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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화 〉1부 (45/315)



〈 45화 〉1부

펠라 한 번에다가 보빨 한 번.

명백히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덕분에 뭐라도 해야한다는 부담감에 쫓기는 일 없이 마음 편히 남은 일정을 즐길 수 있었다.

뭐, 즐길 거리라고 해봐야 옹기종기 모여앉아  마시는 것밖에는 없긴 했지만.

첫날에는 그래도 좀 뭔가 하는  같더니만 둘째 날부터는 정말 시도때도 없이 술이 등장했다.

혹시 참가비 5만원은 전부 술값이었던 걸까.

'시발 이게 새터야 술터야..'


오죽하면 그런 생각까지 들더라.


그래도 덕분에 알아낸 게 하나 있다면  몸은 술이  병이상 들어갈시 필터라는 게 싸그리 사라지고 굉장히 충동적으로 변한다는 것 정도.

건드린다해도 바로 건드릴 생각은 분명 없었는데 그리 생각해놓고서 유린과 단둘이 되자마자 그렇고 그런 제안을 했던 건 분명  영향이었겠지.


'아님 말고.'

아무튼 술이 들어가는 순간 브레이크고 뭐고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부터는 나름대로 자제해보려고 노력했다.


찔끔찔끔 마신다던지 아니면 아예 마시질 않는다던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응?  마시게?"

"응, 속이 좀 안 좋아서."

다행히 뭐라고 하는 이는 없더라.

내가 그런 식으로 남은 시간을 보내는 동안 유린은 어떻게 지내고 있었냐하면ㅡ

'또 저러고 있네..'

아주 그냥 시도 때도 없이 날 쳐다보기 바빴다. 그렇다고 막 노려보거나 그러는  아니고 계속 간절하기 짝이 없는 눈빛을 보내온다고 해야할까.


이번에는 정말 잘 할 수 있으니까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수 없겠냐고 간청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꾸만 내가 자길 피해다니니 혹시나 자기한테 실망한 건 아닐지 걱정스러워 하는 건 충분히 이해한다. 아마 내가 유린의 입장이었어도 그랬을테니까.

그렇지만 아무리 초조해도 저건 좀ㅡ

'아니지 않나?'


저렇게 자꾸만 눈에 띄는 짓을 하면 기회를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지 않은가.

'으휴 진짜..'


지금도 봐라.

유린이 내쪽에 시선을 반쯤 고정하고 있으니 그녀 주변에 앉아있는 이들이 열심히 나와 그녀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지 않나.

그런데 여기서 유린하고 단둘이 어딘가로 향한다?


농담 안하고  30분이면 충분할 거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30분이면 문창과에 소속된 모든 학생들이 나와 유린이 사귄다는 소문을 알게되겠지.


그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고, 그렇기에 더더욱 유린을 피해다닐 수밖에 없었다.


저런 얼굴을 하고서 할 말이야 솔직히 뻔했으니까.


그렇게 마지막 술자리까지 어영부영 끝마치니 어느새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어있었다.


"다들 짐 두고 오신  없으시죠?"

"네-!"


"그러면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학교에 도착하면 깨워드릴테니 피곤하신 분들은 주무셔도 됩니다."

그 말과 함께 버스 조명이 꺼졌고, 털털털털하는 엔진음을 사방으로 흩뿌리며 출발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버스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울까지 대충 3시간정도 걸리더라.

아무튼 그렇게 학교 앞에서 내리니 역시나라고 해야할까ㅡ


'음, 모르는 동네구먼.'


그랬다.

말 그대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자, 혹시 뒷풀이 가실 분들 계시면 자리에 남아주세요."

"피곤하신 분들은 먼저 들어가보셔도 됩니다. 아, 대신 집에 도착하는대로  도착했다고 문자 하나만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아."


그래도 일단 서울이긴 한게 어딘가 싶긴 했지만.


'..어떻게 돌아가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갑을 꺼내서 주민등록증에 찍힌 주소를 확인해봤지만 보자마자 감이 딱 왔다.


거기에 적힌 건 정답이 아닐 거라는 감이.


이걸 어쩐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휴대폰에 깔린 배달앱이나 쇼핑몰앱까지 뒤적거려 봤지만 주민등록증에 적혀있던 주소만 나올 뿐 정답으로 보이는 건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우리 집 주소가 어떻게 되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그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해야만 했다.

당장이야 넘어갈 수는 있을 것이다. 순간적으로 까먹었다고 둘러대면 될테니까.

문제는 그 다음이다.


가족  한 명에게 그런 식의 질문을 해버리게 되면 분명 질문을 받은 이의 머릿속에 위화감이 남을테니까.

'의심받을만한 일은 피해야지.'

뭐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니까.

일단   의심받기 시작한다면  다음부터는 정말 끝도 없겠지.

그 전까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던 것들조차 의심스럽게 보이기 시작할테니까.

그러니 아예 그런 게 시작될만한 빌미를 주지 않아야했다.

다시금 휴대폰을 손에 쥐었던 건 그래서였다.

주소를 물어볼 수도 없는 이상 결국 집으로 돌아갈 방법은 하나뿐이었으니까.

'누구한테 부탁하는 게 좋으려나..'

라는 고민은 사실 별로 의미가 없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부탁할 수 있을만한 사람이  명밖에 없었으니까.

한창 바쁘게 일하고 있을 가영과 이제 막 방송을 시작했을 세나의 것을 제외하고 남은 것을 손가락으로 꾸욱하고 눌러 전화를 걸었다.

열심히 새내기들을 통솔하고 있던 세린이 곁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질문을 던져온 건 그 와중이었다.


"그, 있잖아 유한아."

"어? 왜?"

"너도 뒷풀이 갈거야?"


"..뒷풀이?"


솔직히 말하면 저런 게 젊음인가 싶더라.

아니, 새터에서 그렇게  마셔놓고는  마실 생각을 하다니.

아님 혹시 뭐 다들 간이 세 개쯤 되서 쓰리배럭이라도 돌리나?


오죽하면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로 뜨악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침 잘 됐다고 생각했다.

그걸 핑계로 삼으면 되겠다 싶었으니까.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휴대폰 스피커에서 지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 유한아 왜?"

"아, 혹시 일하는 중이었어?"

"아니, 잠깐 쉬고 있었지. 그런데 왜?"

"그게 어.. 누나  지금 도착했거든? 그런데 그.. 애들이 같이 뒷풀이하러 가자고 그래서.."


휴대폰에 대고 그리 말한 직후였다.


"뒷풀이?"


불과 몇초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근사근했던 지나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착 가라앉았다.

"응, 그래서 좀 늦을 것 같은데ㅡ"

"그거 꼭 가야되는 거야?"

"애들 다 간다는데 나만 쏙 빠지기가 좀 그래."


"어디서 하는 건데?"


"어.. 아마 학교 근처에 있는 술집에서 하지 않을까?"


"..술집?"

"응, 아무튼 그래서 말인데 혹시 고모한테 좀 말해줄  있어? 일단 늦게 들어간다고 문자 남겨두긴 할 건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그래, 알았어."


'엉..?'

아니 이렇게 순순히 허락을 해준다고?

뭐 잘못 먹었나?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지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 대신 가게 들어가면 누나한테 가게 이름 문자로 보내놔."

그러면 그렇지.

그냥 허락해줄 리가 없지.


가게 이름을 물어보는 이유야 솔직히 뻔했다. 보나마나 데리러 올 생각일거다.

그렇지만 일단은 모르는  하기로 했다.

"응? 가게 이름은 왜?"


"그래야 데리러 갈 거 아니야."

"아냐, 그냥 택시타면 돼."

"됐어. 돈 아깝게 택시는 무슨. 어차피 곧 있으면 누나 퇴근하는 시간이니까 드라이브 하는 겸 해서 잠깐 들리지 뭐."

대수롭지 않은 투로 내뱉어진  치고는 퍽 단호한 목소리였다.


"알겠어. 그럼, 가게 들어가는 대로 문자할게."


"꼭 해. 까먹지 말고."

"네에, 알겠습니다아."

"까불지 말고."

"옙."


"재미있게 놀고 있어. 누나 퇴근하는대로 데리러 갈테니까."

"응."

"그렇다고 술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말고."


"알겠습니다요."


지나가 날 데리러 오도록 만든다는 목적이야 진작에 달성한 상황이었기에 거리낌없이 전화를 끊을  있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뒤로 돌아서니ㅡ

"가, 갈거야?"


다들 내 통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던 건지 수많은 시선들이 얼굴로 날아와 푸욱하고 박혀들었다. 개중에서도 특히 강렬했던 것은 가장 가까이 서 있던 세린과 신입생들 사이에 껴서 이글이글거리는 눈으로 내쪽을 쳐다보고 있던 유린의 것이었다.


"응, 가도 된다네."

"그ㅡ 여자친구 분이?"

"응? 여자친구?"

뜬금없이 튀어나온 단어에 고개를 갸웃하던 것도 잠시, '아..'하고 탄식 비스무리한 것을 입밖으로 흘려준 뒤 피식 웃었다.


"여자친구 아닌데?"


"으, 응? 그럼.."


"누나야. 우리 누나."

"아.."

"우리 누나가 그.. 걱정이 좀 많은 편이거든. 그래서 가끔 그렇게 오해하는 사람들이 좀 있더라."

"그, 그렇구나아.."


어딘가 시무룩해보이던 세린의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피어났다.

유린이 보여준 반응도 비슷했다.

나와 세린 사이에서 오고가는 대화를 엿듣기 위해 안 그런 척 하면서도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던 유린이었다.

덕분에 여자친구라는 단어를 주워듣는데 성공했던 모양인지 어딘가 조마조마해 보이던 유린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커멓게 죽었다. 그것도 잠시, 실은 그게 전부 오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가 언제 그랬냐는 듯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러면 너까지 가는 걸로 한다?"


"응, 근데 오래 있긴 힘들 것 같아."

"괜찮아. 참가하는 게 중요하지 뭐."

날 안심시키듯 팔랑팔랑 손을 흔들어보인 세린이 새내기들이 모여있는 쪽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그리고는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머릿수가 있다보니 아무데나 무턱대고 들어가기 보다는 일단 받아줄만한 술집을 확보하고 나서 움직이려는 모양.

다행히  통화만에 이만한 인원을 받아줄만한 술집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는지 세린이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댄채 활짝 웃었다.


"네네, 26명 맞습니다. 그러면 지금 바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통화를 마무리지은 세린이 곧바로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인원들을 한데 모으기 시작했다.

학생회 총무라던 양반은 그 옆에서 뒷풀이 비용을 수금하고 있었고.


"새터 예산이  남았으니까 만 원씩만 내시면 됩니다."


"에이, 그럴 거면 차라리 깔끔하게ㅡ"

"그래서  가신다고요?"


"..."

그렇게 수금까지 깔끔하게 끝마치고 술집을 향해 출발했다.

세린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OS'라는 다소 특이한 이름을 가진 술집이었다.

그곳으로 들어서기 전 그 앞에 멈춰선 세린이 손가락으로 가게 간판을 가리켰다.


"새내기분들은 여기 기억해두시면 편할 거에요. 과회식같은 거 있으면 저희 과는 거진 여기서 하거든요?"

아주 살짝 구린 냄새가 나는 멘트였지만 굳이 그 점을 지적하진 않았다.


대신 지나가 당부한대로 술집 이름을 문자로 남겼다. 겸사겸사 가영에게도 좀 늦게 들어갈 것 같다고 문자를 남겨두었고.


혹시 몰라서 학교 정문에서부터 어떻게 찾아오면 되는 지까지 간략하게나마 적어놨으니 이 정도면 알아서  찾아오겠지.

고로 이제 걱정없이 취하기만 하면 됐다.

'왠만하면 술은 자제하는  맞겠지만..'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사고 비스무리한 것을 한 번 치지 않았던가.

같이 사고 친 유린이 진중한 성격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렇지 않고 어디가서 떠들기 좋아하는 성격이었다면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들이 벌써 다 소문이 나고도 남았을 거다.


 그대로 운이 좋았달까.

허나 전에도 그랬다고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는 법.

그래서 취할 정도로 마시는 건 되도록 자제할 생각이었다.

허나 이번만큼은 예외로 두기로 했다.


이건 기회였으니까.

술을 핑계삼아서 지나와의 일선을 넘을 수 있는 기회 말이다.


'그렇다고  거창한 건 무리겠지만..'


그래도 간단한 스킨십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며 우르르 술집 안으로 들어가는 이들을 따라  안으로 입성했다.


"자자, 일단 새내기들부터 앉도록 하겠습니다. 안쪽 자리부터 채워주세요."


그렇게 시작된 술자리는 새터 때와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즐거웠다.


새터 때는 혹시 또 취해서 폭주하기라도 할까봐 조마조마 해가지고 제대로 즐기질 못했는데 이번에는 달랐으니까.

곧 있으면 지나가 데리러 올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조마조마하다기 보단 느긋했고, 덕분에 퍽 여유롭게 나와 같이 앉아있는 이들의 반응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렇게 관찰하다보니 그만큼 웃긴 것도 또 없더라.


이런저런 핑계까지 대가며 내게 자꾸만 술을 먹이려고 하는 게 눈에 훤히 보인다고 해야할까.

자기가 나보다 두 학번 선배라고 소개했던 년도 그랬고, 맞은 편에 앉은 새내기란 년들도 그랬다.


만약 여기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해버린다면?


어쩌면 저들 중  명에 의해 모텔로 끌려가 그대로 따먹힐지도 모르지.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로 다들 노골적이었다.

'확실히..'

술이 위험하긴 한가 보다.


다들 저렇게 자신의 욕망을 숨길 생각을 못하는 걸 보면.

그 와중에 귀여웠던  역시 유린이었다.

혹시 내가 저번처럼 많이 취하지는 않았을지 걱정이라도 됐는지 안절부절 못하는 얼굴을 한채 연신 내쪽을 힐끔힐끔대는데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미어캣을 생각나게 했으니까.

'화장실이나 다녀와야겠네.'

계속 술만 마시긴  그래서 중간중간마다 물도 같이 홀짝 거렸는데 그래서 그런 지 몰라도 오줌이 마려웠다.


그래서 슬쩍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니 같이 앉아있던 여자들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일어설 때 나도 모르게 몸을 살짝 휘청했더니 많이 취했다고 생각한 걸까.

"바람 쐬고 오려고? 혼자 괜찮겠어?"

같이 가고 싶다는 욕망이 듬뿍 담겨있는 말들에 대충 답해주고는 저 멀리 보이는 화장실 표시를 목표로 삼아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타다다닥하고 누군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소리가 뒤에서부터 들려왔다.

"그 서, 선ㅂ ㅡ!"


그와 함께 들려온 퍽 다급한 목소리에 반응해 그대로 돌아서려던 찰나였을 것이다.


꽈아악ㅡ


대체 언제 거기까지 뻗어온 것인지 알 수 없는  한 쌍이 내 어깨를 꽈악하고 움켜쥐어 그러지 못하도록 막아세웠다.


그와 함께 귓속으로 흘러들어온 것은ㅡ


"누나가 분명 술 많이 마시지 말라고 그랬던 것 같은데.."

듣는 이를 오싹오싹하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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