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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화 〉1부 (69/315)



〈 69화 〉1부
유한이 지나를 어떻게 달래줄까하고 고민하며 속으로 히죽대고 있을  지나는 섭섭함과 자기혐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람..'


열몇  먹은 꼬맹이도 아니고 말이다.

선물 좀 못 받았다고 다섯 살이나 어린 동생을 상대로 화풀이를 하고 있는 꼴이라니.

스스로 생각해도 헛웃음이 절로 나올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꼬락서니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섭섭하다는 생각을 지울래야 지울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유한을 챙겼던  늘 자신이었다. 유한을 돌봐줘야하는 동생이라 인식하고 난 후부터는 쭉 그랬다.

그에 비해 세나 고 년은 허구한날 유한과 투닥거리기만 했지 유한을 돌보는 행동같은  거의 하질 않았다.

그런데  하필 세나한테만ㅡ


차라리 유한이 엄마인 가영에게만 선물을 했다면?


이토록 섭섭함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살짝 섭섭함을 느끼기야 했겠지만 언제 그랬냐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넘겼을테니까.


그런데 왜 하필..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던 것도 잠시, 지나는 슬쩍 한숨을 내쉬며 눈을 질끈 감았다.


다섯 살이나 더 먹고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자꾸만 섭섭하다는 생각이 드는 걸 막을 수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유한의 얼굴을 보기가 민망했다.

스물일곱살이나 먹고 애처럼 토라진 꼴이라니.

누나로서 할만한 행동은 절대 아니었다.

'내가 너무 엄격하게만 대했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보니 오죽하면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런 면모 때문에 유한이 자신을 어렵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행동했던  후회하지는 않았다.

유한에게 엄격하게 대했던 건  유한을 위해서였으니까.


친딸인 자신이나 세나에게는 얼마든지 엄격해질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가영이지만 유한에게만큼은 그러질 못했으니까.

그렇기에 누군가는 가영이 하지 못하는 역할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렇게 행동했을 뿐이다.

만약 자신마저 유한에게 유하게 대했다면?

유한은 진작에 엇나가버렸을지도 모르지.

그렇기에 결코 후회는 하지 않았다. 후회하지는 않지만ㅡ


유한이 자신을 어렵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자꾸만 섭섭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휴..'


저번에 술집에서 있었던 일도 그렇고 아침 먹기 전에 있었던 일도 그렇고 요즘 들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일이 왜 이리도 빈번한 것일까.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중얼거리면서 어떻게 하면 이 쓰잘데기 없는 감정을 털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누나."


자신의 눈치라도 보듯 줄곧 침묵을 지키고 있던 유한의 목소리가 뒷쪽에서부터 들려왔다.

솔직히 말하면 유한이 자신의 눈치를 보는 게 약간이나마 기꺼웠다.


누군 자기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해 죽겠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유한또한 어느 정도는 곤란했으면 좋겠다는 어린애같은 치기의 발로였다.

그래서 계속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아침 식사 이후로 쭉 유한을 쌀쌀맞게 대하고 있었던 것이었는데ㅡ

방금 귓가로 울려퍼진 목소리를 들은 순간 깨달았다.


쌀쌀맞게 대하는 게 조금 과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가슴 속에서 뭔가가 덜컥하고 흔들렸다.

허나 그렇게 흔들린 것을 수습할만한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나랑 이야기 좀 해."


이어진 유한의 발언과 행동 때문이었다.


어느새 뻗어온 유한의 손이 손목을 움켜쥐는 게 느껴졌다.


따지고 보면 정말 어렵지 않게 떨쳐낼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것에 비하면 정말 얼마 안 되는 힘.


그토록 미약한 것이 몸을 억지로 잡아끌고 있음에도 차마 거기에 대고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자신의 앞으로 배정된 탈의실 안까지 속절없이 끌려갔다.


"누나."

"..."

"지나 누나."


"...."


"혹시 화났어?"


"..뜬금없이  소리야."

다른 건 몰라도  말만큼은 절대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낯부끄러웠으니까.


그까짓 선물 좀 못 받았다고 토라지다니.

동생앞에서 보일만한 행동은 절대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피곤해서 그런 것뿐이라고 잡아떼려고 했는데ㅡ


"화났구나."

이미 확신을 얻은 듯한 목소리가 그러질 못하게 했다.


"내가 세나 누나한테만 선물해줘서?"


그리고 이어진 유한의 발언 듣고는 깨달았다.

전부 들켰다는 걸.


민망했다.


화악하고 얼굴로 피가 쏠리며 그곳에 달아오르는 게 뚜렷하게 느껴질 정도로 민망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개를  숙이고 있으려니ㅡ

'쿡..'하고 작게 웃는 소리가 귓가로 울려퍼졌다.

얼굴이 더욱 뜨거워졌다.

그런 식으로 지나가 뜨끈하게 달아오른 얼굴 때문에 고개를 푹 숙인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 유한은 그런 지나를 보며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이러고 있으니까 은근  귀엽네..'

설마설마 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몸보다 다섯 살이나 많으면서 세나한테만 선물을  것 때문에 토라졌을 줄이야.

대체 동생을, 유한을 얼마나 좋아하는 걸까.


덕분에 입꼬리가 미친듯이 근질거렸다. 지나를 생각하면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나도 모르게 웃음 소리를 냈던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누나."


"..."


"지나 누나."


연달아 두 번이나 불렀음에도 지나는 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지나의 귀에다가 입술을 가져다댔다.


대답하기 싫다면 대답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버리면 그만이라 생각했으니까.

"그거 알아 누나?"


"..."


"지금 누나 되게 귀여운거?"

지나의 귀에 대고 놀리듯 속삭인 순간, 그녀가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그것도 꽤 격렬했다.


한껏 움츠러들어있던 몸이 순간 흠칫하고 크게 튀었으니까.

"아, 우리 누나 왜 이렇게 귀엽지."

"누, 누나한테 그게 무슨.."

"왜? 귀여워서 귀엽다고 한 것 뿐인데?"

"하, 하지 마."


자꾸만 귀에 대고 속삭여지는 걸 버틸 수가 없었던 것일까. 찰싹 달라붙은 날 밀어내려는 것처럼 지나가 날 향해 손을 뻗어왔다.

다만 기세좋게 뻗은 것치고는 거기에 담긴 힘은 굉장히 미약했다.


당혹스러운 나머지 몸에 힘이 안 들어가기라도 하는 것일까.


"안 되겠네. 원래는 운동 끝나고 주려고 했는데ㅡ"

"..."

"그냥 지금 줄게."


그리 속삭인 순간 어디선가 꿀꺽하고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내가 누나만 쏙 빼놨을까봐?"

"...."

"눈 감아 봐. 누나."

그에 지나가 내 목소리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질끈 감았다.

 모습을 확인하고는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는 옆에 놓아두었던 에코백을 뒤적여 일단 운동화부터 꺼내들었다.

'넘어질 일은..'

아마 괜찮을 거다.

벽에 등을 기대고 있는 상태니까.


원래는 의자같은 데 앉혀놓고 신겨줄 생각이었지만 이건 이것대로 나쁘지 않겠지.

해서 운동화를 신고 있는 지나의 발을 향해 슬그머니 손을 뻗어 그녀의 발목을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운동화 속으로 손가락을 쑥 밀어넣어 그것을 그대로 벗겨내니 발쪽에서 올라오는 근질근질한 느낌 때문에 흠칫했는지 지나가 질끈 감고 있던 눈을 크게 떴다.

"눈."


내가 시선을 똑바로 맞추며 그 점을 지적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꼬옥하고 감아버렸지만.

그렇게 지나가 신고있던 운동화를 모두 벗겨낸 뒤, 에코백 안에서 꺼내든 상자를 열어 그 안에 든 새 운동화를 꺼내 그 자리를 대신하게 했다.


"불편하진 않지?"

"으, 응.."

"그래도 아직 눈 뜨지는 말고."

나이값을 못한 죄가 있다보니 지나는 내 말에 고분고분하게 따랐다.

덕분에 그녀에게 들키지 않고 아대까지 무사히 꺼내들  있었다.

부스럭ㅡ

흰색의 아대를 감싸고 있던 비닐이 구겨지며 난 소리가 탈의실 안으로 울려퍼졌다.


그 소리가 뭐라고 지나가 몸을 움찔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비닐 안에서 무사히 아대를 구출해낸 나는 그것을 양손으로 잡고 지나의 오른 손목에다가 끼워넣었다.


그리고는 비닐 안에 같이 들어있던 것을 이번에는 내 오른쪽 손목에다가 채운 뒤,  몫의 운동화로 갈아신고는 그대로 지나의 앞에서 물러났다.

"이제  떠도 돼."

그에 꼬옥하고 감겨있던 지나의 눈꺼풀이 스르륵 열리더니 이내 그녀의 눈동자가 낯선 감촉이 올라오는 발과 손목을 차례대로 훑었다.


"어때? 마음에 들어?"


"...."


"그 운동화하고 아대 되게 좋은 거야. 그러니까 운동할 때마다 까먹지 말고 꼭 써."

"어, 어.."

"아, 맞다. 누나 이것 봐봐."

내 말에 자신의 발을 감싸고 있던 흰색의 운동화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던 지나가 슬그머니 시선을 들어올렸다.


그에 맞춰 아대가 채워진 오른 손목을 그녀를 향해 들이밀었다.


"누나랑 나랑 커플이다?"


지나로 하여금 보란듯이 손목에 찬 아대를 손으로 슥슥 문지르며 싱글벙글 웃고 있으니 그녀가 차마  직시하지 못하고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운동화도 똑같지롱."


헤헤하고 웃으며 아예 신발까지 똑같다는 걸 보여주니 지나의 입꼬리가 순간 움찔하고 떨렸다. 물론, 위를 향해서였다.


'오케이. 달래주기 성공.'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히죽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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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토라져있던 지나를 달래는데 성공하고 나서부터는 나름대로 바빴다.

가영에게 선물해줄 오늘의 딸감도 만들어야했고, 무엇보다 지나가 날 놓아주려고 하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 참고로 가영에게 선물해준  번째 딸감은 바지만 살짝 내려서 축 늘어져있는 물건을 찍은 사진이었다.

그걸 보낼 때는 두 번째 번호가 아닌 새로이 마련한 세 번째 번호를 사용했다.


어제 일로 인해 두 번째 번호가 차단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었으니까.


덕분에  달에 내야할 돈이 3850원에서 7700원으로 두 배가 되었지만 그 정도야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런 식으로 가영에게 오늘의 딸감을 선물해주고 지나의 곁으로 돌아가니 그때부터 그녀가 날 미친듯이 쥐어짜기 시작했다.


선물에 대한 고마움을 그런 식으로라도 갚으려는 것처럼 말이다.

그대로 어제와는 달리 풀셋을 착용한 상태다보니 설마 어제만큼 힘들겠냐고 생각했는데 그런 내가 간과했던 점이 딱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내가 업그레이드 된 것만큼이나 지나또한 체력이 뻠삥되었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기껏 풀템을 갖춘 게 무색하게도 운동이 끝나고 나니까 똑같이 뒤질  같더라.

그에 비해 지나는 어땠는가 하면 운동 시작하기 전보다 쌩쌩하게 변해있었다.

하나도 지치지 않은 게 본인이 생각해도 이상하기는 했는지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은 것 같다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지나를 보며 내심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다.


안 그래도 체력이 뛰어난 편인 지나가 신비로운 힘이 깃든 물건까지 얻게 되었으니 어느 정도 수준이 될지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으니까.

'이러다가 진짜 나중에 침대에서까지 쪽쪽 빨리는  아니겠지..'


그런 두려움에 떨면서 집에서 챙겨온 보충제를 물에  타서 벌컥벌컥 들이키고 나니 그나마  살 것 같았다.

대신 정신적인 피로만큼은 여전해서 집에 도착하기 무섭게 침대 위에 철퍼덕 쓰러져서 그대로 잠들어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기절했다가 깨어나니 새로운 아침이 찾아와 있었다.


'오..'

역시 비싼 것답게 비싼 값을 하는 걸까.


알람소리에 맞춰 일어날 때마다 피곤해서 죽을 것 같았는데 오늘은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다.


뿐만아니라 몸이 한없이 가벼웠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아침 차리는 것도 평소보다 훨씬 빨리 끝났다. 어제 날로 먹은 게 있다보니 나름대로 손이 많이 가는 메뉴를 골랐음에도 그랬다.

그렇게 차린 것들을 식탁 위에다가 가지런하게 진열해놓고는 오늘의 보상을 타러 가영의 방으로 향했다.


끼이이익ㅡ

문은 오늘도 잠겨있지 않았다.


그게 참으로 괘씸하게 느껴졌다.


어제 나한테 그런 말까지 해놓고서는 정작 문은 언제든지 들어와도 된다는 것처럼 활짝 열어놓다니.

이제 아침은 그만 차리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듣고 내가 얼마나 놀라고 고민했었는데 말이다.

가영의 방에서는 오늘도 묘하게 달콤한 냄새가 났다.

평소였다면 그걸 좀 즐기다가 행동을 개시했겠지만 오늘은 그런 식으로 느긋하게 움직일 생각따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 가영이 섣부르게 그런 발언을 해버린 덕분에 지금 내 손에는 명분이랄게 있었으니까.


'내가 그렇게 간절하게 부탁했었는데 그걸 싹 무시했단 말이지..'

자고 있는 동안만 즐길 수 있게 해달라고 내가 얼마나 간곡하게 부탁을 했던가.

그걸 무시당한 아픔은  컸다.


가영에게 그걸 갚아주지 않고서는 배기기 힘들 정도로.


해서 가영이 누워있는 침대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ㅡ

삐거억-


그대로 그녀가 누워있는 침대 위로 올라갔다.


 사람 몫의 무게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져 있던 것이 새로이 올라탄 내 무게를 느끼고는 요란스레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곤히 잠들어있는 가영을 향해 천천히 몸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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