공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니, 성공할 수밖에 없으리라고 확신하긴 했다.
외모도 스펙이라고 치면 유한은 그 외모 하나만으로도 성공할 수밖에 없는 압도적인 스펙을 지니고 있다 할 수 있으니까.
거기에 이쪽에서 이래저래 푸쉬도 많이 해주었던만큼 이건 실패하고 싶어도 실패할 수가 없는 조건이었다.
그러니 유한의 방송이 '성공'할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
허나 지금 눈에 비치는 건 명백히 자신이 예상한 범주를 벗어나고 있었다.
일단 유한이 컨셉이랍시고 동원하고 있는 것부터가 그랬다.
'확실히 신선하긴 해, 신선하긴 한데···'
하긴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저런 얼굴을 가지고 저런 컨셉으로 방송하는 남자 스트리머가 갑자기 뙇하고 튀어나올 거라는 걸 말이다.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고 유한과 비슷한 컨셉으로 방송을 했던 남스나 남bj야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에게는 유한과 같은 외모가 없었다.
입만 닫고 있으면 하늘에서 똑 떨어진 천사처럼 보이게 만드는 저 외모는 오직 유한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적어도 자신이 알기로는 그랬다.
그러니 시청자들로서는 당연히 신선함을 느낄 수밖에.
허나 신선한 것과는 별개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생각은 꼭 가족이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 영향도 어느 정도는 있긴 하겠지만 그보다는 유한보다 몇 년 빠르게 이 세계에 발을 들인 선배로서의 생각이었다.
유한의 방송은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매운맛이다.
그것도 그냥 매운맛이 아니라 한 입만 먹어도 혀가 얼얼할 정도로 화끈한 맛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맛있어도 계속 퍼먹기는 힘들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야 자극적이지만 그것도 계속되면 질리기 마련이니까···'
그렇기에 처음 유한이 컨셉을 바꾸고 성장세에 가속이 붙기 시작했을 때 커뮤니티의 반응과는 별개로 그 기세가 얼마가지 못할 것이라고 보았다.
얼마가지 못하고 꺾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지금 눈앞에 펼쳐져있는 건 예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과 수치들이었다.
사실상 확신에 가까웠던 예측이 빗나가게 된 원인이야 간단했다.
적응하지 못할 거라는 당초의 예상과는 다르게 유한은 그 괴랄하기 짝이 없는 컨셉을 의외로 잘 소화해내고 있었으니까.
유한의 방송이 마냥 맵기만 했다면?
처음에야 그 자극적인 맛에 이끌려서 좀 눌러앉아있을 수는 있어도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이탈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방송에서 유한이 보여주는 모습은 마냥 맵지만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이게 말이 되냐고요! 여기서 야추가 왜 뜨는데엑!"
게임에 지고서 길길이 날뛰는 모습은 시청자들 중 태반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공감과 흐뭇한 미소를 불러일으켰으며ㅡ
"아, 딱 한 판마안! 한 판만 더해요. 이번엔 진짜 내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연습 상대가 되어준 시청자에게 손가락 하나를 들어보이며 한 판만 더하자고 졸라대는 모습은 묘하게 요망했다.
그뿐이랴?
"응? 캠이 흐릿하다고요? 아까 샷건을 너무 세게 쳐서 고장났나··? 씨··· 잠깐만요.."
은근히 허당같은 면모도 있었다.
거기에 간혹가다가 맛보여주는 달콤한 맛은 여성이 대부분인 시청자들이 남자 스트리머에게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후우ㅡ"
캠을 들어올리더니 거기에 대고 짧게 바람을 불어넣는 모습이 꼭 눈에 뭐라도 들어간 여자친구를 도와주는 남자친구 그 자체였다.
특히나 방금은 그냥 바람만 불어넣으면 될 것을 굳이 눈까지 살짝 감고 있어서ㅡ
'무, 뭐하는 거야. 진짜···"
당혹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두 눈을 살포시 감고 캠을 향해 입김을 불어넣고 있는 모습이 꼭 누군가와 키스를 앞두고 있기라도 한 듯한 모양새였으니까.
이런 것들이 경고도 전조도 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니 방송을 보는 입장에서는 갑작스럽게 기습을 당한 꼴이라 적잖은 당혹감과 함께 절로 얼굴을 붉히게 되고 마는 것이다.
"됐다. 이제 잘 보이죠?"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자각이 없다는 점또한 유한의 방송이 예상한 것 이상으로 순항하고 있는 이유기도 했다.
시청자들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저게 연기로 꾸며낸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저런 것인지 구분할 수 있는 눈쯤은 어지간하면 다들 갖추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방금 유한이 보여준 모습은 누가봐도 연기로 꾸며낸 것따위가 아닌 자연스러운 모습이었고.
이런 걸 툭툭 던져주니까 다들 열광할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
특히나 유한이 주로 방송하는 시간대인 낮시간 대는 유한과 견줄 수 있는 이가 없다는 점도 크고.
'어그로 대응도 나름··· 잘 하고.'
거기까지 본다면 슬슬 유한에 대한 걱정을 접어도 될 것 같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유한이 컨셉이랍시고 동원하고 있는 것 때문이었다.
컨셉을 잡는 거야 좋다.
때론 그런 식으로 방송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그건 상당히 중요한 요소다.
정체성은 나무로 따지면 뿌리같은 거니까.
깊게 뿌리를 내린 나무는 강하게 부는 외풍에도 쉬이 흔들리지 않는 법.
그렇게 보면 컨셉을 잡는 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닌 것 같지만··· 중요한 건 본인이 그 컨셉에 잡아먹혀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뭐, 화석 소리를 들을 정도로 길게 방송을 한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승승장구를 하다가 본인이 내세운 컨셉에 잡아먹혀서 파악하고 꼬라박거나 그대로 회생불가능한 타격을 입고 방송을 접어버리는 경우를 그 동안 꽤 많이 봐왔다.
이게 반응이 좋으니까.
이렇게 하면 시청자가 많이 나오니까.
컨셉은 컨셉으로 그쳐야 하는 것인데 그런 생각에 매몰되어 버리는 이들이 참으로 많았다.
그리고 자신이 볼 때 유한도 그렇게 사라졌던 이들과 똑같은 수순을 밟아나가고 있었다.
본인이 만든 컨셉에 본인이 잡아먹히기시 시작하는 그 단계 말이다.
'미치겠네 진짜로···'
이러니 걱정을 그칠 수가 없는 것이다.
끝을 모르고 올라가고 있는 중이니만큼 거기서 고꾸라질 경우 그만큼 타격또한 클테니까.
하물며 유한을 이쪽 세계로 끌어들인 건 자신이 아니던가.
없던 책임감도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랬는데ㅡ
"아니, 이걸 진짜로 찍어서 올리네··· 실례지만 혹시 제정신이세요?"
뭐?
뭘 한다고?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뒤이어 찾아온 건 후회였다.
그 순간 유한을 이쪽으로 끌어들인 걸 처음으로 후회했다.
그 와중에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유한이 물을 마시고 오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우고 방송을 멈춘 것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할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주어진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만큼 조금이라도 빨리 결정해야하는데 '이거다!'하고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이었으니까.
남의 방송에 간섭하는 것이 말이다.
'아니, 완전 남은 아니지만 그래도···'
머릿속에서 실같은게 마구잡이로 헝클어진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확실한 건 이대로 가만히 두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계단을 밟고서 올라오는 유한의 발소리를 듣자마자 방밖으로 뛰쳐나가 유한의 앞을 가로막았던 것도 그래서였다.
"···야."
일단 가로막기는 했는데··· 여전히 머리는 답을 찾지 못하고 미궁 속을 헤매고 있는 중이었다.
어떤 식으로 말해야할까.
너무 걸레처럼 행동하는 거 아니냐고?
컨셉잡는 건 좋지만 제발 적당히 좀 하라고?
생각까지는 했지만 차마 입밖으로 내지는 못한 말이 목구멍을 따라 울컥하고 올라왔다가 다시 가라앉는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그 느낌이 영 적응이 되질 않아서 솔직히 그것만으로도 미칠 것 같았는데ㅡ
"응? 왜? 뭐 할 말이라도 있어?"
사람 속이 실시간으로 뒤집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채 태연하게 저런 말이나 하고 있는 유한의 모습을 보니 아예 돌아버릴 것 같았다.
"그으··· 그러니까···"
"할 말 있으면 얼른해. 방송 켜두고 와 가지고 빨리 올라가봐야 하니까."
"아, 거 재촉좀 하지 말아봐! 너 때문에 더 생각 안 나잖아!"
누군 자길 걱정해서 이러고 있는 거구만 그것도 모르고 재촉이라니.
짜증이 울컥하고 치솟았다.
그래서 그것을 그대로 유한을 향해 쏟아냈다.
사정을 알 리 없는 유한은 또 볼멘소리를 해댔지만.
"아니, 내가 언제 그랬다고···"
"아, 아무튼!"
혹시라도 유한이 옆을 지나쳐 가지 못하도록 3층으로 이어지는 복도를 몸으로 단단히 틀어막은채 열심히 말을 골랐다.
"그, 당분간 좀··· 얌전하게 방송해."
몇 번이고 고르고 또 골라봤지만··· 결국 꺼내든 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형편없었다.
"응?"
"좀··· 자제하라고. 그, 만약이라는 게 있잖아."
핑계로 삼을 것이 필요했다.
"만약이라니?"
"그 혹시 정지라도 당하면 공방 나가기로 한 거에 영향이 갈 수도 있으니까···"
기껏 생각해낸 핑계가 이런 거라니.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이 발치에서부터 울컥하고 올라와서 맘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스스로의 머리를 퍽퍽 소리가 나도록 내리치고 싶었지만 일단은 꾹 참았다.
그건 나중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니까.
당장은 눈앞에 있는 폭주기관차를 멈춰세우는데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흐음, 그래···? 딱히 규정에 어긋날만한 짓은 안 한 것 같은데···"
"그래도 그, 이미지라는 게 있잖아. 이미지! 어?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음··· 뭐, 알겠어. 누나 말대로 할게."
"···으응?"
솔직히 저번에 그런 일도 있었던만큼 설득하는게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게 왠걸?
'내 알아할게요.'를 시전했던 저번과는 달리 유한은 굉장히 순순하게 이쪽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당혹스러웠다.
"이쪽으로는 누나가 전문가잖아. 그러니까 누나 말이 맞겠지. 뭐."
그 순간 처음으로 귀찮음을 무릅 써가며 유한의 방송 장비를 몸소 세팅했던 것에 대한 보람을 느꼈다.
그때 보여준 모습이 아니었다면 아마 방금과 같은 반응도 나오지 않았을테니까.
"할 말은? 방금 그게 전부야?"
"어···"
분명 뭔가 더 할 말이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순순해도 너무 순순한 유한의 반응 때문에 뇌가 거기서 딱 멈춰버려서 잘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보내자니 뭔가 또 좀 그래서 우물쭈물하고 있으려니ㅡ
자박ㅡ
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들려온 것은 그동안 당한 게 하도 많다보니까 괜스레 심장을 덜컥하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둘이 거기서 뭐해?"
"어, 언니?"
갑자기 2층에는 어쩐 일일까.
당황과 의아함을 반씩 섞어서 목소리의 주인공을 부르니 심드렁한 표정을 하고 있던 얼굴이 화장실 쪽으로 돌아갔다.
설마 화장실에 가려고 올라온 것일까.
'왜 하필···'
이 타이밍일까.
이리된 이상 지금처럼 유한을 계속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이냐니까?"
지금도 봐라.
화장실에 가려고 올라온거면 빨리 들어가기나 할 것이지 기다렸다는 듯이 이쪽 일에 관심을 보이지 않나.
"벼, 별거 아냐··· 그냥 방송 관련해서 얘하고 할 말이 좀 있어가지고···"
"흠, 그래? 뭐, 니가 알아서 잘 하겠지만··· 그래도 알지? 잘 해라."
"으응···"
언니의 말을 듣고 내심 안도했다.
저리 말하는 걸 보니 유한이··· 매운맛 컨셉으로 방송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 듯 했으니까.
만약에 언니가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철퇴가 어디를 향할지야 굳이 안 봐도 뻔했다.
그래서일까.
마치 찬물이라도 뒤집어 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다.
'이거 잘못하면 진짜 죽된다···!'
유한을 이래저래 괴롭혔던 이들이 참교육당하던 현장을 바로 옆에서 목격했던 당사자로서 언니가 제대로 빡치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상태의 언니는 정말로··· 마술사같았다.
사람을 죽처럼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언니 덕분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자칫 잘못하면 그때 봤던 걸 이 몸으로 겪게될지도 몰랐다.
가뜩이나 요즘들어 체력부족을 실감하고 있는 처지인데 이런 몸에다가 그런 거대하고 압도적인 폭력이 가해진다면?
'정말 죽을지도 몰라···'
농담하는게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될지도 몰랐다.
"그, 할 말 다 했으니까 이만 올라가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라는 것이 등골을 타고 쭉 내달리는 느낌에 티나지 않게 침을 한 번 삼키고는 얼굴 위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일만한 미소를 띄워올렸던 건 그래서였다.
"시청자 분들 기다리시겠다. 자자, 얼른얼른."
그렇게 유한을 올려보내는데 집중하느라고 보지 못했다.
화장실로 들어가는 지나의 입가에 계획대로 됐다는 미소가 걸려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