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화 〉1부
졸지에 야생의 무리하고 딱 맞닥뜨리게 된 유한이 골치아프다는 표정을 하고 있을 때 막 화장실을 찾아내 그 안으로 들어온 가영은 일단 문부터 걸어잠궜다.
그렇게 문을 걸어잠구고 난 후에야 비로소 좀 안심할 수 있었다.
안심하고 나니?
그동안 억지로 외면해왔던 찝찝함이 몸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올라오기 시작했다.
"휴우···"
그에 눈썹을 가운데로 모은 채 슬쩍 인상을 쓰고 있던 것도 잠시, 가영이 얼굴에 주고 있던 힘을 풀며 슬그머니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중간에 편의점에라도 들려서 갈아입을 속옷을 확보했을텐데 말이다.
어디든 일단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서둘렀던 게 화근이었다.
허나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을 지나치는 모든 이들이 이쪽을 쳐다보며 수근거리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그 순간 느꼈던 초조함은 정말로···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끔찍했다.
아래는 오줌이라도 싼 것처럼 축축하지, 거기에 치마는 평소 입던 것과 비교하면 손바닥만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짧지··· 심지어는 바람도 강했다.
그 탓에 휘잉하고 바람이 불 때마다 젖은 곳 위로 차가운 바람이 스치며 올라오는 오싹오싹한 느낌과 언제 들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오는 콩닥거림을 동시에 맛봐야만 했다.
그래서일까.
바깥하고 비교하면 천국이나 다름없는 화장실 안에 홀로 들어와있음에도 심장은 여전히 콩닥콩닥하고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 느낌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조심스레 들어올린 손을 가슴께에다가 올렸던 건 그래서였다.
'싫어야 하는데···'
분명 그래야만 하건만 그렇지가 않았다.
이 콩닥거림이··· 싫지가 않았다.
싫다기 보다는 오히려 기껍게 느껴지는 구석도 있었다.
그게 너무 이상했다.
나이에 맞지 않는 복장을 했더니 머릿속마저도 어떻게 되어버린 것일까.
어쩌면 그런 걸지도 몰랐다.
그렇지만ㅡ
'유한이··· 흥분하고 있었지···'
그 이상하기 짝이 없는 느낌을 몰아내보려고 할 때마다 자꾸만 떠올랐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태연한 척 내숭을 떨면서도 자꾸만 이쪽을 힐끔대던 유한의 눈길과 이쪽을 바라볼 때마다 마주잡은 손에 꼬옥하고 힘을 주곤했던 유한의 행동이 자꾸만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아마 유한 본인은 나름대로 숨긴다고 숨겨본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다 보였다.
얼굴이 평소하고는 다르게 복숭아빛으로 발그레하니 달아올라 있는 것도 그렇고 걸음걸이도 평소랑은 다르게 어색하기 짝이 없는데 눈치채지 못한다면 그건 바보겠지.
혹시··· 이런 게 좋은 걸까.
흔히 노출벽이라고 부르는 특이한 성벽이 머릿속으로 떠올랐지만 바로 지워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럴 리 없었으니까.
그냥··· 최근들어 이쪽을 배려한다고 자제하고 또 자제한 탓에 쌓였던 걸거다.
남자라고 해서 성욕이 없는 건 아니니까.
하물며 유한은··· 다른 남자들과는 달리 굉장하다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왕성한 편이지 않던가.
그런 아이를 상대로 할 때마다 부담스러워하는 티를 팍팍 냈으니··· 어쩌면 억지로 참는 버릇같은 게 생겼을지도 몰랐다.
'그러면···'
풀어줘야하는 걸까.
순간 머릿속으로 떠오른 생각에 도둑이 제 발이라도 저리듯 몸을 움찔하고 떨었던 것도 잠시, 가영이 표정과 마음을 동시에 다 잡았다.
만약, 정말로 만약에 유한이 이쪽을 생각해서 억지로 참고 있는 거라면··· 적어도 그 욕구만큼은 책임져주는 것이 맞겠지.
유한의 마음을 받아주진 못하더라도 그 아이를 이 이상 비참하게 만들지는 않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자신이 책임져야만 했다.
"후우···"
물론, 유한에 대한 책임과는 별개로 축축하게 젖은 것만큼은 어떻게 해야만 했다.
지금도 틀림없이 냄새가 상당할텐데 여기서 마르기까지 해버리면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을테니까.
그래서 조심스레 치마 속으로 손을 밀어넣어 팬티를 살짝 밑으로 젖혀봤는데ㅡ
쯔으으윽···♡
그러면서 난 소리가 조금씩 원래 박자를 향해 돌아가던 심장을 다시금 빠르게 뛰도록 만들었다.
그만큼··· 민망한 소리였다.
오죽하면 스스로의 몸이 원망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얼굴이 미친듯이 화끈거렸다.
유한이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더 했다.
이렇게나 젖은 걸 두고 유한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혹시 꼴 사납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동시에 생각했다.
화장실이 1인용이라서 다행이라고.
방금같은 소리는 바깥에서 내도 될만한 소리가 아니었다.
아니, 바깥은 물론 집에서도 내선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런데 그런 소리를 다른 누군가 듣기라도 했다면?
그때는 정말로 민망해서 죽어버릴지도 몰랐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닦아야했다.
갈아입을만한 게 없으니 젖은 걸 다시 입을 수밖에 없긴 하지만, 그래도 꼼꼼하게 닦으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을테니까.
벽에 걸려있던 휴지를 돌돌말아서 손으로 움켜쥐었던 것도 다 그걸 위해서였다.
팬티에 묻은 걸 닦을 때는 아무 문제 없었다.
질척질척한 수준을 넘어서 무슨 오줌이라도 싼 것 마냥 축축해서 손 안에 가득 찰 정도로 잔뜩 뜯어낸 티슈가 순식간에 못 쓰게 되어버린 건 좀 민망하긴 했지만··· 그 정도는 참을만 했다.
문제는 보지를 닦기 시작했을 때였다.
정말 아무 생각없이, 빨리 닦고 끝내자는 마음으로 손을 가져다댔는데ㅡ
"흐읏···?! 으으읍···♡"
살짝 닿은 것만으로도 날카로운 쾌감이 확 솟구쳤다.
허벅지가 제멋대로 떨리며 안쪽에서부터 뭔가가 주륵하고 흘러내리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닦아야, 닦아야 되는데에···'
그 순간 깨달아버렸다.
적어도 스스로의 손으로는 무리라는 걸.
"헥, 헤엑···♡"
살짝 닿은 것만으로도 이토록 허벅지가 부들부들 떨리고 숨이 벅차오르는데 본격적으로 만지기, 아니 닦기 시작한다면?
그때는 정말로 닦다가 가버리게 될지도 몰랐다.
그렇게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걸 닦고 또 닦다가 유한이 의아함이라도 느껴서 찾아오기라도 하는 날에는··· 아까하고는 다른 의미로 민망해서 죽어버릴지도 몰랐다.
티슈를 차곡차곡 접어서 팬티 안쪽에다가 덧댄 건 그래서였다.
닦지 못한다면 최소한 아까처럼 흘러내리지라도 못하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식으로 급하게나마 대비책을 세워놓고 화장실을 빠져나온 순간 깨달았다.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던 게 사실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을.
집에서 쓰는 것과는 달리 화장실 안에 비치되어 있던 것은 그 품질이 그리 좋지 못했다.
그래서 부드럽기 보다는 꺼슬꺼슬했다.
그것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꾸만 민감한 곳을, 특히 클리토리스를 스쳤다.
"흐으읍···♡"
그것만으로도 달아오른 몸에는 치명적이었다.
순간 몸을 타고 올라온 쾌감이 머리를 쿵 때린 순간 눈앞이 제멋대로 아득해지며 어딘가로 추락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해서 황급히 다시 화장실 안으로 향하려고 했지만 다른 이가 화장실 안으로 쏘옥하고 들어가버리는 게 훨씬 빨랐다.
그렇기에 다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야할까.
어떻게 해야···
머리끝까지 차오른 초조함을 느끼며 그 잠깐 사이에 벅차오른 숨을 나눠서 내뱉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에이 씨··· 남자가 고프면 남자가 있을만한 곳을 가든가 게임하는데 방해되게 왜 오락실까지 와서 지랄이야 지랄이···"
벽에라도 기대지 않으면 그대로 풀썩 주저앉게 될 것만 같아서 벽에 몸을 기대고 있으니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는지 얼굴을 짜증으로 물들인 여성 한 명이 옆을 스치듯 지나갔다.
문제는 그 여성이 짜증스레 중얼거린 말이었다.
오락실.
그리고 남자.
딱 거기까지 들은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가 뚝 끊어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설마··· 설마···'
부디 아니길 바라면서 황급히 유한이 기다리고 있을 오락실 쪽으로 향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민감한 곳을 스윽하고 스치고 지나가는 까슬까슬한 감촉이 미친듯이 신경이 쓰였지만, 그 마저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예상대로 유한은 오락실 안에 있었다.
난감함으로 물든 얼굴을 한채 대여섯 명쯤 되어보이는 여성들에게 둘러쌓여있었다.
대체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걸까.
혹시라도 유한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유한의 주변을 동그랗게 둘러싼채 깔깔대며 웃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뒷목이 뻐근해지며 몸에 제멋대로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저들에게는 유한의 얼굴 위에 떠올라있는 난감함이 보이지도 않는 것일까.
그럴 리 없었다.
보이는데도 모르는 척하며 무시하고 있는 거겠지.
유한을 괴롭게 만들었던 여자들도 그랬다.
유한이 슬퍼하든 말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처럼 일방적으로 자신의 애정을 강요하곤 했다.
그것 때문에 유한이 얼마나 괴로워했던가.
지금이야 많이 괜찮아진 것 같지만 괜찮아졌다고 해서 유한이 잃어버린 시간이 돌아오는 건 아니었다.
남들은 웃고 즐기면서 보낸 시간을 유한은 자신의 잘못도 아닌 일 때문에 괴로워하며 보내야만 했다.
그러니··· 또 그리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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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으로 인해 가영이 서하고 피묻은 토스트라 불리웠던 그때 그 시절로 회귀해버렸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유한은 반짝반짝한 시선을 보내는 이들에게 포위당한채 난감해하는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좀 쫄았었는데···'
다행히도 '나 일진이요.'라고 말하는 듯한 복장을 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비교적 순수한 친구들이었다.
다만 좀 부담스럽게 들이대서 그렇지.
아무튼 슬슬 가영이 돌아올만한 타이밍이라서 이제 정말 쫓아낼 생각으로 단호하게 나가려고 했는데ㅡ
'···엥?'
막 입을 떼려던 순간 몸이 갑자기 어딘가로 홱 끌어당겨졌다.
그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것도 잠시, 이제는 퍽 익숙해진 감촉이 얼굴을 감싸는 걸 느끼고는 조심스레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렇게 고개를 들어올린 순간 눈으로 들어온 건 나로서는 처음보는 표정을 하고 있는 가영의 모습이었다.
날 자신의 품 안으로 끌어당긴 가영은 무섭도록 싸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오금을 저릿하게 만드는 그런 표정이라고 해야할까.
덕분에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유전자의 힘이라는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하다는 걸.
그런 모습을 내게 보이기 싫었던 것일까.
어느새 뒤통수까지 올라온 가영의 손이 내 머리를 꾸욱하고 눌러 가슴에다가 얼굴을 파묻도록 만들었다.
나야 굳이 사양할 이유가 없었기에 마음 편이 가영에게 몸을 맡겼다.
"미안, 오래 기다렸지?"
"으응, 아니예요 선배···"
가영의 품이 너무 포근하고 안락하다보니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목소리가 늘어지며 자동으로 애교 비스무리한게 입밖으로 튀어나갔다.
'헤으응··· 마망···'
맘 같아서는 이대로 가슴을 주물주물하고 싶었지만, 일단은 참기로 했다.
솔직히 궁금하긴 했으니까.
가영이 이 상황을 어떤 식으로 헤쳐나갈지 말이다.
그리고 가영은 참은 보람을 톡톡하게 느끼도록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우리 유한이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신가요?"
'미친···'
우리 유한이래.
'박력 뭐냐고 진짜···'
남자가 되서 이런 말하긴 좀 그렇지만 솔직히 좀 두근거렸다.
가영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다르게 싸늘하기 그지없어서 더 그랬다.
가영의 매도라니.
저 꼬꼬마들은 지금 자기가 받고 있는 게 얼마나 귀중한 건지 알고나 있을까.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가영의 턴이 끝났으니 이제 저쪽의 차례인데··· 과연 저쪽에서는 어떻게 나올까.
위기감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여차하면 직접 나서서 실력 행사를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기에 위기감보다는 기대감 쪽이 좀 더 컸다.
그래서 가영의 싸늘한 목소리를 들었을 때하고는 다른 의미로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뛰는 걸 느끼고 있으려니ㅡ
"죄, 죄송합니다···!"
"여자친구 있으신 줄 진짜 몰랐어요···!"
때맞춰 들려온 말들이 막 타오르기 시작했던 기대감에 찬물을 팍 끼얹었다.
'아니···'
여기서 이렇게 쫄튀를 시전한다고?
혹시 튀는 척하고 이쪽을 방심하게 만든 다음 뒤통수를 노리는 고도의 계략인가?
는 그냥 쫄은 거 맞더라.
무슨 맹수한테 쫓기는 사람들마냥 오락실을 호다닥 뛰쳐나가는데 덕분에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부터 나왔다.
그렇게 기대감이 허탈함으로 바뀌고 나니 가영의 가슴이 선물해주던 포근함과 안락함또한 꼴릿함으로 바뀌었다.
인간은 생명의 위협을 받을수록 성욕이 치솟는다더니 어쩌면 방금 난 엄청난 위협을 받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래, 그랬던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꼴릴 이유가 없으니까.
'씨발··· 존나 하고 싶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데이트가 끝날 때까지 참겠다는 말같은 건 하지 않았을텐데.
그럼 지금쯤 가영과 함께 디비디 방이든 모텔이든 들어가서 바로 '자위'를 시작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좀 더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속이 미친듯이 쓰려서 그걸 조금이라도 달래보기 위해 가영의 가슴 사이에다가 얼굴을 파묻은 채 조심스레 숨을 들이켰다.
가영의 몸에서 풍기는 달달한 우유냄새라면 이런 날 진정시켜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어디까지나 정말 그런 목적으로 숨을 들이켰던 것인데··· 숨을 크게 들이킨 순간 콧속으로 후욱하고 빨려들어온 건 평소와는 다른 음탕하기 짝이 없는 냄새였다.
살짝 비릿한, 발정한 암컷에게서나 풍길 법한 그런 냄새, 그런 걸 맡아버렸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진정할 수 있는 남자따위 존재할 리 없었다.
그래서··· 섰다.
서버렸다.
결국 빨딱 서버렸는데···
"그, 많이 힘드니···?"
서버린 걸 가라앉히기 위해 가영에게서 슬금슬금 몸을 떨어뜨리려고 하기 무섭게 살짝 떨리는 목소리가 뜨거운 숨결과 함께 귓가로 내려앉았다.
내 몸을 꼬옥하고 끌어안는 손길은 덤이었다.
뭐 하자는 걸까 이건.
머릿속으로 그런 의문이 떠오름과 동시에 고개가 제멋대로 움직여 가영의 물음에 답했다.
그렇게 고개를 끄덕인 순간이었을 것이다.
입술을 살짝 깨문 가영이 조심스레 주변을 살피더니ㅡ
"너무 참기만 하는 것도··· 몸에 안 좋으니까···"
잘 익은 복숭아마냥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얼굴로 날 노래방 부스가 자리하고 있는 쪽을 향해 이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