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1부
세나 얘는 날 또 왜 부르는 걸까.
속으로 의문을 곱씹으며 계단을 오르고 있으려니 드는 생각은 하나 뿐이었다.
'혹시 뭐 문제라도 생겼나?'
그 왜 흔히 악질이라고 부르는 애들 있지 않은가.
그런 애들이라도 하나 붙은 건 아닐까.
그게 아니고서야 굳이 날 따로 부를 이유가 없긴 했다.
어지간한 거였으면 따로 부를 필요 없이 아까 그 자리에서 바로 이야기했을테니까.
'흐음···'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걸음을 옮기는 걸 멈추지 않고 있으니 어느새 세나의 방으로 이어지는 문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똑똑ㅡ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일단 노크부터 갈겼다.
"누나 들어가도 돼?"
"어, 들어와."
들어와도 된다길래 들어갔더니만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답지 않게 심각해보이는 표정을 한채 무게를 팍 잡고 있는 세나의 모습이었다.
시도때도 없이 까불거리기만 했던 사람이 저러고 있으니 세나의 얼굴 위로 내려앉은 심각함이 내게까지 전염되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생겼길래 표정이 저리도 심각한가 싶었으니까.
혹시 과거에 유한을 괴롭혔던 악질 스토커 중 한 명이 세나의 영상에 나오는 날 보고 이상한 짓을 할 거라고 예고하기라도 한 것일까.
"그, 일단 아무데나 좀 앉아봐."
아무데나라니.
대체 어디 앉으라는 걸까.
암만 주위를 둘러봐도 마땅히 앉을만한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바닥에 앉기도 좀 그래서 그냥 침대 끄트머리에 엉덩이를 걸친 뒤 손을 등뒤로 뻗으며 편하게 걸터앉았더니만ㅡ
"야, 자, 잠깐만···!"
검은색 가죽으로 된 사장님 의자에 한껏 몸을 기댄 채 무게를 잡고 있던 세나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응? 왜?"
"아니, 왜 거기에···"
"누나가 아무데나 앉으라며."
그래서 여기 앉았을 뿐인데 뭐 문제될 거라도 있냐는 투로 그리 말하니 세나의 입에서 윽하고 침음성이 새어나왔다.
"그, 거기 말고 다른 데 앉아."
"뭐?"
"아무튼 침대 말고 다른 데 앉으라고. 기껏 정리해놨더니만 너 때문에 다 구겨지잖아···!"
"그럼 의자라도 가져다주고 말하던가. 아님 뭐 바닥에 앉으라고?"
네 방 상태는 보고 그리 말하는 거냐고 말했더니 엉거주춤한 자세를 한채 서 있던 세나가 결국 본인 몫의 의자를 내게 내주었다.
"거, 침대에 좀 앉을 수도 있지 유난은···"
"아, 내가 싫다고."
퉁명스럽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그리 말한 세나가 나로인해 구겨진 부분을 손으로 쫘악 잡아당겨서 빳빳하게 폈다.
그러더니 자기가 걸터앉더라.
어차피 걸터앉을거면 대체 뭐하러 핀 건가 싶기는 했지만 세나한테만 보이는 뭔가가 있는 거겠지.
아무튼 그래서···
"그래서 왜 부른 건데?"
"응, 아."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그리 물으니 묘하게 안절부절 못하는 느낌으로 몸을 움찔움찔대던 세나가 다시금 무게를 잡기 시작했다.
"생겼지. 그것도 엄청 큰 일이."
그러더니 살짝 침통해하는 표정을 한채 고개를 두어번 정도 끄덕끄덕하는게 아닌가.
솔직히 말하면 살짝 웃겼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고 안 어울려도 너무 안 어울렸으니까.
마치 꼬꼬마가 어른스러워 보이려고 억지로 무게를 잡고 있는 걸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내 감상은 그랬지만, 그렇다고 심각해보이는 사람 앞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저래놓고서 싱겁기 짝이 없는 말을 할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정말 심각한 용건이 튀어나올 수도 있는 거니까.
"···무슨 일인데?"
세나와 합을 맞추듯 그녀가 짓고 있는 것과 비슷한 표정을 얼굴 위로 띄워올리며 그리 물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그, 요즘 너 엄마 가게에서 알바하잖아."
"그렇지."
"알바하는 동안 뭐 이상한 일같은 건 없었어?"
진짜 스토커라도 붙은 건가?
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일같은 건 떠오르지 않았다.
요즘에도 하루에 한두 명 정도는 고백하러 찾아오긴 하지만 그건 이제 일상이나 다름없으니까.
"딱히?"
"진짜? 진짜로 없었어?"
"응, 없었어."
"정말?"
"없었다니까? 아니,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인데ㅡ"
연기가 아니고 진심으로 답답해서 그리 물으니 세나가 답을 하진 않고 대뜸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더니 생각이라도 정리하듯 잠시동안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올린 그녀가 이내 얼굴 위로 띄워올린 건 인생의 전환점이라도 맞이한 것 같은 비장함이었다.
"그, 충격받지 말고 들어."
그에 명심하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한 번 끄덕이니 입술을 귀엽게 오물오물대며 우물쭈물하던 세나가 이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있잖아."
"응."
"···엄마한테 남자 생긴 것 같아."
솔직히 말하면 좀 당황했다.
그 말을 한 이가 다른 이도 아니고 세나라서 더 그랬다.
대체 어디서, 어떻게 눈치챈 걸까.
그 정도로 티가 났나 싶어 빠르게 기억을 되짚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눈치챌만한 건덕지 자체가 없었다.
나도 세나나 지나 앞에서는 자제했으니까.
가영이야 말할 것도 없었고.
그런데 대체 어떻게 눈치를 깐 걸까.
"···고모한테?"
"응."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뭔데?"
진심으로 궁금해서 그리 물었더니 잠시 '으음···'하고 고민하는 듯한 소리를 내던 세나가 짧게 툭 내뱉었다.
"···감?"
어이가 없어서 차가운 시선을 돌려줬더니 살짝 몸을 움찔한 세나가 황급히 덧붙였다.
"그, 농담이야. 농담."
내게 날카로운 감의 소유자로 보이고 싶기라도 했던 걸까.
당황하기라도 했는지 얼굴을 살짝 붉게 물들인채 황급히 손을 휘휘 젓던 세나가 이내 자그마한 목소리로 그리 생각하게된 까닭을 밝혔다.
"다른 게 아니고 반지 때문에."
"반지?"
"응, 그 왜··· 엄마 결혼반지 있잖아. 엄마가 맨날 끼고 다니는 거."
그거라면 나도 잘 알고 있는 것이었기에 어디 더 말해보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니 그런 내가 답답하기라도 했는지 세나가 가슴을 팡팡소리가 나도록 두들겨댔다.
"맨날 잘만 끼고 다니시던 걸 갑자기 뺐잖아."
"그거야··· 일하다가 망가져가지고 수리맡긴 거라고 하셨잖아."
"에휴, 너는 그 말을 믿냐."
그리 말하면서 날 무슨 엄청나게 순진한 사람보듯 바라보는데 솔직히 쓴웃음밖에는 안 나오더라.
"그리고 그것 뿐만이 아니야."
"응?"
그거 말고 뭐가 더 있다고?
그게 대체 뭘까.
진심으로 궁금해서 눈을 동그랗게 뜬채 반문했더니 무슨 엄청나게 은밀한 이야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세나가 주위를 슥 한 번 살피더니 이내 몸을 내쪽을 향해 슬쩍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아니, 글쎄 저번에는 나한테 요가할 때 입을 레깅스 좀 사달라고 하시더라고."
확실히 놀라운 소식이긴 했다.
가영의 요가복이라니.
여신이 꼭 보여달라고 부탁했던 교복만큼이나 보고 싶어지는 복장이었으니까.
'진짜 신경이 쓰이긴 했나 보네.'
뭐, 내게는 좋은 징조였다.
내 평가가 신경쓰인다는 건 그만큼 날 아들이 아니라 잘 보이고 싶은 남자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뜻일테니까.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걸까.
"그게 왜?"
"아니, 정말 모르겠어? 엄마가 운동을 한다잖아. 운동을."
"하실 수도 있지."
"그래, 할 수도 있지. 그런데 타이밍이 너무 공교롭지 않아?"
"그냥 우연 아니야?"
"···에효, 아무 것도 모르는 너랑 무슨 말을 하겠냐."
대체 누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걸까.
자긴 뭐 엄청나게 어른인 척 답답해하는 표정을 얼굴 위로 띄워올린채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안타까웠다.
그러면서 이왕 이리된 김에 세나의 의중이나 떠보기로 했다.
"그리고 누나 말대로면 잘된 거 아냐?"
"그, 음···"
"아니면 혹시 누나는 고모가 누구 만나는 거 반대야?"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그리 물은 순간 세나의 얼굴 위로 떠오른 건 복잡하기 그지없는 표정이었다.
그런 표정을 한채 입술을 잘근잘끈 깨물고 있던 것도 잠시, 이내 세나가 고개를 푹 숙였다.
"글쎄··· 잘 모르겠어."
잘 모르겠다라.
하긴 자식 입장에서는 마냥 기뻐하기도 힘들겠지.
"네 말대로··· 잘된 일이긴 한데 왠지 모르게 좀··· 섭섭하고 걱정도 되고 그러네."
그리 말한 세나가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려 어색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걱정?"
"···뭐, 그냥 이런저런 거 있잖아."
세나는 그런 식으로 얼버무리긴 했지만, 그녀가 말한 이런저런 것이라는 게 뭔지 얼추 알 것도 같았다.
혹시나 가영이 그로인해 자신에게 소홀해지지는 않을지.
그 남자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가영에게 접근한 건 아닐지.
그로인해 가영이 상처받거나 그러지는 않을지.
뭐, 그런 것들이 걱정되는 거 아닐까.
"너, 너는 걱정도 안 돼?"
"나? 으음···"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뜻으로 어깨를 한 번 쓰윽해보이니 공감해주지 않는 내가 야속하게 느껴지기라도 했는지 세나의 얼굴이 불퉁하게 변했다.
"아무튼 혹시 모르니까 네가 한 번 잘 지켜봐."
"응? 내가?"
"그래, 같은 남자니까 뭔가 좀 더 보이는 게 있을 거 아냐."
제법 단호하게 말하는 걸 보니 세나는 이미 가영에게 남자가 생겼다는 걸 확신하고 있는 듯 했다.
그렇기에 쓴웃음만 나왔다.
지켜보고 자시고를 떠나서 세나가 말한 그 남자가 바로 나였으니까.
'뭐, 거울이라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어야 하나?'
"그래, 뭐··· 알겠어."
아무튼 일단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니 세나가 맞장구라도 치듯 날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말이야. 누나."
"응?"
"지켜봤는데 괜찮은 사람이면 어쩌게?"
"그, 음···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엄마한테 맡겨야지."
얼버무리는 걸 보니 거기까진 생각해두지 않은 걸까.
그에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세나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 이거 말하려고 부른 거였어?"
"아, 그것도 있고."
그것도 있고?
뭐가 더 남은 걸까.
보아하니 그런 듯해서 살짝 들어올렸던 엉덩이를 다시 의자에 붙였다.
그리고는 남은 용건도 어디 한 번 털어놔보라는 뜻으로 세나를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그으, 있잖아."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내 눈치를 보는 걸까.
자꾸만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어대는 걸 보니 쉽게 꺼내들 수 있을만한 건 아닌 듯해서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차분하게 세나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지치지도 않는지 연신 내 얼굴을 힐끔힐끔 곁눈질을 해대던 세나가 눈을 질끈 감으며 입을 연 건 그 직후였다.
"···너 혹시 방송해볼 생각 없냐?"
"방송?"
이렇게 갑자기?
언젠가는 해봐야지 해봐야지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세나 쪽에서 먼저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들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 탓에 살짝 얼떨떨해 하고 있으려니 세나의 얼굴이 다시 한 번 비장해졌다.
거의 가영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들기 전에 보여주었던 것과 맞먹는 비장함이었다.
그렇기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아니, 보니까 방송하는 거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아서."
정말 그것 때문일까.
어줍잖게 숨기려고 하지 말고 솔직하게 털어놔보라는 뜻으로 물끄러미 쳐다봐주니 쳐다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세나의 어깨또한 움츠러들었다.
솔직히 그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세나에게 방금 자기 입으로 털어놓은 것말고 뭔가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쯤은.
그래서 그게 대체 뭘까.
대체 뭐길래 갑자기 그런 제안을 한 걸까.
"하, 한 번 혼자서 해보고 싶지 않아?"
"아니, 뭐··· 그렇기는 한데."
"그러면 하는 거다?"
내가 여기서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면 방송에 필요한 장비나 세팅같은 건 모조리 자기가 조달해주기라도 할 기세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엇이 이 귀차니즘의 화신을 움직이게 만든 걸까.
일단 확실한 건 무조건 방송하고 관련이 있을 거라는 점이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방송 외에 다른 것에는 관심 자체를 보이지 않는 세나가 이토록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없으니까.
혹시 뭐, 2인 동반으로 나가는 대회같은 거라도 열리는 걸까.
"이유가 뭐야?"
"으, 응?"
누가봐도 정곡을 찔린 사람마냥 몸을 움찔해놓고선 무슨 소리냐는 듯 손을 파닥파닥 흔들어대는 꼴이 귀여우면서도 우스웠다.
거짓말을 할 거면 어색하기 그지없는 표정이라도 좀 어떻게하고 하던가.
표정이 저래서야 일곱 살 먹은 꼬맹이도 안 속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볼게."
"야, 내가 언제 거짓말을 했다고···!"
"난 누나가 거짓말 했다고 말한 적 없는데?"
내 말에 아차한 표정으로 눈동자를 데록데록 굴려대던 것도 잠시, 되도 않는 거짓말은 포기했는지 한숨을 푹 내쉰 세나가 휴대폰을 집어들더니 이내 그것을 날 향해 내밀어왔다.
"이, 이거 나가고 싶어서···"
그렇게 내밀어진 휴대폰 안에는ㅡ
-☆스트리머 대난투!☆
정확히 그렇게 적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