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2화 〉1부 (162/315)



〈 162화 〉1부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아, 네···"

그래서 더 궁금했다.


대체 어떻길래 저렇게까지 민망해하나 싶었으니까.


그 탓에 이대로 문을 확 열어버리고 싶다는 욕망이 울컥울컥 치솟았지만  참고 문고리를 움켜쥐고 있던 손을 풀었다.

"그,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얼른 입고 나오세요."

"으, 응···"

그리고는 그대로 가영의  앞에서 물러났다.

그렇게 소파에 앉아 초조하게 기다린지 얼마나 지났을까.

달칵하고 문 열리는 소리가 났고, 그에 앞뒤 잴 것 없이 일단 시선부터 던졌다.


그리하여 마침내 교복을 입은 가영의 모습과 마주하게된 순간 나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걸 느꼈다.

동시에 숨이 제멋대로 거칠어졌다.

그 정도로··· 야했다.

아니, 야한 걸 뛰어넘어 지금 가영의 모습은 걸어다니는 섹스 그 자체였다.

'시발···'

교복 패티쉬 생길 것 같아.


말하는 거나 하는 행동같은 걸 보면 솔직히 영 그런데 그래보여도 신은 신이라는 걸까.


여신은 이걸 꿰뚫어봤던 게 틀림없었다.

뚫어져라 바라보는 내 시선이 부담스럽기라도 했던 것일까.


가영이 작게 숨을 들이키며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지만 그럼에도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어낼 수가 없었다.

이건  그대로 불가항력이었으니까.


숨을 쉬지 않고 살  있는 사람은 없듯 저 모습에서 자의로 눈을 뗄 수 있는 남자따위 존재할 리 없었다.


어떻게 하고 있는 몸짓마저도 저렇게 야릇할 수가 있는 걸까.


엉덩이를 살짝 뒤로뺀채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가영은 한손으로는 블라우스의 끝자락을 다른 손으로는 치마자락을 꼬옥하고 움켜쥔 채 꾹꾹 잡아당겨대고 있었다.

 모습이 아찔할 정도로 유혹적이었다.


새하얀 허벅지가 타이트한 치마 자락에 살짝 눌린 모습마저도 그랬다.


'안 되겠다.'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던 건 그래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저대로 밖에 내보낼 수는 없었으니까.


만약 저대로 내보낸다면?


가영이 잡혀가게 될지도 몰랐다.

죄목은 아마 공연음란죄나 풍기문란죄쯤 되지 않을까.

분명 옷을 전부 갖춰입고 있음에도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것보다 더 야하게 느껴졌다.


"그, 조끼! 조끼 가져다 드릴게요."


그래서일까.

입밖으로 튀어나간 목소리가 제멋대로 떨렸다.


그게 좀 민망해서 얼굴 위로 피가 확 쏠렸지만, 그 느낌을 억지로 외면하며 가영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시선을 있는 힘껏 잡아끌어 지나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아까 교복을 찾아낸 곳에서 짙은 남색의 조끼를 끄집어내 다시 가영에게로 향했다.

그렇게 조끼를 입혀놓고 나니 그나마  나았다.


몸매가 워낙 압도적이다보니 야릇하게 느껴지는 건 똑같지만 그나마 덜 하달까.

동시에 기가 막힐 정도로 잘 어울렸다.


 어디까지나 그래서 쳐다봤던 것 뿐인데 그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영은 그저 민망해하기 바빴다.


나이에 맞지 않게 교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민망한데 입고 있는 것이 다른 이도 아니고 지나의 것이다보니 어찌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일까.

그 모습마저도 사랑스럽게 느껴져서 그만 끓어오르는 충동을 참지 못하고 가영을  끌어안아버리고 말았다.


"읏···! 그, 유한아 잠깐만 이렇게 꽉 끌어안으면···"

"고모, 저 어떡해요."

내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는 걸 가영도 느낀 것일까.

귓가로 울려퍼지던 당혹스러움이 듬뿍 담긴 목소리가 중간에 뚝 끊어졌다.


"고모 보니까 심장이 자꾸만 빠르게 뛰어서···"

이건 그냥하는 말같은게 아니었다.

실제로 심장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뛰어대고 있었으니까.


자지야 뭐 이미 힘이 잔뜩 들어가서 바지를 뚫고 나올 기세로 빳빳하게 서 있는 상태였고.


생각해보면  신기했다.

이미 가영하고 꼭 끌어안고 있는데도   그녀에게 닿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바지 위로 텐트를 치고 있는 것을 가영의 몸에 꾸욱꾸욱 밀어붙였다.


그런  행동에 몸을 움찔하고 떨며 당혹스러워하는 반응을 내비치던 것도 잠시, 가영이 고개를 슬그머니 옆으로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 너무 참기 힘들면은···"


꼴깍하고 어디선가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작지만 또렷한 소리였다.


"고모가, 도와줄까···?"


"···정말요?"

"으, 응··· 너무 참으면 건강에 안 좋다고 하니까···"

마지막 말이 변명처럼 들렸던  과연 기분 탓이었을까.

'거짓말.'


지금 가영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본인도 하고 싶으면서 내 핑계를 대고 있었다.

물론, 나도 하고 싶어서 미칠  같은 건 똑같았기에 도와주겠다는 가영의 말이 꿀처럼 달콤하게 들리긴 했다. 들리긴 했지만ㅡ


"···아니예요."


눈물을 머금고 가영에게서 몸을 떨어뜨렸다.


더 나아가기 위한 전략적 후퇴였다.

아니나 다를까 몸을 떨어뜨리며 고개를 가로젓기 무섭게 가영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마치 내 반응이 내심 예상했던 것과는 사뭇 달라서 당황한 느낌?

"오늘은 데이트 하기로 했으니까··· 참아볼게요."

그에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가영을 향해 힘겹게 미소를 지어보이는 척을 했다.

"지금··· 해버리면 데이트고 뭐고 계속 방 안에만 틀어박히게  것 같거든요···"

그런  말에 너랑 하루종일 섹스하고 싶다로 들리기라도 했던 것일까.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가영이 입술을 살짝 깨물며 안절부절 못하는 기색을 내비췄다.

"저 잠깐 물  마시고 올게요."


"그으, 그래···"

찬물을  잔 연속 원샷을 때렸더니만  안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것이 그나마 좀 가라앉는 것 같았다.


겸사겸사 바지를 찢어버릴 기세로 우뚝  있는 것까지 진정시켜준 뒤 다시 가영에게로 향했다.


"그러면 갈까요? 고모?"

"···아, 응."

그렇게 다시 가영의 앞에 선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일순간  하체 쪽을 스치듯 지나갔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어쩐지 살짝 시무룩하게 변한 가영과 함께 현관쪽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각자 신발을 벗고 그대로 집을 빠져나가기 전에ㅡ

"잠시만요."

먼저 문을 나서려는 가영의 어깨를 붙잡아 그녀를 멈춰세웠다.

"출발하기 전에··· 골라보세요."


"···응? 고르라니?"


"선배, 누나, 가영아 중에 어떤 게 좋으세요?"

그렇게 내쪽으로 돌아선 가영을 향해 싱긋 웃으며 그리 말하니 가영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니···?"

"네? 그야 둘다 복장이 이런데 계속 고모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요."

나도, 가영도 교복 차림이었다.

그런데 내가 가영을 평소처럼 고모라고 부른다면 그걸 들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차분한 목소리로 그 점을 설명하니 가영의 얼굴 위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이 떠올랐다.

마치 이해는 했는데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말하는 듯한 그런 표정이라고 해야할까.


 와중에 귀여웠던 건 눈만큼은 내 모습을 위아래로 정신없이 훑어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고보니까 감상을 안 물어봤네.'


저렇게 눈을 못 떼주는데 당연히 물어봐줘야 하지 않겠는가.

"아, 맞다. 저는 어때요 고모?"


가영을 향해 보란듯이 양팔을 쫙 펼쳐보였던  그래서였다.


"잘 어울려요?"

당연히 안 어울릴리 없었다.

 얼굴이면 아마 거적데기를 걸치고 있어도 어디 패션쇼 출품작처럼 보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굳이 그렇게 물었던  가영의 순수한 감상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하필이면 자기가 내 모습을 열심히 훑고 있던 와중에 그런 질문을 받게되니 몰래 하고 있던 행동을 들킨 것만 같았던 것일까.

가영의 얼굴이 확 달아오르더니 그녀가 어색한 몸짓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요?"

"···응."


"에이, 그렇게 짧게 끝내지 마시구요."


좀 더 자세히 보고 말해달라는 뜻으로 목쪽 단추를 풀며 가영을 향해 다가섰다.

"막 두근거리고 그래요?"

"···그럴 리가 없잖니."


그리 말하는 것치고는 가영은 의도적으로 날 직시하는 걸 피하고 있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 그녀는 알고 있을까.

지금 자기 귀가 새빨갛게 달아올라있다는 걸?

"여자들은 교복을 좋아한다고 하던데요."


"그, 전부 다 그런 건···"


"거짓말."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하니 어느새 문까지 밀려난 가영이 숨을 살짝 들이키며 몸을 가늘게 떨었다.

"저 다 봤어요. 방금 제 모습 열심히 훔쳐보고 계셨잖아요."


"그,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화내려는게 아니니까."

그리 말하고는 가영을 향해 싱긋 웃어보였다.

"그냥··· 마음에 들어하시는  같아서 기분이 좋네요. 솔직히 좀··· 부끄럽긴 했거든요."

그 순간 가영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펑하는 소리를 내며 터져버릴 것처럼 새빨갰다.


"그래서···  중에 뭘로 하실 거예요?"


"그···"

"선배?"

"자, 잠깐만···"

"누나···?"


"생각할 시간을 좀···"

"아니면··· 이름으로 부르는 게 좋아? 가영아?"


눈웃음까지 살짝 곁들어 그리 말했더니 감전이라도 당한 것마냥 몸을 부르르 떨어대던 가영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선, 선배! 선배로 해."

이름은 절대 안 되고, 누나는 지나나 세나가 생각나서 좀 그렇고 선배 쪽이 그나마 나아보였던 걸까.


내심 이름 쪽을 바라고 있던 나로서는 살짝 아쉬운 결과긴 했지만, 이건 이것대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네, 선배."

"···"

호칭 하나 달리하는 것만으로도 가영이 저렇게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수 있었으니까.

"선배?"

"왜, 자꾸··· 부르는 거니."

"그게 아니죠. 유한아라고 편하게 불러보세요."


평소와 다름없는 호칭.

허나 같게 느껴질 리는 없었다.


편의상 그렇게 부르는 것이라 해도 아들이라는 의미로 이름을 부르는 것과 후배 부르듯 이름을 부르는 건 분명 다르니까.

아니나 다를까 평소에는 내 이름을 잘만 불러대더니만 가영은 갑자기 입에 본드칠이라도 당한  서로  맞붙어있는 그것을 선뜻 떼어내지 못했다.


"얼른요."

"그, 나중에··· 나중에 하면  될까···?"


"흠, 전 지금 듣고 싶은데···"

그렇다고 울먹울먹하는 저 눈동자를 외면하기도 좀 그래서 수락하는대신 조건 하나를 걸기로 했다.

"그럼 대신 규칙 하나만 걸게요."

"규칙···?"

"오늘 데이트 하는 동안에는  말 그대로 학교 후배인 것처럼 대해주세요. 만약 그렇지 않으면···"


말꼬리를 살짝 늘어뜨리기 무섭게 꼴깍하고 침 삼키는 소리가 귓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어느새 가영의 얼굴은 긴장으로 물들어있었다.


내가 벌칙으로 이상한 걸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걸까.


그런 가영을 향해 배시시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톡톡 두들겼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데이트 규칙을 어길 때마다 상대방에게 키스를 한 번씩 해야한다는 벌칙의 내용을 전달하기에는 말이다.


"물론, 선배만 그러는 건 좀 가혹하니까 저도 똑같이 지킬게요."


"그, 굳이 그럴 필요는···"


내가 규칙을 어겼다는 핑계로 사람들이 보든 말든 키스를 해대는 광경을 상상하기라도 한 것일까.


가영이 뺨을 불그스름하게 물들인채 다급하게 날 만류해왔지만 가볍게 물리쳤다.

"아니에요. 규칙인데 지켜야죠."



"···"

"아참,  번 할때 최소 20초 이상은 하셔야 인정이에요."

그렇게 간단하지만 데이트하는 동안 지켜야할 규칙도 하나 정했겠다 이제는 정말 집을 나서야할 시간이었다.


"그럼, 가요. 선배."

해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가영의 손을 잡아끌며 집을 빠져나왔다.

집을 빠져나오고 난 후부터는 동네를 벗어나는데 주력했다.

괜히 동네에서 알짱거리다가 세나하고 마주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것만큼 곤란한 일도 또 없을테니까.

"아이구, 학생들 커플이야?"

큰길가로 나오자마자 택시부터 잡아탔던 것도 그래서였다.


"네, 혹시 할인해주시나요?"


"할인? 호호···"

옆에서 그러지 말라며 옷을 꼭꼭 잡아당기는 손길이 느껴졌지만 싹 무시하고는 택시 기사와 말을 주고받았다.


"아줌마도 부려먹히는 처지라서 마음대로 할인해주긴 좀 그렇고, 대신 목적지까지 안전하고 편안하게 데려다 줄게."

그  뒤로 이어진 건 목적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건 나는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오늘 어디갈지 미리 정해두기까지 했음에도 그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내가 목적지로 삼은 곳에 대해 아는  가영 뿐이었으니까.

"선배."

"으, 응···?"

"선배 학교 이름이 뭐였죠?"


그랬다.


오늘 내가 목표로 삼은 곳은 가영이 고등학생 시절 다녔던 학교였다.

내 질문을 받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던 것일까.

가영의 얼굴 위로 '당황'이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학생?"

"아, 그··· 서하고 쪽으로 가주세요."


서하고라.

그게 가영이 다녔던 고등학교 이름이구나.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을 머릿속에 열심히 새겼다.

"뭐야, 둘이 같은 학교 다니는 거 아니었어?"

"아, 네. 봉사활동하다가 거기서 만났거든요."


"그래? 공부하기도 바쁠텐데 참 성실하네."


"덕분에 이렇게 예쁜 여자친구도 생겼으니까 앞으로는  열심히 다니려구요."

"뭐? 재밌는 학생이네."


내 말 어디가 그리도 웃긴 지 깔깔대며 웃은 기사가 길가에 세워놓았던 차를 다시 차로로 진입시켰고, 그렇게 나와 가영은 한때 가영이 다녔었던 서하고등학교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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