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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화 〉1부 (54/315)



〈 54화 〉1부
화장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상점부터 켰다.

운이라고 하니 마침 떠오르는 물건이 하나 있었으니까.


'분명 이 쯤에 있었을텐데ㅡ'

그리 중얼거리기 무섭게 500만 캐쉬라는 결코 적지 않은 가격을 자랑하는 물건 하나가 눈으로 들어왔다.

처음 봤을 때는 설명을 보고 뭐 이딴  500만 캐쉬나 받고 파냐고 꿍얼거리고 넘어갔던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500만 캐쉬나 하는 것 치고는 설명란에 적혀있는 게 너무 부실했으니까.

몸에 지니고 있다보면 어쩌면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니.

그딴 모호한 설명을 믿고 어떻게 500만 캐쉬나 되는 큰 돈을 투자한단 말인가.


심지어 영구적인 것도 아니었다.

한 줄 뿐인 설명 밑에 구매한지 15분이 지나게 되면 시들어서 평범한 물건이 되어버리니 주의하라고 떡하니 적혀있었으니까.


원래였다면 궁금하더라도 어지간해서는 지르지 않았을 거다.

그럼에도 질렀다.


그거라도 있으면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으니까.

'시무룩해하고 있으면 마음이 영 불편하단 말이지..'

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만ㅡ


아무튼 그렇게 허공에서부터 팔랑팔랑 떨어져내린 것을 손으로 낚아채 그대로 주머니 안에다가 쑤셔넣었다.

그리고는 손에 적당히 물기를 묻혀준 뒤 그대로 화장실을 빠져나와 다시 세나의 방으로 향했다.

'15분안에 될지 모르겠네..'

라고 중얼거리며 그 안으로 들어서니 세나가 컴퓨터 앞에 찰싹 붙어앉아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대체 뭘 저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 걸까.

"아, 왔어? 내가 미리 다 충전해놨어. 그러니까 와서 돌리기만 하면 돼."

"이번에는 또 얼마나 썼는데?"


정말로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으니 세나가 슬그머니 손가락 하나를 들어보였다.

"10만원?"

"..."

"백이구나."

얘를 대체 어쩌면 좋을까.

간섭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게 바로 조금 전인데 좋다고 히히덕대고 있는 꼴을 보니 그런 생각이 안 들래야  들 수가 없었다.


"지, 진짜 마지막이야. 오늘은 더 안 지를거야."

"오늘은?"

"아니 뭐.. 계, 계속 안 지를 수는 없잖아.."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실랑이할 시간도 아까웠다.

그새 못해도 1분은 지났을테니 이제 남은 시간이라고 해봐야 13분에서 12분 남짓일테니까.

"그래, 뭐.. 누나가 알아서 하겠지. 그건 됐고 어떻게 하는 지나 알려줘봐."


그에 고개를 끄덕끄덕한 세나가 부산스럽게 뭔가를 하는 사이 미션창 쪽을 확인했다.


그새 얼마나 늘어났을지 궁금해서 그랬던 것인데..

'뭐지 시발 버근가.'


백만원이었던게 어느새 이백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미션금액은 아까만큼은 아니어도 꽤나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그새 내가 등장했다는 소식이 퍼지기라도 했는지 시청자 수도 아까보다 훨씬 늘어나 있었고.

[헤으응.. 오빠 어디갔다 왔어.. 애태우지마.. 헤으응.. 오빠 어디갔다 왔어.. 애태우지마.. 헤으응.. 오빠 어디갔다 왔어.. 애태우지마.. 헤으응.. 오빠 어디갔다 왔어.. 애태우지마..]

[동생까지 동원한 멸망전 ㅋㅋㅋㅋ]

[안 보이길래 어그론가 했더니 진짜로 나오네 ㅅㅂ ㅋㅋㅋ]


[극한직업 세나동생 편임?ㅋㅋㅋㅋㅋㅋ]


[축제인가요?]


[아뇨 뚱인데요?]

[아뇨 인디언식 기우제를 지내고 있는 중입니다]

"자, 여기 봐봐. 여길 이렇게 누르다가 여기 써져있는  세 개가 전부 똑같아지면 멈추면 되는 거야."

첫 스타트는 세나가 끊었다.


아무래도 시범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모양.


결과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했다.

세 개 중  개가 똑같았을 뿐더러 옆에 붙은 수치도 둘다 제일 높은 거라던 12%였으니까.

[ㄲㅂ ㅋㅋㅋ]


[이걸 한 줄이 삑나네 ㅋ]


[아 떴으면 레전든데 ㅋㅋㅋ]


[아니 뜨겠냐고]

[순간 뜬  알고 설렜죠? 기대했죠~? 순간   알고 설렜죠? 기대했죠~? 순간 뜬 줄 알고 설렜죠? 기대했죠~? 순간  줄 알고 설렜죠? 기대했죠~?]

[저딴  대체 누가 만든거냐]


[내 말이  봊같음]

[돈이 삭제가 된다고!! 돈이 삭제가 된다고!! 돈이 삭제가 된다고!! 돈이 삭제가 된다고!! 돈이 삭제가 된다고!! 돈이 삭제가 된다고!!]

[클릭할 때마다 2천원씩 증발 ㅋㅋㅋ]


[솔직히 가챠겜보다 큡이 더 악질임 ㅋㅋ 가챠겜은 천장이라도 있지 이건 ㅅㅂ]


[이런 초딩겜 말고 갓겜 든파 하쉴?]


[-든-]

[그래도 -든- 보다는 -단-이지 ㅇㅈ?]


[응 둘다 병신겜이야]


저 큡이라는 걸 대체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걸 만든 사람은 참 오래 살겠구나 싶더라.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여전히 컴퓨터 앞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세나를 향해 손을 휘휘 저었다.

"비켜."


"아, 자, 잠깐만 의자 가져다 줄게."

"아니 부정탈 것 같아서."

"..."

모처럼 500만 캐쉬나 되는 거까지 질렀는데 거기에 세나라는 먼지가 묻게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게 세나를 뒤로 쫓아보낸  바로 조금 전까지 그녀가 앉아있던 자리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그리고는 '에휴..'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며 아까 세나가 가리켰던 초록색 버튼을 향해 마우스 커서를 가져다 댔다.

"이거 누르면 되는 거지?"


"으, 응!"

"실패해도 나한테 뭐라고 하지 말고."

"아, 안 그래! 내가 미쳤냐!"

"그러면 누른다?"

누르는 건 난데 왜 자기가 저렇게 긴장하고 있는 걸까.

아무튼 세나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고개를 한  끄덕해보인 순간 마우스 왼쪽 버튼을 슬며시 눌렀다.


딸칵-하고 자그마하게 울려퍼진 소리와 함께 자그마한 창 위로 빛가루가 샤르륵 흩뿌려졌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한 번만에 뜰까 싶어서 별 기대  하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어?"

가장 먼저 눈으로 들어온 건 STR이라는 글자가 나란히 늘어서있는 모습이었다. 다음으로 들어온 건 최상옵이라던 12%의 행렬이었고.

"그.. 누나?"


"으, 응?"

"..이거  거 같은데?"


세나 쪽을 돌아보며 그리 말하니 무슨 기도라도 하는 것마냥 두 눈을 질끈 감은채  손을 꼭 맞잡고 있던 세나가 슬그머니 한쪽 눈을 떴다.


그 상태로 얼마나 지났을까.


아무래도 거리가 있다보니 잘 안 보일  같아서 슬쩍 옆으로 비켜주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윙크라도 하는 것마냥 한쪽눈만 게슴츠레하게 뜨고 있던 세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대로 방방 뛰어다니기 시작했으니까.

스튜디오가 떠나갈 듯한 비명소리는 덤이었다.

그런 식으로 스튜디오 안을 폴짝폴짝 뛰어다니던 것도 잠시, 캠 앞으로 호다닥 달려온 세나가 그때부터 신이 나서 깐족거리기 시작했다.

"뭐어? 안전자사안?"

[아니 이게  뜸;;]


[말이  되는  동생 분 운이었고연]


[36퍼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랐.. 저거 현으로 얼마나 하려나]

[안전자산이라고 미션에 배팅한 흑우 없제?]


[ㅆㅂ 개 꼴받네..]

"아니죠? 아니죠? 안전자산 절대 아니죠? 떴죠? 36퍼 떴죠? 성공이죠?"

고개를 옆으로 까딱까딱 해가며 히히덕대는데 솔직히 진짜 얄밉더라.

그렇게 시청자들을 상대로 깐족거리던 것도 잠시, 금세 표정을 고쳐보인 세나가 송출용 컴퓨터와 연결된 마우스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고오 무슨 페이백을 3백만원씩이나아 다들 돈슨 직원분들이신가? 뭐 아무튼ㅡ"


히죽하고 웃은 세나가 보란듯이 마우스 버튼을 딸칵하고 눌렀고..


-미션 성공!

"페이백 달달하게 받겠습니다 선생님들?"

그 문구와 함께 그때부터 후원이 미친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래..'

세나는 역시 저래야지.

언제 시무룩해하고 있었냐는 듯 금세 원래 모습을 되찾은 그녀를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질리지도 않는지 쉬지않고 시청자들을 상대로 깐족거리던 세나가  와중에 올라온 채팅 하나에 반응을 보였다.


"뭐? 남은 거 마저 돌려보게 하라고? 그럴까?"

그러더니 내쪽으로 고개를 홱 돌리더라.

"그 있잖아.. 유한아."

"응?"


"남은 거 아까우니까 조금만 더 돌려볼래?"

"응? 성공했잖아."


"다른 부위도 할 수 있거든. 호, 혹시라도 그것까지 띄우면 아까 미션 성공해서 들어온 거 다 너 줄게!"

[아니 그럼  주려고 그랬누 ㅋㅋㅋ]

[실례지만 선생님 양심이라는 건 큡하고 바꿔먹으셨나요?]

[양아치세요? ㅋㅋㅋ]


"필요없는데."

솔직히 돈 주면 좋기는 하다.

이걸 위해 500만 캐쉬나 썼으니까.

그렇다고 그냥 들어줄 생각은 절대 없지만.


"그, 그러면 혹시 뭐 사고 싶은 거 없어? 응? 누나  가질래? 차?"

"면허도 없는데 차를 어디다가 쓰라고."

"그, 그러면.."


"주인님이라고 불러봐."


"뭐, 뭐?!"


"싫어? 싫으면 말고."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척을 하니 세나가 언제 표정을 찌푸리고 있었냐는  비굴하게 웃으며  다시 자리에 눌러앉혔다.

"아, 아니이 내 말은 싫다는 게 아니라아.."


"클릭  번당 한 시간 어때?"


그리 말한 순간 세나의 눈동자가 미친듯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까 산   쓰게 되면  몇 분이 될지 계산이라도 하고 있는 걸까.

"대신 실패하면 무효로 해줄게."


솔직히 말하면 망설이거나 거절할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동생한테 주인님이라 부르기에는 세나가 가진 여자로서의 자존심이 그걸 허락치 않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세나의 얼굴 위로 망설임이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그러더니 눈을 질끈하고 감길래 결국에는 거절하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ㅡ


"하,  시간 말고 30분은  될까?"

아무래도 세나에게는 여자로서의 자존심보다 게이머로서의 욕망 쪽이 더 위였나 보다.

기껏 눈치를 보다가 한다는 말이 저거라니.

"그래, 봐줬다."

"시, 실패하면 무효인거지?"


"네에, 네에."

그렇게 극적으로 협상이 타결되자마자 세나가 새로운 아이템을 큡인지 뭔지 하는 것 위에다가 올려놓았고ㅡ


"처음에 누나가 하나 썼고 하나당 12개짜리 묶음이 총 50개였으니까.."


"..."


 날 세나는 4개의 36퍼 템을 받게 되었다.


"599에 30분을 곱하면 대충 18000분이네?"


"무, 무효로.."

"하루가 1440분이니까 18000분이면 한 12일쯤 되려나?"

"해주면 안 될.."


"에이, 내가 선심썼다."

내 말에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날 올려다보는 세나와 시선을 똑바로 맞추며 씩 웃었다.


"깔끔하게 12일로 해줄게."

"..."

"그럼 12일동안 잘 부탁해? 우리 노예?"

희망이라는 걸 영영 상실해버린 사람의 모습이 저러할까.


내게 배신이라도 당한 사람마냥 텅빈 눈으로  바라보는 세나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었다.

 열심히한 노예에게 칭찬이라도 해주는 것처럼.


덕분에 기뻐서 그만 의자 위에 털썩 주저앉아버리고 만 세나를 보며 시청자들은 부러워서 미치려했다.


그러니까 여러 의미로 그랬다.


[아니 운 미쳤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

[한별쟝.. 당신도 여자였던 거야..? 한별쟝.. 당신도 여자였던 거야..? 한별쟝.. 당신도 여자였던 거야..? 한별쟝.. 당신도 여자였던 거야..?]


[이거 주작임 아무튼 주작임 ㅡㅡ 이거 주작임 아무튼 주작임 ㅡㅡ 이거 주작임 아무튼 주작임 ㅡㅡ]

[운영자 련들 소매넣기 하지말라고!! 운영자 련들 소매넣기 하지말라고!! 운영자 련들 소매넣기 하지말라고!! 운영자 련들 소매넣기 하지말라고!!]

[저거 아이템에 적힌 숫자 다 합치면 영자련 번호나옴 ㅇㄱㄹㅇ임 내가 계산해봤음]

[ㅆㅂ련들이 지들만 사심 채우내 ㅡㅡ]


[아이템 때문에 남동생의 노예를 자처하는 누나가 있다?]

[저희 업계에서는 포상입니다만]


[ㅗㅜㅑ 포상이자너;;]

[씹덕망상병 환자 새끼들 쳐내!! 씹덕망상병 환자 새끼들 쳐내!! 씹덕망상병 환자 새끼들 쳐내!! 씹덕망상병 환자 새끼들 쳐내!!]


[왜 세나한테만 포상줘? 나한테도 포상줘 왜 세나한테만 포상줘? 나한테도 포상줘 왜 세나한테만 포상줘? 나도 포상줘 왜 세나한테만 포상줘? 나도 포상줘]

[ㅆㅂㄹ ㄱㅂㄹㄴ.. ㅆㅂㄹ ㄱㅂㄹㄴ.. ㅆㅂㄹ ㄱㅂㄹㄴ.. ㅆㅂㄹ ㄱㅂㄹㄴ.. ㅆㅂㄹ ㄱㅂㄹㄴ..]

[혹시 세나말고 다른 노예는 안 필요하신가요 ㅎㅎ;; 혹시 세나말고 다른 노예는 안 필요하신가요 ㅎㅎ;; 혹시 세나말고 다른 노예는 안 필요하신가요 ㅎㅎ;; 혹시 세나말고 다른 노예는 안 필요하신가요 ㅎㅎ;;]

[ㄹㅇ 나도 노예 잘할 수 있는데]

[사실 우리집안이 뼈대있는 노비가문임 원하면 족보도 오픈 가능]

[뼈대있는 노비가문이면 선생님 성함은 혹시 김언년 주니어나 김언년 18세같은 건가요?]

[김언년 주니엌ㅋㅋㅋㅋ]


[김언년 18세 미쳤냐고 ㅋㅋㅋ]


[18련아 너 어디살어 ^^]

세나에게 근 300만원에 달하는 돈과 시청자들 피셜로 전서버에도 몇 개 없다던 36퍼템을 네 개나 선물해준 대가로 받은 것은 소소했다.

대가라고 해봐야 12일동안 부려먹을  있는 노예 하나뿐이었으니까.

하루이틀도 아니고 무려 10일이 넘는 기간동안 내게 주인님 주인님 거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눈앞이 까마득하기라도 한 것일까.

 위에서 스스로를 하얗게 불태운 복서마냥 의자 위에 털썩 주저앉아 일어나질 못하는 세나를 뒤로한채 그대로 그녀의 방을 빠져나왔다.

'흐음,  시키는 게 좋으려나..'

세나에게 시켜볼만한 것들을 머릿속으로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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