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1부
내가 가봤는데 여기가 좋더라.
내가 친구한테 들었는데 여기가 좋더더라.
대충 그런 뉘앙스의 후원들부터 시작해서 아직 가겠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페이백 이벤트를 펼치며 자기네 가게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사장님들의 후원까지.
당황스러울 정도로 많은 후원들이 쉬지않고 밀려들어왔다.
아니 무슨 옷 가게 하는 사람이 이리도 많단 말인가.
서울에서 옷 장사 하는 사람은 죄다 들어와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기네 가게로 오라고 유혹하는 후원들이 끊이질 않았다.
'혹시 뭐..'
옷 장사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단톡방같은 곳에 좌표라도 찍힌 건 아닐까.
흑우 중에서도 흑우라 할 수 있는 1++등급 슈퍼 흑우가 떴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오죽하면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래서 어느 하나를 고르기가 굉장히 애매했다.
후원에 반응할라 치면 다른 후원이 뿅하고 튀어나와서 후원 메시지를 끝까지 읽을 시간마저도 부족했으니까.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기도 했다.
아니, 시청자들 중에 옷장사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고 옷에 관심있는 사람도 이렇게나 많은데 왜 방송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세나는 왜 저 모양 저 꼴인가 싶었으니까.
그래서 나도 모르게 하하고 코웃음 비슷한 소리를 냈더니 세나와 채팅창이 동시에 반응했다.
"왜?"
혹시 뭐 더러운 채팅이라도 본 건 아닐지 걱정이라도 됐던 걸까. 운전 중이라 차마 대놓고 고개를 돌리진 못하고 내쪽을 한 번 힐끔거린 세나가 살짝이지만 걱정이 담긴 목소리를 냈다.
[목소리 뭐야..]
[우리가 동생 분을 웃게 만들었다!! 우리는 동생 분의 감정을 조종할 수 있다!! 우리가 동생 분을 웃게 만들었다!! 우리는 동생 분의 감정을 조종할 수 있다!! 우리가 동생 분을 웃게 만들었다!! 우리는 동생 분의 감정을 조종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웃으신 거?]
[헤으응.. 비웃음도 좋아.. 더 비웃어조.. 헤으응.. 비웃음도 좋아.. 더 비웃어조.. 헤으응.. 비웃음도 좋아.. 더 비웃어조..]
"그냥.. 다들 이렇게 옷에 관심이 많으신데 왜 누나는 그런 것만 입고 다니나 싶어서."
"윽.."
시청자와 세나에게 동시에 딜을 넣었다.
그에 세나는 침음성을 흘리며 정곡이라도 찔린 듯한 반응을 내보인 반면 시청자들의 반응은 또 달랐다. 내 입에서 그 말이 흘러나오기 무섭게 다들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억울한 심정을 토해내기 시작했으니까.
[아 ㅋㅋ 우리도 말했다고~]
[ㄹㅇ 근데 말을 해도 안 들어쳐먹는 걸 어떡함 ㅋㅋ]
[제발 봊같은 후드티 말고 다른 옷도 좀 입으라고 했는데 다음날 딱 색깔만 다른 거 입고 나오는 거 보고 포기함 ㅎ;;]
[아니 근데 솔직히 남자 옷도 아니고 여자 옷을 우리가 왜 신경써야 하냐고 ㅋㅋㅋ]
[ㄹㅇ 남스면 의첸 보는 맛이라도 있지 여스년이 의첸? 우욱 씹;;]
[왜? 그래도 세나 정도면 보는 맛은 있지 않나?]
[레즈야..]
[아니 ㅋㅋ 솔직히 세나 정도면 괜찮지 않나? 나만 그렇게 생각함? ㅎ]
[괜찮지 않은 건 선생님의 정신 상태가 아닐까요?]
[레즈 레즈야.. 대체 왜 그러고 살어..]
[언냐(출렁출렁)]
쭈르륵 올라가는 채팅들을 보니 아무래도 시청자들도 세나의 평소 차림새에 대해 몇 번 지적한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달라지는 게 없으니 이제는 그냥 그런갑다하고 생각하고 넘어가게 된 모양이고.
[애초에 본인이 꾸밀 의지가 없는데 어캄 ㅋㅋ]
[저거 기만질하려고 일부러 저러는 거임 내가 봄 ㅇㅇ]
[남스도 있는 회식 자리에 후드티랑 트레이닝복 입고 나간 거 보고 기겁했잖아 ㄹㅇ]
[나도 ㅋㅋㅋ 저건 또 무슨 얼빠진 련인가 싶더라]
"누나 혹시 뭐 회식같은 거 할 때도 그렇게 입고 나갔었어?"
"아, 아니?! 무, 뭔소리야!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거든?"
"시청자 분들이 그렇다는데?"
"그, 그거 다 거짓말이야 거짓말."
"진짜야? 내 눈 똑바로 보고 말해봐."
"나, 나 지금 운전하는 중이거든? 사고나면 니가 책임질거야?"
거짓말을 할 거면 좀 제대로라도 하던가.
저게 뭐란 말인가.
표정하고 눈이 저래서야 믿어주고 싶어도 차마 믿어줄 수가 없었다.
[이걸 운전 중이라서 사네 ㄲㅂ 아깝숑]
[대신 저랑 아이컨택 해주심 안되나요 ㅎ;]
[시청자들을 구라쟁이로 만드는 스트리머가 있다?!]
[놀랍게도 사실입니다]
[이왜진;;]
[솔직히 로봇이 세나보다 연기 더 잘할듯 ㅋㅋㅋ]
[킹파고님 무시 ㄴ]
[걍 전자사내 놈만 가져다 놔도 방금 세나 목소리보다는 자연스러울듯]
[그.정.도.는.아.니.거.든?]
아무튼 그래서 어디로 가야 이 안타깝고 글러먹은 존재를 그나마 좀 갱생시키는 게 가능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세나에게 현 상황을 공유했다.
다들 선페이백까지 해주면서 자기네 가게로 오라고 유혹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말이다.
그런 내 말을 듣고 세나가 결론이랍시고 내놓은 건 간단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면 그냥 니가 가고 싶은 데로 골라."
그리 말하고는 히죽하고 웃는 게 뭔가 꿍꿍이 속이 있어보였지만 일단은 모르는 척 해주기로 했다.
"내가 가고 싶은 곳? 그러면.. 그 아까 후원해주셨던 분 중에 할리부세님 계신가요?"
"할리부세? 그게 닉네임이야?"
닉네임 한 번 특이하다는 투로 중얼거리던 것도 잠시 뭔가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거라도 있었는지 세나가 몸을 흠칫했다.
"야, 잠.."
허나 세나가 무어라고 말을 하는 것보다 그 닉네임의 주인으로부터 반응이 돌아오는 게 훨씬 더 빨랐다.
[할아버지리어카부수는세나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호, 혹시 저 부르신 거 맞나요?
"네, 맞아요. 할아버지리어카부수는세나님."
"아니, 골라도 하필.. 그런 닉네임을.."
기가 막히다는 투로 꿍얼거리는 세나를 뒤로한채 '할아버지리어카부수는세나', 줄여서 '할리부세'와 협상을 시작했다.
"아까 그.. 후원으로 원하는 옷이 있으면 주변에 있는 가게들을 다 털어서라도 공수해주신다고 하셨잖아요."
[ㅅㅂ 쟨 진짜로 털 것 같아서 무섭누;;]
[아니 골라도 하필 ㅋㅋㅋㅋㅋㅋ]
[닉네임 씹 악질이네 ㅋㅋㅋ]
[그러면 이제 할아버지리어카부수는세나가 아니라 남의옷훔쳐입는세나 되는 거임?]
[남옷훔세 ㄷㄷ]
아무래도 방송 딜레이같은 것도 있고, 채팅이 하도 빨라서 채팅으로 소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보니 대답은 좀 늦게 돌아왔다.
[할아버지리어카부수는세나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네, 네! 저희 가게 근처에 다른 옷 가게도 많아요! 필요하신 거 있으면 거기 다 뒤져서라도 찾아다 드릴게요!
저렇게까지 확답을 할 정도면 그냥 해본 소리는 절대 아니라는 거겠지.
"좋네요. 아 그런데 혹시ㅡ"
지금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 이 말을 입밖으로 뱉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내뱉었다.
"그.. 싸게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의미심장하게 들릴 수 있도록 일부러 그런 목소리로 내뱉은 내 발언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건 세나였다. 싸게 해줄 수 있냐는 내 말에 그만 다른 걸 상상해버리기라도 한 것일까.
콜록하고 세나의 입에서 사레라도 들린 듯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채팅창 위로 쏟아지기 시작한 건 그 직후였다.
[ㅆㅂ 더는 못 참겠다 이 애액 도둑놈 자지 딱대! ㅆㅂ 더는 못 참겠다 이 애액 도둑놈 자지 딱대! ㅆㅂ 더는 못 참겠다 이 애액 도둑놈 자지 딱대! ㅆㅂ 더는 못 참겠다 이 애액 도둑놈 자지 딱대!]
[학생.. 애기씨주머니 텅텅 빌 때까지 싸게해줄게^^ 학생.. 애기씨주머니 텅텅 빌 때까지 싸게해줄게^^ 학생.. 애기씨주머니 텅텅 빌 때까지 싸게해줄게^^]
[ㄹㅇ 애기씨 주머니 빵빵해질 때까지 자지 쭈왑쭈왑 한 다음에 정액분수 퓻퓻 하게 해주고 싶노]
[헤으응.. 나도 싸게 해줄 수 있는데.. 헤으응.. 나도 싸게 해줄 수 있는데.. 헤으응.. 나도 싸게 해줄 수 있는데.. 헤으응.. 나도 싸게 해줄 수 있는데.. 헤으응.. 나도 싸게 해줄 수 있는데..]
[다들 메모장 켜!! 다들 메모장 켜!! 다들 메모장 켜!! 다들 메모장 켜!! 다들 메모장 켜!! 다들 메모장 켜!!]
[악질련 개부럽네 ㅅㅂ]
[자꾸 이렇게 누나 화나게 할거야? 자꾸 이렇게 누나 화나게 할거야? 자꾸 이렇게 누나 화나게 할거야? 자꾸 이렇게 누나 화나게 할거야? 자꾸 이렇게 누나 화나게 할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악질했지 아 ㅋㅋ 괜히 채팅 착하게 쳤네]
[아 ㅋㅋ 오늘부터 악질한다 ㄱㄷ 닉 바꾸고옴]
[얼굴도 그렇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 완전 보화천이시네요^^]
[현역 남대생의 의미심장한 멘트.. 이건 참 귀하네요]
[ppt땄읍니다^^ ppt땄읍니다^^ ppt땄읍니다^^ ppt땄읍니다^^ ppt땄읍니다^^]
[ppt말고 방금 그거 클립이나 따라고 아 ㅋㅋㅋ]
[이미 클립따서 다운로드까지 해놓음 나중에 이거 들으면서 해야지 ㅋㅋㅋㅋ]
[아니 씹 ㅋㅋ 나만 이상한 상상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누 ㅋㅋㅋ]
[발정난 련들 개많네;; 단체로 배란기옴?]
[멘트 무쳤냐고;;]
[얘들아 멀리 안 나간다~]
[그날 육수들은 네 장의 고소장을 받았다..]
마치 우연을 핑계삼아 세나의 방송에 처음으로 얼굴을 내비췄었던 그날마냥, 아니 그날보다도 더 심한 광기가 채팅창 위에서 넘실거렸다.
"으.."
그에 슬쩍 인상을 찌푸리면서 앓는 소리를 내니 사레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얼굴을 살짝 빨갛게 물들이고 있던 세나가 거기에 반응했다.
"왜?"
"아니, 자꾸 이상한 채팅이 보여서.."
"그.. 니, 니가 이상한 말을 하니까 그렇지!!"
"아니, 옷 싸게 사면 좋잖아. 그게 대체 뭐가 이상하다는.."
정말 이해가 안 된다는 투로 꿍얼거리니 세나의 얼굴이 조금 더 붉어졌다.
그렇게 제 발 저린 도둑마냥 세나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 동안에도 시청자들은 신나서 날뛰고 있었다.
[솔직히 싸면 좋긴해 ㅋㅋ]
[암요, 절대 이상한 말 아니니까 아까 그 멘트 한 번만 더 해주실래요? 저희 소중이가 한 번 더 듣고 싶대요]
[매니저들 없다고 악질련들 살판났네]
[고소가 무섭지도 않더냐 이 년들아..]
[할아버지리어카부수는세나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공짜로 해드릴게요! 그러니까 제발 저희 가게로..
그 와중에 들어온 '할리부세'의 후원에 이번에는 난색을 표했다.
"아뇨, 아무리 그래도 공짜는 좀.."
[할아버지리어카부수는세나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그러면 서비스 팍팍 얹어드릴게요! 네?
후원사이트에다가 대체 얼마나 충전해놨길래 저렇게 만원짜리 후원을 빵빵 쏴대는 걸까.
"혹시 가게 사장님이신가요?"
[사장이겠지 ㅋㅋㅋ]
[그럼 설마 알바겠음? ㅋㅋㅋ]
[근데 솔직히 직원이라고 해도 이 정도면 사장이 칭찬해줘야 하는 거 아님? 가게 홍보 개꿀이자너 ㅋㅋ]
[가게 홍보하면 뭐함 어차피 니들 옷 살 때 인터넷으로만 사잖아]
[앗..]
[솔직히 그렇긴 해 ㅋㅋ]
[아니 인터넷이면 다 되는데 뭐하러 귀찮게 직접 사러가냐고 ㅋㅋ]
[ㄹㅇ 피곤하기만 하지]
[이불밖은 위험하다 이 말이야]
[왜? 나는 남자친구하고 쇼핑다니는 거 재밌던데]
[ㅆㅂ련이 기만질이네]
[매니저!!!!!!!!!]
[방장!! 뭐해!! 뭐하냐고!!]
[매니저든 방장이든 제발 저 기만자 련 좀 어떻게 해봐!!]
[채팅 하나에 어그로 끌리는 거 보소 ㅋㅋ 어그로 끌 맛 나겠누 ㅋㅋ]
쏟아지는 채팅들을 보고 있으니 다시 한 번 후원이 이어졌다.
[할아버지리어카부수는세나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아, 네네 제 가게 맞습니다. 원하시면 서류도 보여드릴 수 있어요!
그렇다니 나중에 그거하고 관련해서 문제가 생길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가야지.'
서비스까지 팍팍 얹어준다고 하지 않는가.
"그, 가게 주소 좀 알려주시겠어요?"
해서 오른손에 들고 있던 세나의 휴대폰에 대고 그리 말하니 채팅창 위로 온갖 주소들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다들 설마 자기 집 주소를 부르고 있기라도 한 걸까.
[할아버지리어카부수는세나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아, 그.. 저희 가게가 좀 많이 안쪽에 있어서 직접 찾아오시려면 힘드실텐데 혹시 한대 쪽에 독수리 조각상 있는 곳 아시나요? 거기서 기다리고 계시면 제가 직접 모시러 가겠읍니다.
[한대? 바로 간다]
[아 ㅋㅋ 회사만 아니었어도;;]
[아 그 부리만 노랗게 칠해져있는 독수리상 말하는 건가]
[팬미팅 딱대!!]
[혹시 오늘 팬감사제 하는 날인가요?]
[1VS100 ㅗㅜㅑ]
[술래잡기 가즈아~]
한대 쪽에 독수리 조각상이 있는 곳이라.
당연히 알 리가 없었다.
'한대가 어딘데 시발..'
애초에 한대라는 대학교도 오늘 처음 들어봤으니까.
서울이라는 이름은 그대로더만 왜 내용물은 싹다 달라진 걸까.
"한대 쪽 독수리 조각상.."
속으로 그런 의문을 느끼면서 '할리부세'가 불러준 걸 중얼중얼대며 네비게이션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한대라는 글자를 입력하고 있으니 의외로 세나가 거기에 반응을 보였다.
"독수리 조각상? 그거 혹시 한대역 앞에 있는 거 말하는 거야? 그 부리만 노란 거?"
"뭐야, 누나 어딘지 알아?"
그리 반문하고는 거긴 또 어떻게 아냐고 물어봤더니 옛날에 공방 때문에 그쪽에 몇 번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오다 가다 본 조각상이 워낙 특이하게 생겨서 여태껏 기억하고 계시단다.
"그쪽으로 가면 되는 거야?"
"응, 그 조각상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데리러 오신다는데."
그렇게 생각보다 손쉽게 문제의 장소에 도착한 순간 그런 나와 세나의 앞으로 나타난 것은ㅡ
"그, 호, 혹시.. 세, 세나 님이랑 동생 분 맞으신가요?"
악질 그 자체나 다름없는 닉네임과는 어울리지 않게 굉장히 수줍음이 많아보이는 여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