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0화 〉1부 (120/315)



〈 120화 〉1부

12시에 맞춰서 출근하기로 했지만 12시가 되려면 아직 좀 기다려야 했기에 도시락이나 싸며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이미 한 번 써먹은 적 있는 전략이긴 했지만 이건  의미가 다르다.

오늘은 딱 가영하고 내 것만 쌀 생각이니까.


그래야 둘이 같이 먹는다는 핑계로 원장실에 단둘이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냄새가 거의 안 나는 메뉴 위주로 도시락을 구성했던 것도 다름아닌 그래서였다.

냄새가 너무 진한 걸로 해버리면 그 냄새가 원장실에 그대로 남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원래 이런 건···'

꾸준하게 할수록 좋은 거다.


하물며 가영과 나의 관계는 어제를 계기로 전과는 극명하게 달라지지 않았던가.

그러니 직접  도시락이 주는 감상또한 전과는 사뭇 다를 터.

그렇게 주섬주섬 도시락  안을 채우고 있으려니 밥 먹고 한숨 자기라도 했는지 지나가 크게 하품을 하며 방 안에서 걸어나왔다.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암사자를 생각나게 했다.

잠에서 깬지 얼마 되지 않은 탓일까.


잠기운으로 젖어 평소보다  뚱해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는 지나는 입고 있는 티셔츠 안으로 손을 밀어넣어 배를 북북 긁고 있었다.


덕분에 살짝 말려올라간 티셔츠 아래로 잘록하면서도 탄탄한 복부와 그 아래 자리한 팬티인지 스패츠인지 모를 것의 모습이 훤히 보였다.


아래에 입고 있는 것이 엄청 짧기도 하고, 몸에 쫘악하고 달라붙는 스타일이라서 솔직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꼴렸는데···

'저거 아래에 아무 것도 안 입은 것 같은데···'


심지어 지나는 거기에 대고 아예 한술을 더 뜨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흔히 도끼자국이라 부르는 것이 까만색 스패츠 위로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덕분에 여러모로 탄탄하기 그지없는 지나의 몸에서 유일하게 군살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부위가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살집이 도톰하게 올라와있는 것이 꼭 잘 먹고 사는 고양이 주둥이를 보는 듯 했다.

야한 것도 야한 거지만 살짝이지만 귀엽게 느껴지는 그것의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으니 연신 하품하는 소리를 내며 어슬렁어슬렁 정수기를 향해 접근하던 지나의 몸이 순간적으로 움찔하고 떨렸다.

물론, 그건 말 그대로 잠깐에 불과했다.

언제 멈추고 그랬냐는  자연스레 움직임을 재개한 지나가 호쾌하게 물을 들이켰다.

자고 일어났더니 목이 많이 마르기라도 했던 것일까.


하도 벌컥벌컥 들이킨 탓에 미처 다 입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흘러나온 것이 지나의 턱을 타고 흘러내리더니 그대로 그녀가 입고 있던 티셔츠 위로 토도독 떨어졌다.


덕분에 살짝 젖은 티셔츠 위로 안쪽의 풍경이 비치기 시작했지만 그걸 신경쓰는 건 나뿐인 듯 했다.


지나는 전혀 신경쓰는 눈치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제자리에서 물을 두 컵이나 들이킨 그녀가 이내 내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런 지나의 시선은 어느새 내 앞에 놓여져있는 자그마한 도시락통 쪽에 고정이 되어있었다.

"엄마 가져다 드리려고?"

"응?"

"그 도시락 말이야."


"아, 응."


"흐으으음···"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 눈치였지만 지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머리를 내 어깨 위에다가 올려놓을 뿐이었다.


"아, 뭐하는 거야. 무거워."

"아ㅡ"

그에 장난치지 말라는 뜻으로 피식 웃으며 지나가 머리를 올리고 있는 쪽 어깨를 살짝 흔들어보이니 지나가 아랑곳하지 않고 작게 입을 벌렸다.


누가봐도 먹여달라는 의미임을 알 수 있는 그 몸짓에 솔직히 좀 당황했다.


세나라면 몰라도 설마 지나가 이런 행동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으니까.

뿐만 아니라 아까보다 훨씬 더 가까워진 거리 탓에 어느새 등을 꾸우우욱하고 누르고 있는 두 개의 커다란 살덩이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설마설마하긴 했지만 역시나 티셔츠 안에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상태인지 가슴 끝에 매달린 돌기같은 게 등을 콕콕 찔러대고 있었으니까.


"으, 응?"

"누나가 간 봐줄게. 아ㅡ"

그러니 얼른 내놓으라는 것처럼 다시 한  입을 벌려보이는 지나의 행동에 당황한 척 몸을 살짝 비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지나가 갑자기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었으니까.

저번에 내 팬티를 훔쳐서 그걸 반찬으로 쓰더니만  후로 그녀의 안에서 뭔가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던 것일까.

"자, 잠깐만 누나··· 젓가락 챙겨줄테니까···"

"젓가락질하기 귀찮아. 그러니까 얼른."

아니, 젓가락질이 귀찮으면 아침에 봤던 그 모습은 대체 뭘까.

그때는 아주 그냥 누가 뒤에서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전투적으로 젓가락질을 해대더니만 말이다.


먹여줄 때까지 놓아주지 않겠다는 걸까.


어느새 움직인 지나의 팔이  허리를 꼬옥하고 끌어안았다.


그에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하고 떨어보이니 내 허리를 끌어안고 있던 지나의 팔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윽···"


"아프지? 그러니까 얼른 내놔."

아프다기 보다는 행복했지만, 일부러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아니, 출출하면 그냥 말을 하지···"

"아, 얼른."

반복되는 재촉에 흘깃하고 지나를 향해 시선을 던져보니 마치 내가 돌아보기만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지나가  웃고는 눈을 감으며 입을 벌렸다.


그렇게 벌어진 입 안에 자리하고 있던 것이 날 유혹하듯 야릇한 움직임을 선보였다.

'시발···'


뭐지 이거?


진짜로 유혹하는 건가?


역시 지나라고 해야할까.

괜히 몸 쓰는 일을 업으로 삼은  아님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혀를 놀리는 솜씨가 예사롭지가 않았다.

해서 나도 모르게 꿀꺽하고 침을 삼키니 허리를 끌어안고 있던 팔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가며 지나의 가슴이 조금  강하게  등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미치겠네 정말···'

속으로 헛웃음을 흘리며 도시락 안을 채우고 있던 주먹밥 중에 하나를 집어 벌어져있던 지나의 입 안에다가 쏘옥하고 넣어주었다.


아마도 그 와중이었을 것이다.


지나의 입술이 주먹밥을 받아먹는 척하면서 살짝 입 안으로 파고 들어가있던 내 손가락을 쪼옵 소리가 나도록 빨았다.


"누, 누나···?"


그에 당황한 척 몸을 움찔하고 떨어보였더니 지나가 방금 그건 어디까지나 우연이었다고 주장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연스레  웃으며 내게서 몸을 떨어뜨렸다.

"응? 왜?"

그러면서  향해 그리 묻는데 뭐가 문제냐는 것처럼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순간 나까지 헷갈릴 정도였다.


'진짜 우연히 스친 건가?'

는 그럴  없겠지.

아무래도 내 팬티를 반찬으로 삼았던 일이 진짜 심경의 변화라도 일으킨 모양인데···


"아, 아냐··· 그, 간은 어떤가 싶어서."


"간? 음··· 괜찮네. 맛있어. 이 정도면 간도 딱 적당한 것 같고."


그게 뭔지는 차차 파악해보기로 하고 일단은 지나의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그렇게 우물우물 씹던 것을 꿀꺽하고 삼킨 지나가 이번에는 겉면에 베이컨을 말아놓은 것과 자신의 입을 번갈아 가리켰다.

"아니, 직접 먹으면 되지···"


"손에 기름 묻잖아."


"그러면 그냥 젓가락으로···"


"하나만 더 먹고 끝낼 건데 굳이 뭐하러 설거지거리를 만들어."

이왕 고생한 김에   고생하라는 지나의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며 지나가 지목한 것을 집어 어느새 내 옆에 자리를 잡은 지나의 입쪽을 향해 가져갔다.

물론, 이번에는 순순히 당해줄 생각은 없었기에 넣자마자 손을 황급히 뒤로 물렸다.

그러자 아까와는 다르게 지나가 살짝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내가 방금 넣어준 것을 우물거렸다.


"이것도."

"또···?"

"오늘따라 방울 토마토가 땡기네."


"그럼 내가 그냥 따로 씻어줄테니까···"


"아냐, 난 방울 토마토는   이상 먹으면 질리더라고."


그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논리일까.


"아니, 그게 무슨···"

"옛날에 운동할 때 진짜 질릴 정도로 먹었거든."

뭐, 그러시단다.


그래서 바라는 대로 방울 토마토 하나를 집어 지나의 입쪽으로 가져가니 그녀가 동그랗게 벌려놓고 있던 입술을 살짝 오므려 방울 토마토롤 꼬옥하고 고정시킨  내가 손잡이 삼아 움켜쥐고 있던 꼭지를 토마토와 분리시켰다.

그러더니 입술을 이용해 물고 있던 것을 그대로 입안으로 쪼옥 소리가 나도록 빨아들이길래 당황한 척 아까 지나의 입술과 닿았던 손가락을 앞치마에 대고 문질러 닦는 척을 했다.


그런 내 모습이 귀엽기라도 했던 것일까.

"뭐야, 부끄러워?"

"아니, 내가 언제 부끄러워 했다고···"

"얼굴 빨개졌는데?"


얼굴에서 열기라고는 단 한줌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란 척 몸을 움찔하고 떨면서 황급히 손을 들어올려 얼굴에 가져다대니 지나가 그런 날 보며 피식 웃고는 짤막하게 덧붙였다.

"뻥인데."

"아이···"

"뭘 이런 걸 가지고 부끄러워하고 그래? 가족끼리  먹여주고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래도···"

"아무튼  다봐줬으니까 누나는 거실에서 요가나 하고 있는다?"

누가보면 내가 먼저 간 좀 봐달라고 한  알겠네.

어처구니가 없어서 속으로 헛웃음을 흘리고 있으니 지나가 그럼 고생하라는 듯 손을 휘적휘적 흔들며 거실 쪽으로 사라졌다.

그런 그녀의 움직임에 맞춰 샛노랗게 물들인 머리카락이 요리조리 흔들렸고, 덕분에 슬며시 드러난 그녀의 귀는···


'흐으음···?'

살짝이지만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뭐, 그런 식으로 준비하는 와중에 생각치도 못한 헤프닝이 있긴 했지만 무사히 출근 준비를 끝낼 수 있었다.


그래도 첫 출근인만큼 나름대로 신경써서 차려입었는데 그게 거실에 매트를 깔아두고 고양이 자세를 취하고 계시던 한 누님의 눈에는 상당히 거슬렸던 모양이다.

"읏···"

뭉쳐있던 것이 풀어지는 느낌이 꽤나 시원했는지 앞으로 쭈욱하고 기울이고 있던 허리를 움찔하고 떨면서 살짝 야릇한 소리를 내고 있던 지나가 내 복장을 확인하고는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출근하려고?"


"응, 고모한테 12시에 맞춰서 나가겠다고 했으니까 이제 슬슬 출발해야지."

"잠깐만 기다려봐."


제법 단호한 목소리로 그리 말한 지나가 그대로 자신의 방을 향해 쪼르르 달려갔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재등장한 지나의 손에는 맨투맨같은 것이 하나 들려있었다.

"밖에 아직 좀 춥더라. 이거 입고 가."


"응···? 이거 누나 옷 아냐?"

나보고 지금 여자 걸 입으라고?

"남자가 입어도 상관없는 거야."


그 말대로 확실히 남자가 입어도 딱히 상관없을만한 디자인이긴 했지만 그래도 좀 이건 아니다 싶어서 거절하려고 했는데···

"만세."


지나는 퍽 단호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항변도 해봤지만 어림없더라.

"아니, 그럼 그냥  옷 입으면···"

"이제 나가봐야 한다면서. 그냥 이거 입고 가."

그리 말한 지나가 다시 한 번 만세를 요구해왔고, 그에 살짝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것들을 잠시 바닥에다가 내려놓고는 지나가 요구한대로 양손을 높게 들어올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내 앞으로 다가온 지나가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 몸 위에다가 덧씌웠다.


 속도가 어찌나 신속한지 내심 기가  정도였다.


"이제 됐지?"

"응, 조심해서 다녀와. 누나 옷에다가 이상한 거 묻히지 말고."


언제 단호하고 그랬냐는  답지않게 손까지 살짝 흔들면서 살갑게 날 배웅하는 지나의 얼굴은 묘하게 기분이 좋아보였다.

마치 목표로 하고 있던 무언가를 성취해내는데 성공한 그런 얼굴이라고 해야할까.

'설마···'


그 순간  가지 가능성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가볍게 고개를 가로젓는 것으로 부정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그런 짓까지 할  같지는 않았으니까.


붙잡을 때는 언제고 얼른 가라고 등이라도 떠미는 것처럼 부지런히 손을 흔들어대는 지나를 뒤로한채 그대로 가영의 가게로 향했다.


그렇게 가영이 운영하는 미용실에 도착한 순간, 날 반긴 건 여느 때처럼 손님으로 북적북적거리는 미용실 내부의 풍경과···

'···뭐여 저건.'

이유는 모르겠지만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화를 내고 있는 한 명의 놈팽이였다.

혹시 뭐 직원이 실수라도 저지른 걸까.

실수로 땜빵이라도 냈다던지···

'뭐, 그 정도면 충분히 저럴만 하긴 한데···'


그런 것치고 남자의 머리는 살짝 젖은 걸 빼면 지극히 멀쩡했다.

그래서 더 의문이었다.

대체  때문에 저렇게까지 화가 났나 싶었으니까.

 의문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대체 어디서 굴러먹던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난처함이라는 감정을 얼굴 가득 머금은 채 씩씩거리고 있는 놈을 향해 거듭 고개를 숙이고 있는 가영의 모습 때문이었다.

어쩔  몰라하며 쩔쩔매고만 있는 가영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놈이 씨익하고 비웃음에 가까운 것을 얼굴 위로 띄워올리는 광경이 시야 속으로 파고들어온 순간···


'···씹새끼가?'


머릿속에서 뭔가가 툭하고 끊어졌다.


"아니 그러니까 일단 경찰부터 부르라니까요?!"


"그, 손님 일단 좀 진정하시고··· 저희 가게에는 CCTV도 있으니까요. 일단 그것부터 확인해본 다음에···"

"CCTV를 뭐하러 보는데요?! 내가 기분이 나빴다니까? 당사자가 기분 나쁘면 성추행인거 몰라요?"


"그···"


"아니면 혹시 지금 협박하는 거예요?"


꼬추 새끼의 입에서 성추행이니 뭐니 하는 단어가 튀어나오니 뭐랄까 기분이 굉장히 아스트랄해짐과 동시에  끊어졌던 것이 다시 붙으려고 했지만 그러지 않도록 주의하며 놈의 뒤로 접근했다.


덕분에 놈보다 한 발 앞서 날 발견한 가영의 두 눈이 당황으로 살짝 커졌지만··· 일단은 외면했다.

외면하고 씩씩대고 있는 놈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그, 저기요."


"···뭐야?"

뭐긴 뭐야.

나다 씹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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