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1부
목소리만큼이나 힘없는 얼굴을 하고 있는 가영을 보며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그 모습이 그만큼 귀여웠으니까.
아마 나와 같이 있지만 않았어도 휴대폰을 손으로 꼬옥하고 부여잡은채 텅 비어버린 문자함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지 않았을까.
왠지 모르게 볼을 쿡하고 찌르면 '힝··'하고 시무룩하고 귀여운 소리를 낼 것만같은 가영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손에 쥐고 있던 것을 그녀를 향해 내밀었다.
"휴대폰 돌려드릴게요."
맘 같아서는 따로 저장해두지는 않았을지 갤러리까지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꾹 참고 가영에게 휴대폰을 반납했다.
그렇게 내게서 휴대폰을 되찾는데 성공한 가영이 그것을 황급히 원래 있던 자리에다가 되돌렸다.
그제서야 마냥 시무룩해하고 있을 상황이 아님을 깨닫기라도 한 것일까.
손이 땀으로 흠뻑 젖기라도 했는지 양손으로 걸치고 있던 앞치마를 꼬옥하고 움켜쥔 가영이 그때부터 슬금슬금 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 가영의 행동을 모르는 척 하며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안 드세요?"
"으, 응·· 먹어야지."
아직 먹을 게 이렇게나 남았는데 뭘 하는 거냐.
딱 그런 느낌으로 말을 하니 황급히 고개를 끄덕인 가영이 다시금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다만 그 속도가 전과 같지는 않았다.
굼벵이라도 기어가는 것마냥 느릿하기 그지없었으니까.
이대로 가면 몇 시간이 지나도 식사를 못 끝낼 것 같아서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그녀의 숟가락 위에 반찬을 올려주었다.
그러다보니 두 마리에 달하던 장어가 도마뱀마냥 꼬리만을 남겨둔채 증발해버렸고, 그렇게 통 안에 남겨진 것을 확인한 가영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렇겠지.
장어하면 꼬리니까.
'대체 왜 꼬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몸통과는 감상이 다를 수밖에 없을 터.
내가 전처럼 그것을 숟가락 위에다가 올려주면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일까.
일부러 큼직하게 썰어놓은 꼬리 부분을 가영이 자꾸만 힐끔거렸다.
그 사실을 모르는 척 하며 아까 미리 잘 섞어둔 샐러드를 젓가락으로 집어 가영을 향해 내밀었다.
"야채도 같이 드셔야죠. 고모."
그리 말하며 이번에는 숟가락 위에다가 올려주지 않고 그녀를 향해 직접 들이밀었다.
옆에서 시중이라도 드는 것처럼 숟가락 위에다가 계속 반찬을 올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부담스러운데 이제는 먹여주기까지 시도하니 당혹스럽기라도 했던 것일까.
꿀꺽하고 침을 삼키는 소리와 함께 가영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고, 고모가·· 고모가 알아서 먹을게··"
그러니까 괜찮다고 사양을 표하는 가영을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지 말고 얼른요."
그리 말하며 젓가락을 쥔 손을 보란듯이 흔들어보이니 그 끝에 매달려있던 것이 덩달아 흔들리며 자신의 몸을 쥬시하게 적셔놓고 있던 초록빛 액체를 밑에 받쳐놓은 내 손바닥 위로 떨궜다.
"보세요. 국물 떨어지잖아요. 그러니까 얼른요. 네?"
그렇게까지 말을 하니 차마 두 번 거절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가영이 볼을 빨갛게 물들인 채 눈을 꼬옥하고 감더니 입을 살짝 벌리며 그것을 천천히 앞으로 내밀었다.
'이걸 눈을 감는다고?'
이걸?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원래는 얌전하게 먹여주기만 하고 끝내려고 했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해서 그새 반쯤 벌어진 가영의 입 안에다가 샐러드를 쏘옥하고 넣어주는 척 하며 그것을 오늘따라 촉촉해보이는 연분홍빛 입술에다가 문질렀다.
그러자 샐러드 군데군데에 묻어있던 드레싱이 입술을 타고 흘러내렸고ㅡ
"앗··"
그에 당황한 듯한 목소리를 내며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가영이 입술에 묻은 걸 스스로 닦아내기 전에 먼저 손을 뻗어 그녀의 입술을 훔쳤다.
물론, 엄지손가락으로.
입술에 딱히 뭔가를 발라두진 않았던 것일까.
도톰하게 올라온 모습만큼이나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감촉이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연분홍빛 입술을 꾸욱하고 누르며 스친 것에는 내가 일부러 묻힌 드레싱 외에 다른 건 묻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거리낌없이 그것을 입쪽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삽시간에 벌어진 스킨십에 당황한 듯 눈을 살짝 크게 뜨고 있는 가영 쪽을 한 번 힐끔하고 쳐다본 뒤 슬그머니 입을 벌렸다.
너무 크게 벌어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면서 살짝 벌어진 틈 사이로 혀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미리와서 대기하고 있던 것을 혀를 이용해 느릿하게 핥았다.
"음··!"
물론, 드레싱 맛에 새삼 감탄하기라도 한 것처럼 살짝 탄성을 흘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일련의 행동을 끝마친 뒤 일부러 외면하고 있었던 가영을 향해 시선을 던지니 눈으로 들어온 건 그녀의 얼굴이 아닌 귀였다.
머리를 깔끔하게 묶어올린 탓에 훤히 드러나있는 귀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 모습에 속으로 가볍게 웃으며 가영을 향해 물었다.
"어때요?"
"으, 응?"
그러자 당황이라는 감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와 함께 가영의 어깨가 흠칫하고 튀는 걸 볼 수 있었다.
왠지 모르게 콩닥콩닥하고 심장 뛰는 소리가 귓가로 울려퍼지는 것만 같았다.
아니, 단순히 기분 탓만은 아닌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뭔가를 억누르기라도 하듯 가영이 가슴께에 손을 올린채 그곳을 꾸욱하고 누르고 있었으니까.
그 광경과 함께 살짝 어색한 듯 하면서도 묘한 분위기가 우리 둘 사이로 내려앉았다.
얼굴이 근질근질거리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난 그럭저럭 견딜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가영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가영의 몸이 살짝 움츠러들더니 그녀의 몸을 덮고 있던 앞치마 아래로 삐져나와 있던 그녀의 양 무릎이 서로 딱 붙은 채 꼼질꼼질대며 상대방에게 제 몸을 비벼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묘하게 야릇했다.
맘 같아서는 저 좆같은 앞치마를 걷어버리고 허벅지는 어떨지 확인하고 싶을 정도로.
"··드레싱이요. 혹시 별로에요?"
"아·· 아, 아냐! 맛있네."
"역시 좋아하실 줄 알았어요."
기쁜 듯 빙그레 웃으며 가영을 쳐다보니 언제까지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생각했는지 때마침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그녀와 눈이 딱 마주쳤다.
가영의 어깨가 움찔하고 크게 떨린 것은 다름아닌 그 직후였다.
차마 내 얼굴을 직시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가영이 샐러드를 바라보는 척 시선을 푹 내리깔았다.
"지, 직접 만든 거니?"
"드레싱이요?"
"··응."
"음·· 막 거창하게 과일갈고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마트에서 파는 거 사다가 거기에 꿀이랑 이것저것 섞어서 만들어봤어요."
"그, 그렇구나··"
"혹시 레시피 궁금하시면 알려드릴까요?"
"나, 나중에 문자로 좀 보내줄래? 지나 샐러드 만들 때 넣으면··"
그런 식으로 이어지던 가영의 발언은 채 끝을 맺지 못했다.
그야 그럴 수밖에.
내 눈치라도 보듯 내쪽을 향해 흘깃하고 시선을 던진 순간 눈에 들어온 게 하필이면 바로 조금 전에 본인의 입 안으로 들어갔었던 젓가락 끝 부분이 내 입 안에 들어가있는 광경이었을테니 말이다.
때로는 노골적인 어필보다 이런 식으로 은근슬쩍 하는 어필이 잘 먹힐 때도 있는 법.
그리고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었다.
따지고 보면 가영이 사용하던 것도 아니고 원래부터 내가 쓰던 게 내 입안에 들어가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가영은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했다.
덕분에 새삼 궁금해질 정도였다.
간접키스라 부르기도 애매한 것만으로도 이 정도인데 내가 갑자기 키스라도 해버리면 그때는 대체 어떤 반응을 보여줄까.
'설마 기절하는 건 아니겠지··'
왠지 모르게 가영이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어버버하고 있다가 그대로 풀썩 뒤로 넘어가버리는 모습이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것만 같아서 속으로 피식 웃었다.
후우하고 뭔가를 털어내기라도 하는 느낌으로 내뱉어진 한숨소리가 귓속으로 흘러들어온 건 다름아닌 그 와중이었다.
그러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콩닥콩닥하고 뛰는 심장이 비로소 좀 진정이 된 것일까.
"··지나가 좋아할 것 같네."
미처 끝맺지 못한 말을 늦게나마 마무리 지은 가영이 다시금 식사를 재개했다.
대체 한 끼를 몇 번에 걸쳐서 먹는 건지.
그래도 뭐 잘 먹으니까 보기 좋았다.
여전히 통 안에 방치되어 있는 장어 꼬리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게 살짝 불만이긴 했지만.
'아니 꼬리가 제일 중요한 건데··'
저걸 남겨서야 되겠는가.
해서 가영이 숟가락으로 밥을 살짝 푸는 틈을 타 두 개 중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런 내 행동에 반응한 가영이 흠칫하며 침을 꼴깍 삼킨 그 순간, 그런 그녀의 반응을 눈치채지 못한 척 매운 양념이 발려있는 꼬리를 내 입 안에다가 쏙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가영으로 하여금 보란듯이 우물우물거리고 있으니 설마 그게 내 입안으로 들어갈 줄은 몰랐던 것일까.
어딘가 조마조마해 보이던 가영의 표정이 살짝 멍하게 변하더니 이내 그 위로 짙은 안도감과 약간의 아쉬움이 동시에 떠오르는 걸 볼 수 있었다.
'아쉬움이라니··'
가영은 알고 있을까.
지금 자기가 어떤 표정을 하고있는지?
'그나저나 다 먹으면 더 있기 힘들텐데··'
그렇게 입 안으로 밀어넣은 것을 우물거리면서 얼마 남지 않은 체류시간을 늘릴 수 있을만한 방법을 고심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이대로 떠나자니 뭔가 좀 아쉬웠으니까.
뭐 없을까.
합법적으로 여기에 눌러붙을 수 있을만한 명분이 말이다.
내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가영은 한시라도 빨리 날 집으로 돌려보내고 말겠다는 것처럼 열심히 샐러드를 비우고 있었다.
그 와중에 살짝 웃겼던 건 제법 넓직한 통 안에 고르게 깔아놓았던 밥 중에서 딱 하트로 덮인 부분만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점이었다.
너무나도 또렷한 하트 모양에 차마 거기에 손을 댈 수가 없었던 것일까.
다른 부분은 전부 깔끔하게 비워져있는데 딱 김으로 덮어놓은 부분만 덩그러니 방치되어 있는 게 꼭 네 마음은 받아줄 수 없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이 보기 싫어서 실례한다는 말과 함께 가영의 앞에 놓여있던 밥을 향해 젓가락을 뻗었다.
그리고는 가운데에 섬처럼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던 하트를 젓가락을 이용해 툭 건드려주었다.
그러자 안 그런 척 하면서도 살짝 조마조마해보이는 표정으로 내 행동을 주시하고 있던 가영이 그 모습을 보고는 작게나마 몸을 움찔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과 함께 밥을 푸욱하고 떠서 그대로 입 안에다 넣고 장어와 함께 우물거렸다.
장어 겉면에 발라두었던 매콤한 양념이 고소한 쌀밥과 어우러지며 꽤 훌륭한 맛을 냈다.
이미 하트가 붕괴해버린 상황에서 계속 그걸 못 본 척 하기도 좀 그랬던 것일까.
가영이 슬그머니 그것을 향해 숟가락을 뻗었다.
그리고는 밥을 푹 떠서 입으로 가져가려 하는 가영을 황급히 제지했다.
"앗··! 자, 잠시만요. 고모."
그에 가영이 움찔하고 멈춘 순간, 짝을 잃고 덩그러니 방치되어 있던 것을 집어들어 가영의 숟가락 위를 채우고 있던 밥 위에다가 고이 올려주었다.
동그랗게 뭉쳐있는 흰 쌀밥 위에 장어 꼬리가 올라가있는 모습이 꼭 장어 초밥을 보는 듯 했다.
뭐, 초밥이라고 치기엔 위에 올라간 것의 사이즈가 좀 많이 크긴 했지만 말이다.
"꼬리도 드셔야죠. 꼬리가 제일 몸에 좋대요."
"괘, 괜찮은데··"
자긴 괜찮으니까 네가 마저 먹으라는 것처럼 이쪽을 향해 힐끔하고 시선을 던지길래 싱긋 웃으며 맞받아쳤다.
"저는 하나 먹었으니까요. 이건 고모가 드세요."
"그, 그래··"
내가 그렇다니 어쩌겠는가.
받아먹는 수밖에.
밥 위에 올라가있는 큼직한 장어 꼬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것도 잠시 가영이 눈을 꼬옥하고 감더니 작게 입을 벌려 그것을 입 안으로 삼켰다.
'신기하네 어떻게 저게 다 들어가지··'
분명 얼마 벌리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
내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린채 열심히 입술을 오물거리고 있던 가영이 이내 입 안에 든 걸 꿀꺽 삼켰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저 멀리 놓여져있던 티슈를 몇 장 뽑아 가영을 향해 내밀었다.
그런 내 행동에 고맙다는 듯 어색하게나마 미소를 지어보인 가영이 내가 건네준 것으로 입술을 닦는 사이 아예 물까지 떠다가 바쳤다.
마시라고 떠온 걸 사양하긴 좀 그랬는지 그것까지 꿀꺽꿀꺽 받아마신 가영이 그 다음으로 한 행동은 테이블 위에 펼쳐놓은 것들을 모아 조립하는 것이었다.
나와 더 같이 있으면 뭔가 이상해질 것만 같았던 것일까.
왠지 모르게 초조함마저 느껴지는 가영의 몸짓에 적당히 돕는 척 하다가 도시락 조립이 거의 끝나갈 때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고모?"
"··응?"
"혹시 몇 분 뒤에 예약 잡힌 거라도 있으세요?"
그런 게 아니면 왜 이리 서두르냐는 뜻으로 그리 말하니 찔리는 구석이 아예 없지는 않았던 모양인지 가영이 눈썹을 살짝 떨며 말끝을 흐렸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아! 그러면 혹시 부탁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부, 부탁?"
"네."
고개를 두어번 끄덕인 다음 가영 쪽을 힐끔거리는 척을 했다.
"고모가 충분히 들어주실 수 있는 거예요."
대체 뭘 상상했길래 얼굴이 저렇게 빨개지는 걸까.
아직 내용은 꺼내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가영의 모습을 모르는 척 해주기 위해 시선을 살짝 내리깔았다.
그리고는 뭐 엄청나게 어려운 부탁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손가락끼리 딱 붙인 채 그것을 꼼질거렸다.
"..뭔데?"
"바, 바쁘시면 안 들어주셔도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말해보렴."
"그, 그러면··"
모처럼 평소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가영의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눈을 딱 감으며 입을 열었다.
"저 머, 머리 좀 잘라주시면 안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