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화 〉1부
유한과 지나가 같은 침대와 같은 베개를 공유하며 동상이몽하고 있던 바로 그 시각.
둘만큼은 아니더라도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깨어난 이가 한 명 있었다.
떠오른지 얼마 되지 않은 해가 흩뿌리는 빛이 어슴푸레하게 들이치는 방 안에 누워 눈을 깜빡깜빡거리고 있는 이의 정체는 다름아닌 가영이었다.
잠에서 깬지 그래도 꽤 되었건만 마치 막 잠에서 깨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깜빡거리며 물끄러미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던 것도 잠시, 가영의 시선이 스르륵 움직여 문쪽을 향했다.
그런 그녀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굳게 닫혀있는 문은 열릴 기미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어찌보면 당연해야할 그 사실이 이상할 정도로 낯설게 느껴진다고 가영은 생각했다.
'오늘도···'
안 오는 구나.
벌써 4일이나 되었다.
아침을 핑계삼아 매일 아침마다 이어지던 유한의 발걸음이 갑자기 뚝 끊긴지도 벌써 4일째였다.
솔직히 처음에는 내심 다행이라 생각했다.
점심시간마다 하는 외출도 언제 어디서 자신이나 유한을 아는 사람과 마주치게 될지 몰라 조마조마하긴 했지만 아침에 세나나 지나 몰래 하는 것만큼은 아니었으니까.
그만큼 언제 들킬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행위였고, 그래서 유한이 아침에 방문하지 않게 된지 이틀차와 삼일차때는 살짝이지만 기분이 좋기까지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더는 조마조마하게 마음 졸일 필요가 없었으니까.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그랬는데 대체 오늘은 왜 이렇게ㅡ
'···아니야.'
시간이 지나도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을 이어나가던 것도 잠시, 가영의 몸이 퍼뜩하고 떨렸다.
서운하다니.
지금 상황하고는 하등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었으니까.
대체 서운할 것이 뭐가 있단 말인가.
지금 이 순간 '안도'외에 다른 감정은 느껴야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그래···'
잘 된 거다.
아침마다 조마조마하게 맘 졸일 필요 없고 이 얼마나 좋은가.
분명 그래야만 하는데··· 그것뿐이어야만 하는데···
자꾸만 궁금해진다.
피곤하지도 않은지 이른 아침마다 슬그머니 얼굴을 내밀어오던 유한의 방문이 갑자기 뚝 끊긴 이유가 뭘까.
최근들어 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는 것처럼 초췌하고 피곤해보이더니 혹시 아직 일어나지 못한 걸까.
그래 어쩌면 그런 걸지도 모르지.
그리 생각하기 무섭게 지나가 유한이의 부탁을 받고 매일 아침마다 깨우러 올라간다는 사실이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어지간한 이유가 아니고는 운동을 거르지 않는 지나이니만큼 오늘도 틀림없이 유한이를 깨우기 위해 3층으로 향했을테지.
그럼에도 여태껏 조용하다는 건ㅡ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어쩌면 너무 피곤해서 일어나자마자 다시 잠들었을지도 모른다고 누굴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변명이나 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당혹스러웠다.
변명할 이유가 없는데도 변명을 하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알 수 없어서 더 그랬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머릿속으로 쓸데없는 속삭임이 울려퍼지기 시작한 것은.
만약, 정말로 만약에 유한이 일어났다가 다시 잠들었다고 치면··· 그 이유가 정말 피곤해서일까?
혹시나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이를테면··· 흥미가 식었다던지.
그러한 중얼거림이 머릿속으로 울려퍼지기 무섭게 가영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방금 자신의 행동은 누가봐도 자신하고 관계가 있는 남자가 다른 년하고 바람이라도 난 건 아닐지 의심하는 사람의 그것이었으니까.
그래서일까.
열이라도 있는 것처럼 자꾸만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럼에도 자꾸만 같은 주제에 대해 생각하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유한을 의심하는 건 절대 아니었다.
그냥··· 조금 우려가 될 뿐이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보통 유한이 또래에게 있어 사랑이라는 것은 무겁고도 가벼운 것이니까.
서로가 아니면 살 수 없기라도 한 것처럼 열렬하게 사랑하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틀어져버리기라도 하는 것이 유한이 나이또래가 아니던가.
그러니 유한이 어느 순간 마음이 식어버렸다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마음이 식는 순간 그동안 있었던 일들은 유한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단순히 좋은 추억으로만 남을까.
혹시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그게 걱정이 됐다.
그게 걱정이 되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게 틀림없었다.
거기에 다른 이유따위는 없었다.
없어야만 했다.
'왜···'
그렇게 된 걸까.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갑자기 몸 곳곳에 붙은 군살들이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불 속으로, 잠옷 삼아 입고 있던 슬립 밑으로 손을 밀어넣어 그 아래 숨겨져있던 배를 조심스레 움켜쥐어 보았다.
···말캉하게 살이 잡혔다.
평소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그것의 존재가 오늘따라 이상할 정도로 신경이 쓰였다.
슬그머니 옆구리 쪽으로 손을 옮겨봤다.
···이번에도 말캉한 감촉이 손을 타고 올라왔다.
유한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던 이들의 모습이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다 그랬던 건 아니지만 다들 하나같이 몸매가 좋았다. 얼굴도 예뻤고.
특히나 자신이 보기에도 허벅지와 엉덩이가 예쁜 이들이 많았다.
···허벅지 쪽에서도 살이 잡혔다.
엉덩이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 사실이 왠지 모르게 속상했다.
속상할 이유가 없는데도 입술이 제멋대로 삐죽하고 튀어나올 정도로 속이 상했다.
그래서 세나에게 부탁해 주문했던 것으로 자꾸만 시선이 갔다.
지나에게 부탁한 게 있다보니 일단 챙겨두긴 했지만, 막상 입자니 부끄러워서 차마 손대지 못했던 것.
그것이 담겨있는 박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입어만, 입어만 보는 거니까···'
이왕 비싼 돈 주고 산 것인데 그래도 몸에 맞는지 확인은 해봐야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반품을 하든 교환을 하든 할테니 말이다.
박스를 열어 그 안에 들어있던 것을 조심스레 집어든 건 다 그래서였다.
절대 다른 이유같은 건 없었다.
부스럭ㅡ
얇은 비닐로 포장되어 있는 것은 그것의 겉면을 감싸고 있는 비닐만큼이나 얇았다.
그래서 민망했다.
색도 하얀 것이 운동하다가 땀이라도 나오면 속 안이 그대로 비칠 것 같았으니까.
'그래도···'
입어만 보는 거니까.
'작지는···'
않겠지?
누가봐도 작아보이는 걸 입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만큼 꼴사나운 모습도 또 없었기에 포장을 뜯기에 앞서 문부터 잠궜다.
찰칵ㅡ
이 시간까지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아무래도 오늘도 안 내려올 생각인 듯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만약 이런 걸 입고 있는 모습을 다른 이도 아니고 유한에게 보이게 된다면 그때는 정말 민망해서 죽어버릴지도 몰랐다.
그렇게 문을 잠군 다음 조심스레 포장을 뜯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큰 것같은 비닐 소리가 유달리 신경이 쓰였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누군가에게 들키는 일 없이 비닐 안에 들어있던 걸 끄집어낼 수 있었다.
곱게 접혀있을 때도 얇아보이긴 했지만, 펼쳐놓고 보니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민망했다.
이런 걸 입고 몸을 막 움직인다니.
요즘 애들은 수치심도 없는 걸까.
그래서 다시 한 번 망설여졌지만··· 눈을 질끈 감고 조심스레 그것을 밑으로 내렸다.
그리고는 무슨 허물마냥 헐렁헐렁대는 것에 조심스레 발을 집어넣었다.
어쩌면 작을지도 모르겠다고 걱정했는데 생각외로 수월했다.
신축성이 상상했던 것 이상이라 잡아당기는 족족 부드럽게 늘어나며 피부에 찰싹 달라붙었으니까.
문제가 발생한 건··· 허벅지와 엉덩이를 구분짓는 경계에 도달했을 때였다.
"읏···?!"
분명 바로 조금 전까지는 살짝 끼는 느낌이기는 해도 아무 문제 없었는데 엉덩이를 덮으려고 하기 무섭게 턱하고 걸리는 느낌이 났다.
'설마···'
여태껏 잘만 늘어나더니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
설마 작은 건가 싶어 애꿏은 눈만 데록데록 굴리고 있던 것도 잠시, 흐읍하고 배에 힘을 주면서 어딘가에 걸려서 멈춰버린 것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뭔가가 엉덩이살을 꾹 누르면서 쑤욱하고 딸려왔다.
그렇게 무사히 착용을 끝마친 순간, 조심스레 거울에 몸을 비춰보았다.
틀림없이 민망하기 그지없는 몰골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ㅡ
'의,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특히나 허벅지하고 엉덩이 쪽이 그랬다.
허벅지는 꽈악하고 조여져있었고, 크기 때문에 자꾸만 신경이 쓰였던 엉덩이도 평소보다 작아보였으니까.
갑자기 몸매가 확 좋아진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그게 신기해서 자꾸만 거울에 모습을 비춰보게 되었다.
이래서 이런 걸 입는 걸까.
묘하게 조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과는 별개로 움직이는 건 편했다.
그렇게 가영이 스스로의 모습을 감상하는데 푹 빠져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똑똑ㅡ!
문 두들기는 소리가 방 안으로 울려퍼졌고, 그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은 스스로의 모습 때문에 얼굴이 발그레하게 변할 정도로 흥분한 상태였던 가영의 몸이 덜컥 흔들렸다.
"엄마?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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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힘들어 죽겠네.
그래도 뭐, 어제보다는 나았다.
어제는 정말 다리가 미친듯이 후들거려서 계단을 내려갈 엄두조차 나질 않았으니까.
물론, 잔뜩 뽑힌 건 오늘도 마찬가지긴 했다.
내 물건을 쪽쪽 소리가 나도록 빨면서 동시에 보지를 만지작대는게 퍽 마음에 들었는지 그 자리에서 무려 네 발이나 뽑혔으니까.
그래도 거기서 멈춰주더라.
어제 정신 못 차리고 헤으응 거렸던 게 못내 신경이 쓰이기라도 했던 걸까.
아니면 이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내가 옷을 벗고 자지를 내밀도록 만들 수 있으니 굳이 전처럼 서두르지 않기로 한 것일까.
둘 중에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건 어째보다 덜 쥐어짜인 건 사실이었기에 슬금슬금 밑으로 기어내려갔다.
아침을 차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당장 내 코가 석자인데 그깟 아침이 문제일까.
밑으로 향한 건 어디까지나 더 쥐어짜이는 걸 피하기 위해서였다.
문만 잠구면 단둘이 될 수 있는 내 방과는 달리 1층에서 버티고 있으면 제 아무리 지나라해도 어쩌지 못할테니까.
물론, 그런 식으로 시간을 번다해도 결국 쥐어짜이는 운명을 피하지 못할테지만··· 그래도 충전할 시간이라도 가질 수 있는 게 어딘가.
아무튼 그렇게 밑으로 향했는데ㅡ
"자, 봤지? 내가 방금 보여준대로만 하면 돼."
이 시간이면 당연히 들리지 않아야할 목소리가 1층 쪽에서부터 들려왔다.
그에 반사적으로 몸을 흠칫했던 것도 잠시, 곧 깨달았다.
"이, 이렇게···?"
1층에 있는 건 지나 뿐만이 아니라는 걸.
둘이서 대체 뭘 하고 있길래 가영의 목소리가 저렇게 떨리는 걸까.
차마 호기심을 억누를 수가 없어서 벽 너머로 고개만 살짝 내밀어보니 눈으로 들어온 것은ㅡ
'미친···'
위에는 회색의 스포츠 브라, 아래에는 몸에 쫙 달라붙는 새하얀 요가복 바지를 입은 채 지나를 따라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가영의 모습이었다.
지나가 먼저 시범을 보이면 가영이 그것을 그대로 따라한다.
한 문장만으로 묘사할 수 있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상황임에도 엄청나게 야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영도 그렇고 지나도 그렇고 노출도가 상당할 뿐더러 시작한지 꽤 됐는지 둘다 발그레하니 달아오른 몸을 땀으로 촉촉하게 적시고 있었으니까.
'미치겠네···'
어쩜 복장도 저렇게 딱 대비되게 입은 걸까.
여전사같은 몸매를 지닌 지나와 육감적인 몸매를 지닌 가영이 나란히 서서 몸을 요리조리 움직여대는 걸 보고 있으려니 없던 성욕도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개꼴려···'
이제 저대로 나란히 고양이 자세만 해주면 참 좋을텐데··· 안타깝게도 오늘은 하체 운동 특집이었던 모양이다.
숨이 절로 거칠어질 때까지 기다려봤지만 원하는 포즈는 나오지 않았다.
"자, 이 정도면 몸은 충분히 풀었으니까 이제 스쿼트하는 법 가르쳐줄게."
대신이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그리 말한 지나가 곧바로 모범적인 스쿼트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지나의 엉덩이가 위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새까만 스패츠가 쭈욱하고 늘어나며 엉덩이의 윤곽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솔직히 그것만으로도 참기 힘들었는데ㅡ
"자, 이제 그럼 한 번 해봐."
이제 가영의 차례란다.
얇은 요가복 바지를 입은 가영의 스쿼트라니.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벽에 찰싹 붙이고 있던 몸을 떼어내 1층으로 내려갔다.
지나가 걱정되긴 했지만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에서 보고 싶은 풍경이었으니까.
그렇게 1층에 도착한 순간···
볼 수 있었다.
"유, 유한아···?"
자세가 자세인지라 쭉 늘어난 레깅스 위로 엉덩이와 팬티의 모습이 고스란히 비치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엉덩이를 뒤로 쭉 뺀채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가 날 발견하고는 얼굴을 화악하고 붉히는 가영과ㅡ
"뭐야, 피곤해서 더 잔다면서?"
가영의 엉덩이에 정신이 팔린 내 모습을 확인하고는 가영에게는 보이지 않도록 날 향해 눈을 번뜩이는 지나의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