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화 〉1부
'공식방송이라···'
세나가 뜬금없이 '공방 ㄱ?'를 외쳐대길래 솔직히 우승 상품으로 걸려있는 여행권이 탐나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곁가지로 딸려있는 부상이 탐이 나셨단다.
주최 측에서 부상으로 대체 뭘 걸어놨길래 세나가 저러나 싶어서 한 번 꼼꼼하게 확인해봤더니만 확실히 그럴만한 것이 걸려있긴 하더라.
-우승자가 원하는 컨텐츠 1회 제작 지원.
그래, 저게 부상으로 걸려있는 것의 정체였다.
부상의 정체가 저러니 방송밖에 모르는 방송바보가 눈이 돌아갈 수밖에.
우승했을 때의 이야기긴 하지만 일단 우승하기만 하면 우승자가 원하는 컨텐츠를 제작할 수 있도록 플랫폼 측에서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주겠다는데 아마 지금쯤 세나의 머릿속에는 그걸 이용해 어떤 컨텐츠를 제작하면 좋을지에 대한 생각만이 가득 차 있지 않을까.
세나가 자기랑 자주 교류하는 동료들을 내버려두고 굳이 날 스트리머 데뷔까지 시켜가며 끌어들이려 했던 것도 사실은 그래서였다.
나하고 팀을 맺으면 우승을 차지할 확률이 좀 낮아지긴 하지만 대신 우승했을 때 파트너와 합의를 보거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같아서 좋다나.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주상인 여행권은 관심도, 필요도 없으니 구워먹든 삶아먹든 내가 알아서 하라더라.
딱 거기까지 듣고는 일단 한 번 생각은 해보겠다고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좀 구미가 당기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여행···'
만약 가게 된다면 누구랑 가야할까.
가영이랑?
아니면 지나랑?
의외로 세나랑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지.
만렙 집순이인 세나의 성격상 여행가자고 하면 뭔 놈의 여행이냐며 학을 뗄 가능성이 크긴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은근히 기뻐할테니까.
아니면 돈을 좀 더 보태서 가족끼리 다같이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단둘이서 갔을 때하고 비교하면 오붓함이야 좀 줄어들긴 하겠지만 대신 그만큼 즐거울테니까.
그리고 넷이 다같이 간다고 설마 몰래 즐길 틈이 없겠는가.
하루종일 붙어있는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그나저나···'
지나는 자는 걸까.
평소같으면 진작에 거실에 매트를 깔아놓고 운동을 시작하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오늘따라 묘하게 조용했다.
'음, 하긴···'
생각해보니 확실히 그럴만하긴 했다.
새벽의 그 일 이후 미친듯이 뛰어서 어떻게 흥분은 좀 가라앉힌 것 같던데 그것과는 별개로 선을 넘어버렸다는 사실이 주는 당혹스러움만큼은 여전할테니까.
내 앞에서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오히려 평소보다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ㅡ
'그거야 당연히 연기지.'
모르긴 몰라도 아마 지금쯤 머릿속이 엄청나게 복잡할지 않을까.
그렇다면 적어도 오늘만큼은 이 이상 자극하지 않는 편이 좋을지도 몰랐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약속한 게 하나 있으니까.
아까 아침 차릴 때 마트 갈 일이 생기거든 지나하고 같이 가겠다고 약속을 하지 않았던가.
괜히 지나를 배려한답시고 나혼자서 몰래 다녀오기라도 했다간 저번처럼 토라진 지나를 상대하게 될지도 몰랐다.
다른 이의 침입을 불허하듯 굳게 닫혀있던 지나의 방문을 조심스레 두들긴 것도 다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똑똑ㅡ
"누나 나 들어가도 돼?"
그런데 어째··· 반응이 없었다.
노크는 물론 문에 대고 지나를 불러보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거라고는 적막한 침묵 뿐이었다.
'···진짜 자나?'
혹시 몰라 한 번 더 문을 두들겨봤지만 반응이 없는 건 이번에도 매한가지였다.
새벽에 있었던 일 때문에 심적으로 지친 나머지 그대로 골아떨어지기라도 한 걸까.
거기서 다시 한 번 그냥 혼자서 다녀올까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바로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는 그대로 지나의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들어서게된 지나의 방 안은··· 텅 비어있었다.
거실에도 방에도 없으면 대체 어딜 간 걸까.
올 때 보니까 다용도실에 있는 것 같지도 않던데 말이다.
혹시 다시 운동하러 나갔나 싶어 현관을 확인해봤지만 내가 선물해준 운동화는 현관에 얌전히 놓여져 있었다.
슬리퍼같은 것도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있는 걸 보면 잠깐 어디 나간 것 같지도 않았고.
'설마···'
그대로 몸을 돌려 가영의 방으로 향했던 건 그래서였다.
3층에도, 2층에도, 거실에도, 본인 방에도, 그렇다고 밖에 나간 것도 아니라면 남는 곳이라고 해봐야 그곳 뿐이었으니까.
"지나 누···!"
그래서 가영의 방 안으로 들어섰더니만 그렇게 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지나와 딱 맞닥뜨리게 되었다.
문제가 있다면··· 지나의 몰골이 좀 많이 민망한 모습이라는 것 정도?
막 샤워를 끝마치고 나온 걸까.
지나는 알몸이었다.
몸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 몸 곳곳에서 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손에 쥔 수건으로 열심히 닦아내고 있는 중이었고.
보기 좋게 그을려있는 매끄러운 피부를 따라 물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리는 광경이 아찔할 정도로 야했다.
그래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얼굴에 열이 확 오르며 목구멍을 타고 침이 꿀꺽 넘어갔다.
"그, 미, 미안!"
뜻밖의 상황에 당황했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걸까.
내 입에서 사죄의 말이 터져나오기 무섭게 수건으로 몸을 닦다가 말고 그대로 굳어버린 지나의 얼굴이 확 붉어지더니 그녀가 들고 있던 수건을 이용해 황급히 몸을 가렸다.
아니, 가리려고 했다.
"앗···!"
당황한 나머지 손에서 힘이 빠져버리기라도 했는지 다리 사이를 가리기는 커녕 결국에는 놓쳐버리고 말았지만.
덕분에 수건으로 애매하게 가려져서 보이지 않던 것들의 모습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샛노랗게 물들인 머리카락과는 다르게 아랫쪽 털은 새까맸다.
그리고 그 아래 있는 것은··· 진한 분홍빛을 띄고 있었다.
살짝 벌어져있는 다리 사이로 훤히 드러나있는 그것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어질어질했다.
그만큼 남자를 미치게하는, 아니 꼴리게하는 색을 띄고 있었으니까.
빨간 깃발과 마주한 소의 기분이 이랬을까.
호흡이 제멋대로 거칠어지며 숨을 내쉴 때마다 홀딱 벗고 있는 지나의 모습만이 시야 속으로 아로새겨지는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지나의 몸은 가영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가영의 몸이 손자국이 남을 정도로 꽉 움켜쥐어보고 싶어지는 몸이라면 지나의 몸은 그녀하고 몸을 바짝 밀착시킨채 거기에 내 몸을 비벼보고 싶어지는 몸이었으니까.
오일같은 걸 바른 것도 아닌데 바르기라도 한 것처럼 매끈매끈해보이고 탄력적으로 보여서 더 그랬다.
'미치겠네 정말···'
손으로라도 가리지 대체 뭐하고 있는 걸까.
계속 보고 있으면 정말 이상해질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저 보기 좋게 그을린 피부를 내 새하얀 액체로 덧칠해주고 싶었다.
"그, 마트, 마트 가야되니까···!"
당황한 척 하며 그대로 몸을 홱 돌려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왔던 건 그래서였다.
그렇게 방을 빠져나오기 무섭게 문부터 닫았다.
쿵ㅡ!
그리고는 닫은 문에 등을 기댄 채 전력질주라도 한 것마냥 한껏 거칠어진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겸사겸사 가슴께에 손을 가져다 대보니 놀란 것도 모자라 잔뜩 흥분하기까지한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빠르게 뛰고 있었다.
덕분에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저렇게 꼴리는 몸으로 하는 자각없는 행동들이 얼마나 위협적인지를 말이다.
그렇게 유한이 두근두근대는 심장을 달래고 있을 때, 그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두근두근대고 있는 이가 있었다.
물론, 그건 다름아닌 지나였다.
유한처럼 흥분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흥분해서 그런 거였다면 유한이 방을 빠져나가기 무섭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도 않았을테니까.
'···못 봤겠지?'
속으로 걱정스레 중얼거리던 것도 잠시, 지나는 문 열리는 소리가 방 안으로 울려퍼지기 무섭게 등뒤로 감추었던 손을 슬그머니 앞으로 꺼내들었다.
그런 그녀의 손에는 혹시 흔적이라도 남을세랴 물로 깨끗하게 씻은 딜도가 쥐어져있었다.
유한이 방 안으로 들이닥친 게 하필이면 그것을 막 다시 서랍 안에다가 돌려놓으려던 순간이었기 때문일까.
딜도를 쥐고 있는 손은 힘이 잔뜩 들어가 손등이 허옇게 질려있었다.
덕분에 살짝이지만 부자연스럽게 꺾인 딜도의 모습이 왠지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래봐야 살아있는 것도 아니건만 바로 조금 전까지 자신을 즐겁게 해주었던데다가 유한의 물건을 본따서 만든 것이라 그런지 몰라도 그런 생각부터 들었다.
"휴우···"
그렇게 안쓰러운 모습을 하고 있던 것을 다시 서랍 안에 밀어넣고 난 후에야 비로소 좀 안도할 수 있었다.
만약 이걸 쥐고 있는 모습을 유한에게 들키기라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야 뭐, 안 봐도 뻔했다.
계획이고 뭐고 시작하기도 전에 다 날아가버렸겠지.
그렇기에 새삼 깨닫게 되었다.
지금보다 더 철저하고 치밀해질 필요가 있다는 걸.
앞으로는 그래야만 한다고 다짐하듯 중얼거리고 있으니 뒤늦게 흥분이라는 것이 몸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올라오기 시작했다.
'분명···'
뚫어져라 쳐다봤었지.
모르는 척 해주고 싶어도 시선이 너무나도 노골적이라서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뻤다.
그 때 자신을 바라보던 유한의 모습은 누가봐도 흥분한 사람의 모습이었으니까.
당황한 나머지 실수한 척 수건을 떨어뜨렸던 것도 사실은 그래서였다.
더 보고, 더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적나라하게 드러난 자신의 몸을 보며 유한이 자지를 빳빳하게 세울 정도로 흥분한 모습을 보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당황한 척 수건을 떨어뜨렸더니 덕분에 볼 수 있었다.
유한의 눈동자가 평소와는 다르게 살짝 흐릿해지는 것도, 새빨개진 얼굴로 자신의 몸을 훑으며 내려가던 유한의 시선이 자신의 '그곳'에 닿은 순간 유한의 사타구니가 살짝이지만 부풀어오르는 광경도 말이다.
그 광경을 떠올린 탓일까.
유한의 시선이 훑고 지나갔던 곳이 손으로 만져지기라도 한 것처럼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참았다.
아직 유한이 근처에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벌써부터 속내를 들켜서 좋을 게 없었다.
만약 지금 들켜버린다면?
유한은 방금 그랬던 것처럼 어쩔 줄 몰라하며 도망칠게 뻔했다.
그러니 유한이 적응할 수 있도록 천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접근해야만 했다.
해서 당장이라도 다리 사이로 손을 가져가 유한의 시선이 닿았던 곳을 손가락으로 문지르고 싶은 것도 꾹 참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옷들을 주워입었다.
그리고는 방을 빠져나기 전에 혹시라도 흔적이 남지는 않았을지 꼼꼼하게 확인한 뒤 그대로 내 방으로 건너갔다.
그 와중에 유한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부끄럽고 민망해서 자신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기라도 했던 것일까.
그런 이유로 이쪽을 피하고 있다는 게 여실히 느껴지니 오히려 더 골려주고 싶었다.
그토록 뚫어져라 쳐다봐 놓고서는 뒤늦게 부끄러워하는 꼴이라니.
이 앙큼하고 음란한 동생을 어떻게 혼내주면 좋을까.
해서 빠르게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뒤 유한을 찾아나섰다.
유한은 자신의 방이 있는 3층에 숨어있었다.
그 안에 틀어박혀 불룩하게 부풀어오른 것을 열심히 진정시키고 있기라도 했던 것일까.
"뭐해? 마트 가자면서?"
"어, 누, 누나."
방금 있었던 일이 많이 신경쓰이는 모양인지 얼굴을 발그레하니 물들인 채 힐끔힐끔 이쪽의 눈치만 보는 모습이 절로 숨이 거칠어질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기뻤다.
유한을 향해 일부러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냈던 것도 사실은 그래서였다.
그 모습을 좀 더 오래 보고 싶었으니까.
유한이 좀 더 자신을 신경써줬으면 했으니까.
"좀 이따 알바도 가야되잖아. 갈 거면 빨리 갔다오자."
"으, 응."
안절부절 못하는 유한의 모습을 바라보는 건 사실상 인내심과의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이 뭔가를 할 때마다 어깨를 흠칫흠칫 떨어대는 모습이나 자꾸만 이쪽을 힐끔힐끔대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은근히 야했으니까.
그래서 당장이라도 꽉 끌어안고 얼굴이든 어디에든 미친듯이 몸을 부벼대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메뉴는? 정했고?"
"그, 일단은 최대한 냄새가 안나는 것들 위주로 하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애초에 뭔가를 먹는 곳이 아니라 운동을 하는 곳이니만큼 음식 냄새를 풀풀 풍겨서 좋을 게 하등 없었으니까.
회원들 중에는 식단관리를 이유로 한줌 정도만 먹거나 쫄쫄 굶다시피하는 이들도 많은데 그런 사람들 앞에서 맛있는 냄새를 풀풀 풍기고 다닌다?
한창 금식 중인 사람 앞에서 투쁠 구워먹는 꼴이니 좋은 말이 나올 리 없었다.
뭐, 그거도 그거지만 유한이 대충 하지 않고 나름대로 진지하게 이쪽의 사정을 고려해줬다는 사실이 가장 기쁘긴 했다.
그렇게 뭘 만드는 게 좋을지 고민에 빠져버린 유한을 데리고 마트에 도착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집 근처에 있는 마트는 다 좋은데 크기가 좀 작아서 일부러 세나 고 년한테 차까지 빌려서 큰 곳으로 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무슨 행사같은 거라도 진행 중인 걸까.
마트로 통하는 입구 앞에는 간판에 그려져있는 것과 똑같이 생긴 로고가 새겨진 천막이 세워져있었다.
번듯한 크기와는 별개로 그 안을 채우고 있는 내용물은 영 별로인지 다들 그냥 지나치기만 하길래 그냥 그런갑다하고 유한을 데리고 카트들이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향하려고 했는데ㅡ
"어머? 두 분 혹시···"
영업용 미소를 어설프게 흉내낸 것을 얼굴 가득 머금고 있는 여자가 스리슬쩍 앞길을 가로막았다.
"신혼부부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