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1부
아무래도 사람들의 반응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만큼 세나는 주기적으로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를 모니터링하는 편이었다.
물론, 거기에 올라오는 글들을 너무 맹신해도 좋지 않다는 것쯤이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커뮤니티 확인을 게을리 하지 않는 건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대충 어떤지, 또 최근 트렌드는 어떤지 파악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떄문이었다.
마침 또 휴방한다고 미리 공지를 해놔서 방송 준비를 할 필요도 없겠다 느긋한 마음으로 각종 커뮤니티들을 들락날락거리며 혹시 자신이나 유한에 관해서 뭔가 올라온 건 없는지 살펴보던 세나의 손이 이내 추천 게시물 쪽으로 향했다.
「이번 달 맥심 표지 ㅗㅜㅑ」
「편순이 남자손님한테 콘돔 추천해준 썰 푼다」
「실시간 조아대 에타...jpg」
「요새 코인 근황...gif」
새로 올라온 것들 중에서 걱정할만한 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확인했으니 시간이나 때울 겸 최근에 어떤 게 화제인지 파악해두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추천 게시물을 둘러보던 와중에 유난히도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하나 있었고, 그에 빠르게 주변을 한 번 살핀 세나가 당당히 맨 위에 링크되어 있는 것을 향해 슬그머니 손가락을 뻗었다.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한때 맥심의 열혈 구독자였던 사람으로써 정말 순수하게 요즘 맥심 표지의 상태는 어떤지 확인하기 위해서 손가락을 뻗었던 것이었는데···
하필이면 그때 살짝 렉이 걸려버리는 바람에 원래 누르려던 것 대신 그 아래에 있는 것을 눌러버리고 말았다.
그렇기에 어디까지나 우연이었다.
세나가 「편순이 남자손님한테 콘돔 추천해준 썰 푼다」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을 가진 글을 확인하게 되었던 것은.
의도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전개에 살짝 얼굴을 찡그리고 있던 것도 잠시, 이왕 이렇게 된 거 대체 뭔 글이길래 올라온지도 얼마 되지 않은 주제에 이리도 추천을 많이 받았나 확인이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세나가 슬그머니 휴대폰 화면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솔직히··· 여자라면 궁금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제목아닌가.
제목 : 편순이 남자손님한테 콘돔 추천해준 썰 푼다.
내용 : 아는 년들은 알겠지만 저번에 쌉 부자 동네에서 알바하는 썰 올렸다가 념글갔던 편순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웹툰이나 보면서 꿀빨고 있었거든?
근데 갑자기 손님와서 딱 봤더니 얼굴이 ㄹㅇ 미쳤더라;
그 왜 연예인들 실제로 보면 막 뒤에서 후광같은 거 뿜어져 나온다잖아
거의 그 급이었음;
마스크하고 모자로 얼굴 거진 다 가리고 있는데도 무슨 아우라같은게 줄줄 흘러나오는게···
그래서 도난방지용 거울로 몰래 쳐다 보고 있었더니 갑자기 콘돔 코너에서 딱 멈추는 거임
그러더니 한참 들여다보고 있길래 뭐 잘못됐다 싶어서 호다닥 달려가봤거든?
그런데 갑자기 손님이 내쪽 보면서 콘돔 사려고 하는데 사이즈를 어떤 걸 사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하는 거임
순간 너무 당황해서 신종 좆뱀수법인가 싶더라;;
그래서 멍타고 있었는데 나 쳐다보면서 살짝 뚱한 목소리로 엑스라지면 대충 몇 센티 정도 되냐고 묻는데 솔직히 그때 좀 흘렸음 ㅎ;;
심지어 혼잣말이긴 했는데 엑스라지도 작을까봐 걱정하더라
엑스라지면 대충 20센티 넘는 걸로 아는데 그걸로도 부족할 정도면 씹대물 아니냐?
아무튼 그때는 겁나 당황스러워 가지고 얼타고 있으니까 갑자기 또 파는 것들 중에서 혹시 써본 거 있냐고 묻는 거임;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있다고 대답하니까 파는 거중에 어떤 거 써봤냐길래 써본 적 있는 거 손으로 찍어줬거든?
(아 참고로 본인 아직 아다임;; 콘돔은 딜도 쓸 때밖에 안 써봤음 ㅎ;)
그랬더니 이번에는 그중에서 뭐가 가장 좋았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돌기 진짜 촘촘하게 박혀있는 걸로다가 추천해줬거든?
그리고 나서 속으로 아차했는데 이번에는 안에 느낌이 어떻냐고 묻대?
그래가지고 긁어주는 느낌이 좋았다고 말하니까 그거랑 돌기 더 촘촘한 걸로 두 박스 사감 ㅎ···
참고로 통짜로 두 박스 말하는 거임 ㅋㅋ 다 뜯으면 한 수백개 될듯
시발 보니까 바로 쓰려는 것 같던데 진짜 어떤 년인지 모르겠지만 존나 부럽더라;
.
.
.
그래서 손님 가자마자 바로 내 돈으로 그 남자가 사간 걸로 두 박스 결제했다.
알바 끝나자마자 우리집 딜돌이한테 씌우고 잔뜩 상상야스할 예정 ㅎ;;
거의 승급전 마지막 판에서나 보일 법한 집중력을 선보여가며 화면 속에 적힌 것을 읽어내려가던 것도 잠시, 이내 세나의 얼굴 위로 떠오른 것은 쓴웃음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말이 되나 싶었으니까.
거의 뭐 야한 만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상황 아닌가.
상식적으로 이런 일이 현실에 있을 리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틀림없이 적당히 지어낸 말일거다.
아마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말까지만 사실이고 나머지는 다 거짓말 아닐까.
'그래도···'
솔직히 좀 흥분이 되긴 했다.
그만큼 자극적인 상황이었으니까.
여자한테 그런 걸 묻는 남자라니.
하물며 잘생기고 거기까지 크다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달아오르는 듯한 느낌에 아까 전부터 머리를 콕콕 찔러오던 숙취마저도 잊은 채 애꿏은 침만 꼴깍꼴깍 삼키고 있던 것도 잠시, 세나가 슬그머니 스크롤을 내렸다.
당연히 밑에 달린 댓글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댓글 : 그래서 했냐?
댓글 : 남자 사진은 ㅇㄷ?
ㄴ 사진을 어케 찍어요;; 여기 쌉부자 동네라서 잘못 걸리면 진짜 인생 망함
댓글 : ㅉㅉ 병신련 대놓고 대주겠다고 한 건데 그걸 못 먹누
ㄴ ㄹㅇ ㅋㅋ 나같았으면 이런 건 직접 껴봐야 아는 거라고 멘트 딱 치면서 바로 화장실로 끌고 갔다.
ㄴ 그리고 니도 경찰서로 끌려갔을 듯 ㅎㅎ;;
ㄴ 제발 히토미 좀 그만 봐!!
댓글 : 그래서 어느 회사껀데 ㅅㅂ 나도 알려줘
댓글 : 인증 없으면 뭐다?
댓글 : 응~ 개주작~ 안 믿어~
댓글 : 지금쯤 그 새끼는 니가 추천해준 거 끼고 여자친구꺼 미친듯이 쑤시고 있을 듯
ㄴ 씨발 이걸 폰토라레 당하네 에반데 ㅋㅋㅋㅋ
댓글 : 남자 새끼가 씹걸레놈인가 보네 ㅋㅋ 콘돔추천 아 ㅋㅋㅋ
댓글 : 자위가 언제부터 야스가 됐누..
댓글 : 근데 더블엑스라지면 몇임?
ㄴ 몰라! 섹스 안 해봤어!!
ㄴ 아 그래;;
ㄴ 안 x 못 o
ㄴ 씹련이;;
댓글 : ㅗㅜㅑ 두 박스나··· 상상만해도 개꼴리누···
댓글 : 콘돔을 종류별로 써봤다고? 씹련이 어디서 기만질이누
ㄴ 글 안 읽음? 딜도 쓸 때 써본 거라잖아
ㄴ 앗··· 아아···
ㄴ 어라···? 나 어째서 눈물이···?
추천 게시물에 올라갔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글이 올라온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벌써부터 온갖 댓글들로 가득 차 있는 댓글란을 천천히 눈으로 훑던 것도 잠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꼴깍 소리를 내며 침을 삼킨 세나가 조심스레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동시에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만약 정말 그런 남자가 현실에 존재한다면 어떻게 생겼을까 하고.
글 내용에 따르면 엄청나게 잘생겼다던데···
'잘생긴 남자···'
라고 말을 해도 솔직히 떠오르는 얼굴은 딱 하나 뿐이었다.
그러니까··· 유한 말이다.
동생이라서 그렇지 솔직히 세나는 여태껏 살아오면서 유한보다 잘생긴 남자를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연예인들하고도 비교해봐도 그랬다.
아마 유한이 진로를 그쪽으로 잡았다면 지금쯤 어마어마하게 유명해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망상에 어느새 유한을 대입하게 되었던 것은.
처음 한 번이 어렵다고 한 번 시작되니 그야말로 순식간에 머릿속을 가득 채워버린 망상의 향연에 화들짝 놀란 세나가 격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현실성이 없는 건 이쪽이 더 했으니까.
유한이 본인의 입으로 직접 지금까지와는 달라지겠다고 말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런 짓까지 할 리 없었다.
게다가 유한이 뭐하러 그런 걸 그토록 잔뜩 산단 말인가?
사봐야 어차피 쓸데도 없을텐데 말이다.
다른 이도 아니고 동생이나 다름없는 유한을 가지고 그런 말도 안 되는 망상을 했기 때문일까.
세나는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가슴을 콕콕 찔러대는 걸 느꼈다.
그에 몸서리를 치고 있는 와중에도 그녀의 손가락만큼은 솔직했다.
아주 솔직하게 그녀가 바라는 것을 하얗게 물든 칸에다가 적어넣고 있었다.
작성할 내용 : 라는 내용의 동인지 추천좀;; 아니면 품번이라도;;
그렇게 막 작성을 끝마친 걸 그대로 등록하려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문 너머에서 유한의 목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려왔고, 그에 화들짝 놀란 세나가 어깨를 움찔하고 떨며 꼬옥하고 움켜쥐고 있던 휴대폰을 그대로 침대에다가 처박았다.
그 모습이 꼭 도둑이 제 발을 저리는 듯 했다.
하필이면 댓글을 등록하려던 찰나에 유한의 목소리를 들어버렸기 때문일까.
기분이 이상했다.
바로 조금 전에 유한을 가지고 했던 말도 안 되는 망상을 유한에게 들켜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덕분에 심장이 콩닥콩닥하고 난생 처음 겪어보는 박자로 뛰는 걸 느끼고 있으려니 쿵쿵하고 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뭐야···'
어디 나갔다 오기라도 했나?
멀어지는 대신 시간이 지날수록 가까워지는 소리에 의아함을 느끼고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던 것도 잠시, 슬그머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그대로 방을 빠져나왔다.
그러자 눈으로 들어온 것은ㅡ
"뭐야? 깨어있었어?"
자신을 보며 쓰고 있던 마스크를 거칠게 벗는 유한의 모습이었다.
솔직히 좀 당혹스러웠다.
그것만으로도 방금 봤던 글의 내용이 머릿속으로 불쑥 떠올랐으니까.
그 와중에 더 당혹스러웠던 것은 유한이 마스크 뿐만 아니라 모자까지 푹 눌러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 마치 그 글에서 묘사되던 손님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숙취는? 머리 아픈 건 이제 좀 괜찮고?"
"으, 응··· 그, 근데 어디 갔다 온 거야?"
"어? 아, 잠깐 요 앞에 편의점 좀."
쿵···! 쿵···!
마스크와 모자에 이어 편의점이라는 장소까지.
공통점이 하나 더 추가된 순간 콩닥콩닥 뛰어대던 심장이 언제 그랬냐는 듯 크고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내심 재수없게 상황하고 타이밍이 딱 맞아떨어진 것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유한의 손에 들려있는 봉투 쪽으로 눈길이 갔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눈이 제멋대로 그쪽을 향했다.
"···편의점은 왜?"
"응? 그냥? 좀 출출해서 과자랑 이것 저것 좀 사왔는데."
"그럼··· 나 하나만 주면 안 돼?"
"뭐야, 며칠 전에 잔뜩 사다놓지 않았어? 설마··· 그 많은 걸 벌써 다 먹었어?"
"그··· 아, 아무튼 하나만 줘 봐."
"아, 씨··· 이럴 거면 갈 때 누나 것도 사오라고 말을 하던가. 딱 나먹을 것만 사왔구만···"
짜증난다는 듯 뒷덜미를 벅벅 긁어대던 것도 잠시, 유한이 이쪽의 얼굴을 힐끔대며 말했다.
"···진짜 딱 하나만이야."
"···응."
"그래서 뭐 먹고 싶은데."
"뭐뭐 있는데?"
"응? 어···"
"···아, 아니다. 그냥 내가 직접 보고 고를게."
지금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쯤이야 알고 있지만, 그래도 직접 확인해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그냥 왠지 모르게 그랬다.
그렇기에 불안했다.
만에 하나 유한이 여기서 거절하기라도 한다면··· 그건 안 된다고 난색을 표하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아이··· 또 맛있는 것만 쏙 빼갈려고. 에휴··· 그래 봐라, 봐."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유한이 손에 꼬옥하고 쥐고 있던 봉투를 이쪽으로 내밀었고, 찔리는 구석따위 하나도 없어보이는 그 몸짓에 찬물이라도 뒤집어 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몰려온 것은···
"···누나?"
뭐라 이루말할 수 없는 민망함이었다.
얼굴이 미친듯이 화끈거렸다.
그래서 차마 얼굴을 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돼, 됐어···! 치, 치사해서 안 먹는다. 치사해서···!"
"아니, 내가 뭐 안 준다고 했나? 가져가라고 했잖아."
"돼, 됐다니까?!"
누군가의 망상에 불과한 글을 보고 이상한 의심이나 한 자신에게 그럴 자격따위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괜히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내며 유한의 앞에서 도망쳤던 건 다름아닌 그래서였다.
그렇게 자신의 방으로 호다닥 달아나는 세나의 뒷모습을 보면서 유한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가 하면···
'시발 진짜 좆될 뻔했네···'
차마 겉으로까지 그러진 못하고 속으로나마 열심히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집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콘돔을 따로 빼서 마당 한쪽에 몰래 숨겨두지 않았다면 여기서 정말 빼도 박도 못하고 걸렸을테니까.
어쩌면 지나가 봉투 안을 확인하려고 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리했던 것이었는데 지나도 아니고 설마 세나가 이럴 줄이야.
'진짜 미리 빼놔서 다행이지···'
만약 여기서 세나한테 콘돔의 존재를 들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야 안 봐도 뻔했다.
보나마나 지나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내가 콘돔을 두 박스나 사왔다고 일러바쳤겠지.
혹은 지나에게 향하는 대신 이 자리에서 그대로 날 추궁하기 시작했거나.
둘 중에 어느 쪽으로 이어졌든 간에 결국 결과는 똑같았을 거다.
늦든 빠르든 내가 콘돔을 잔뜩 구매했다는 사실이 지나의 귀로 들어가게 되었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뭐···
'어떻게 됐으려나.'
상상해보려다가 말았다.
세나를 의식해서 그리했던 건 아니었지만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어찌되었건 들키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들켰을 때를 상상하는 것만큼 의미없는 행동도 또 없겠지.
지금은 그런 걸 상상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쟤를 진짜 어떻게 내보내지···'
그래, 그걸 생각해야할 때였다.
라고 고민하다가 세나의 방을 향해 내던지고 있던 시선을 거두고는 그대로 내 방으로 향했다.
'아.'
그리고 그렇게 방에 도착하기 무섭게 쓸만한 핑계 하나를 간신히 생각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