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6화 〉1부 (76/315)



〈 76화 〉1부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갓 샤워를 끝마치고 나온 여자의 몸에서 은은하게 풍겨오는 샴푸향만큼 남자에게 치명적인 것도 또 없다.

그래봐야 결국 샴푸향일 뿐인데도 그 달달한 냄새가 사람을 정말 미치게 만드니까.

'흔꽃샴푸가 괜히 떴겠냐고..'

그런 의미에서 이 세계 여자들도 남자에게서 풍겨져나오는 은은한 샴푸향에 환장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평소보다  오래 머리를 문질문질해대고 있는 것도 다 그래서였다.

그래도 이왕이면 좋은 향기를 풍기는 편이 세나와의 관계를 진척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머리는 물론 몸까지 빡빡 문질러서 씻어준 뒤 화장실을 빠져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거울에 비친 모습을 확인했다.

정확히는 아침에 미처 다 지우지 못했던 흔적들의 상태를 확인한 것이었지만.

'음..'

참으로 다행히도 배에 흐릿하게 남아있던 것들은 언제 그런  존재했었냐는 듯 깔끔하게 지워져있었다.


문제는 역시 물건 쪽이었다.

이쪽도 아침보다 흐릿해지긴 했는데 아직 완전히 지워지진 않았으니까.

이쪽도 배 씻을 때처럼 빡빡 문지를 수 있었다면 진작에 지워지고도 남았겠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생채기같은 거라도 나면 발기할 때마다 뒤지게 아플테니까.


'그래도 뭐 이정도면..'

설령 아침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해도 정말  앞에서 들여다보는 게 아니고서는 알아보기 쉽지 않겠지.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


설마 세나 앞에서 고추를 깔 일이 또 있겠는가.

'에이, 설마.'


피식하고 웃으며 화장실을 빠져나와 옷장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팬티부터 꺼내입었다.

팬티 다음으로 몸에 걸친 것은 옷장 안에 들어있는 것들 중에서도 특히 얇은 반팔 티와 반바지였고.

원래였다면 티셔츠 밑에 런닝셔츠도 입었겠지만 오늘만큼은 패스했다.


덕분에 얇은 티셔츠 위로 뭔가가 살짝 튀어나온 모습이 되어버렸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렸다.

다 말라지는 않았다.


축축하던 것이 살짝 물에 젖은 수준이  때까지만 말려주었다.


바싹 말리는 것보다는 그래도 살짝 젖어있는 편이 더 향기가  퍼질테니까.

그렇게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서 수건으로 머리를 터는 시늉을 하며 세나가 기다리고 있을 1층으로 내려갔다.

'오..'


1층에 도착한 순간 자연스레 시야 속으로 파고 들어온 거실의 풍경은 아침에 봤던 곳과 같은 곳이라는 걸 믿기 힘들 정도로 본격적인 촬영장의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카메라하고 조명은 또 어디서 꺼내온 걸까.

속으로 그런 의문을 느끼면서 자박하고 발소리를 내니 소파에 걸터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세나가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왔냐?"

왔으면 바로 시작하자고 말하는 것처럼 슬그머니 몸을 일으키는 세나를 향해 손을 뻗어 그녀를 제지했다.

"아, 잠깐만 나 수건만 좀 놓고 올게."

그리고는 몸을 홱 돌려 주방 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주방과 연결되어 있는 다용도실에다가 수건을 투척해준  세나가 기다리고 있을 거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거실에 도착하자마자 세나한테  소리 듣게 되었다.


"아, 아니  무슨 옷을.."

그따구로 얇게 입었냐면서 뭐라뭐라하기 시작한 세나의 시선은 차마 날 직시할 수가 없었는지 애매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웃긴 건 그게 이따금씩 내 가슴팍을 슥 훑고 지나간다는 점이었고.

"아니, 안마받는데 옷 두껍게 입는 사람이 어딨어."

"그, 그렇긴 한데.. 보, 보이잖아.."


"뭐가?"

뭐가 문제냐는 투로 던진 물음에 세나는 답을 하지 못했다.

그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입을 꾹 다물고만 있을 뿐.


이 세계에서 남자의 유두는 야한 듯 하면서도 야하지 않은 애매한 부위지만, 아무리 그래도 차마 동생 앞에서 '너 유두 튀어나왔어'라는 말은 할 수 없었던 모양.


그런 세나의 반응에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슬그머니 시선을 밑으로 내리는 척을 했다.

"아."


"..알았으면 얼른 갈아입고 와."

"아, 귀찮은데.."

머리를 벅벅 긁다가 이내 좋은 생각이라도 떠올린 사람마냥 씩 웃으며 팔짱을 꼈다.

"자, 이러면  보이니까 상관없지?"

"되겠냐.."


"운동 끝난지 얼마  되서 힘들단 말이야. 그러면 누나가 가져다 주던가."


정 그렇게 신경이 쓰이면 네가 뭐라도 해봐라.

라고 말했지만 세나의 엉덩이는 소파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뭐, 그야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겠지.

런닝 셔츠를 챙기려면 속옷이 들어있는 칸을 뒤져야 할텐데 그 안에 과연 런닝셔츠만 있겠는가.

나는 힘들어서 가기 귀찮다고 하고, 그렇다고 자기가 직접 가기도 뭔가 좀 그런 상황.

진퇴양난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난감한 상황에 빠져있던 세나가 '에효'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소파에서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그와 함께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나로서는 사양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면 차라리 소파에 엎드려. 엎드리면 안 보일테니까."


안 그래도 어떻게 하면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있는 자세에서 엎드리는 자세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을까 고민 중이었는데 마침 잘 됐다 싶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세나가 말한대로 소파 위에 배를 대고 엎드렸다.

그런 내 옆에 서서 소파 등받이 부분을 손으로 더듬더듬하던 세나가 이내 뭔가를 꾸욱하고 누르니 직각을 이루고 있던 것이 자동차 좌석마냥 뒤로 젖혀지며 소파가 침대로 바뀌었다.

덕분에  편히 누울 수 있게되서 즉시 몸을 굴려 가운데로 이동하니 그런 날 보며 피식하고 웃은 세나가 이내 대본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상태로 들어. 그러니까 처음에는.."

사실 말이 대본이지 대본이라 하기에도 애매할 정도로 간단한 지시의 연속이긴 했지만 일단 이해했다는 뜻으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휴대폰은? 챙겨왔어?"

"어."

"그럼 바로 시작한다?"


"그러던가. 아, 그런데 오늘은 그냥 녹화만 하는 거야?"

생방송은 안 하는 거냐.


그리 물으니 세나가 '니 꼴이나  보고 그런 말을 해라'라고 핀잔이라도 하는 것처럼 슬며시 눈살을 찌푸렸다.

"..어, 오늘은 그냥 녹화만 뜰거야."


"흐음, 그렇구나."


"그러니까 혹시 어색하게 나오더라도 나중에 편집으로 살리면 되니까 너무 부담가지지는 말고."


그에 다시  번 고개를 끄덕끄덕해보이니 세나가 몸을 돌려 살짝 떨어진 곳에 비치해놓은 카메라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그것의 뒤쪽에 자리를 잡더니ㅡ


"그러면 찍는다?"


"어."

내게 손가락을 들어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려 세 개나 펴져있던 세나의 손가락이 모두 접힌 순간 카메라 옆으로 빨간 불이 들어왔고..


"흐음.."

그에 맞춰서 소파 위에 엎드린 채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척을 했다.


그러는 동안 세나는 카메라 뒤를 떠나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발소리라고는 하나도 내지 않고 조용조용하게 잘도 움직여대는 세나의 뒷모습을 힐끔거리다가 그녀가 2층에 올라선 타이밍에 맞춰 살짝 인상을 쓰며 고개를 옆으로 꺾는 시늉을 해보였다.


마치 그곳이 쑤시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아예 휴대폰을 쥐고 있던 손중에 하나를 떼어내어 어깨를 스스로 주무르기도 했다.


대충 1분 정도 그러고 있다가 좋은 생각이라도 난 것마냥 씩 웃으며 휴대폰을 향해 숙이고 있던 고개를 홱 치켜들며 세나의 이름을 불렀다.

"세나 누나!!"

물론,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그녀를 불렀다.

대신 이번에는 이름이 아닌 새로운 호칭을 사용했다.


"노예야!!"


"..아, 뭐!"


"나 거실에 있거든? 잠깐만 좀 밑으로 내려와봐."


2층을 향해 그리 외치고 나서 얼마나 지났을까.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쪽에서 쿵쿵하고 화가 잔뜩 난 것 같은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카메라 앵글 안으로 진입한 세나가  앞에 도착해서는 얼굴을 팍 찡그렸다.

"뭐. 또 물 떠다달라고?"


얼굴을 찡그린  짜증이 잔뜩 난 표정을 하고 있는 세나의 모습은 연기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이거 나중에 비교당하는 건 아닐지 모르겠네..'

덕분에 속으로 감탄과 걱정을 동시에 느끼면서 팔짱에다가 짝다리까지 짚은 채 날 지그시 노려보고 있는 세나의 말에 대꾸했다.


"아, 물은 됐고. 어깨나 좀 주물러봐."


"뭐?"

"아니, 요즘 운동해서 그런지 몰라도 몸이  쑤시더라고."

히죽히죽 웃으며 그리 말하니 세나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한채 헛웃음을 흘렸다.

"왜? 싫어?"

"진짜 가지가지하는 구나.."

"그러니까 말조심 하셨어야죠.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말라는 말 몰라?"


"하 씨.."

짜증나 죽겠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던 세나가 소파 옆을 돌아  위에 엎드려있던 내 옆으로 와서 섰다.

"뭐하냐."

"뭐?"


"어깨 주물러 달라면서. 누워있는데 어떻게 주무르라고."

"그냥 주무르면 되지."


"시끄럽고 일어나."

"쓰읍..! 노예 주제에 어딜 감히 하늘같은 주인님한테 명령을 하고 있어!"

"뒤진다 진짜.."

방금 그건 연기가 아니라 진심이었던 것 같은데..

뭐, 아무튼 세나로 하여금 보란듯이 얄미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아, 일어나기 귀찮다고오."

"그러면 나보고 뭐 어쩌라는 건데."


"음.."


세나의 발언을 듣고는 뭔가를 고민하는 척을 하고 있던 것도 잠시, 이내 씩 웃으며 소파를 팡팡 소리가 나도록 두들겼다.


"그냥 누나가 이 위로 올라와."

"뭐?"

"어차피 마사지같은 것도  누워서 받잖아. 그러니까 나도 노예한테 마사지  받아보자."

그리 말하고는 아예 팔베개까지 해가며 완벽하게 엎드리니 그런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던 세나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라도 하듯 한숨을   푸욱하고 내쉬고는 그대로 내가 엎드려있는 소파 위로 올라왔다.


그러더니 그대로 엎드려있던 내 허리 위에 슬그머니 걸터앉았다.

"악! 미친 개무거워!"


"진짜 뒤지고 싶냐?"

"악!"

목 뒤쪽을 꽈악하고 움켜쥐는 손길이 제법 매서웠다.

세나와 미리 말을 맞춰놓았던   거기까지였다.

즉, 이제부터는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뜻이었고, 아주 그냥 작정하기라도 한 것처럼 우악스럽게  목뒤를 주물러대는 세나를 상대로 앓는 소리를 냈던 것도 그래서였다.


"으.. 아.. 자, 잠깐만 너무 아픈데?"


내가 아프다고 짜증을 냈으면 냈지 설마 앓는 소리를 낼 줄은 몰랐던 것일까.

목 뒤를 움켜쥐고 있던 세나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의미심장하게 들리기에 충분한 멘트를 입밖으로 내뱉었다.

"조, 좀만 살살해줘.. 세게 하면 아프단 말이야.."


결코 적지않은 자괴감까지 감수해가며 내뱉은 멘트의 효과는 확실했다. 잠깐 멈칫했던 것이 아예 멈춰버렸으니까.


"..누나?"

"아, 으, 응. 이, 이렇게..?"


"윽.. 좀만 더 살살.."


"이, 이렇게?"

맘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고개를 돌려 세나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다.

허나 그러지 않고 대신 세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여 답하고는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을 얼굴 위로 띄워보이며 팔들을 겹쳐서 만든 베개에다가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는 그 상태로 세나가  목을 손으로 조물딱댈 때마다 살짝 앓는 소리를 입밖으로 흘려주었다.


"아, 아파?"

"아니, 딱 좋아.."


고양이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골골대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리 말하니 아까 전부터 내가 묘한 소리를 낼 때마다 작게 움찔거리고 있던 것이 흠칫하고 떨렸다.


"목만 주무르지 말고 어깨같은데도  주물러봐."


목을 타고 전해져오는  떨림을 느끼며 속으로 히죽하고 웃었다.

보아하니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묘한 상황인지 이제 좀 눈치챈  했으니까.

그래서일까.


'음..!'하는 소리를 내며 살짝 몸을 떨기 무섭게 어디선가 꼴깍하고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르는 척 하고 넘어가기 힘들 정도로 그 뚜렷한 소리에 순간 터져나올 뻔한 웃음을 다시 속으로 삼켰다.

그리고는 세나를 상대로 감사를 표했다.


방금 그 소리 덕분에 확신할 수 있었으니까.

세나가 지금  상황을 '야릇한' 상황으로 인식했다는 걸 말이다.


그런 유한의 추측은 정확했다.


지금 이 순간 세나는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으로부터 굉장히 묘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한이 적지않은 자괴감까지 감수해가며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상황은 이런저런 이유로 남자와는 크게 연이 없었던 세나에게는 자극이 너무 강했으니까.

상황을 바라보는 인식이 바뀐 탓일까.

세나는 그 전까지는 그리 신경쓰이지 않았던 것들이 조금씩 신경쓰이기 시작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집에 유한과 단둘뿐이라는 상황이 그러했으며, 유한의 몸과 맞닿아있는 손바닥으로  하고 감겨드는 감촉같은 것이 그러했다.

'이건 뭔가 좀 이상하다'라는 생각을 하기 전까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들이 대수롭게 바뀌어버린 탓일까.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면서 왠지 모르게 입 안이 바짝 마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온도가 이리도 뜨겁게 느껴지는  운동하고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바로 조금 전에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샤워라는 단어를 떠올리기 무섭게 코로 후욱하고 짓쳐들어온 달달한 향기에 세나는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했다.

'이상해..'


이런 건.. 이상하다.

절로 그리 읊조리게 될 정도로 달콤한 냄새였다.

더 맡고 싶어.

순간 마음 속으로 슬그머니 고개를 치켜든 적나라한 욕망에 세나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뜨거워진 얼굴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그렇게 정신이 들고 나니 유한에게서 풍기는 냄새를 좀 더 가까이서 맡기 위해 상체를 슬쩍 앞으로 기울이고 있던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미, 미친..'

내가 방금 무슨 생각을 아니,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거지.


당혹감이  솟구쳤다.


덕분에 안 그래도 뜨끈뜨끈하던 것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뜨겁게 느껴졌다.

"윽.. 누나 힘 좀.."


낯부끄러움이라는 묘하디 묘한 감각에 젖어있던 것도 잠시, 귓속으로 흘러들어온 유한의 목소리에 세나는 바로 조금 전까지 그녀가 하고 있었던 '이상한 생각'들을 모조리 유한의 탓으로 돌렸다.


'그래..'

이건 유한이 잘못한 거다.

안마를 해달라고 했으면 얌전히 안마나 받을 것이지 쓸데없이 왜 이상한 소리를 내서 사람 기분을 이상하게 만든단 말인가.


그런 식으로 속으로나마 유한을 잘근잘근 씹어대던 것도 잠시, 세나가 작지만 빠르게 도리질을 쳐댔다.


어느새 머릿속에 눌러앉아버린 이상한 생각들을 그런 식으로라도 털어내기 위함이었다.


허나 보통 이상한 놈들이 그러하듯 그것 또한 이상한 것답게 퍽 끈질겼고, 그렇기에 그녀는 의도적으로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노력했다.

'이건 돌이다.. 돌..'

딱 하나 문제가 있다면 생각을 간신히 다른 곳으로 돌리는데 성공한 순간 머릿속으로 떠오른 것이 하필이면 아침에 본 유한의 '그것'이었다는 것 정도?

순식간에 머릿속을 가득 채워버린 백구렁이의 자태에 세나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확 달아올랐다.

아까 느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강렬한 당혹감.

그것이 얼굴을 화르륵 불태우는 듯한 느낌과 함께 찾아든 것은 의외로 의구심이라는 상황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것'의 모습이 머릿속으로 떠오르기 무섭게 둘이 한 세트라도 되는 것마냥 같이 떠오른 게 하나 있었으니까.

축 늘어져있던 '그것'의 한복판에 무슨 문신마냥 자리하고 있었던 거뭇거뭇한 무언가.

'그건 대체..'

뭐였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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