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9화 〉1부 (169/315)



〈 169화 〉1부

요즘 들어, 정확히 말하면 가영과 교복 데이트를 했던 날부터긴 하지만 새삼 복장의 중요성에 대해 실감하고 있었다.

'진짜 대단했지···'

어찌나 인상적이었던지 무려 이틀이나 지난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날 모텔방 안에서 가영이 보여주었던 모습들이 선명하게 떠오를 정도였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생각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만약 그날 나나 가영의 복장이 교복이라는 특별한 복장이 아니었다면 그래도 가영이 그런 식으로 행동했을까 하고 말이다.


물론, 그날 가영이 보여준 모습들이 오롯이 교복 때문이라고 퉁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마 이런저런 복합적인 요소들이 어우러진 결과물이었겠지.

허나 그렇더라도 교복이라는 요소가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만큼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별  아닌 것 같아도 그만큼 복장이라는 것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거다.

그렇기에 새삼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 코스프레라는 게 상당한 치트키라는 걸.


그리고 코스프레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가 한 명 있었다.


"아, 맞다. 요즘 유행하는 애니메이션이 어떤 거예요?"


슬슬 방송을 마무리 해야하는 상황에서 굳이 그런 질문을 꺼내들었던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무턱대고 코스프레를  수는 없으니 이왕이면 보자마자 '와! 그 캐릭터 아시는 구나!'라는 탄성이 저절로 튀어나올 정도로 유명한 캐릭터를 참고하고 싶어서 그리 말했던 것인데 아무래도 내가 건드린 것이 역린 비스무리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커칼 ㄱㄱㄱ]


[요즘은 마술회전이지 ㅇㅈ?]

[으... 씹덕련들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오누]

[자기가 아는 얘기 나오니까 씹덕련들 신났죠?]

[아니  그런 걸 보시려고 하시는 거죠?]

[이건 세나가 잘못했네]


[ㄹㅇ 아무튼 세나 잘못임]

[아 ㅋㅋ 모니터링만 하지 말고 씹덕물 들지 않게 관리하라고 유세나!!!]

[우마머스마 2기 ㄱㄱ 겁나 감동적입니다]

[이미 세나부터가 씹덕인데 관리는 무슨 ㅋㅋㅋ]

[유료캠프 보쉴?]


[내가  때는 이미 추천리스트 작성하고 있을듯]

 말을 꺼내들기 전까지만 해도 좀만 더 하고 가라며 한 목소리로 매달리던 이들이 언제 그랬냐는  씹덕파와 비씹덕파로 나뉘어서 치고 박고 싸우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건 채팅화력은 비등비등한데 자본력만큼은 씹덕파 쪽이 압도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어느새 밀려들어오기 시작한 후원의 물결만 봐도  수 있는 사실이었다.

짤랑ㅡ

[이거  보쉴?님이 5,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VTube 영상]

말해 무엇하랴.


며칠 전부터 드디어 후원기능을 오픈했다.

그리고 새롭게 오픈한 기능은 며칠 내내 순항중이었다.

그런데 방금 들어온 영상도네를 기점으로 시작된 것은 뭔가  달랐다.

폭주라고 해야할까.

도네로 들어온  재생시킬겸 후원리스트를 새로고침해봤는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것이 갑자기 버벅거리기 시작하더니만ㅡ

'미친?'


갑자기 못 보던 페이지가 생겨나 있었다.

그것도 무려  페이지나.


"어··· 가, 갑자기 영상도네가 엄청 들어와서요. 일단은 좀 닫아놓을게요."


이게 오후 방송이었다면?

얼마든지 쏘라고 열어뒀을 거다.


헌데 지금은 가영의 가게로 알바가기 전에 노가리나 깔겸 잠깐 킨 것이었고, 그렇다보니 닫을 수밖에 없었다.


불과 몇 분만에 저렇게 쌓일 정도인데 계속 열어두면 그때는 정말로 알바고 뭐고 하루종일 애니영상만 보게 될지도 몰랐으니까.

'씹덕은 돈이 된다더니만···'

과연 무시무시한 자본력이었다.

이러다가 자본의 힘으로 적화, 아니 덕화통일을 당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래서 바로 문부터 닫았더니만 미처 들어오지 못한 이들의 불만이 채팅창 위로 폭주했다.

[아 왜!!!]

[주인장!!!  열어!!!!]

[FBI OPEN UP!!!]


[딱 하나만 쏠게!!!]


[아 충전했다고 ㅋㅋㅋ 빨리  가져가시라고요]

"아니, 그 일단 진정들 하시고···"


[오빠 정말 나 미치는 꼴 보고 싶어서 이래?]

[정신 나갈  같아... 점심 나가서 먹을 것 같아... 점심 나가서 간짜장 먹을 것 같아!!!!!]

[끼이이이에에에엑!!!]


[아니 방금 들어왔는데 채팅창  이럼 ㅋㅋㅋ]

[아 ㅋㅋㅋ 빨리 다들 가면 쓰시라고요]


"저 곧 있으면 알바하러 가야 된다니까요?"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알바하러 가야된다는 이야기를 꺼내들기 무섭게 설마 돈먹고 튈 생각이냐며 시청자들이 아우성을 쳐대기 시작했으니까.

[갈 때 가더라도 쏜 건  보고 가시라고요~]

[강제 방송 연장 개꿀]


[아 ㅅㅂ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후원할걸 ㅋㅋㅋ]


[ㄹㅇ 오늘 점심 사먹을 돈으로 방송 연장시키는 거였는데 ㄲㅂ]


"네네, 물론 쏴주신 것들은  보고··· 갈 겁니다."


그래버리면 지각해버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많이 늦지는 않을 거다.

혹시 몰라서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두었으니까.

시청자들은 그것만으로는 만족이 되지 않는 듯 했지만.

[아 ㅋㅋ 낮방송 볼 거 없다그요]

[ㄹㅇ 그냥 알바 제끼면 안 됨?]

[이대로 세나 방송 킬 때까지 영도 켠왕 가즈아~~]


[그러니까 빨리 문 열라고!!! 충전했다고!!!!]

[ㅅㅂ 후원  해서 정신 나갈  같은 방송은 이 방송이 처음이네]

"알바 제끼는   됩니다. 그, 엄마 가게 도와드리는 거라서요."

엄마라는 호칭이 영 입에 붙지를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이들은 나와 세나를 친남매로 알고 있는 것을.

아무튼 그렇게까지 말했건만 한 번 시작된 폭주는 멈추질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최후의 수단을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12시간 연속 방송 ㄱ? 12시간 연속 방송 ㄱ? 12시간 연속 방송 ㄱ?]

[아 ㅋㅋㅋ 그러면 알바 가서 방송 키시라그요]

[나]

[알바하고 방송 투배럭 ㄱㄱ]


[락]

[돈이  배가 된다고!! 이래도 방송 안 킬거야?!]

[나]

[자꾸 막 방종하고 그러시는데 그거 되게 안 좋은 습관이니까 빨리 고치세요 ㅡㅡ]

[세]

[락]


[버]


[거]

"도배 멈춰!!!"

도배 멈춰를 외쳤는데 도배를 멈추지 않는다면?


그때는 '시청 멈춰!'를 당하게 되는 거다.

거기서 또 선을 넘으면 그때는 우편함으로 한 통의 등기 우편을 받게 되는 거고.

역시 교육부에서 만들어낸 마법의 주문답게 '멈춰!'의 효과는 확실했다.


[멈춰는 ㅇㅈ이지]

[쿳소...! 치사하게 멈춰를 쓰다니...]

[멈춰를 쓸  있을 줄이야  녀석... 강하군]


[우욱 씹;;]

[이것이... 세금의 힘인가?]


[그러니까 도배 좀 작작하라고 씹덕련들아]

[당신이 낸 세금 '멈춰!'로 대체되었다]


치트키까지 동원해서 소란을 잠재우고 난 후에야 비로소 도네로 들어온 영상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감상회는 뭐··· 말 그대로 애니영상의 연속이었다.

오프닝하고 엔딩 영상은 물론, 명장면들을 짜깁기해놓은 영상에다가 패러디 영상까지.

 잠깐 사이에 정말 종류별로 잘도 쏴놨더라.

[ㅅㅂ 정신이 혼미해지네 ㅋㅋㅋ]

[이게 씹덕...? 우욱...]


[ㅆㅂ psp 압수 마렵네;;]


[안경 벗어 씹련아^^]

[오....]


[아 제발 ㅋㅋㅋ]


[인중에 지건 꽂아버리고 싶네 아 ㅋㅋㅋㅋ]


[정신 나갈 것 같아 ㅅㅂ]


물론, 단순히 그런 영상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간간히 세나의 클립도 섞여있었으니까.


다만 그 클립이라는게 동료 스트리머들에게 자기가 본 애니메이션을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영상이라서 그렇지.

"아, 음···"


솔직히 좀 부끄럽긴 하더라.

덕분에 살짝이지만 얼굴이 화끈거려서 쓰게 웃고 있으려니 캠을 통해 그런 내 반응을 확인한 시청자들이 신나서 날뛰기 시작했다.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누나...]


[앗.. 아아...]

[세흐나야...]

[우리가 미아내...]


[제송함미다 제송함미다]

[그 와중에 얼굴 빨개진 거 왤케 왤케임?]


"아니 그···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 건데 저걸 왜 대중의 픽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그 정도로 유명한 애니메이션인가 싶다가도 그런 것치고는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라 진심으로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건 말이죠...]


[왜냐면요...]

[그게 사실은...]


[ㅅㅂ  척척 맞는  보소 ㅋㅋㅋ]


[셋이서 빨리 키스해!!]


[우욱 제발... 상상했잖아..]

[왜 ㅋㅋㅋ  중에 한 명 정도는 남자일 수도 있지]

[남자겠냐고 ㅅㅂ]

[아무튼 알려드렸습니다 ^^7]

[대중(일본)]


"아··· 그래서 대중의 픽? 일본에서 그렇게 유명해요?"


야동은 찾아봤지만 애니메이션 쪽은 찾아본들 안 좋은 경험만 하게 될 것 같아서 일부러 멀리했었는데 말이다.


저것들이 그렇게나 유명한 걸까.


[아 ㅋㅋㅋ 일본대중의 픽은 맞지]

[근데 ㄹㅇ 유명하긴 함]

[알고보니 누나가 일본인이었던 건에 대하여]

[유세나가 아니라 류 세나였누 ㅋㅋㅋ]

"흐음, 그 정도예요?"

그렇구만.

그럼 저 중에 하나로 해야하나?


그리 생각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무려  페이지에 달하던 영상들도 어느새 하나밖에는 남지 않아서 마지막 것만 보고 바로 방송을 끌 생각으로 멘트를 쳤다.


"아무튼 전 이것만 보고 알바하러 가겠습니다. 아마··· 오후 쯔음해서 방송 또 킬 거예요."

[ㅖ]

[기래요]

[올 때까지 숨 참을테니까 빨리 와야 돼!!]


[라고 관에 적혀있는데요 교수님?]


[흡!!]


[아니 그냥 알바하는데서 방송 켜주면 안 됨?]


[ㄹㅇ 가게 홍보도 되고 일석이조인데 이걸 안 한다고?]

[일손도 거들어주고 홍보도 해주고 캬;; 효자다 효자]

[세나는 ㄹㅇ 불속성 효녀인데 ㅋㅋ]

[역시 자식 나을 거면 아들이지 ㅋㅋㅋ]


[낫긴 뭘 나아 ㅋㅋㅋ 어디 아프세요?]


[나을x 낳을o]


[뇌가 좀 아프신듯 ㅎㅎ;;]


"자아, 조리돌림은 그만하시고 영상에 집중해주세요."

그래서 이번에는 또 어떤 애니메이션일까.

재생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까만 화면이 모니터 한 구석에 떠오르며 그 밑으로 영상의 제목이 흐르듯 지나가기 시작했다.


"어디보자··· 히로앤슬? 이건 무슨 애니메이션이에요?"


제목에 히로가 들어가는  보면 히어로물같은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추측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히어로물, 아니 정확히 말하면 히로인물이 맞긴 했다.

다만ㅡ

[아니 미친 ㅋㅋㅋ 이거 야애니잖아]

[저거 누가 쏨? 돌았네...ㅋㅋㅋ]


[암살이다!! 빨리 꺼!!]

[아니 님들은 그걸 대체 어케 아는 거임?]


[아  ㅋㅋㅋ 히로앤슬 재밌다고]

[솔직히 재밌는 건 ㅇㅈ]


앞에 '야'가 붙을 정도로 수위가 쎈 녀석이라서 그렇지.

"뭐야? 이거 야한 거예요?"


시청자들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는데 적어도 지금 재생되고 있는 여성에서 그런 기미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하나도 안 야한데?"


뭐랄까 오히려 본격적인 히어로물의 냄새가 확 난달까.


거기에 퀄리티도 상당했다.

[이거 함정임 ㅋㅋㅋ]

[ㄹㅇ 갑자기 그렇게 노선 확 틀어버릴 줄 누가 알았겠냐고 ㅋㅋㅋ]

[거의 GL 드리프트 당한 급으로 띵하긴 했어]

[근데 진짜 재밌긴  ㅇㅇ]

[거기게 개꼴...]

[어허!!]

[등기 우편 받고 싶어?!]


히로앤슬은 줄임말이고 정확한 제목은 히로인앤 슬레이브였다.

내용은 뭐··· 오직 여성들에게만 이능이 허락된 세계에서 우연찮게 히어로, 아니 히로인의 힘을 회복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각성하게 된 남자가 히로인 협회에 보호라는 명목으로 납치되어 톱 히로인들과  집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야릇한 시츄에이션을 그린 식이었고.

'···재밌을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하면 좀 끌렸다.


야한 것도 야한 거지만 일단 주인공이 '남자'라는 것부터가 마음에 들었으니까.


말해 무엇하랴.


정조역전세계답게 이 세계의 애니메이션들은 대부분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었다.


문제는 주인공이 여성으로 바뀌면서 본래라면 여성들이 차지했어야할 자리를 꼬추들이 차지하게 되어버렸다는 것 정도?

'씨발 이게 진짜 옳게된 하렘물이지···'

꼬추 새끼들이 득실득실거리고 주인공한테 잘보이려고 아양까지 떨어대는게 어떻게 하렘물이냐고.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 건ㅡ

'야하긴 하네···'

작중에 등장하는 여성 히로인들의 복장이 하나같이 화끈하기 그지없다는 점이었다.


"이거 많이 야해요?"

그래서 이걸로 하기로했다.

마침 또 등장인물 중에 한 명이 지나에게 굉장히 잘 어울릴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으니까.


"흠, 궁금한데 한 번 봐볼까? 어디가면 볼  있어요?"


코스프레를 한 지나의 모습을 상상하느라 바빠 미처 자각하지 못했다.

지금 내 얼굴이 어떤 상태인지를.

그리고 정말 아무 생각없이 내뱉은 말들이 어떤 후폭풍을 불러일으킬지를.

"아, 이제 꺼야겠다. 그러면 오후에 봐요."

그렇게 방송을 종료하고는 서둘러 가영의 미용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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