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1부
상황이 대충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지는 오는 동안 얼추 파악이 끝난 상태였다.
그러니까 내가 눈치껏 파악한 것에 따르면 저 꼬추 새끼는 지금 자신이 성추행을 당했노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 범인으로 지목된 건··· 가영, 이 아니고 쪼기 뒤에서 다른 직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굉장히 억울해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는 저 사람이겠지.
이름이 그러니까··· 다연이었나?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그럴 거다.
저 치의 이름이야 어찌되었든 간에 자신이 지목당한 것도 아닌데 가영이 대표로 나서서 연거푸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녀가 이 가게를 대표하는 입장이기 때문이겠지.
'뭐, 아무튼···'
중요한 건 저 남자의 주장이 팩트인지 아닌지다.
그리고 그건 지금부터 차차 알아보면 되겠지.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남자의 고개가 내쪽으로 홱하고 돌아왔고, 내 얼굴이 자기가 예상했던 것과는 좀 많이 달라서 놀라기라도 했던 것일까.
얼굴 가득 짜증이라는 걸 머금고 있던 남자가 어깨를 움찔하고 떨더니 살짝 뒤로 물러났다.
"뭐, 뭐예요."
"아니, 무슨 일인가 싶어서요."
경계하는 눈으로 바라보길래 내 표정이 그 정도로 굳어있나 싶어 얼굴에서 힘을 빼려고 노력하며 그리 물었더니 언제 날 경계하고 그랬냐는 듯 남자의 얼굴이 살짝이지만 밝아졌다.
설마 같은 남자라고 내가 자기 편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기라도 한 것일까.
놀랍게도 그런 듯 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기다렸다는 듯이 본인이 겪은 일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을 이유가 없겠지.
그래서 어디 한 번 들어나 보자는 느낌으로 쭉 듣고 있었는데···
'···응?'
주의깊게 듣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건만 중간에 깜빡 졸기라도 했던 모양인지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그래서 아리송한 표정을 하고 있었더니만 그런 내 표정을 대체 어떻게 해석한 것인지는 몰라도 남자가 득의양양한 표정을 한채 내게 동의라는 걸 요구해왔다.
"그쵸? 그쪽이 생각해도 기분 나쁘죠?"
"아니, 잠깐만요···"
"그래서 경찰 불러달라고 하니까 CCTV부터 보자는데 이거 완전 협박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 좀··· 닥쳐봐요."
그런 말을 안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아니, 시발 하도 억울해하길래 강제로 대딸이라도 당했나 했더니만··· 샴푸 해주는 와중에 뒷덜미에 손이 닿은 것가지고 뭐?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네."
"뭐, 뭐요?"
"그··· 성추행 당해본 적이 있기는 해요?"
"갑자기 그게 무슨···"
황당하다는 듯 중얼대는 꼬추새끼의 얼굴을 눈으로 쭉 훑으며 보란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딱 보니까 없겠네. 그러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착각이나 하지."
"···뭐? 너 이 새끼 지금 뭐라고···!"
"됐고. 일단 cctv부터 확인해봅시다. 그리고 나서 그쪽이 말한대로 경찰이든 뭐든 부르면 되는 거 아닌가?"
"너, 너···! 여, 여기 직원이지?"
"직원이면 뭐 어쩌실 건데요. 그리고 신고할거면 그냥 직접 하시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해보니까 그것도 이해가 안 되네."
그리 말한 순간 씩씩대고 있던 놈의 어깨가 흠칫하고 떨렸다.
그 떨림이 눈으로 들어온 순간 직감했다.
이 새끼 이거 순 악질이라는 걸.
보아하니 이런 식으로 소란을 피운 다음에 조용히 넘어가주는 대가로 돈을 뜯어내든 뭔가를 얻어내든 하려 했던 모양인데···
"혹시 뭐 너무 놀라가지고 손이 달달 떨리고 그래요? 그래서 휴대폰 누르시기가 힘드신가?"
"····"
"딱 세 개만 누르시면 되는데. 어떻게 대신 눌러드릴까요?"
그리 말하며 놈으로 하여금 보란듯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슥 꺼내보이니 놈이 엄청나게 두려운 뭔가라도 목격한 것처럼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쳐대기 시작했다.
"어디가세요? 경찰 불러달라면서요."
"너, 너···! 나, 나중에 두고 봐!!"
역시나 찔리는 구석이 아예 없지는 않았던 모양인지 하나도 무섭지 않은 대사를 빼액하고 토해낸 놈이 미용실을 뛰쳐나갔다.
'으휴···'
"딱 보니까 이런 식으로 협박해가지고 돈이라도 뜯어낼 생각이었나 보네요."
아주 그냥 호다닥 빤스런을 치는 놈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가볍게 혀를 차다가 이내 가영이 서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 괜찮으세요? 고모?"
그리고는 여전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가영과 똑바로 시선을 맞추며 이제 안심해도 된다는 뜻으로 배시시 웃어보이니 그 순간 딱 고정되어 있던 가영의 눈동자가 요리조리 흔들렸다.
그렇게 알바 첫날부터 생각치도 못한 헤프닝이 있긴 했지만 덕분에 한층 수월하게 직원들 사이로 녹아들 수 있었다.
사실 녹아들지 못할 이유가 없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난 가영의 아들이라고 알려져 있지 않은가.
그러니 오히려 직원들이 내게 잘 보여야하는 입장이었다.
거기에 얼굴도 호감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을 정도로 잘 생겼고.
덕분에 생각치도 못하게 몇 가지 부작용마저 생길 정도였다.
이를테면 직원들이 일하는 와중에 가끔 헤하고 정신줄을 놓는다던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거기에 무슨 소문이라도 났는지 손님 수가 갑자기 확 불어나기도 했고.
오죽하면 이 주변에 미용실이 여기밖에 없는 건가하는 의심마저 들 정도였다.
그 탓에 안 그래도 제법 긴 편이었던 웨이팅 시간이 거기서 더 늘어나버렸지만 놀랍게도 불만의 목소리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
그 정도로 기다렸으면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손님들의 얼굴에서 그런 기색같은 건 찾아볼 수가 없었으니까.
물론, 다 내 훌륭하기 그지없는 서비스 덕분이었다.
마냥 카운터만 지키고 있는 것도 좀 그래서 기다리고 있는 손님들을 쭉 둘러보다가 저거 곧 터지겠다 싶은 이들이 눈에 띄면 차나 커피같은 걸 한 잔씩 가져다주곤 했는데 그게 생각했던 것보다 훠어어얼씬 효과가 좋더라.
"죄송해요. 기다리시느라 힘드시죠? 어떻게 이거라도 좀 드시고 계세요···"
"가, 감사합니다···!"
지금도 봐라.
언제 시계를 힐끔대며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냐는 듯 헤벌레 웃고 있지 않은가.
이번 타겟은 인상이 차가운 게 살짝 흠이긴 해도 충분히 미녀 축에 낄 수 있는 이라서 커피에 이어 미소까지 서비스를 해주니 꼴깍하고 침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타이트한 오피스룩으로 몸을 감싸고 있던 여성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그, 호, 혹시···!"
"네?"
"아, 아뇨··· 커, 커피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번 타겟은 그나마 좀 자제력이 뛰어난 편이었던 모양이다.
미소 서비스를 받은 이들 중 대부분이 거기서 더 참지 못하고 그대로 엑셀을 풀로 밟아버리곤 했으니까.
번호를 물어보는 건 차라리 양반이었다.
2시간 전에 손님으로 방문했던 여자가 손에 꽃을 들고 찾아오는 경우도 몇 번은 있었다.
당연한 말이긴 하지만 싸그리 다 거절했다.
흥미로운 건 내게 고백하는 이들의 수가 늘어날수록 가영이 일할 때 잔실수를 보이는 빈도 수가 덩달아 늘어난다는 점이었다.
'누가봐도 신경 쓰고 있으면서 신경 안 쓰는 척하려고 애쓰는 게 귀엽단 말이지···'
가영은 알고 있을까.
내게 고백하겠답시고 꽃까지 들고 찾아왔던 여자를 자신이 어떤 눈으로 노려봤었는지?
직원들이야 그 모습을 보고 가영이 아들바보구나하고 흐뭇하게 웃었을 따름이지만 그때 가영이 보였던 눈빛은 절대 아들에게 접근하는 도둑년을 경계하는 엄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수컷을 향해 접근하는 경계하는 암컷의 그것에 가까웠다.
요 며칠동안 가영이 어딘가 불만족스러워 보이는 걸 외면하며 그녀가 봉사해주는대로 받기만 했던 것이 나름대로 영향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귀여우니까 됐지 뭐.'
정말 사실대로 말하자면 가영을 그토록 초조하게 만드는 주범은 따로 있었다.
그리고 요 며칠동안 보여준 패턴대로라면 슬슬 등판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해서 슬그머니 카운터 쪽으로 다가가 그 밑에다가 숨겨놓았던 오늘의 도시락을 꺼내드려하니 그러기 무섭게 짤랑하고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에 밑으로 숙이고 있던 몸을 슬쩍 들어보니 눈으로 들어온 건···
"···안녕하세요."
괜히 아이돌이랑 배우라는 타이틀을 동시에 달고 있는 게 아닌지 남다른 외모와 아우라를 동시에 자랑하고 있는 갈색 머리의 여성이었다.
"네, 안녕하세요."
그리 말하며 눈꼬리를 사르르 접으며 눈웃음을 치는 것이 아주 그냥 요물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가영에 비하면 못하긴 했지만.
"그, 메이크업이랑 스타일링 좀 받으려고요."
"예약은 하셨나요?"
"네, 아마 어젯밤에 매니저 언니가 제 이름으로 해놨을 거예요."
"그··· 성함이···"
이번까지 포함해 벌써 4번째 만남이기도 하고, 외모도 직업도 남다른 편이다보니 사실 이미 외운지 오래였지만 일부러 모르쇠로 일관하니 여성이 샐쭉한 표정을 한채 슬며시 눈을 흘겼다.
"권, 하, 연이요. 어제도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제가 사람 이름을 잘 못 외워서요."
"그러면 이 참에 외우시면 되겠네요. 전 그쪽 이름 이미 외웠거든요. 유한 씨 맞죠?"
그랬다.
여기서 내 이름은 이유한이 아닌 유한이었다.
원래 이름 그대로 가자니 가영과 성이 다르다는 걸 두고 직원들이 의아하게 여길까봐 어쩔 수 없이 성을 날려버릴 수밖에 없었다.
"···네, 1시 30분으로 예약 되어있으시네요."
"그쵸?"
얘는 스캔들 걱정도 안 하는 걸까.
기본적으로 미녀인데다가 연예인이기까지 한 이가 이런 식으로 치근덕대니 나야 솔직히 기분이 나쁘지 않긴 한데 그래도 그런 걱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카운터에 매달린 하연을 상대하다보니 자길 김 실장이라 소개했던 이가 미용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솔직히 껄끄러운 건 저쪽이 더 했다.
얘는 그나마 덜 질척거리기라도 하지 저쪽은 연예인같은 거 할 생각 없다고 분명히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날 설득하지 못해서 안달이었으니까.
그래도 일단은 손님이니만큼 모르는 척 하기도 좀 그래서 그쪽을 향해 슬쩍 고개를 숙여보이니 흠흠하고 헛기침을 한 김 실장이 나름 친절해보이는 표정을 한채 내게 말을 걸어왔다.
물론, 용건은 이번에도 저번과 똑같았다.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만 생각없다니까요."
"아니, 대체 왜···"
혹시 이 세계 대한민국에는 잘생겼으면 당연히 연예인을 해야하는 법같은 거라도 존재하는 걸까.
속으로 그런 시덥잖은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원장실 문이 열리며 가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앗! 원장쌤!"
그에 카운터에 매달려있던 하연이 가영을 향해 쪼르르 달려갔다.
당연한 말이지만 원래부터 저렇지는 않았다.
가영이 나와 가족 관계라는 걸 알고 나서부터 갑자기 저러기 시작하더라.
보아하니 장수를 쓰러뜨리기 위해 말부터 공략해보겠다는 생각인 것 같은데···
'으휴···'
헛다리를 짚어도 아주 그냥 제대로 짚고 있는 하연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으니 어제도 받았던 것이 눈앞으로 불쑥 들이밀어졌다.
"···명함이라면 어제도 주셨던 것 같은데요."
"저희 회사 사장님 명함입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어제 건네받았던 것하고는 때깔이 좀 다르긴 했다.
종이부터 좀 더 고급지다고 해야할까.
"실례가 안 된다면 사장님하고 이야기 좀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정말 딱 한 번이면 됩니다."
이걸 어쩐다.
사장님 명함이라는데 무작정 거절하기도 좀 그래서 애꿏은 볼만 긁적이고 있으니 어떻게 가영에게 점수 좀 따보겠다고 열심히 아양을 떨어대고 있던 하연이 그런 날 구해냈다.
"언니! 유한 씨 그만 괴롭히고 이리와!"
그런 하연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본인의 입에서 '유한 씨'라는 호칭이 튀어나온 순간 자본주의적인 색채를 물씬 띄고 있던 가영의 눈빛이 살짝이지만 싸늘하게 변했다는 걸.
"가보셔야할 것 같은데요?"
"며, 명함은 여기 놔둘테니 부디 한 번만 긍정적으로 고려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생각은 해볼게요."
하연하고 김 실장 듀오는 꽤 좋은 패였다.
연예인이라는 특수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여태껏 내게 접근했던 그 어떤 여자들보다도 확실하게 가영의 심기를 긁어놓고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우리 가영이 누나 점심 챙겨드려야 되는데···'
하필 이 시간에 예약을 잡다니.
그래도 메이크업하고 스타일링만 받는 거면 그렇게까지 오래 걸리진 않을테니 끝나는대로 챙겨먹을 수 있도록 카운터 밑에 잘 넣어두었던 도시락을 챙겨 원장실로 향했다.
그리고는 굳게 닫힌 문을 두어번 정도 두들겨준 뒤···
"그, 점심 여기 두고 갈테니까 끝나면 꼭 챙겨드세요."
무슨 일이냐며 날 맞이해주는 가영을 상대로 그리 말하고는 그대로 그곳을 빠져나오려고 했는데 말이다.
미용 의자에 앉아 가영의 수발을 받고 있던 하연이 눈치도 없이 끼어들었다.
"어, 뭐야. 혹시 직접 만드신 거예요?"
"네? 아, 네."
"어쩜··· 원장님 아드님이 굉장히 참하고 효자네요."
"흠흠···"
기분 좋기는 해도 동시에 살짝 민망하기도 했던 것일까.
가영이 양볼을 빨갛게 물들인채 헛웃음을 흘리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꼬르르륵ㅡ
어디선가 뱃고동 소리가 울려퍼졌다.
당연한 말이지만 가영의 것은 아니었다.
주범은 따로 있었다.
"으··· 민망하네요. 아침부터 스케쥴 뛴다고 아무 것도 못 먹었더니···"
"괜찮아? 그러니까 속 안 좋아도 먹으라고 했잖아."
"그때는 진짜 속 울렁거렸단 말이야."
"지금은? 배 많이 고프면 간단하게 뭐라도 사다줄까?"
"됐어. 그래봐야 차 안에서 먹게될텐데 그럼 속만 더 안 좋아질걸."
하연의 말에 끄응하고 침음성을 흘리던 김 실장이 이내 가영을 힐끔힐끔거리기 시작했다.
누가봐도 뭔가 부탁하고 싶은 거라도 있는 듯한 눈치였고, 그 부탁이 뭘지야 솔직히 안 봐도 뻔했다.
그리고 가영은 손님으로 찾아온 이의 곤란한 사정을 외면할 정도로 매정한 위인이 되지 못했다.
"그··· 괜찮으시면 여기서라도 드시겠어요?"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가영의 말에 걱정으로 찌푸려져있던 김 실장의 얼굴이 확 밝아졌고, 덕분에 하연은 원장실 안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다만 혼자서 먹으려니까 뭔가 좀 민망하고 그랬던 것일까.
"그··· 보, 보니까 원장쌤도 아직 점심 전이신 것 같던데 같이 드실래요?"
배고프다고 할 때는 언제고 도시락 안에 든 걸 깨작거리기만 하던 하연이 민망함으로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 가영을 향해 제안했다.
저대로 가만히 내버려두면 무사히 끼니를 해결하기는 커녕 밥 먹다가 체라도 할 기세라 가영은 티나지 않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먹기로 해놓고 왜 혼자서 먹었냐며 유한이 섭섭해 할게 뻔했지만 그렇다고 저토록 곤란해하는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기도 좀 그랬으니까.
해서 아까 유한이 두고 간 도시락을 챙겨들고 하연의 맞은 편에 자리를 잡으니 언제 이쪽의 눈치를 보고 있었냐는 듯 표정이 확 밝아진 하연이 이쪽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여보였다.
"감사합니다···!"
차라리 여타 연예인들처럼 성격이라도 안 좋았다면 덜 신경쓰였을텐데.
그 누구에게도 들켜선 안 되는 씁쓸한 마음을 속으로 곱씹으며 가영이 도시락을 펼친 순간이었을 것이다.
"와아···"
제 앞에 펼쳐진 호화스럽기 짝이 없는 건 눈에 보이지도 않는지 하연이 입을 헤하고 벌린 채 감탄을 표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왠지 모르게 입맛도 돌고 기분도 좋아져서 가영은 기꺼이 젓가락을 집어들었다.
그렇게 하연이 바라는대로 해줬건만 어찌된 일인지 하연의 태도는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먹지는 않고 깨작대기만 한다고 해야할까.
문제는 그러면서 자꾸만 이쪽의 도시락을 힐끔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하나 드셔보실래요?"
솔직히 말하면 주기 싫었다.
유한이 자신을 위해서 힘들게 싸준 것인데 그걸 다른 이에게 나눠주는 건 그런 유한의 성의를 무시하는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유한이 자신을 생각하며 손수 만든 걸 하연에게 뺏기는 것 같은 느낌이라 그런 게 절대 아니었다.
"그, 그래도 괜찮을까요···? 아, 워, 원장쌤도 제 도시락 드셔도 돼요!"
그리 말하면서 하연이 호화스러운 반찬이 가득 담겨있는 칸을 이쪽을 향해 슥 밀었지만 솔직히 그쪽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저 뭘 집어가는지 확인이나 할겸 물끄러미 하연 쪽을 응시하고 있었더니 젓가락을 슥 뻗어 나중에 먹으려고 아껴두었던 것을 슬그머니 집어드는 게 아닌가.
"그럼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아···"
아껴두었던 것이 다른 여자의 입 안으로 쏙 들어가는 광경을 보고 있으려니 배 안에서 뭔가가 뒤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와아··· 요리도 잘하시는 구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꾸만 눈가가 떨렸다.
마그네슘인지 뭔지가 부족하면 눈이 떨린다던데 영양제라도 챙겨먹어야 하는 걸까.
그래도 원하는대로 하나 맛보게 해줬으니 이제 만족할거라 생각했는데···
"그, 저, 정말 죄송한데··· 하, 하나만 더··· 안 될까요? 제가 집밥느낌 나는 걸 먹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서···"
"···그래요."
손님을 상대로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만족이라는 걸 모르는 것 같은 모습에 자꾸만···
"···많이 드세요."
짜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