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화 〉1부
그새 또 집중모드로 돌입한 세나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쓰게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참 여러모로 강적이다 싶었으니까.
분명 이쪽을 의식할 수밖에 없도록 행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모습만 보면 그 모든 노력들이 아무 소용없는 듯 했다.
'그렇다고 반응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반응이 있긴 했다.
그걸 이용해 어떻게 스노우볼을 좀 굴려보려고 하면 언제 그랬냐는듯 초기화되버려서 문제지.
그렇기에 세나는 지나나 가영하고는 다른 의미로 강적이라 할 수 있었다.
괜히 방송으로 벌어먹고 사는 게 아님을 증명하듯 회복력이 어마어마하다고 해야할까.
내가 데미지를 좀 누적시켜보려고 하면 순식간에 전부 회복하고서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그래서 골치가 아팠다.
저 얇은 것 같으면서도 끈질긴 것을 어떻게 뚫어내면 좋을지 당장은 감이 잡히질 않았으니까.
반쯤 손을 놓고 좁디 좁은 책상 밑에서도 요리조리 잘도 움직여대는 세나의 모습을 느긋하게 감상하고 있던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골머리를 싸매고 있어봐야 딱히 달라지는 것도 없을 것 같은데 거기에 시간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눈앞에 있는 흔치않은 경치를 감상하는 편이 더 효율적일 것 같았으니까.
'정신 건강에도 좋고.'
그 정도로 지금 세나의 모습은 보기 좋았다.
그러니까 내 기준으로 그랬다.
본인은 헐렁헐렁한 티셔츠와 반바지가 못내 신경이 쓰이는지 이따금씩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흘러내린 것을 추켜올리곤 했는데 본판이 워낙 사기다보니 그 모습마저도 그럴 듯 했으니까.
"으음, 분명 선을 이쪽으로 뺐을텐데···"
세나는 알고 있을까.
선인지 뭔지를 찾겠다고 책상 밑에 엎드려있는 탓에 안 그래도 그녀에게는 큰 편인 내 티셔츠가 아래로 축 처지면서 그 사이로 새하얗고 말랑말랑해보이는 배와 가슴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이고 있다는 걸?
찬물로 씻기라도 한 것일까.
가슴 끝에 매달린 분홍빛의 유두가 열심히 자기 주장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귀엽게 느껴졌다.
먹는 게 다 그쪽으로 가기라도 하는지 세나도 나름 큰 편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가영이나 지나에 비하면 작은 편이다보니 더 그랬다.
손으로 움켜쥐면 아슬아슬하게 꽉 찰 것 같은 크기의 우유빛 가슴도 그렇고, 그 끝에 달린 자그마한 유두도 그렇고 귀여워서 손으로 열심히 주물주물해서 응원해주고 싶어지는 가슴이라고 해야할까.
뭐, 그것도 그거지만 아랫쪽의 경치도 만만치 않았다.
아무래도 허리 사이즈가 다르다보니 그것이 흘러내리는 걸 막기 위해 세나는 바지를 거의 배까지 끌어올려서 입은 상태였는데 덕분에 바지가 살짝 먹혀서 그 위로 살짝이지만 도끼자국이 드리워져 있었으니까.
그리고 본인은 그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 포인트라 할 수 있었고.
'이렇게 보면 진짜 눈치가 빠른 것 같으면서도 없다니까···'
본체 두 개가 자리잡은 탓에 설치를 시작하기 전보다 한층 더 좁게 변한 책상 밑으로 수월하게 파고들기 위해 본체를 향해 절이라도 하는 것처럼 바짝 엎드리고 있는 몸이 움찔거릴 때마다 바지 위로 져 있던 야릇한 주름이 사라졌다가 생겨나길 반복하고 있었다.
그 광경이 상당히 볼만했다.
대놓고 야한 건 아닌데 오히려 그래서 더 눈길이 간다고 해야할까.
그렇게 내가 납작 엎드린 세나의 자태를 감상하는 동안 세나는 책상 밑에 처박힌 채 끙끙거리고 있었다.
보아하니 뭔가를 찾고 있는 것 같은데 어째 영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걸까.
맘 같아서는 쭉 감상만 하고 싶었지만 언제까지고 뒷짐만 지고 있을 수도 없어서 정리하고 있던 것을 잠시 손에서 놓고 세나를 향해 다가갔다.
물론, 일부러 자박하고 발자국 소리를 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자 납작 엎드리고 있던 세나가 움찔하고 몸을 떨며 반응했다.
그 모습이 꼭 굴에다가 머리만 쏙 집어넣고 있는 토끼같았다.
"왜? 뭐가 잘 안 돼?"
그리 물으며 거리를 좁힌 뒤 혹시 내가 뭐 도와줄 건 없냐는 질문을 덧붙였다.
여태껏 그래왔던만큼 이번에도 필요없다고 거절할 거라 생각해서 그리했던 것인데ㅡ
"하··· 야, 그 책상 위에 보면은 선 엄청 많이 꽂힌 까만색 상자같은 거 하나 있을 거거든?"
책상 위라.
세나의 말을 듣고 그 위를 눈으로 가볍게 쭉 훑어보니 뭘 말하는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영어로 무슨무슨 보드라고 적혀있는 거 맞아?"
"어, 그거."
그래서 이게 뭐 어쨌다는 걸까.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세나로부터 지시가 떨어졌다.
그러니까 그거하고 연결된 선들을 하나씩 잡아당겨 보란다.
"그냥 잡아당기기만 하면 되는 거야?"
"응, 그렇다고 너무 확 잡아당기지는 말고."
"오케이. 알았어."
세나가 보고 있거나 그렇지는 않았지만 혹시 몰라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좀 더 거리를 좁혔다.
물론, 이번에도 자박하고 발자국 소리가 난 건 마찬가지였다.
그 소리 덕분에 내가 자기 옆에 바짝 다가섰다는 걸 알아차린 것일까.
밑에서 뭔가 움찔거리길래 슬쩍 시선을 밑으로 내려보니 세나가 납작 엎드리고 있던 몸을 꼼질꼼질거리면서 슬그머니 거리를 벌리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부쩍 가까워진 거리가 새삼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라도 했던 걸까.
속으로나마 허허하고 웃었던 건 그래서였다.
토끼토끼 했더니만 어째 이런 모습마저도 토끼 같았으니까.
"···그, 잡아당길 때 말해라."
"어."
알겠다는 뜻으로 짧게 답하고는 바로 잡아당기겠다고 말을 하니 세나로부터 허락이 떨어졌다.
그에 그나마 가장 가까이있던 것을 손가락으로 잡고 슬쩍슬쩍 잡아당기니 얼마 지나지 않아 세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거 말고 다른 거 땡겨봐."
그걸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야, 방금 잡아당긴거 좀만 더 세게 땡겨봐."
마침내 찾던 것을 찾았는지 세나의 목소리가 살짝 밝아졌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잡아당기고 있던 것으로부터 그 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저항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반대쪽에서 잡아당기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됐어?"
"어, 이제 놔."
그에 잡고 있던 걸 순순히 손에서 놓고 뒤로 물러나니 드디어 설치가 모두 끝났는지 세나가 책상 아래에서 몸을 빼냈다.
"으아··· 힘들어 죽겠네 진짜."
그러더니 그대로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 버리더라.
그에 말려올라간 옷자락 아래로 수줍게 드러난 새하얀 배를 힐끔힐끔 쳐다보니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차린 세나가 얼굴을 확 붉히며 역정을 냈다.
말려올라간 옷자락을 손으로 잡고 홱 끌어내린 건 덤이었다.
"뭘 봐."
"아니, 그냥 좀 신기해서."
"뭐가."
"그 많은 게 다 어디로 간 걸까."
생각할수록 미스테리라는 뜻으로 보란듯이 턱을 쓰다듬어 보이니 세나가 헹하고 콧방귀를 꼈다.
"어디 가긴 다 방송하는데 쓰였지."
그러더니 신경 끄라는 듯 날 향해 손을 휘휘 젓고는 끙끙하는 소리를 내며 몸을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갑자기 또 왜 저러는 걸까.
라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 90도정도 돌아누운 세나가 발을 살짝 들어올리더니 본체 위쪽에 달린 전원버튼을 엄지발가락을 이용해 꾹 눌렀다.
한 대도 아니고 양발을 모두 동원해서 두 대를 동시에 키는데 그 모습이 퍽 능숙해보이는게 딱봐도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했다.
"모니터에 불 들어왔냐?"
"응."
지금까지도 세나의 독무대긴 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정말 내가 뭘 할 건덕지가 없었다.
그래도 컴퓨터를 설치할 때는 나도 아는 게 좀 있어서 생소하기 짝이 없는 장비를 들고 있을 때만 아니면 뭘 하고 있는 중인지 대충이라도 알 수 있었는데 방송 세팅과 관련해서는 그렇지가 못했으니까.
그렇다고 마냥 뒷짐지고 느긋하게 있을 수만도 없었다.
느긋해지려고만 하면 세나로부터 질문이 날아들었으니까.
"야, 여기와서 좀 앉아봐."
해서 시키는대로 의자에 앉았더니 지나가 송출용 컴퓨터와 연결된 모니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채팅창은 어디다가 두는 게 보기 편할 것 같냐?"
이런 건 처음이라서 세나가 유난히 꼼꼼한 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은근히 신경써야할 게 많더라.
그래서 전부 세나의 기준에 맞추기로 했다.
그 편이 세팅하는 세나에게도 편할테고, 내게도 그나마 익숙했으니까.
"그냥 누나가 하는 대로 해줘."
어디까지나 그런 이유로 그리 말했던 것뿐인데 그 말이 세나의 마음에 쏙 들었던 모양이다.
"그러든가 그럼."
살짝 퉁명스럽게 느껴지는 목소리와는 별개로 세나의 입꼬리가 쉬지않고 움찔거렸다.
"자, 이제 그럼 남은 건 방송 켜서 제대로 돌아가는지 확인하는 건데···"
"응? 지금?"
"어, 테스트 방송은 해봐야할 거 아냐."
첫 방송은 틀림없이 오늘 저녁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그 순간이 이렇게 빨리 찾아오게 될 줄이야.
나도 사람인지라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어서 얼굴에 힘이 들어가는 걸 막지 못하고 있었더니 크흠하고 헛기침을 한 세나가 내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확인할거만 확인하면 바로 꺼도 되니까 쓸데없이 긴장하지 말고."
어차피 누가 들어올 가능성도 거의 없을 거란다.
"그래?"
"응, 처음키는 거잖아. 일부러 사람없는 방송만 따로 찾아서 보는 사람 아니면 들어올 일도 없을 걸."
"그렇구만."
"그나저나 스트리머 명은 뭐로 할꺼야."
"음, 글쎄··· 혹시 생각해둔 거 없어?"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냐. 네가 쓸 거니까 네가 정해야지."
"아, 이런 거 정하기 어려운데···"
말해 무엇하랴.
한때 작가로 활동했던 나지만 네이밍 센스만큼은 지독하리만큼 없었다.
그래서 등장인물들 이름 좀 성의있게 지으면 안되냐고 매번 댓글이 달리곤 했지.
그런만큼 이거다하고 선뜻 떠오르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냥 누나처럼 실명으로 할까?"
"실명은 좀 그렇지 않아?"
"누나도 실명쓰면서 무슨···"
"그거야 나는 여자니까 그런 거고 넌 좀 그렇지."
"아, 음··· 그럼 뭐로 하지."
"그, 정 할 거 없으면 그걸로 하던가."
"그거?"
그거라니 뭘 말하는 걸까.
짚이는 게 없어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려니 세나가 고개를 슬쩍 옆으로 돌리며 슬그머니 덧붙였다.
"그 왜 내 방 시청자들이 너 부를 때 쓰는 말 있잖아."
"···세동?"
말해 무엇하랴.
세동은 세나 동생을 줄인 말이었다.
세동이라.
"···어감이 좀 그렇지 않아?"
"뭐가."
"아니 빠르게 발음하면 새똥같잖아."
사실 그건 이름에 동이 들어가는 이들의 숙명아닌 숙명이라 할 수 있었다.
내 초등학교 친구 계동이도 그랬었지.
초딩들에게 있어 똥이란 마법의 단어와도 같아서 그걸 아무데나 붙여대곤 했으니까.
하물며 이름에 동은 물론 개와 유사한 계까지 들어가는 계동이는 초글링들에게 있어 놀리기 딱 좋은 먹잇감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본인의 업보긴 하지만 당시에는 금기나 다름없었던 '화장실에서 큰 거 보기'를 저질러 버린 탓도 어느 정도는 있었고.
아무튼 '개똥이'라는 별명에 고통받던 계동이가 참다참다 못해 'THE 앞니 파괴자'로 각성해버리는 광경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던 나로서는 어째 세나의 제안이 썩 끌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이걸로 해야겠다."
"정했어? 뭔데?"
뭘로 했는지 어디 한 번 구경이나 해보자는 듯 세나가 내 얼굴 옆으로 얼굴을 불쑥 들이밀어왔다.
보아하니 큰맘먹고 제안했던 것이 시원하게 걷어차인 분풀이라도 하려고 그랬던 것 같은데··· 분한 마음에 앞뒤 재지않고 일단 움직이고 본 탓인지는 몰라도 거리가 좀 많이 가까웠다.
덕분에 내가 사용하는 것이기에 퍽 익숙하지만 사뭇 다르게 느껴지는 샴푸향과 바디워시의 향기가 후욱하고 끼쳐왔다.
"세··· 오···?"
지가 먼저 기습해놓고 저렇게 태평한 얼굴이라니.
순간 심장이 철렁할 정도로 놀랐던 게 억울해서라도 이건 어떻게든 갚아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무슨 뜻이야?"
자기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는 게 없는지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세나의 귀를 향해 입술을 들이밀었던 건 그래서였다.
"딱 보면 모르겠어?"
"아니 내가 무슨 점쟁이냐? 딱 보면 알게?"
귀에 닿는 숨결이 간지럽기라도 했던 걸까.
순간 어깨를 움찔하고 떤 세나가 당황한 걸 숨기기라도 하듯 퉁명스럽게 대꾸하며 몸을 살짝 뒤로 뺐다.
그렇게 뒤로 슬금슬금 도망치기 시작한 세나가 좀 더 멀어지기 전에ㅡ
"세나 오빠."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한 귀에 대고 진실을 속삭여주었다.
"···뭐?"
"세나 오빠라는 뜻이라고. 줄여서 세오."
세나로 하여금 보란듯이 싱글벙글 웃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