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4화 〉1부 (124/315)



〈 124화 〉1부

오늘따라 엄마가 이상하다.


묘하게 초조해보인다고 해야할까.


그러면서 계속해서 이쪽을 힐끔힐끔 쳐다보시는 게  뭔가 할 말이라도 있으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설마···'

유한이한테 치근덕대는 년이라도 생긴 걸까.

아무튼 자꾸만 세나하고 유한이의 눈치를 보시는  딱봐도 둘이 있는 자리에서 꺼내도 괜찮을만한 말은 아닌 듯 해서 어느새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그릇과 숟가락 따위를 챙겨들고 슬그머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응? 누나 벌써 다 먹었어?"


그렇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순간, 유한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에 반사적으로 시선을 그쪽으로 내던진 순간 하필 눈에 들어온 것은 유한의 입술이었다.

입술에 뭐라도 묻은 것 같았던 걸까.


엄지손가락이 살짝 도톰한 입술을 꾸욱하고 누르고 있는 모습이 묘하게 야릇했다.

침을 꼴깍하고 삼켰던 건 다름아닌 그래서였다.

그렇게 눈으로 들어오는 걸 홀린  바라보고 있던 것도 잠시, 슬그머니 입술을 깨물어 순식간에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이상한 생각들을 밖으로 쫓아냈다.

"···어."

그 탓에 대답하는  살짝 늦긴 했지만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사실을 신경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에 내심 안도하면서도 속으로나마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이상한 걸로 따지면 자신도 엄마 못지 않긴 했다.


배란기도 진작에 끝났는데 유한을 두고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나 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을 억지로 다른 곳을 향해 돌렸던 것도 다름아닌 그래서였다.

가만히 있으면 또 이상한 생각을 하게  것만 같았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향하게 된 곳이 바로 가영의 용건에 관한 것이었다.


일단 유한의 얼굴에 근심같은 게 보이질 않는 걸 보면 껄떡대는 년이 있더라도 아직 그렇게까지 심한 수준은 아닌  했다.

애초에 그 정도였으면 엄마가 진작에 말을 했겠지.

그러니 아마 어떻게든 유한을 꼬셔보겠다고 이런저런 핑계로 유한의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는 수준 정도가 아닐까.


'으휴···하여간에 쓸데없이 잘생겨서는.'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내버려둘 생각은 없었다.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년들이 순식간에 심각한 수준으로 진화하는  자신은 이미 몇 번이나 봐왔으니까.


뿐만아니라 장사하는데도 방해가 될테니 잘 타일러서 앞으로는 그러지 못하도록 하는 게 좋겠지.

그러니 얼른 가영이 방으로 찾아와서 그 누군지 모를 년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기만을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는데···

똑똑ㅡ

세나하고 유한이 각자 방으로 돌아가기만을 기다리기라도 하셨던 건지 주방이 완전히 침묵에 잠기고 난 후에야 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나야? 엄만데···"

"응? 엄마?"


"그, 들어가도 될까?"


해서 문에 대고 괜찮다고 말을 하니 닫혀있던 문이 천천히 열리며  사이로 가영이 살짝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더니 그대로 방 안으로 쏙 들어왔다.


"무슨 일인데?"


"아, 그, 그게 실은···"


"혹시 나한테 뭐 할 말이라도 있어? 아니면 부탁할 거라든지."


"으, 응···?"

"아니, 아까 밥먹을 때부터 자꾸 쳐다보길래."

 시점에서 지나는 다시   의아함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영의 반응이 예상했던 것과는 좀 달랐으니까.

"···혹시 유한이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야?"

"으, 응?"


지금도 그랬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영이 얼굴까지 붉혀가며 당황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의아했다.

대체 왜 저러는 걸까.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얼굴을 살짝 빨갛게 물들이고 있던 가영이 입술을 슬쩍 한 번 깨물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 그냥 엄마가 지나 너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서···"

대체 무슨 부탁을 하시려고 저렇게까지 뜸을 들이시는 걸까.

혹시 가게가 어려워지기라도 한 걸까.


엄마의 태도가 하도 조심스러워서 순간 그런 생각마저 들었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유한이 밥 먹을 때나 운동할 때마다 했던 이야기들을 떠올려보면 손님이 아주 그냥 미어터진다고 그랬으니까.


그런데 가게가 어려울 리가 있나.


아니면 혹시 뭐 건물주가 갑자기 찾아와서 당장 가게 빼라고 갑질이라도 한 것일까.

뭔가 심상치 않은  흘러나올 것만 같은 느낌에 눈을 가늘게 뜬채 꾹 닫힌 입술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 호, 혹시 시간되면 엄마 운동  가르쳐줄 수 있을까···?"


정말 생각치도 못한 이야기가 가영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운동이라니.

지금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 걸까.


"···운동?"

"으, 응···"


"갑자기 운동은 왜? 엄마 바빠서 운동할 시간 같은  없다고 했잖아."


그건 단순히 운동하기가 귀찮아서 내뱉은 말따위가 아니었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지금도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 늦게 들어오곤 하는 가영이다.

그런만큼  잘 시간도 부족할텐데 갑자기 운동이라니.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신 걸까.


"그, 그랬지··· 근데 그··· 요즘 살이 좀 찐 것 같아가지구···"


"살···?"


진심으로 하는 말씀이실까.

아무래도 그런 듯해서 슬그머니 가영의 몸을 눈으로 훑어봤다.


허나 아무리 살펴봐도 살이 쪘다고 할만한 부분은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허, 허벅지도 좀··· 굵어진 것 같고···"


뒤이어 들려온 말에 짤막한 반바지 아래로 쭈욱하고 뻗어있는 새하얀 허벅지의 모습을 찬찬히 눈으로 훑어봤지만 암만봐도 어디가 굵어졌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가영의 눈에 그렇게 비춰졌다는 건 뭔가 그럴만한 계기가 있었다는 건데···


그게 대체 뭘까.

뭐길래 생전 관심조차 없으시던 운동에 갑자기 관심을 보이시게 된 걸까.


"그··· 되도록이면 실내에서 할 수 있는 걸로···  될까? 지나  하는 거 보면 그··· 하체 운동같은 건 거실에서 하고 그러잖니."


갑자기 몸매에 신경쓰게 되신 것도 모자라 굳이 하체 운동을  찝어서 지목한다라··· 애초에 여자가 갑자기 자기 허벅지나 하체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경우는 자신이 아는 한  하나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그건 내심 오랫동안 바랬던 것이기도 했다.


"엄마 혹시 남자 생겼어?"


"으, 으, 응?"


"관심가는 남자라도 생기셨습니까? 유 여사님?"

"무, 무슨 소리니···! 어, 엄마 나이가 몇 갠데···!"

'어이쿠.'

혹시나 싶어서  번 찔러봤는데 놀랍게도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얼굴을 저렇게까지 새빨갛게 물들인 채 격렬하게 부정할 이유가 없었다.

평소 가영이었다면 어땠을까.

분명 저렇게 당황하는 대신 쓰게 웃으면서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을 거다.

틀림없이 그랬겠지.


'하긴··· 우리 엄마 정도면 20대 애들하고 같이 세워놔도 안 꿀리긴 하지.'

생각해보면 이제서야 그리된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딸이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가영은 같은 여자 입장에서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미인이었으니까. 심지어는 몸매도 발군이었고.

나이가 살짝 흠이긴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정작 외모는 20대 후반처럼 보이는 것을.

거기에 능력또한 출중하니···

아니, 그것들이야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대체 어떤 남자일까.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맘같아서는 새아빠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꼬치꼬치 캐묻고 싶었지만 꾹 눌러서 참았다.


모처럼 가영이 용기를 낸 것 같은데 굳이 그걸 자신의 손으로 망가뜨릴 이유가 없었으니까.


다만 아주 조금, 그러니까 아주 조금··· 섭섭하긴 했다.

심지어 옛날부터 내심 이렇게 되기를 바랬음에도 그랬다.

하지만 잘 된 일임은 분명했기에 지나는 은근히 섭섭한 심정을 속으로 감추며 대신 히죽 웃었다.

"농담이야. 농담."

"얘, 얘는··· 농담도 무슨 그런 농담을···"


"그래서 어디를 중점적으로 빼고 싶은데?"

그 순간 가영의 눈이 향한 곳은 아까 조금 굵어진 것 같다고 말했던 허벅지였다.


그렇다는  그곳이 신경쓰인다는 소리겠지.


허벅지라.


마침 잘 됐다고 생각했다.


허벅지라고 하면 또 자신의 전문분야기도 했으니까.

"그··· 이, 일단은 하체 위주로···"


"하체? 흠, 일단 알았어."

역시 여자하면 허벅지 아니겠는가.

그 누군지 모를 남자와 가영이 어디까지 가게 될지야 아직 모르는 일이지만 만약 관계가 깊어진다면 앞으로 자신이 가르칠 것들이 틀림없이 도움이 될 것이다.

"나만 믿어. 엄마. 내가 확실하게 가르쳐줄게."


"그, 그래···"

그렇게 가영에게서 느꼈던 의문점을 무사히 해소하는데 성공하고 나니 이번에는 유한이 문제였다.


"어때 누나? 괜찮아?"


"뭐···  어울리네."


사실 가영보다도 더 신경쓰이는 게 바로 유한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의 유한은 어딘가 좀 달랐으니까.

그러니까··· 묘하게 색기가 흐르게 되었다고 해야할까.

생긴 건 여전히 사랑스러운 모습 그대로인데 분명 어딘가 좀 달랐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분명 평범하기 그지없는 행동들인데도 하는 행동들 하나하나가 묘하게 야릇하게 느껴졌다.

그게 꼭 이쪽을 유혹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자각이라고는 한톨도 없이 그런 행동들을 하고 있는 유한을 보고 있으면 자꾸만 욕망이 끓어올랐다.


그러면  된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그랬다.


최근들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유한에게 은근슬쩍 달라붙었던 건 다름아닌 그래서였다.

그렇게라도 그 뜨겁고도 초조한 감각을 가라앉혀놓지 않으면 언젠가는 정말 유한을 덮쳐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지금도 그랬다.


입고 있는 옷이 어떠냐며 슬쩍 코트 깃을 좌우로 벌려서 그 안에 받쳐입은 것들의 모습을 살짝 보여주는데 잘 어울리냐고 묻는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야했다.


당장이라도 안에 받쳐입은 셔츠의 단추를 모조리 풀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야했다.


"그래? 다행이다."

심지어는 그리 말하면서 배시시 웃는 모습 마저도 그랬다.

분명 자신이 기억하는 그대로인데 얼굴 위로 묘하게 핑크빛이 도는 같은 것이 보고만 있어도 입 안이 살짝 마르며 귀가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대체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하도 남자를 멀리하고 살았더니 그게 쌓이고 또 쌓여서 결국 발정이라도 난 걸까.


그런 것보다 더 신경쓰이는 게 있다면 단정해보이는 것들 위주로 골라입곤 했던 어제까지와는 다르게 복장에 한껏 힘을 준 듯한 유한의 모습과 기대라는 감정으로 가득 차 있는 유한의 얼굴이었다.


저래서야 꼭 여자친구하고 데이트하러 나가는 남자같지 않은가.


심지어는 하는 행동마저도 그랬다.

신발장 쪽에 붙은 작은 거울에다가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며  번이고 머리를 매만지고, 혹시 얼굴에 뭐라도 묻지는 않았을지 고개를 요리조리 돌려보며 확인하는 꼴이 누가봐도 데이트하러 나가는 남자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그런 모습들 하나하나가 이상할 정도로 신경이 쓰였다.


"···알바 끝나고 친구랑 약속이라도 있어?"

그렇다고 차마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어서 운동에 열중하는 척 하며 지나가는 듯한 목소리로 물으니 거울에 대고 자신의 얼굴을 열심히 비춰보고 있던 유한의 얼굴 위로 떠오른  그건  뭔소리냐는 표정이었다.

"응? 아니? 갑자기 그건 왜?"


"아니, 그냥 오늘 따라 좀···"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순간적으로 판단이 잘 안 됐다.


해서 시간을 벌기 위해 슬며시 말끝을 늘어뜨리고 있던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건 아까 유한을 보고 느꼈던 감상 그대로의 말이었다.


허나 차마  말을 입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 '응.'이라는 대답이라도 들어버리는 날에는 뭔가··· 뭔가  이상해질 것만 같았으니까.

그 탓에 입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목구멍 끝에 턱하고 걸려있던 말이 이내  안쪽으로 스르륵 가라앉았다.

"···신경써서 입었길래."

"그래? 그냥 평소처럼 입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대체 어디가 평소처럼이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입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그렇게 순간 울컥하고 치솟았던 걸 가라앉히기 무섭게 온갖 상념들이 머릿속으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혹시···'


좋아하는 여자라도 생긴 걸까.

그래서 그 여자한테  보이려고 저렇게 신경써서 꾸민 걸까.


어째 생각이라는 걸 하면 할수록 짜증이 났다.

동시에 배 안쪽에서 뭔가가 막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하는 것이 그걸 어떤 식으로든 해소하지 않으면  될 것같았다.


초조했다.

초조함이 미친듯이 몰려와 마음 속을 점령했다.

허나 전처럼 유한에게 달라붙어 그걸 해소할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과는 달리 마땅한 핑계거리가 없었으니까.


심지어 이쪽은 운동한다고 땀에 젖은 상태기도 했고.


늘 유한에게만 해결을 의존해왔기에 정작 유한을 쓰지 못하게 되니 그렇게 난감할 수가 없었다.

덕분에 골머리를 싸매고 있으려니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건 일전에 유한이 너무 얇게 입고 나가는 것만 같아서 충동적으로 빌려주었다가 잠시 잊고 있었던 어떤 것이었다.


평소처럼 유한을 통해 진정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그걸 쓰면 어떨까.


지금처럼 이런저런 핑계를 대가며 스킨십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편이 낫지 않을까.

충분히 일리가 있다 생각했고, 그래서 입을 열어 일부러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야, 이유한."


"응?"

"그러고보니까 너 저번에 누나가 빌려준 맨투맨 어쨌어."


"아, 그거? 맞다. 누나한테 돌려준다고 따로 챙겨놓고서 깜빡했네. 아마 내 방 소파 위에 있을 걸?"

그리 말한 유한이 나중에 가져다 주겠다고 말을 했지만, 고개를 저어 사양하고는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됐어. 내가 직접 가져오지 뭐."


"응? 그럴래?"

"···어, 그러니까 얼른 가봐. 이러다가 늦겠다."

그렇게 얼른 가보라고 유한의 등을 떠민 다음 조심스레 유한의 방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유한의 방 안으로 입성하게  순간 눈으로 들어온 것은···


얼른 가져가 달라는 것처럼 소파 한가운데에 보란듯이 널브러져 있는 맨투맨의 모습이었다.

그것의 모습이 시야 속으로 박혀들어온 순간, 마치 그것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몸이 저절로 그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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