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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화 〉1부 (48/315)



〈 48화 〉1부

내 말을 듣고 당황과 번민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던 지나는 이어진 내 말을 듣고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이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지나의 몸을 만지작댈 수 있는 것은.


"탄탄하네.. 말랑말랑할 것 같았는데.."

"..운동 끝낸지 얼마 안 됐으니까."

"그렇구나."

말은 탄탄하다 했지만 사실 지나의 몸은 쫀득쫀득한 느낌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끈적거리는 느낌은 분명 아니었다. 남자를 미치게 만드는 살결이라고 해야할까. 손을 움직일 때마다 그것이 슬쩍 들러붙어오는데 그렇게 들러붙었던 것들이 떨어져나가는 느낌이 묘하게 중독적이었다.

"그.. 이 정도면 됐지?"


실제 남동생은 아니지만 남동생처럼 생각하는 아이가 술에 잔뜩 취한 채 자신의 몸을 만지작대고 있는 상황.

그 상황이 주는 묘한 느낌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일까.

끽해봐야 채 5분도 되지 않았는데 지나가 벌써부터 몸을 빼려고 했다.

물론, 놓아주지 않고 잽싸게 따라붙었다.

"아, 왜에에."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


"신기해서 그래 신기해서. 그러니까 응? 좀만 더 만지게 해주라아."


"아니, 대체 뭐가 그렇게 신기하다고.."

말과 행동이 서로 반대였다. 정말 이해가 안된다는 것처럼 툴툴대는 것치고 지나는 얌전히  손길을 받아들이고 있었으니까.


"난 충분히 신기하거든? 흐, 따뜻하다.."

"..아까는 덥다며."

"더운데 이건 따뜻해서 좋아."

그리 말하며 손을 좀 더 깊숙한 곳을 향해 전진시켰다. 상대적으로 민감한 부위를 향해 나아가는 내 손길에 몸을 흠칫했던 것도 잠시, 지나가 고개를 슬쩍 옆으로 돌렸다.


"따뜻해서 추위를 안 타는 건가? 아닌데.. 그러면 그만큼 더위를  타야하는데.."


의미없는 말을 굉장히 진지하게 중얼거리면서 손을 살짝 돌려 상대적으로 연한 곳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손으로 꼬옥하고 움켜쥐고 곳을 향해 조심스레 몸을 기울여 얼굴을 가져다댔다.

그리고는 작게 킁킁거리고 있으니ㅡ


"뭐, 뭐하는 거야! 내, 냄새는 왜..!"

"응? 아, 왠지 커피우유 냄새가 날 것 같아서."


"나, 날 리가 없잖아..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응? 그렇지만 딱 커피우유 색이잖아. 아니다. 거기에다가 우유 좀 더 섞은 느낌인가?"

지나를 향해 기울이고 있던 몸을 물리지 않은  그리 말하니 내 숨결이 피부를 스치며 지나가는 느낌이 낯설었던 걸까. 손 안에 잡혀있던 것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그 안으로 힘이 바짝 들어갔다.

덕분에 살짝 딱딱하게 변한 감촉을 느끼면서 슬쩍 고개를 들어올려 지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헤ㅡ'하는 느낌으로 헤실헤실 웃고 있다가ㅡ


"ㅡ한 번 핥아봐도 돼?"


마찬가지로 헤실헤실 웃으며 물었다.

당연히 지나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기겁한 표정을 한채 날 바라보고 있던 지나가  모습 그대로 굳어버렸다. 동시에 그녀의 얼굴 위로 붉은색이 폭발적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무, 뭐?"


"..안 돼?"


"다, 당연, 하지."


"아, 한 번마안 커피우유 맛 날 것 같단 말이야."

"..날 리가 없잖아. 그러니까 누나 놀리는 건 그쯤 해."


 이상 내게 휘둘리면  될 것 같았던 걸까. 지나의 표정이 엄하게 변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빨개서 평소랑은 다르게 하나도 엄하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여기까지만 마시는  좋겠다. 유한이 너 많이 취했어."

"..데."

"뭐?"


"아닌데?"

"아니기는 뭐가 아니야. 괜히 내일 아침에 후회하지 말고 얼른 떨어져."


말은 그리 해놓고서 차마  떨쳐내지 못하는 건 혹시 그랬다가 내가 다치기라도 할까봐 걱정해서 그런 거겠지.


덕분에 나야 좋았지만.


"아니라니까ㅡ?"

"거울이나  보고 말하시지? 지금 니 얼굴이 어떤 지나 알아?"

"어떤데?"

"..뭐?"

"내 얼굴이 어떤데?"

이번만큼은 아무리 지나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지나는 어디가고 지금 내 앞에 있는 건 꿀먹은 벙어리 뿐이었다.


그래서였다. 속으로 히죽하고 웃으며 손으로 꼬옥하고 움켜쥐고 있던 곳을 향해 입을 가져갔던 것은.


그런 식으로 유한이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을  지나는 뭐라 이루말할  없는 극심한 혼란에 휩싸여있었다.


물론, 유한이 던진 질문 때문이었다.

-내 얼굴이 어떤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 어려운 질문도 아니었다.

고민할 필요조차 없이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빨갛다.'라고 답을 하면 될뿐인, 간단하기 그지없는 질문.

그런 것을 받아놓고도 거기에 대고 답을 하기는 커녕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말이 귓속으로 흘러들어온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이 '빨갛다.'가 아닌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절대 입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아니 내뱉어선  되는 말.

머릿속으로 가장 먼저 떠오른 게 그것이라는 사실에 지나는 뭐라 이루말할 수 없는 극심한 혼란을 느꼈다.


'니가 진짜 미쳤구나 유지나..'

미치지 않고서야 다른 남자도 아니고 유한이를 보고 그딴 생각을 할 리 없지.

 말을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이고 있으니 항의하는 목소리가 뒤따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잖아.

유한이가 그만큼 매력적인데 나보고 어떡하라고.


저 얼굴을 봐.


어느 여자가 저런 얼굴을 보고 참을 수 있겠어?

 목소리가 머리속으로 울려퍼진 순간 눈으로 들어온 유한의 얼굴이었다.

안 그래도 곱상하던 것이 술기운으로 발그레하니 달아올라 흐물흐물하게 풀어져있는 모습은 아찔할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자연스레 호흡이 거칠어질 정도로.


동시에 화가 났다.

아까 유한과 같은 자리에 앉아있던 년들도  얼굴을 봤을 거라고 생각하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다. 배 안에서 뭔가가 뒤틀리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나만..'

오직 나한테만ㅡ


나한테만 보여주면 좋을텐데.

어느새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울려퍼지기 시작한 그 말에 반사적으로 몸을 흠칫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치.."

대체 뭐가 그리 불만인지 작게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ㅡ

쪽ㅡ

부드럽고, 말캉하며 동시에 따뜻한 것이 마치 깃털처럼 팔 위로 내려앉았다.


입을 맞추는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처럼 울려퍼졌다.


그 소리와 함께 몸에서 감각이라는 것이 증발했다.  한 군데만 뺴고.

그래서일까.


몸의 모든 감각이 그곳에 집중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선명한 감각이 뇌에다가 제멋대로 정보를 쑤셔넣기 시작했다.

팔과 겨드랑이를 구분짓은 경계선 위에 사뿐히 내려앉아있는 유한의 입술이 주는 감촉.


살짝 벌어져있는 그것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하고 달콤한 냄새가 나는 숨결.

그리고 그 사이에서 슬쩍 빠져나와 피부 위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 따뜻하고 촉촉한 살덩이의 감촉까지.


그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 화인처럼 새겨졌다.


아니, 그것은 낙인이었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고 평생토록 그녀를 괴롭힐 그런 낙인.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죄인이 맞았으니까.

술에 좀 많이 취해버린 탓에 장난이 심해졌을 뿐인 유한을 상대로, 동생을 상대로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자신은 죄인이었다.

심장이 꼭 팔로 옮겨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유한도 그것을 느끼고 있을까.


부디 느끼지 못했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빌었다.


그걸 들켜버린다면 유한이 자신을 어떤 눈으로 볼지야 뻔했으니까.


그리고 자신은 그걸 견딜 자신이 없었다.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진짜 음미라도 하는 것처럼  눈을 꼭 감은 채 느릿하게 혀를 움직이고 있던 유한의 눈가가 꿈틀하고 떨렸다.

가슴이 철렁했다.


'설마 들킨 건..'

"으.. 짜.."


뒤이어 들려온 유한의 발언을 듣고 안도했지만,  이상으로 민망했다.

짜다니.


그럴 리가 없을텐데..

일하는 동안 땀을 잔뜩 흘리긴 했지만 꼼꼼하게 씻었으니까.


그것이야말로 진실이었지만 그것을 차마 입밖으로 꺼내들 수는 없었다.

커피우유 맛이 날 것 같다고 하더니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 나니 이제 좀 호기심이 해결된 것일까.

팔뚝 옆쪽을 꾸욱하고 누르고 있던 유한의 입술이 슬그머니 떨어져나갔다.

그 사실에 아쉬움과 안도를 동시에 느끼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유한을 꾸중하려고 했다.

그 순간 유한이 똑바로 눈을 맞추며 말을 걸어오지만 않았어도 필시 그랬겠지.


"커피우유맛이 아니네.. 아, 맞다. 누나, 혹시 그거 알아?"


"으, 응?"


 무슨 이상한 말을 하려는 것일까.


묘한 긴장감이 몸 안으로 차오르는 걸 느끼고 있으니 유한이 예의 그 흐물흐물한 미소를 얼굴 위로 띄워보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새터에서 들었는데ㅡ"


대체 거기가서 뭘 들었길래 이다지도 속닥속닥거리는 걸까. 꼭 마치 귀에 대고 직접 속삭이는 듯한 느낌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손목에 부드러운 부분 있잖아."

손목이  어쨌다는 걸까.


라고 중얼거리기 무섭게 팔을 따라 스르륵 미끄러진 유한의 손이 손목을 꼬옥하고 움켜쥐었다.


"으음, 여기라고 그랬었나?"

대체  찾는 건지 모르겠지만 잠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던 것도 잠시, 유한의 손가락이 손목 부근의 피부를 꾸욱하고 떠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떠밀린 것이 묘한 모양새를 이루었다.


"아, 여기를 이렇게 접으면.."

그 모습이 꼭ㅡ


"..응."


자그마한 입술 같았다.


"ㅡ입술하고 똑같은 느낌이 난대."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그런 자신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비슷한 내용의 말이 유한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진짜일까?"

그에 본심을 들킨 것만 같아 흠칫하고 있던 순간, 유한의 입술이 입술같다고 생각했던 부분 위로 슬며시 내려앉았다.

그러더니 이쪽이 뭐라도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다시금 떨어져나갔다.


마치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것처럼.


아니, 실제로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키스는 이런 느낌이구나.."


그리 말하는 유한의 얼굴은 아까와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자꾸만 목이 메어왔다.

왠지 참기 힘든 그 느낌을 있는 힘껏 억누르며 억지로 입을 열었다.


"..그게 어떻게 키스야. 쓸데없는 소리나 하는  보니까 취한 거 맞네."

"그런가? 힣.. 그런가 보다.."


고개를 끄덕끄덕하다가 이내 입을 크게 벌리고는 하품을 하는 걸 보면 슬슬 한계인 걸까.


"이제 집에 가야겠다. 얼른 옷부터 입어."

"응? 벌써?"

"조금만 마시기로 했잖아. 얼른."

"밖에 춥단 말이야.. 조금만 더 있다가 가자. 응?"


"안 돼. 얼른 옷 입어."

단호하게 말했다.

유한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였다.

사방에서 흩뿌려지는 새빨갛고 은은한 빛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꾸만 이상해지는 느낌이었으니까.

"아, 조금만 더 있다가자아."


"안 된다고 했지."


"아, 조금마안."


역시나 또래들과의 술자리에 대한 아쉬움이 컸던 모양이다.


눈꼬리를 축 늘어뜨린채 아쉬움을 표출하던 유한이 찌릿하고 자신을 노려보더니 이내 히죽하고 웃으며 데리러 갔을 때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품 안으로 안겨들었다.


아니, 안겨들려고 했다.


자신이 유한을 밀어내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뒀다면 분명 그리 됐겠지.


"..누나?"

자신의 거절이 그리도 충격적이었던 것일까.


눈을 크게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유한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시큰거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평소라면 상관없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걸 허락해줄 수 없었으니까.


'취한 거야. 취해서 그런 걸거야.'

자신도, 유한도 많이 취했을 뿐이다.


그래서 평소보다 좀.. 들떴던 거다.

단순히 그랬던 것 뿐이다.

그 핑계를 대려면 여기서 멈춰야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더 나아가는 순간 그 핑계는 더는 통하지 않을테니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있던 유한을 향해 단호한 표정과 목소리를 해보였던 것도 그래서였다.

"두 번 말하게 하지말고 얼른."

"..응."


그렇게 잠시 벗어두었던 후드티를 다시 걸쳐입은 유한을 데리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실감할 수 있었다.


유한이  몸 하나 못 가눌 정도로 크게 취한 상태라는 걸.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몸을 휘청휘청하는 것이 보기 안쓰러워서 맘같아서는 몸을 기대고 하고 싶었지만 차마  말을 입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적어도 오늘까지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는 단호한 모습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유한을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그랬다.


그렇게 불안불안하게 걸음을 옮기는 유한의 뒷모습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며 그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가자마자ㅡ

"어휴, 너는 술도 잘  마시는  데리고 뭔 놈의 술을 이렇게.."

기다리고 있던 엄마에게 한 소리 듣게 되었다.

찰싹찰싹하고 등을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귓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익숙하면서도 포근한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좀.. 안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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