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1부
룰루랄라하며 씻고 나가니 가영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샤워기 소리 듣는 게 부끄러웠나?'
하여간에 이상한데서 부끄러워 한다니까.
속으로 씩 웃으면서 젖은 머리를 수건을 이용해 탈탈 털어주며 방을 빠져나오니 주방에서 가영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당장 뭐라도 하지 않으면 진득하기 그지없었던 아침 인사에 대한 기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것일까.
분명 문 닫히는 소리나 내가 낸 발소리를 들었을텐데도 싱크대 앞에 매달려 그 위에다가 늘어놓은 것들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가영의 뒤로 다가가 슬그머니 그녀의 몸을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가영의 어깨에 턱을 올린채 그녀가 꺼내놓은 것들을 살피는 척을 했다.
"흐음, 콩나물국 하시려고요?"
당연한 말이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설마 내가 방도 아니고 언제 누가 들이닥칠지 모르는 탁 트인 주방에서까지 이렇게 노골적으로 애정표현을 할 줄은 몰랐는지 가영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채 몸을 흠칫흠칫하고 떨기 바빴으니까.
그렇게 당황하고 있던 것도 잠시, 이러다가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문득 고개를 치켜들기라도 했던 것일까.
"유, 유한아·· 이러면 안 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되는지 꼴깍 소리가 나도록 침을 한 번 삼킨 가영이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내 몸을 살살 떠밀기 시작했다.
"왜요?"
그에 살폿 웃으며 그녀의 귀에 대고 그리 물었다.
"호, 혹시 누가 보기라도 하면···"
역시나 그게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누가요?"
"그, 지, 지나가···"
"지나 누나 운동하러 간 거 아니에요? 올때 보니까 현관에 신발 없던데."
틀림없이 그럴 거다.
내가 선물해준 거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본능적으로 그게 엄청나게 좋은 신발이라는 걸 알아차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최근들어 지나는 내가 선물해준 운동화만 신고 다녔으니까.
그런데 그게 보이질 않는다는 건 평소처럼 조깅하러 나갔다는 소리겠지.
대충 그런 논리로 가영의 핑계를 깨부수니 가영이 이번에는 다른 이를 핑계로 내세웠다.
"세, 세나도 있잖니···"
"세나 누나요?"
"으, 응···"
그러니 얼른 놓아달라는 것처럼 내 배를 손바닥으로 꾹꾹 떠밀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가영의 귀에 대고 쿡쿡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럴 때마다 품 안에 갇힌 가영의 몸이 흠칫흠칫하고 떨리는 게 참 좋았다.
"에이··· 세나 누나는 누가 깨울 때까지 안 일어나는 거 잘 아시면서···"
지금 그걸 핑계라고 댄 거냐는 뜻으로 핀잔하듯 말을 하니 확실히 반박할만한 말이 없었는지 가영이 몸을 작게 움츠렸다.
"그, 그래도··· 술 마셨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누구 내려오는 소리 들리면 바로 떨어져드릴테니까."
그러자 싱크대 쪽에 환기용으로 달아놓은 자그마한 창 위로 비치던 가영의 얼굴이 모호하게 변했다.
마치 그때라도 놓아준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할지 아니면 계속 불안에 떨어야할지 헷갈려하는 표정이라고 해야할까.
둘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쿡하고 웃고 말았다.
그러자 창문 위로 비치던 가영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아··· 진짜 우리 고모 왜 이렇게 귀엽지."
"····"
"다른 여자들은 아무리 예쁘고 귀엽게 생겼어도 징그럽기만 한데···"
당신은 다르다는 뜻으로 가영의 목덜미에 코를 파묻은 채 애교라도 부리듯 얼굴을 부비부비하니 그 느낌이 간지럽기라도 했는지 가영이 몸을 살짝 떨며 안 그래도 움츠리고 있던 몸을 바짝 움츠렸다.
그 모습에 더는 참지 못하고 가영의 목덜미에 대고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쪽쪽하고 입술이 어딘가에 찰싹 달라붙었다가 떨어지는 소리가 쉬지 않고 주방 안으로 메아리쳤다.
"유, 유한아·· 이, 이제 그만···"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하는 가영의 목덜미에 코를 꾸욱하고 누른 채 그녀의 몸에서 나는 달콤하면서도 우유향같은 냄새를 만끽하다가 슬그머니 몸을 떨어뜨렸다.
덕분에 품 안에서 해방된 가영이 살짝 벅차오른 숨을 꾹 억누르며 '후우··'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얇은 반바지에 감싸여있는 엉덩이를 살살살살 쓰다듬기 시작하니···
스으윽··· 스윽···
"무, 뭐하는 거니···!"
가영이 화들짝 놀라며 내 손을 피했다.
"네? 뭐가요?"
"고, 고모 엉덩이 막··· 만지고 그러면 안 돼···"
"그러면 만지는 거 말고 꽈악하고 움켜쥐는 건요?"
"그, 그것도···"
그리 말하며 양손으로 엉덩이를 허둥지둥 가리길래 가볍게 혀를 차며 살짝 수그렸던 몸을 바로했다.
"치··· 맨날 안 된다고만 하시고···"
"나, 남자가 그렇게 여자 몸 막 만지고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왜요?"
"그, 그건··· 여, 여자가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
"무슨 오해를 어떻게 하는데요?"
남녀의 정조관념이 서로 뒤바뀐 세계이니만큼 이 세계에서 남자가 여성의 몸을, 그것도 은밀한 부위를 더듬는다는 건 사실상 날 따먹어달라는 유혹이나 다름없었다.
가영이 말하려 했던 것도 아마 그것이겠지.
그럼에도 채 말을 잇지 못하고 애꿏은 얼굴만 빨갛게 물들이며 침묵하고 있는 건 그런 말을 했을 때 내가 할 말이 예상되서 그런 게 아닐까.
"네? 고모? 안 알려주실 거예요?"
"그, 그건··· 그러니까···"
"안 알려주시면 밖에 나가서 막 만지고 다닐 거예요."
가영을 살짝 노려보는 체하며 그리 말하니 가영이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아, 안 돼···!"
"그러면 알려주세요. 왜 만지면 안 되는데요?"
"그, 그건··· 여자가··· 남자가 자길 좋아하는 거라고···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
"아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있으니 가영이 내 얼굴을 흘깃흘깃 훔쳐보다가 당부하듯 덧붙였다.
"···그러니까 그런데 막 만지고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알겠지···?"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고모건 만져도 상관없는 거 아니에요?"
"무, 뭐···?!"
"오해할 수도 있는 게 문제면 오해가 아니면 아무 상관없는 거잖아요."
안 그러냐는 뜻으로 씩 웃으며 그리 말하니 이제 좀 진정이 되어가던 가영의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새빨갛게 변했다.
그렇겠지.
어찌보면 방금 그건 대놓고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보다도 더 노골적인 고백이었으니까.
"···그, 그래도 안 돼."
"에휴, 맨날 안 된다고만 하시고··· 어제는 실컷 만지게 해주셨으면서."
"이, 이유한···!"
"네에, 네에 안 만질게요. 됐죠?"
토라진 척 성의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가영에게서 물러나 주방에 딸려있는 찬장을 뒤지는 척 했다.
'분명···'
여기다가 넣어뒀던 것 같은데 말이다.
어디로 간걸까.
혹시 누가 몰래 훔쳐가기라도 했나?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찬장 구석에서 원하는 것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해서 곧바로 그것을 꺼내든 뒤 그대로 몸에 둘렀다.
그렇게 앞치마 차림으로 갈아입은 뒤 자꾸만 내쪽을 힐끔대며 내 눈치를 살피고 있던 가영을 향해 말을 걸었다.
물론, 목소리를 살짝 싸늘하게 유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국말고 따로 생각해둔 건 있으세요?"
"그··· 그냥 계란찜하고 고등어나 좀 구우려고 했는데···"
"계란찜이요? 흠···"
콩나물국을 그냥 콩나물국이 아니라 김치를 넣어서 칼칼하게 간다치면 조합이 그럭저럭 나쁘지 않을 듯 했다.
부드러운 계란찜이 속을 편안하게 해줄테니까.
"···그러면 계란찜하고 고등어는 제가 할게요."
"그, 그러렴."
"아, 근데요. 고모."
"응···?"
"고모는 앞치마 안 하세요? 옷에 튈텐데."
몸에 두르고 있는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하니 가영이 괜찮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고모는 괜찮으니까 유한이 너 해."
그러더니 옆에 놓아둔 통에서 김치 한 포기를 꺼내 쫑쫑 썰기 시작했다.
"아니에요. 이거 말고도 하나 더 사다놨거든요."
"그러니···?"
"네, 분명 여기다가 넣어뒀을텐데···"
쪼그려 앉아야만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찬장 안에 머리를 들이민 채 뭔가를 열심히 찾는 시늉을 하다가 아까 미리 찾아놓았던 것을 이제 막 찾아낸 척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그대로 가영 쪽으로 내미니 이미 양손이 김치국물로 빨갛게 변해버린 가영이 내가 내민 것을 바라보며 살짝 난색을 표했다.
"그, 일단 식탁 위에다가 놔둘래? 고모 손이 이래서···"
"그러면 그냥 제가 입혀드릴게요."
"으, 응?! 아, 아냐···!"
손이 문제라면 내가 입혀주면 그만 아니겠냐는 내 말에 가영이 호들짝 놀라며 고개를 붕붕 저어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향해 접근했다.
"유, 유한아··· 고모 진짜 괜찮으니까···"
"아니에요. 옷도 하얀데 튀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요. 나중에 지우기도 힘들고."
하필이면 또 그렇더라.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더니만 가영이 하필이면 흰 티셔츠를 입고 있었던 탓에 그걸 핑계삼아 잽싸게 가영의 뒤를 점했다.
"가만히 계세요. 칼 들고 계시잖아요."
"자, 잠깐만···"
원래는 세나에게 입히려고 샀던 것이었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가영이 먼저 개시를 하게 될 줄이야.
속으로 쓰게 웃으며 몸을 살짝 움츠리고 있는 가영에게 목에 거는 부분부터 씌웠다. 그리고는 그녀의 몸에 앞치마를 둘러주기 시작했다.
보나마나 앞치마를 핑계로 또 스킨십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꼭 필요한 것 말고는 몸에 일절 손을 대질 않으니 그게 의아하면서도 내심 안도가 되기도 했던 것일까.
언제 긴장하고 있었냐는 듯 휴우하고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가영의 행동에 혹시라도 티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속으로 쿡쿡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이 앞치마의 진면모는 드러나지도 않은 상태였으니까.
"이제 허리만 묶으면 되겠네요."
보통 앞치마라고 하면 끈을 뒤로 묶는 방식이 일반적이지만 지금 가영에게 입혀놓은 녀석은 달랐다.
뒤로 묶는 방식이 아니라 앞으로 묶는 방식이니까.
누군가 대신 묶어준다 치면 자연스레 백허그를 하게 되는 구조랄까.
"그, 고모 팔 좀 살짝 들어주실래요?"
"으, 응? 팔? 팔은 왜···"
"얼른요."
"이, 이렇게···?"
어느새 손에 들고 있던 칼도 자취를 감추었겠다 더욱 거리낄 게 없었기에 곧바로 작전을 개시했다.
아래로 축 늘어져있던 허리끈을 손에 꼬옥하고 움켜쥔 뒤 쭈욱하고 잡아당겨서 팽팽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가영의 목에 매달려 달랑달랑 흔들리고 있던 것이 가영의 몸에 찰싹하고 달라붙었다.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끈을 움켜쥐고 있던 손을 움직여 그대로 가영의 허리를 감쌌다.
"유, 유한아···?!"
그제서야 내 노림수를 깨달은 것일까.
팔을 살짝 들어올린 채 '이제 됐어요.'라는 말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가영이 흠칫하고 몸을 크게 떨었다.
그것도 잠시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참에 확실하게 경고를 해놔야겠다고 판단한 건지 당황으로 물들어있던 가영의 얼굴이 엄하게 변했다.
"네?"
그런 그녀를 상대로 고개를 갸웃하며 의뭉을 떨어주었다.
그게 가영이 느끼기에는 퍽 자연스러웠던 것일까. 본인이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기라도 했는지 단호할 뻔했던 목소리가 살짝 흔들리며 단호함을 잃었다.
"고, 고모가 분명 하지 말라고···"
"뭘요?"
"···이, 이런 거."
"앞치마 대신 매드리는 것도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진심으로 억울해하는 척 그리 말했더니 가영이 차마 대꾸하지 못하고 애꿏은 침만 꿀꺽 삼켰다.
"전 그냥··· 고모 옷에 얼룩질까봐 걱정되서 그랬던 건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아예 가영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팔까지 풀고서 스르륵 물러나니 아까 전부터 가영의 몸을 뒤흔들고 있던 안절부절 못하는 기색이 조금 더 강해졌다.
"그··· 고, 고모 말은 그런 게 아니라···"
"고모가 그 정도로··· 싫어하실 줄은 몰랐어요. 죄송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그리 말하며 자박하고 발 소리를 내어 좀 더 뒤로 물러나는 척을 하니 가영이 언제 날 밀어냈었냐는 듯 황급히 날 붙잡아왔다.
물론,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황인지라 목소리로만.
"유, 유한아 잠깐만···!"
"····"
"고모가··· 고모가 오해했어. 고모는··· 유한이 네가 또 막 고모 끌어안고 그러려는 줄 알아가지구···"
그런 식으로 횡설수설하던 것도 잠시, 가영이 빨갛게 달아오른 귀를 숨기듯 고개를 살짝 수그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유, 유한아 고모 정말 안 싫으니까··· 아, 앞치마 좀 마저 매주면 안 될까···? 고모 옷에 얼룩질까봐 걱정 되서 그래···"
"···정말요? 저한테 부탁하시는 거예요?"
"으, 응··· 부탁할게···"
사실상 항복선언이나 다름없는 그 말에 언제 뒤로 물러났냐는 듯 여전히 내게 등을 돌리고 서 있는 가영을 향해 성큼 다가섰다.
그리고는 바로 조금 전에 손에서 놓았던 것을 다시금 움켜쥔 뒤 그대로 가영의 허리에다가 두르는 척ㅡ
"읏···♡"
가영의 허리를 꽈악하고 끌어안았다.
아까보다 한결 강해진 힘에 놀라기라도 한 것일까.
가영의 몸이 흠칫하고 떨리더니 그녀에게서 살짝이지만 달콤한 소리가 새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