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화 〉1부
살짝이지만 긴장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테스트 방송은 무탈하게 끝이 났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지 좀 시끌시끌하긴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세나가 옆에서 계속 꿍얼거렸으니까.
물론,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내 스트리머 명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세오'만큼은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일까.
옆에서 아주 그냥 지랄발광 탭댄스를 춰대는데 참다참다 못해 대화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
"아니, 마음에 안 들고 자시고를 떠나서 니가 왜 내 오빤데."
"음, 그야 내가 정신연령이 더 높으니까?"
난 어디까지나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서 그리 말했던 것인데 세나의 생각은 좀 달랐던 모양이다.
헹하고 가당치도 않다는 듯 콧방귀를 껴대길래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딜을 걸었다.
"혹시 꼬우신가요? 꼬우면 내기라도 하시든가요."
"내기? 무슨 내기."
"오늘 그, 대난투 종목 하나씩 돌아가면서 연습해보기로 했잖아."
그리고 대난투라는 이름답게 주최 측에서 종목이랍시고 정해준 것들 중에는 경쟁 종목이 대부분이었다.
"그냥 연습만 하는 것보다는 서로 뭐 하나씩 걸고 하는 게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더 재미있지 않을까?"
"뭐, 그건 그렇긴 한데···"
다른 무엇보다도 방송에 진심인 세나이니만큼 틀림없이 긍정적인 반응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고 그리 제안했던 것인데 어째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하긴 그렇겠지.
무턱대고 내기를 걸었다가 내 노예로 전락해서 굴욕의 12일을 보내야만 했던 기억이 여전히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을테니까.
그러니 당연히 또 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겠지.
그렇다면 여기서 내가 해야할 행동은 간단하다.
우선 히죽히죽대는 미소를 얼굴에 장착해준 다음ㅡ
"왜? 설마 질 것 같아서 쫄았어? 쫄?"
살살 긁어주기만 하면 된다.
아니나 다를까 내 입에서 도발성 멘트가 튀어나오기 무섭게 어딘가 떨떠름해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던 세나의 볼이 부르르 경련했다.
그렇게 볼을 경련시키면서 세나가 입꼬리를 한쪽만 슥 말아올렸다.
"하··· 방송 첫날부터 기죽을까봐 '누나'가 배려해준건데 그것도 모르고 까부네?"
"자신있으면 덤비든가."
"그래, 해. 하자고."
"그럼 누나 조건은 내가 스트리머 명 다른 걸로 바꾸는 거지?"
내 물음에 세나가 다른 것일리 있겠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슬쩍 내 눈치를 보며 질문을 던져왔다.
"너는?"
"응?"
"너는 벌칙으로 뭐 걸건데."
"글쎄."
솔직히 말하면 생각 안 해놨다.
애초에 내기를 제안했던 것도 그런 식으로 확실하게 결론을 내놓으면 세나가 다시는 떽떽거리는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해서 그랬던 것 뿐이니까.
그러니까ㅡ
"그건 지금부터 생각해봐야지."
뭐가 좋을까.
벌칙으로 뭘 시키는 게 좋을까.
하루 종일 고민해봤지만 이거다하고 떠오르는 게 딱히 없었다.
뭐, 정 안 되면 저번처럼 기간제 노예로 만들어버리는 방법도 있긴 했지만 솔직히 별로 땡기지 않았다.
그게 생각만큼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걸 몸소 확인했을 뿐더러 식상하기도 했으니까.
'뭘로 하지···'
그래서 대망의 첫 방송을 코앞에 두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머리를 쥐어짜며 벌칙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휴대폰이 짧게 진동한 건 그 와중이었다.
'켰구나.'
그에 휴대폰을 집어들어 바로 세나의 방송으로 접속했다.
그렇게 유한이 세나의 방송에 막 접속한 순간, 세나는 방송 오프닝 삼아 틀어놓은 노래가 이어폰을 통해 귓속으로 흘러들어오는 걸 느끼며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그 순간 세나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이 가득했다.
'잘 하려나 모르겠네···'
그건 말할 것도 없이 유한에 관한 것이었다.
유한이 혼자서 잘 할 수 있을까.
차라리 몇 번 더 방송에 출연시키고 난 후에 시작하도록 하는 게 맞지 않았을까.
그래, 어쩌면 그게 나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솔직히 지금도 빠듯한게 사실이었으니까.
스트리머라면 누구나 출연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게 바로 이번 공방이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바보는 없을 거다.
듣자하니 대관비용부터 시작해서 세트를 꾸미는데 적잖은 비용이 들어간 걸로 아는데 그런만큼 더더욱 출연시켰을때 시청자가 많이 나올만한 이들 위주로 선별하려 들겠지.
그 점만 보면 유한하고 자신만큼 그 조건에 딱 부합하는 팀이 없긴 했지만, 문제는 유한이 아직까지는 일반인이라는 거다.
그리고 오늘부터 방송을 시작해서 공방촬영날 전까지 매일마다 꾸준히 방송한다 쳐도 방송 기간이 한달도 채 안 될 거다.
방송을 시작한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이가 그 정도 대규모 공방의 문턱을 뚫고 들어간다?
당연히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만약 유한이 자신과 아무 관계도 없는 생판 남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야 안 봐도 뻔했다.
보나마나 유한이 한 번 떠보겠다고 몸을 써서 접대를 했느니 방울을 흔들어댔느니 하는 말들이 온갖 커뮤니티에 쏟아졌겠지.
물론, 이번에는 그 정도까지는 가지 않을 거다.
시청자들은 유한과 자신의 관계를 친남매라 알고 있는 상태니까.
그러니 대부분은 '아, 남매끼리 팀먹고 해보려는 거구나.'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겠지만ㅡ
'그래도 말이 나오긴 하겠지.'
자리가 한정되어 있는 만큼 더욱 그럴 터.
그 점을 고려하면 유한의 방송 기간을 하루라도 더 늘려두는 편이 좋았다.
물론, 그래봐야 한달도 채우지 못할게 확실하니만큼 적당한 크기의 방패 이상은 되지 못할테지만 그거라도 어딘가.
'자, 생각은 이쯤하고···'
오프닝 삼아서 틀어놓은 노래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그러니 이제는 방송에 집중해야할 때였다.
뭐든 처음이 가장 중요한 건 말할 것도 없으니까.
첫 방송도 그렇다.
물론, 첫 방송이 자신과 함께하는 합방이니만큼 방송적으로는 이미 한 80퍼센트 정도는 성공했다 볼 수 있긴 하지만, 이왕 성공하는 거 깔끔하게 100퍼센트를 전부 채우는게 좋지 않겠는가.
그러니 잘 해야만 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요일 방송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노래가 끝나기 무섭게 대기상태로 돌려놓고 있던 화면을 전환하며 활기찬 목소리로 멘트를 던졌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요일 방송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하]
[세하!]
[멘트 찰떡이네 ㅋㅋㅋ]
[ㅅㅎㅅㅎ]
[세나 어서오고~]
[그래서 오겜무?]
[오늘 뭐하나요?]
그리고는 시청자들과의 소통을 위해 만들어둔 카페로 들어가 올라온 게시물들을 둘러보며 적당히 노가리를 까다가 마침 눈에 띈 게시물을 자연스레 클릭했다.
게시물 안에는 유한이 제안을 거절했다면 아마 한 팀이 되었을 가능성이 큰 리아의 영상이 첨부되어 있었다.
며칠 전부터 같이 팀을 짜자고 계속해서 졸라대더니만 기다리다 못해 결국 다른 이와 팀을 짠 것일까.
"뭐야, 리아 언니도 팀 만들었나 보네."
[세나 너만 빼고 다 팀 짠듯]
[세흐나야... 여기서도 아싸가 되어버리면 어떡하누...]
[???:자 지금부터 두 명씩 조 짜서 저한테 제출하시면 됩니다]
[아 ㅅㅂ 옛날 생각나서 개같네 ㅋㅋㅋ]
[교수님 제발 그 말만은...]
[아 ㅋㅋㅋ 나 이거 봤어 체육 시간에 두 명씩 짝 지으라고 하면 혼자 남는 패턴 맞지?]
[세나는 팀 안짜고 뭐하니? 세나는 팀 안짜고 뭐하니? 세나는 팀 안짜고 뭐하니? 세나는 팀 안짜고 뭐하니?]
[씹 PTSD오네 ㅋㅋㅋ]
[그... 세나는 선생님이랑 연습할까?]
"아니, 아싸인 척 하니까 누굴 진짜 아싸로 보시나. 그래도 저도 체육 시간에 짝 지을 친구 정도는 있었거든요?"
[아니 그래서 팀 어떡할건데 ㅋㅋㅋ]
[지금 니 빼고 다 팀있다고 ㅋㅋㅋㅋㅋ]
[ㄹㅇ ㅋㅋ]
[설마 이번 공방 패스하는 거임?]
[에이 설마 개가 똥을 끊지 ㅋㅋㅋ]
"안 그래도 카페에 그, 공방 팀 관련해서 이야기가 많더라구요."
실제로 그랬다.
누구하고 팀을 맺게될지 다들 추측한다고 바빴으니까.
그 중에 정답을 맞춘 이는 단 한 명도 없었지만.
[뭐야 설마 팀 짰음?]
[그래서 누군데? 그래서 누군데? 그래서 누군데? 그래서 누군데?]
[설마 남자냐?]
[에이 설마 ㅋㅋㅋ]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아 ㅋㅋㅋ]
"왜요? 남자면 안 돼요?"
[그럼 될 것 같음?]
[너만 행복해지는 꼴은 절대 못 보지 아 ㅋㅋㅋ]
[으딜 공방 핑계로 사심 채우려고]
[설마 진짜 남스랑 한 팀임?]
[그럴 만한 애가 있긴함?]
[선 넘네... 선 넘네... 선 넘네...]
[(대충 돌리랑 도오너 촉촉하게 젖은 짤)]
[그래서 누군데!!!]
[알려줄 때까지 숨 참겠읍니다 흡!!]
[라고 관에 적혀있는데요? 박사님?]
"아마 여러분들은 말해줘도 모르실 걸요."
[아 그래서 누구냐고!!!]
[정신나갈것같애.. 점심나가서먹을것같애.. 나가서간짜장사먹을것같애..]
[언니 내가 미치는 꼴 보고 싶어서 이래?]
[언내미꼴 ㅅㅂ]
[우욱 씹;;]
"정 그렇게 궁금하면 본인한테 직접 들으세요. 안 그래도 슬슬 들어올 때가 됐으니까."
그리 말하며 디코를 켰다.
방송 보고 있으라고 했으니 기다리고 있으면 유한이 알아서 들어올 터.
[뭐야 오늘 합방임?]
[진짜 팀 짰나보네]
[아니 대체 누구길래 이렇게 숨김 ㅋㅋㅋ]
[뭐 연예인이라도 데리고 옴?]
[아 ㅋㅋㅋ 연예인이 공방에 왜 나오냐고 ㅋㅋㅋ]
[그럼 세나 월클 ㅇㅈ한다.]
그렇게 디코에 접속해놓고 채팅이 쭈르륵 올라가는 걸 지켜보고 있으려니ㅡ
띠링-
미리 약속한대로 유한이 접속했다.
예의 그 '세오'라는 꼴보기 싫은 닉네임을 보란듯이 매단 채.
낯선 닉네임을 확인한 세나 방 시청자들이 혼란에 빠져있을 때 약속한대로 방송을 키고 디코에 접속한 유한은 큼큼하고 헛기침을 한 뒤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아아, 들려?"
"어, 들리긴 하는데 마이크 소리 조금만 줄여봐."
"많이 커?"
"살짝?"
그에 세나가 시킨대로 마이크 볼륨을 조절하고 있으니 송출용 컴퓨터 쪽에 띄워놓은 세나방 채팅창 위로 슬슬 내 정체에 대해 깨달은 이들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었다.
[설마...]
[젠장!!! 유세나 믿고 있었다고!!!]
[근데 이래도 됨? 스트리머만 참가 가능한 거 아니었음?]
[ㅅㅂ 혹시 몰라서 닉네임 그대로 검색해봤는데 방송 키셨는데?]
[핫 데뷔 ㄷㄷㄷ]
[이게 경력있는 신입인가 뭔가하는 그거냐]
[아 남스들 딱대라 괴물루키 세나 동생이 간다!!]
[찐맞음?]
[캠은? 캠 켰냐?]
[가서 직접 보고 오셈 ㄱ]
[아 ㅋㅋ 바로 갔다온다 딱대]
[그리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속보)동생 분 방송도 키고 캠도 킴]
[ㅅㅂ 오늘은 저거다!!]
[세바!]
[ㅅㅂ]
[ㅅㅂ가 세바였누 ㅋㅋㅋ]
[빨리 좌표좀;; 급해요;;]
[시청자 빨리는 속도 실화냐고 ㅋㅋㅋ]
[대체 뭐가 그렇게 급하신 겁니까 선생님...]
[아무튼 급하다고 ㅋㅋㅋ]
[아 ㅋㅋ 이건 개국공신도 못 참지 ㅋㅋㅋ]
[그 방 구독 가능함? 가능하면 바로 아다 떼러 간다]
[첫경험 ㅗㅜㅑ...]
[첫경험은 못 참지 ㅋㅋㅋ]
[오늘 첫 방송인데 구독이 되겠냐고 ㅋㅋㅋ]
[그럼 첫 후원이라도 박으러 간다]
빨대의 성능은 확실했다.
바로 조금 전까지, 그러니까 디코방에 접속해서 입을 열기 전까지 0에 머물러있던 시청자 수가 실시간으로 치솟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잠시 세나방 채팅창에서 눈을 떼고 내 방 채팅창을 향해 시선을 던지니ㅡ
[매니저에 의해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매니저에 의해 삭제된...]
[매니저에 의해...]
[아니 ㅋㅋㅋ 벌써부터 금지어 빡빡한 거 실화냐고]
[세나 이 년 치밀하누...]
[싹둑이 칼춤춘다 ㄷㄷㄷ]
[아 시발 내눈!!]
[이런 씹...]
[정신 나갈 것 같으니까 치워!!!]
[매니저!!! 방장!!!]
[아니 3연속은 에바자나]
[빅팃우먼 년들 맛집인건 또 어떻게 알고 슬금슬금 몰려오네 ㅋㅋㅋ]
[싹둑이 씹련아 저런 거나 좀 짜르라고 ㅅㅂ]
[도배 멈춰!!!]
[멈춰!!]
무법지대인줄 알고 진입했다가 싹둑이에게 썰려버린 이들의 여기저기 널브러져있는 대숙청의 현장이 그곳에 펼쳐져있었다.
그렇게 내 첫 방송은 다소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막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