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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2화 〉1부 (172/315)



〈 172화 〉1부

당연한 말이지만 갑자기 확 바뀌어버린 내 방송컨셉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건 다름아닌 세나였다.

다만 그 시기가 예상했던 것보다 좀 많이 늦긴 했다.


내 딴에는 방송 끄자마자 바로 우다다다 뛰어올라 올거라고 생각했는데 세나가 방송에 관해 이야기를 꺼낸 건 저녁 방송이 끝난 후였으니까.


덕분에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방송을 모니터링 할 거라고 하긴 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 빈도수를 줄이고 있는 중이었다는 걸.

새삼 귀찮아지기라도 한 것일까.

아마 그건 아닐 거다.


그보다는··· 내가 그 사실을 신경쓰느라고 마음대로 하지 못할까봐 그랬던 거겠지.

아무튼 이야기 좀 하자면서 내 방으로 올라온 세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얼굴 가득 머금고 있었다.


"뭐냐 이거?"


그리 말한 세나의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휴대폰 안에서 재생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낮 방송 일부를 잘라낸 클립이었고.

정확히는 시청자들한테 중지를 세우고 있는 클립이라고 해야할까.

'이야···'

어쩜 클립을 따도 저 순간을 딱 골라서 땄는지.


내심 속으로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쾌재를 불렀다.


이로써 내가 그동안 참다참다 못해 결국 급발진을 해버리고만 척을 했던 목적 중 하나가 달성된 셈이었으니까.

말해 무엇하랴.


내가 낮에 저랬던 건 아무 생각없이 무턱대고 내지른  아니었다.

얼핏보면 그렇게 보이긴 하지만 저건 꽤나  만들어진 함정이었다.


물론, 그걸 통해 노리는 건 다름아닌 세나였고.

'바로 저지르진 않겠지만···'

지금은 관심을 갖게 만든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관심을 가진 이상 들여다볼 수밖에 없을 것이고,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결국에는 참지 못하고 저지르고 말테니까.


군중심리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다른 새끼들한테 그짓거리 하다가 실수해서 걸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한테 하다가 일찌감치 걸리는  세나에게도 나을 거다.


적어도 내게 걸리면 세나가 그토록 좋아하는 방송을 그만두지 않아도 될테니까.

아무튼 노림수는 적중했으니 이제는 적당히 둘러댈 시간이었다.

"응? 이게 뭐냐니까?"


"그게 왜?"

"몰라서 물어?"

"방송에서 욕한 거 때문에 그래?"


적당히 말하면 알아들을 것이지 그걸 못하는 내가 답답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그  하는 게 아니잖아···"

세나가 어금니를 꽉 깨문채 그리 말했다.


그런 세나의 얼굴에는 나에 대한 걱정이 주렁주렁 맺혀있었다.


"컨셉질을 할 거면 감당가능한 수준으로 해야지 이렇게 막 나가버리면···"


"왜 감당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뭐? 그, 그거야···"

할 말은 많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던 걸까.


 바라보는 세나의 표정은 꼭 그리 말하는 듯 했다.

그래서 그녀로 하여금 보란듯이 피식하고 웃었다.

"말했잖아. 앞으로는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아니지 않느냐.

세나는 그리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반박해봤다.


"앞에서는 친절하고 뒤에서는 음습하게 수근거리는 거 상대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 편이 나을 것 같아서."

쓴웃음을 곁들여 그리 말하니 세나가 순간 울컥한 표정을 얼굴 위로 띄워보였다.

허나 그건 잠시에 불과했고 결국 그녀는 입을 열지 못했다.

그저 한숨을 푹 내쉬고 말았을 뿐.

"···모르겠다. 나는.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마. 정 힘들면 누나한테 바로 말할테니까."


"누가 들어준대?!"

사실 세나가 이러는 것도 그녀와 관련된 설정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일이긴 했다.

방송에 있어 진심이니만큼 그녀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방송하든 말든 그 사람의 방식이 그런갑다하고 관여하지 않는 편이니까.


그럼에도 내게 관여한 건 그만큼 날 걱정하기 때문이겠지.


"에휴, 너 곧 개강이잖아. 학교에서는 어떡하려고."


"글쎄? 정 안 되면 휴학하지 뭐."

대학을 꼭 졸업할 필요가 있을까.

그게 내 본심이었지만 일단은 숨겼다.

지금 이 타이밍에  이야기를 꺼내봐야 세나를 자극하기만 할 뿐이니까.

"그래··· 니 알아서 해라. 니 알아서···"

"그래도 컨셉 자체는 신선하고 좋지 않아?"


"아주 그냥 신선해서 펄떡펄떡 뛰겠네."


"나도 다 생각이 있어서 지른 거니까 일단 지켜보기나 하십쇼. 내가 감당하는지 못하는지."


"암요. 당연히 그러시겠죠."

빈정이라도 상한 걸까.


세나의 목소리가 퉁명스러웠지만 애석하게도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가장 먼저 들이닥친 세나라는 고비는 어찌어찌 넘겼지만··· 진짜는 따로 있었다.

말해 무엇하랴.

난 이미 방송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지나에게 들켜버린지 오래였다.

사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지나가 집에 없을 때만 골라서 방송을 했다면 모를까 그렇지도 않았으니까.


그러다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들킬 수밖에 없었고, 그 사실을 들킨 순간 대노까지는 아니어도 소노 정도로 화가 난 지나와 마주해야만 했다.

재밌는 점은 지나가 화를 낸 이유가 내가 방송을 시작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실을 본인에게 숨겼다는 것 때문이었다는 것이었고.


아무튼 알면 걱정할까봐 그랬다는 말과 함께 적당히 아양을 떨어서 지나의 분노를 피할 수 있었고,  대가로 간간히 지나에게 방송을 사찰당하게 되었다.


'일단 반응이 바로 돌아오질 않은 걸 보면···'

아직까지는 그 사실을 모른다는 뜻이겠지.

허나 눈치채는 건 시간 문제일 터.

그러니 이번에는 들키기 전에 자진납세를 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리 되면 이번에는 중노한 지나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참으로 다행히도 화가  지나를 달랠 공물은 이미 마련해놓은 상태였다.


고로 이제 적당한 타이밍을 노려서 털어놓기만 하면 되는데··· 언제가 좋을까.

유한이 그런 생각을 하며 지나의 눈치를 보고 있을  지나는 운동에 집중하는 척 하며 거울을 통해 유한을 살피고 있었다.

'흐음···'

유한은 지나가 방송과 관련해서 아직 눈치채지 못한 상태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나는 이미 옛저녁에 눈치챈 상태였으니까.

그럼에도 세나가 그랬던 것처럼 유한에게 뭐라고 하거나 찾아가지 않았던 건 어디까지나 유한이 어찌나오는지를 지켜보기 위함이었다.

'언제쯤 말하려나···'

'혹시 들킨  아니겠지···'하는 느낌으로 이쪽의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 못 하는 유한의 모습은 보면 볼수록 귀여웠다.

그래서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았다.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기분이 언짢기는 했다.


그 언짢음은 방송 때문이 아니었다.

유한이 다른 남자들과는 다르게 야한 아이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물론,  사실을 다른 년들도 알게 된다는   속이 쓰리긴 했지만··· 자신이 먼저 알았으니까.

그 점을 고려하면 그 부분은 그럭저럭 참을만 했다.


정말로 참기 힘든 건 유한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숨기려고 한다는 점이었다.

'안 그래도 최근 들어서 좀 수상했는데···'

특히나 갑자기 옷을 싹 정리하겠다며 엄마와 손을 잡고 옷장 안에 있던 것들을  꺼내서 빨래를  것 같은 게 그랬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는데도 그랬다는 건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는 뜻일테니까.

다만 심증만 있다 뿐이지 물증은 없어서  점을 지적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솔직히 마침 잘 됐다 싶더라.

이번 걸 빌미삼아 거기까지 캐내면 되겠다 싶었으니까.

그래서 마음 좀 졸여보라고 조금만 더 지켜보다가 그때까지 털어놓지 않으면 그때는 정말 '벌'을 줄 생각이었는데ㅡ

"그, 누나?"


그래도 이번에는 끝까지 숨길 생각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열심히 이쪽의 눈치를 살피고 있던 유한이 끝끝내 입을 열었다.

"응? 왜?"


속으로 피식하고 웃었던  그래서였다.

'벌'을 주지 못하게 된 안타깝긴 하지만 그래도 귀여우면서도 기쁘긴 했으니까.

그렇기에 유한이 사실을 털어놓는다면 기꺼이 용서해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정작 유한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생각치도 못한 말이었다.

"요즘은 그거 안해?"


그거라니?

대체 뭘 말하는 걸까.


짚이는 게 없어서가 아니라 짚이는 게 하도 많다보니 그 중에 뭘 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정답이 유한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코스프레 있잖아. 요즘에는  해?"


유한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그 말을 들은 순간 덜컥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건 나름 잊고 싶은 과거기도 했으니까.

말해 무엇하랴.


중고등학생 시절 자신의 취미는 코스프레였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시작은 친구의 부탁이었으니까.


하도 간곡하게 부탁하길래 한 번 해봤는데 의외로 재미가 쏠쏠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짬이 날 때마다 하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트레이너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다른 곳에 눈길을 줄 겨를조차 없이 바빠지면서 자연스레 끊게 된 것이었는데···

설마 이 타이밍에 유한의 입에서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흘러나올 줄이야.

최근들어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생긴 듯 하더니만 결국 거기까지 도달하게  것일까.

워낙 생각치도 못했던 이야기라 당황스러운 것과는 별개로 유한이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꺼내들게된 계기 자체는 궁금했기에 빠르게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유한을 향해 물었다.

"···갑자기 그건 왜?"


"아니, 그냥 궁금해서···"


발그레하니 물든 볼을 긁적거리는 모습이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호기심이고 뭐고 이대로 입을 맞춰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고 말을 이어나갔다.

"뭐어··· 아무래도 이래저래 바쁘니까. 안 한지 꽤 됐지?"

"그렇구나···"

왜 저렇게 아쉬워하는 걸까.

의문을 품은 순간 한 가지 가능성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왜? 관심있어?"

그래서 그리 물었더니만 그 순간 유한의 어깨가 흠칫하고 떨렸다.


안 그래도 발그레하던 볼은 더욱 빨개졌고.


"아, 아냐··· 그냥 문득 생각나서."


아니기는 무슨.


관심있다는 티를 그렇게 팍팍 내놓고 저 말을 믿으라는 걸까.


보아하니 이쪽이 코스프레를 한 모습을 보고 싶기라도 한 모양인데 어떻게 해야할까.

동생이 되서 누나한테 부끄러운 모습이나 시키려고 하는 저 앙큼한 동생을 어떻게 혼내주면 좋을까.

뭐, 보여주고자 한다면 보여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부끄럽기야 하겠지만 그로인해 유한이 기뻐한다면 그 이상 기쁜 일도 없을테니까.


궁금한 게 있다면 보고 싶은 캐릭터가 대체 어떤 캐릭터길래 저렇게까지 꽁꽁 숨기려고 드냐는 것인데···


그 순간 머릿속으로 떠오른 것은 유한이 최근 봤다던 애니메이션의 제목이었다.

히로인앤 슬레이브라고 했던가.

어떤 애니메이션인가 싶어서 찾아봤는데 많이 야한 거더라.


그렇다보니 거기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복장또한 과감하기 그지없었고.

컨셉자체가 영웅으로 활약하는 이들이다보니 대놓고 야하진 않았다.

대신 몸에 쫙 달라붙어서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건 물론, 여기저기 파여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게 보고 싶은 거구나···♡'


재밌을 것 같기는 했다.

특히나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며 유한이 흥분해준다면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기도 했고.

그렇다고 그냥 해줄 생각은 없지만.

"히로인앤 슬레이브였던가?"


"으, 응?"


"유한이 네가 최근 본 애니메이션 이름 말이야."

역시나.

거기에 나오는 등장인물들 중 한 명의 복장을 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목을 입에 올린 순간 정곡이라도 찔린 것처럼 어깨를 크게 움찔댈 이유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끝까지 털어놓게 만들어줘야겠지.


싱긋 웃으며 시선을 피하고 있는 유한을 향해 성큼 걸음을 내딛었던 건 그래서였다.

찔리는 구석이 있기 때문일까.

"누, 누나?"


유한이 주춤주춤하며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굳이 서둘러 쫓지는 않았다.


뒷짐까지 지고 느긋하게 움직이는 대신 확실하게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그렇게 구석으로 몰아넣는데 성공한 순간 도망치지 못하도록 양쪽 벽을 손으로 짚은 뒤 그대로 고개를 숙여 유한의 귀에 대고 직접 물었다.

"혹시 보고 싶어?"


"으, 응?"


"누나가 거기 나오는 캐릭터 코스프레한 모습 보고 싶냐고."


그 순간 유한이 보여준 모습은 참기 힘들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무슨 곤란한 질문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입술을 꼭 깨문 채 고개를 살짝 숙이는데··· 덕분에 숨이 절로 거칠어졌지만 꾹 참고 유한의 대답을 기다렸다.

다행히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구석까지 몰려버린 이상 계속 숨기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유한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으니까.


"···응."

"정말? 그거 되게 야하던데···"


"그, 그래도···"

"그렇구나··· 유한이 너는 누나가 거기 나오는 애들처럼 야한 옷 입고 있는 모습이 보고 싶은 거구나."

본심을 들켰다는 수치심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귀에 닿는 숨결이 간지러워서 그랬던 걸까.

품 안에 가둬놓다시피한 유한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떨림을 눈에 담으며 살짝 뜸을 들였다.

뜸을 들이다가ㅡ

"그래, 보여줄게."


특별히 선심 썼다는 투로 유한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이런 부탁도 들어주고··· 역시 누나가 최고지?"

그로인해 엄마를 상대로 조금이라도 더 앞서나갈 수 있다면 굳이 사양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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