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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화 〉1부 (61/315)



〈 61화 〉1부
수줍어하는 모습만 보면 굉장히 무해할 것 같았지만, 문제는 역시 그녀의 패션이었다.

저걸 대체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그래도 어휘력이 딸리는 편이라고는 생각 안 해봤는데 암만 머리를 굴려봐도 눈앞에 있는 여자가 몸에 걸치고 있는 옷들을 묘사하기에 적합한 단어가 떠오르질 않았다.


'아무튼 독창적이긴 하네.'

아니, 근데 저렇게 입고 다니면 안 춥나?


지나도 추위 따위 개나 주라는 것처럼 얇게 입고 다니는 편이긴 하지만 저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

지나가 평소 입고 다니는 바지에는 저런 식으로 구멍이 숭숭 뚫려있지는 않으니까.


혹시 나만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가 싶어서 흘깃 휴대폰 화면 위로 띄워놓은 채팅창을 확인해보니 시청자들의 감상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했다.


[아니 ㅋㅋㅋ  보는 내가 다 춥네 ㅋㅋㅋ]


[저런 건 자기가 직접 찢은 건가? 아니면 원래 저렇게 나오는 거임?]

[으휴 패알못들 개많네;;]


[저런 게.. 인싸?]


[저런 게 인싸라면 평생 아싸로 살래..]


[아니 근데 진짜 안 춥나 오늘 출근할 때 얼어뒤질 뻔 했는데]

[ㄹㅇ 하루종일 집에만 있는데도 춥더라]

[앗..]


[아아..]

[왜 뭐 씨발련들아 말을 해]


[회사 안 다녀!!]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건 흔히 똑단발이라 부르는 모습을 하고 있는 머리카락 사이로 얼핏 보이는 그녀의 귀였다.

귀에 뭘 저렇게 많이 꽂아놓은 걸까.

집에 있는 공유기도 4핀짜린데 저건 무려 8핀짜리였다.

까맣고 뾰족한 피어싱들로 뒤덮인 여성의 귀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세나가 악수나  번 하자는 뜻으로 내민 손을 잡고 어쩔  몰라하던 여성이 이내 내쪽을 흘깃 돌아보며 얼굴을 발그레하게 물들였다.

"그.. 도, 동생 분도 방송보다 훨씬 더 잘 생기셨네요.."

칭찬이야 언제든 환영이었기에 싱긋 웃는 걸로 감사를 표하니  그래도 빨갛던 여성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상태로 허둥지둥하던 것도 잠시, 가게를 비우고 여기까지 나온 이유를 떠올린 것인지 그녀가 일단 가게로 자리를 옮길 것을 제안했다.

"네, 그러시죠. 아, 그 전에 잠시만요.."


여성의 말에 맞장구를 치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인 세나가 날 향해 손을 내밀었다.

휴대폰을 내놓으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손짓에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휴대폰은 왜?"

"가게 도착할 때까지 방송 잠깐 꺼두려고."

이미 장소가 어느 정도 공개가 된 상황이긴 하지만 그래도 가게에 몇 시간이나 있게 될지 모르는데 거기까지 가는 광경을 방송에 그대로 내보내긴  그랬던 걸까.

"그러면 그냥 도착할 때까지 어디 넣어두면 되지 않아?"


"그러든가 그럼."

그래서 어디다가 넣어둘까 잠시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쥐고 있던 손을 세나의 후드티 주머니 속으로 쑥하고 밀어넣었다.


"햐읏ㅡ?! 야!!"


차가운 손이 배쪽으로 쑥 밀고 들어오니 놀란 것일까.

순간 몸을 움찔한 세나가 뺴액하고 소리를 지르며 역정을 내는 사이, 나는 채팅확인용으로 켜두었던 내 휴대폰 화면 위로 비치는 걸 확인했다.

[여기 사람 있어요!! 이 안에 사람이 있다구요!! 여기 사람 있어요!! 이 안에 사람이 있다구요!! 여기 사람 있어요!!  안에 사람이 있다구요!!]


[햐읏 ㅇㅈㄹ]


[내 귀 어떻게 할 거야 유세나!!!]

[읍읍! 당신들 누구야?!]

[18000명 납치당하는 중 ㄷㄷ]


[꺼내줄 때까지 숨참겠읍니다! 흡!]

다행히 뭔가가 비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보이는 거라고 해봤자 주머니 내부의 풍경이 전부였으니까.

"그, 도착하는 대로 바로 꺼내드릴테니까 그 안에 조금만 들어가 계세요."

혹시 주머니 위에 대고 말하면 방송으로 목소리가 들어갈까 싶어서 후드티로 덮여있는 세나의 배쪽으로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속삭이듯 말해보았다.

"뭐, 뭐해?! 미쳤냐?!"


그래도 소리는 들어가는 모양이다.


세나가 펄쩍 뛰어서 거리를 벌림과 동시에 채팅창이 다시 뜨끈뜨끈하게 변했다.

[네에.. 오빠..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게요.. 네에.. 오빠..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게요.. 네에.. 오빠..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게요.. 네에.. 오빠..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게요..]

[하루종일도 있을 수 있음  ㅋㅋㅋ]


[목소리 뭐야 진짜..]


[후.. 자꾸 화나네;; 화 좀 풀고 옴]

[아 오늘은 ASMR물로 간다]

[ASMR 야동 괜찮은  있으면 추천좀;; 빨리;; 급해요;;]


[방금 나만 얼굴 뜨거워짐?]

[얼굴이 뜨거우면 병원을 가세요 선생님]


[너한테는 두근거림보다 감기가 어울려..]


그런 식으로 출발하기 전부터 약간의 헤프닝이 있긴 했지만 가게까지 가는 길은 그럭저럭 무난했다.


다들 아까 찾아온다느니 기다리라느니 어쩌니 하더니만 세나 방 시청자로 보이는 이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계속 마스크를 뒤집어 쓰고 있었더니 슬슬 답답했던 것일까.

참다 못한 세나가 그것을 거칠게 풀어냈다.


그 타이밍에 맞추어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응?"

"버릴거면  줘."


"이걸?"

"어,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네."

그러니까 그걸로라도 얼굴을 좀 가려야겠다.


그런 의미가 담겨있는  발언에 세나가 몸을 움찔거리며 당황했다.

"그, 그럼 그냥 새로 사면 되지 뭐하러 쓰던 걸.."

"더러울까봐 그래? 어차피 뒤집어서 쓸 거야."


"그,  말이 아니라.."

어떻게 답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눈을 요리조리 굴리며 당황한 모습을 한껏 드러내고 있던 것도 잠시, 편의점을 발견한 세나가 우리를 안내해주고 있던 여성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그쪽을 향해 쪼르르 달려갔다.


"자! 됐지?!"


그러더니 그곳에서 구매해온 마스크를 내 손바닥 위에다가 거칠게 올려놓더라.

졸지에 주먹으로 한  얻어맞은 꼴이 되어버린 손바닥이 시큰시큰 거렸지만 옅게 웃으며 세나에게 감사를 표했다.

"땡큐."


마스크라도 쓰고 나니 그나마  낫더라.

그래도 쳐다보는 건 똑같았지만 전처럼 뚫어져라 쳐다보지는 않았으니까.


그런 식으로 나와 세나가 투닥투닥하는 모습이 제 3자가 보기에는 나름대로 보기 좋았던 것일까.


"근데 두 분 사이가 굉장히 좋으시네요."

스스로를 홍세희라 소개했던 '할리부세'가 나와 세나를 번갈아보며 그리 말했다. 정말로 신기해하는 표정은 덤이었다.

"사이가 좋기는 무슨.. 그냥 웬수에요 웬수."


"대체 누가 웬수를 이런 식으로 살뜰하게 챙겨주는데?"

"살뜰하기는 무슨.."

"그러면 내가 오늘 아침에 만들어준 건 뭔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와.."


"왜? 불만있냐? 불만 있으면 가져가 보시든가."


협박당해 쇼핑에 끌려오게된 원한이 결코 적지 않았는지 자꾸만 깐족깐족대는 세나를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자니 세희가 쿡쿡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부럽네요.  남동생은 저만 보면 맨날 인상만 써대는데.."


그 말을 들은 순간 '그건 복장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왔지만 그걸 입밖으로 내뱉은 우는 범하지 않았다.

"아, 다 왔네요. 여깁니다."

그렇게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말을 다시 마음속으로 꾹꾹 밀어넣고 있으니 눈앞으로 등장한 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훠어어어얼씬 더 큰 가게였다.

골목 안쪽에 있다길래 상가 같은 곳에서 한 칸을 차지하는 그런 자그마한 옷가게를 상상했었는데 말이다.

'워..'

정작 눈앞으로 나타난 건 2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는 거대한 편집숍이었다.

세나도 나와 비슷한 걸 상상했던 걸까.


실물을 확인한 세나가 얼굴을 팍 구겼다.


'아, 어쩐지..'

시청자들 중  명의 가게로 가는 게 어떠냐는 말에 순순히 동의하더라니만 거기만 딱 둘러본 다음에 '이제됐지?'를 시전하고 집으로 튈 생각이었구만.

그런데 이걸 어쩌나.


딱봐도 그런 규모가 아닌데.

"어? 지하도 있어요?"

"아, 네. 지하는 이제 신발하고 가방같은 액세사리 위주긴 한데.."


알고보니 2층이 아니라 지하까지 포함해서 3층짜리였다.

"일단 한 번 쭉 둘러보시겠어요?"

"아, 넵."


심지어 옷도 종류별로 굉장히 많았다.

덕분에 세나의 표정이 더 구겨진  말할 것도 없었고.


"씨이.. 뭐가 이렇게 넓어.."

저것들을 하나하나 몸에 걸쳐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막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몸이 축축 처지고 그런 걸까.

닉네임이  악질이긴 하지만 그래도 상대가 시청자인지라 세나가 차마 대놓고 불만을 표하지는 못하고 뭐라뭐라 꿍얼대는 사이 나는 진작에 확보한 세나의 휴대폰을 손에 쥔채 가게 내부를 활보했다.

그렇게 벽이나 행거에 걸려있는 옷들을 쭉 찍어준 뒤 마지막으로 여전히 부들부들대고 있는 세나의 모습을 화면에 비춰주니 시청자들이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오늘 오전에 당한  있다보니 그걸 마음 속에 쌓아둔 사람이 적지 않았던 모양.

[세나 이제 뒤졌다 ㅋㅋㅋ]

[와 ㅋㅋㅋ 보기만 해도 어질어질하누 ㅋㅋㅋ]


[오늘 이 가게 안에 있는 옷 다 입어볼 때까지 방송하는 거 맞죠?]

[ㅖ]

[네 맞워요~]

[옷 가게 켠왕 ㄷㄷ]

[아니 근데 가게 크기 뭔데;;]

[어쩐지 짤짤이를 계속 만원으로 박더라니만..]


[박아? ㅗㅜㅑ..]


[아 아다 티좀 내지 말라고 ㅋㅋ;;]

"그래서 이 중에서 뭐부터 입혀볼까요?"

"아,  혹시.. 이렇게 하는 건 어떠세요? 그냥 쇼핑만 하면 좀 지루하니까.."

그  눈밑이 퀭해진 세나를 두고 시청자들과 작당모의를 하고 있으려니 마실 것좀 챙겨오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웠던 할리부세, 아니 세희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제안을 해왔다.

"그러니까.. 세나 님이 따로, 제가 따로, 그리고 동생 분이랑 시청자 분들이 따로 골라가지고 챙겨온 다음에.."

"그중에서 제일 잘 어울리는 걸로 고르자는 말씀이시죠?"


"네네!"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 생각했다.


해서 세나의 생각은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질문을 던졌더니 세나가 아무렴 좋다는  고개를 끄덕끄덕 흔들어댔다.

다 필요 없고 빨리 이 쇼핑이라는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은 모양.


제안이 받아들여지기 무섭게 세희가 자리를 벗어났다.

보아하니 미리 생각해놓은 것들이라도 있는 모양.


해서 그녀를 따라 출발하기 전에 세나 쪽을 돌아보며 당부했다.


"누나도 골라와야 되는  알지?"

"어.."

"귀찮다고 아무거나 집어오진 말고."


"응.."


넋이 나간 얼굴로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어대던 세나까지 떠나고 나서야 나도 출발할 수 있었다. 물론, 시청자들도 함께였다.

방송 주인이 세나임에도 불구하고 내게 시청자들을 붙여준  내가 그녀들과는 달리 남자기 때문이겠지.


[근데 이왕하는 거 벌칙같은 것도 거는 게 좋지 않음?]


[ㄹㅇ 벌칙이라도 없으면 세나 저  보나마나 아무거나 주워올텐데 ㅋㅋ]


[아 스포 ㄴ]

"벌칙이요? 흠.. 좀 이따가 모이면 한  물어봐야겠네요."

그리 말하고는 아까 가게 안을 구경할 때처럼 곳곳에 걸려있는 옷들을 카메라로 쭉 한 번 비췄다.


"그래서 이 중에서 뭐가 괜찮을까요?"


그렇게 가게를 뽈뽈 돌아다니면서 시청자들이 추천한 옷과 내가 세나에게 입혀보고 싶은 옷들을 추려 약속 장소인 1층으로 내려갔다.


"아, 마침 오셨네요."

우선, 세나가 골라온 것부터 확인해보기로 했다.

그래봐야 또 후드티 비스무리한 거나 주워왔겠지 했는데 의외로 정상적인 복장이었다.


[이게 머선129;;]

[후드티가 아니라고? 뭐지? 버근가?]


[세나가 후드티를 선택하지 않은 세계선 ㄷㄷ]

[근데 걍 무난무난하네]


[아 이건 아니지]


[ㄵ]

[씹 ㄵ]

무난함 그 자체라 특색이 없어서 그렇지.

그래도 얼굴이 얼굴이다보니  어울리긴 하더라.

세나 다음은 세희였다.


"여기요."

원래 입고 있던 복장으로 갈아입고 나온 세나를 향해 세희가 불쑥 들이민 건ㅡ

"이, 이걸.. 입으라고요?"


청색의 멜빵바지였다.


[엌ㅋㅋㅋ]

[얌전한  하더니 역시 악질이었누 ㅋㅋㅋㅋㅋ]


[응애  애기 세나 멜빵 바지 입어쪼]


[닉값 미쳤꼬 ㅋㅋ]

확실히 다 큰 성인이 입기에는 조금 미묘한 복장이긴 했다.


혹시 세나를 놀리려고 저러는 건가 싶어서 세희의 얼굴을 흘깃하고 쳐다봤지만 눈에 비친 그녀의 표정은 진지하기만 했다.

"네, 틀림없이  어울리실 거에요."

그렇다면 저 말도 진심이라는 건데..


그래서 한 번 상상해봤다.

세나가 저걸 입었을 때의 모습을.

'..나름 괜찮을 것 같은데?'

질리지도 않는 지 백날 천날 입고 다니는 그 놈의 후드티들하고도 나름 잘 어울릴 것 같았고 말이다.

"그래도 골라오신 성의가 있는데 일단 한 번 입어봐 누나."

세희에 이어 나까지 권하니 마냥 거절하기도 그랬던 걸까.


에효하고 한숨을  내쉰 세나가 그것을 받아들고는 탈의실로  들어가버렸다.


"입고 계신 후드티 위에다가 그대로 입으시면 돼요!"

세희가 세나가 들어간 탈의실에 대고 그렇게 소리친지 얼마나 지났을까.

차륵-


문 역할을 하고 있던 커튼이 옆으로 걷히며 그 안에서 세나가 쭈뼛쭈뼛 걸어나왔다.

"와.."


솔직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어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실제로 확인해보니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잘 어울렸으니까.

내 입에서 흘러나온 감탄사를 들은 것일까.


애같은 복장을 하고 있는 게 부끄럽기라도 했는지 허리춤 쪽을 꼬옥하고 움켜쥐고 있던 세나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리고 정확히 그때부터 세희가 자기가 챙겨온 것들을 세나를 향해 들이밀기 시작했다.


"거기에다가 이제 이 비니를  써주면!"

세나의 갈색 머리카락 위로 고양이 귀를 생각나게 하는 모양의 까만 비니가 덧씌워졌다.

물론, 귀여웠다.

"아, 이것도  번 입어보시겠어요?"


"아, 갈아입으시는 김에 이것도..!"

"음, 이거보다는 더 밝은 색이 나을 것 같네요. 잠시만요.."

"이것도  번..!"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세희의 공세는 세나가 초주검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세나가 초주검으로 변하고 나서야..

"그러면 이제 나하고 시청자분들이 골라온  입어볼 차례네?"

"제, 제발 그만.."


드디어 나, 아니 우리의 차례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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