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9화 〉1부 (129/315)



〈 129화 〉1부

알바를 끝마치고 집으로 복귀하기 무섭게 그대로 침대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그 위를 뒹굴뒹굴 굴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도저히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었으니까.

'이런 건 이제 매일 할 수 있다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만큼 기쁘고 행복했으니까.

오죽 기쁘면 이러다가 너무 기쁜 나머지 혈압이 맥스치를 찍어서 그대로 뒷목잡고 행복사해버리는 건 아닐까하는 쓰잘데기 없는 걱정마저  정도였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리 되도록 내버려둘 생각따위 없었다.


장수할 거다.


진짜 벽에 똥칠할 때까지 가영하고, 지나하고, 세나하고 손 꼭 잡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거다.

'애기도 한 여섯 명  낳고···'

자식은 역시 아들보다는 딸이 좋겠지.

가영을, 지나를, 세나를 닮은 아이들은 대체 어떤 모습일까.


맘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확인해보고 싶을 정도였다.


아마 엄청나게 예쁘고 귀엽지 않을까.


잔꾀같은 건 부릴 생각하지 말고 지나가 시키는대로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시  번 다짐하게 된 것도 사실은 그래서였다.


오래 살면 뭐하겠는가.

정작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는 것을.


그리고 지나가 시키는대로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정말 들박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지나는 들박을 시도하다가 이쪽이 오히려 들박을 당하게 될  같아서 좀··· 힘들 것 같긴 하지만 상대가 세나나 가영이라면?

아마 가능하지 않을까.

대신 그만큼 더 운동을 열심히 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어떻게 가영은 잘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걱정이 안 들래야 안 들 수가 없는 게 마지막에 시원하게 싸지른 나와는 달리 가영은 느끼긴 했어도 제대로 가질 못했으니까.

원래 아는 맛이 제일 무서운 법이라고 이미 돌기 자지의 맛을 깨우쳐버린 가영인데 정작 제대로 맛을 보질 못했으니 얼마나 원통했겠는가.

그러니 모르긴 몰라도 아마 지금쯤 한껏 달아오른 몸 때문에 상당히 당혹스러워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거기에 카페에서 그러고 난 다음에 팬티도 갈아입질 못했으니··· 그건 그것대로 또 당혹스럽겠지.

혹시 손님한테 이상한 냄새라도 풍길세랴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채 손님과 어정쩡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가영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주머니 안에 들어있던 지갑을 꺼내들었다.


가영 쪽에서 먼저 키스를 해줬다는 것도, 이제부터 그녀와 점심 식사를 핑계로 매일같이 데이트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도 기쁘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가장 기쁜 점은 역시···

'이거지.'


속으로나마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지갑 안에 고이 넣어두었던 가영의 반지를 손가락으로 잡고 조심스레 꺼내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영이 이것의 존재를 깜빡했다는 사실이 가장 기뻤다.

안 그래도 볼 때마다 자꾸만 눈에 거슬리던 놈이라서 더 그랬다.


물론, 가영이 이걸 깜빡한 건 가게가 있는 건물에 도착할 때까지 뒷주머니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던 애기씨 주머니의 영향이 컸겠지만··· 그래도 깜빡했다는 게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지금쯤 눈치챘으려나.'

반지를 깜빡했다는 걸?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컸다.


손을 쓰는 것이 가영의 직업이니만큼 일하는 동안에도 몇 번이고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게 될텐데 그러면 눈치채지 못할래야 못할 수가 없을테니까.


맘 같아서는 다시는 찾지 못하도록 내다버리고 싶었지만 그렇지 않았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어차피 버리지 못할거라면 요긴하게 써먹기라도 해야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반지를 다시 지갑 안에다가 잘 밀어넣은 뒤 그대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반지를 돌려주는 대가로 가영에게서 뭘 받아내는  좋을까.


속으로 그런 고민을 하면서 저번에 만들어둔 딜도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그것을 숨겨놓은 서랍 쪽으로 향하려 했는데··· 얼굴 쪽에서 근질근질한 느낌이 올라왔다.

가느다란 실같은 게 찰싹 들러붙은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보아하니 하도 뒹굴거린 탓에 머리카락이라도 달라붙은 모양인데 그 느낌이 이상할 정도로 거슬려서 얼굴에 들러붙은 것을 떼어내기 위해 근질거림이 올라오는 곳을 향해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그 부근을 더듬거리다가 무사히 찾아내는데 성공한 것을 그대로 바닥을 향해 내던지려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우연찮게 손가락 사이에 잡힌 것의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순간 깨달았다.


뭔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뭐야 이거.'


그도 그럴 것이 색이 살짝 요상했다.


내 머리카락은 세나보다 살짝 톤이 옅은 갈색이었다.


그런데 지금  손가락 사이에 잡혀있는 것은 갈색은 커녕 노랬다.

그것도 그냥 노란 수준이 아니라 샛노랬다.

그렇기에 이런 색의 머리카락은 절대 내게서 나올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럼 이건 대체 뭘까.

왜 이런 게 내 침대 위에 떨어져 있었던 걸까.


'도둑?'

아니면 설마 스토커?


는 그럴 리 없지.

상황상 이건 무조건 지나의 것일 수밖에 없었다.


가영도 금발이긴 하지만 톤이 이 정도로 짙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뭣보다 가영은 내 방에 들릴만한 틈 자체가 없었다. 그럴 이유도 없었고.


그런데 가영이 내 방 침대에 누워서 뒹굴뒹굴한다?

솔직히 귀여울 것 같기는 한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영이 그러고 있는 모습이 잘 상상이 되질 않았다.


그에 비해 지나는··· 혐의도, 계기도 충분했다.

애초에 내가 알바하러 가기 전에 저번에 빌려줬던 맨투맨에 대해 언급하며 내 방으로 향하지 않았던가.


뿐만 아니라 지나에게는 이미 내 팬티를 반찬으로 쓴 전과가 존재했다.

거기에 이유는 모르겠지만 최근 들어 묘하게··· 달라붙어오는 느낌이기도 했고.


그러니 맨투맨을 가지러  방에 들렸다가 그 안에서 진하게 풍기는 내 냄새에 홀려 충동적으로 일을 저질렀던게 아닐까?


이를테면 내가 평소 베고 자는 베개에다가 얼굴을 파묻고 엉덩이를 높게 치켜든채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던지···


 모습을 상상하니 지나가 내 침대 위에 엎드린 채 스스로를 위로하는 모습이 직접 보기라도 한 것처럼 눈앞으로 선명하게 그려지는 것만 같아서 슬쩍 몸을 돌려 다시금 침대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침대 위에 코를 파묻은 채 혹시 그곳에 남았을지도 모르는 지나의 흔적을 더듬어봤지만···


'아닌가?'


야한 냄새같은 건 안 나더라.

이걸 아쉽다고 해야할지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뭐라 이루말할 수 없는 복잡한 기분을 잘근잘근 곱씹으며 원래 하려고 했던대로 서랍을 향해 다가가 아무도 모르게 숨겨놓았던 것을 꺼내 냄새를 맡아보았다.

며칠동안 방치해둔게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갓 만들었을 때처럼 인공적인 냄새같은 건 더는 나지 않았다.

거기에 갓 만들었을 때보다 좀 더 단단해진 것 같기도 했고.

이 정도면 충분히 선물해줘도  것 같아 흡족하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그것을 다시 서랍 속에다가 숨겼다.


써먹더라도 그냥 저것만 덜렁 내밀긴 좀 그랬으니까.

선물하려는 것의 모양이 저러니 하다못해 포장이라도 정갈해야하지 않겠는가.


운동 끝나는대로 문방구같은데라도 들려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몸에 걸치고 있던 것들을 훌훌 벗어던졌다.

그렇게 편한 것들로 옷을 갈아입은 뒤 순식간에 빨랫감으로 전락해버린 것을 챙겨들고 다용도실로 향했는데···


'어라?'

어쩐 일인지 알바하러 가기 전까지만 해도 반 정도 차있었던 빨래 바구니가 언제 그랬냐는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거기다가 던져두었던  티셔츠도 어딜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설마 또?'


순간 머릿속으로 불쑥 고개를 치켜든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혹시나해서 건조대를 확인해봤더니 내가 아침에 벗어둔 티셔츠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 옆에 침대 시트가 버젓이 걸려있었으니까.


저번에 가족끼리 회식한답시고 술 잔뜩 마시고 나서 그걸 이유로 지나의 방에 잠깐 신세를 지게 되었을   번 본적 있는 녀석이었다.

'했구만.'

그것도 그냥 한 게 아니라 침대 시트가 흠뻑 젖을 정도로 격렬하게 해댄 게 틀림없었다.

저번이야 내가 의도한 게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설마 또 저질러버릴 줄이야.


자꾸 남동생의 옷을 반찬으로 쓰는  못된 누나를 대체 어찌하면 좋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입꼬리를 쓱 말아올렸다.

생각하다보니 꽤 괜찮은 방법 하나가 머릿속으로 떠올랐으니까.

"누나."

"···응?"

갑자기 무슨 모범 운전자라도 된 것처럼 오늘따라 안전거리를 굉장히 착실하게 준수하고 있는 지나를 불러 내쪽을 돌아보게 만들었던 건 미리 생각해놓았던 것을 써먹기 위함이었다.


뭐라도 찾아보고 있었던 것일까.

벤치프레스용 벤치 끝에 걸터앉아 손에 쥔 휴대폰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던 지나가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내쪽을 돌아보았다.


"그, 미안한데 부탁 하나만 해도 돼?"


"부탁? 뭔데?"

"그 누나 아침에 운동갈 때 있잖아."

"조깅? 왜? 너도 같이 하려고?"


"아니, 그런  아니라···"

하루에 두 시간 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죽겠구만 새벽부터 뜀박질까지  수는 없지.


그런 건 지나같이 운동을 위해 태어난 사람만  수 있는 것이었다.


"왜? 아침에 뛰면 상쾌하고 좋은데."

"아니, 아무튼 그, 운동나가기 전에  좀 깨워주고 가면 안 돼?"

조심스럽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그런 부탁을 건넨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새 또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엄지손가락으로 화면을 무심하게 넘겨대고 있던 지나가 잘만 움직여대던 것을 갑자기 딱 멈추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눈치챘다.


방금 내 부탁으로 인해 지나가 살짝이지만 당황했다는 걸.

본인이 당황한 상태라는 걸 내게 숨기고 싶었던 것일까.


대화할 때는 상대방을 쳐다보는 것이 예의고 기본이거늘 지나의 시선은 휴대폰에 못 박힌채 그 위를 떠날 줄을 몰랐다.

"···왜?"

그리고 그것이 지나가 잠깐의 침묵 끝에 내놓은 것이었다.

내 말을 듣고 대체 뭘 생각한 건지는 모르겠다만 왠지 모르게 간신히 쥐어짜낸 듯한 느낌을 풀풀 풍기는 지나의 목소리는 살짝이지만 갈라져있었다.

마치 목이 바짝바짝 마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지나에게 일어난 자그마한 변화들을 모르는 척 하며 얼굴 위로 멋쩍은 표정을 띄워올렸다.


그리고는 이런 말을 하려니 살짝 좀 부끄럽다는 것처럼 쓰게 웃으며 뒤통수 쪽을 손으로 살살 문질러주었다.

"아니, 그··· 요즘 계속 아침 일찍 일어났잖아?"

"···그래서?"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최근들어서 알람소리가 잘 안들리더라고."

"그래?"

"응, 피곤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익숙해져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살짝 말꼬리를 늘어뜨려준 다음 오늘도 그래서 늦게 일어날 뻔 했다고 적당히 지어낸 경험담까지 덧붙이니 여전히 휴대폰 쪽에다가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지나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야 딱히 상관없긴 한데··· 그, 괜찮겠어?"

"응? 뭐가?"

"피곤하지 않겠냐고."

"음, 일찍 일어난만큼 빨리 만든 다음에 다시 자러가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되지 않겠냐는 듯 지나를 향해 배시시 웃어보이니 이쪽을 보고 있긴 했는지 휴대폰을 꼬옥하고 움켜쥐고 있던 지나의 손이 흠칫하고 경련했다.

"그래서 깨워줄거야?"


"···그래, 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마침내 지나의 입에서 허락이 떨어진 순간, 그 사실이 너무나도 기쁘다는 것처럼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은채 그대로 지나의  안으로 뛰어들었다.

"진짜? 고마워."


"무, 뭐하는 거야···"


그렇게 잘록하면서도 탄탄한 허리를 양팔로 꽉 끌어안으며 품 안으로 꼬물꼬물 파고드니 얼굴 가득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을 띄워올린 지나가 허리를 움찔움찔하고 떨었다.

운동하느라 잔뜩 흘린 것 때문에 전보다 훨씬 진해진 냄새 때문일까.

지나의 얼굴은 어느새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흥미로운  퉁명스럽기 그지없는 목소리나 은근히  몸을 뒤로 밀어내는 손길과는 어울리지 않게 가느다란 입꼬리가 위로 살짝 휘어진채 부르르 떨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마 저 호선이야말로 지나의 본심이겠지.

'자, 그러면···'

지나가 새벽마다  방으로 찾아오도록 만드는데 성공했으니 이제 판은 얼추 깔린 상황.


고로 이제 남은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곤히 잠들어있는,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남동생을 두고 지나의 이성이 과연 언제까지 굳건하게 버틸 수 있을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과연···'


얼마나 걸리려나.


내 옷을 반찬으로  정도면 이미 충분히 위태로운 상태인 것 같던데 말이다.

'3일? 5일? 일주일?'

아니면 설마 내일 바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대라는 걸 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 번 기록해보기로 했다.

지나의 행동이 시간이 지날수록 어떻게 달라지는 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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