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9화 〉1부 (39/315)



〈 39화 〉1부

아마 지금쯤 많이 당혹스럽고 민망하고 그럴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가 모는 차는 흔들리는    없이 부드럽게 호텔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지금 이 순간 지나가 느끼고 있을 민망함의 크기만큼이나 빠르게 멀어져가는 차의 뒷꽁무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것도 잠시, 피식하고 웃으며 그쪽에서 돌아섰다.


그 순간 눈으로 들어온 건 오랫동안 사귄 여자친구를 금발 태닝 양아치 놈에게 네토라레 당한 놈이나 지을 법한 표정을 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었다.


아마도 우리과 학생회장일 가능성이 큰 그녀는 그런 얼굴을 한채 바로 조금 전까지 내가 바라보고 있던 방향에다가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강아지상의 얼굴을 한채 그러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옛날에 본가에서 길렀던 초코가 생각났다.


뒷다리 사이에 있는 땅콩을 강제로 추수당했을 때 초코 얼굴이 딱 저랬었는데 말이다.


'거기서는 잘 지내니 초코야ㅡ'

아니, 그런데 어떻게  이름이 초코일 수가 있지.

사람으로 따지면 이름이 김청산가리나 박제초제인 꼴 아닌가.

아무리 같은 과 소속이라고 해도 그리 친하지 않을 게 분명한 사람한테 먼저 선뜻 말을 걸기는  그랬다.

그래서 그런 시덥잖은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이미 지나의 차는 자취를 감춘지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멍하니 그것이 사라진 방향만 바라보고 있던 여자가 퍼뜩하고 몸을 떨며 정신을 차렸다.

"그, 방금 그 분은-"


그러더니 그것부터 묻더라.

 보니 말이 헛나온듯 해서 한 번 정도는 못 들은 척 해주기로 했다.

"응? 뭐라고?"


"아, 아냐. 그- 18학번 맞지?"


"맞긴 한데.."


"나도 18이거든."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걸까.


"..혹시 말 편하게 해도 괜찮을까?"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그리 묻길래 그러라는 뜻으로 고개를 한 번 끄덕여주었다.

말 좀 놓는게 뭐가 그리 대수라고 그것만으로도 여성의 얼굴이 활짝 피어났다.


그 모습이 꼭ㅡ


'개같네.'

그랬다.


욕이 아니라 그만큼 귀엽다는 의미였다.


쬐끄만한 강아지가 산책가자는 말을 듣고 헥헥대면서 꼬리를 파닥파닥 흔들어대고 걸 보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그래서 나도 모르게 슬쩍 미소를 짓고 있었더니 흘깃흘깃 내 얼굴을 훔쳐보고 있던 여성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미안한데 혹시 이름이-"


"세린이야. 한세린."

내가 본인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 때문에 시무룩해하던 것도 잠시, 금세 기운을 회복한 세린이 활기찬 목소리로 스스로를 소개했다.

"나는-"


"알아. 유한이지? 이유한."


"응, 그런데 어떻게-"


"아, 그, 그저께 문자로 알려줬었잖아."


"맞네 그랬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있으니 세린이 다시금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눈치를 보는 걸까 싶었는데ㅡ

"그 괜찮으면 유한이라고 불러도 될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수롭지 않은 말이 세린의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아니, 난 또 뭐라고.


하도 긴장빨길래 뜬금포 고백이라도 하는 줄 알았네.

지나나 세나, 가영이 워낙 압도적이어서 그렇지 지금 내 앞에  있는 세린도 나름 미인이긴 했다. 과마다 한 명씩은 꼭 있는 타입이라고 해야할까.  왜 특유의 활발한 성격 덕분에 동기들하고 두루두루 친하고, 덕분에 어딜가든 자주 보이는 애들 있지 않은가.


내가 세린에게서 받은 인상이 딱 그랬다.


그런 애가 내 이름 한 번 불러보겠다고 이렇게까지 긴장하고 있다니.

뭐라 형용키 어려운 기분을 느끼면서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세린은 설마 내가 허락할 거라고는 생각 못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


"..으, 응?"


저렇게까지 화들짝 놀라는 걸 보면 분명 그랬던 거겠지.


"말 놓는다면서?"


"아, 그, 그랬지! 그, 그럼 유한이라고 부를게."

"그래, 세린아."

묘하게 근질거리는 느낌.


얼굴을 타고 흐르는 그것을 느끼며 세린을 향해 옅은 미소를 지어보이니 안 그래도 빨갛던 세린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여자가 되서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이긴 좀 그랬던 것일까.

"그, 이, 일단 방부터 안내해줄게."

고개를 반대쪽으로 홱 돌린 세린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리 말하고는 뻣뻣하기 짝이 없는 걸음걸이를 선보이며 호텔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런 세린을 따라 움직인 끝에 도착한 방은 내가 내심 예상했던 것보다는 괜찮았다.

좋아봐야 결국 콘도 수준이긴 했지만.

아마도 남학생들을 위한 방일게 분명한 곳에 차마 발을 들일 수는 없었던 것일까.


"그- 어때?"


세린이 현관도 아니고 복도에 오도카니 선채 이미  안으로 들어선 날 향해 그리 물었다.

"괜찮은 것 같은데?"


"그, 그렇지?"

"그런데 계속 여기 있어도 돼?"

"으, 응?"


"아니, 괜히 바쁜 사람 붙잡고 있는 것 같아가지고."

좀 그렇다고 말을 하며 미안해하는 표정을 슬쩍 얼굴 위로 띄워보이니 세린이 격렬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하나도 안 바빠!"


물론,  말이 거짓말이라는  듣자마자 눈치챘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거짓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세린은 학생회장 아니던가.

쉽게 말해 새터라는 행사를 총괄하는 위치란 소린데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 바쁘지 않을 리 없었다.


"에이, 나 부담스러울까봐 그러는 거지?"

"지, 진짜로 안 바쁜데ㅡ"

"난 괜찮으니까 어디로 가면 되는 지만 알려줘."


"그, 일단 다들 지하 1층에 있는 소강당에 모여있기는 한데.."

"그러면 거기로 가면 되는 거지?"


"으, 응."


위아래로 천천히 흔들리는 얼굴에서 미련이라는 감정이 뚝뚝 떨어져내렸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세린은 쉬이 문앞을 떠나지 못했다.


"그- 문좀 닫아주면 안될까?"


"..응?"


"옷 좀 갈아입으려고."


그래서 그리 말했더니 미련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던 세린의 얼굴 위로 느낌표가 띠용하고 떠올랐다.

"아, 미, 미안!"

이내 퍼뜩하고 몸을  세린이 빼액하고 소리를 지르고는 그대로 문을 쿵 닫아버렸다.


'어우..'

아주 그냥 문 부숴지겠네.

속으로 쓰게 웃으며 바닥에다가 내려놓은 가방을 풀어헤쳤다.


그리고는 입고 있던 옷들을 훌러덩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칙칙한 회색 후드 티가, 평범하기 그지없는 청바지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전부 지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일부러 골라입은 것들이었다.


허나 이제 더는 지나의 눈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상황.


해서 가방 안에 든 것중에서 산뜻해보이는 스타일의 옷들을 꺼내 그대로 몸에 걸쳤다.


'지하 1층에 모여있다고 했었나?'


어차피 늦은 거 굳이 바로 내려갈 필요는 없겠지.

이왕 2박 3일동안 머물게 된 것 호텔 주변에 뭐가 있는 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필요할 때 요긴하게 써먹지 않겠는가.

해서 복도를 따라 어슬렁어슬렁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호텔 내부와 주변에 뭐가 있는 지 좀 둘러보다가 편의점의 탈을 쓴 마트에 들려서 세면도구같은 것도 좀 사고 하다가 행사가 진행중이라던 지하 1층 소강당으로 향했다.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어, 저희 학과는ㅡ"

들어가도 하필 누군가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와중에 들어가버린 바람에 단상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앉아있던 이들의 시선이 모조리 내게로 몰려들었으니까.

개중에는 왠지 모르게 초조한 얼굴을 하고 있던 세린도 포함되어 있었다.

왠지 모르게 머쓱해져서 단상 위에 올라가있는 여성을 향해 고개를 한 번 꾸벅해보이고는 살짝 몸을 숙인 채 세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보니까 저쪽이 재학생들이 모여있는 곳인듯 했으니까.


"옆에 앉아도 돼?"


"아, 응!"

때마침 비어있던 세린의 옆에 털썩 주저앉으니 졸지에 나와 나란히 앉게된 세린이  내 얼굴을 힐끔거리기 시작했다.

"그ㅡ 오래 걸렸네?"

"아, 편의점  들려서 뭣  사느라고.  챙긴 줄 알았는데 씻을 때 쓰는 걸 하나도  챙겼더라."

"그, 그렇구나."

내가 샤워하는 모습이라도 상상한 것일까. 어디선가 꼴깍하고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세린의 목덜미가 벌겋게 변했다.

"통화할 일도 좀 있었고."

"..."

물론, 내가 그리 말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시무룩하게 변하긴 했지만.

"그래서 이제 뭐하는 거야?"

"아, 그.. 오리엔테이션 거의  끝났으니까. 이제 자기소개하고 팀짜서 게임같은 것도 좀 하고-"


"그래? 재밌겠다."

물론, 내심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그리 재밌지는 않았다.


그나마 재미있었던 순간을 꼽아보자면 신입생들의 자기소개 시간 정도?

다들 긴장감에 몸을 떨면서도 꿋꿋이 자기소개를 이어나가는데  모습이 외모와는 상관없이 귀엽게 느껴졌으니까.


덕분에 족히 50명은 되어보이는 신입생들 사이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외모를 지닌 여후배  명도 발굴해낼 수 있었고.


한 명은 이유린이라는 이름이었고, 다른 한 명은 오윤정이라는 이름이었다.

'잠깐만.. 오윤정?'


왜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혹시 아는 사람 중에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나하고 열심히 짱구를 굴려봤지만  얼마 안 되는 인간관계를 전부 뒤져봐도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 기묘한 기시감은 대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라고 되뇌이기 무섭게 머릿속으로 떠오른 건 여신이  이 세계로 납치한 계기가 되었던 소설의 설정이었다.

정확히는 가영, 세나, 지나의 뒤를 잇는 네 번째 등장인물이라고 해야할까.

물론 가영이나 세나, 지나보다는 급이 살짝 딸렸다. 저 셋이 주연이라면 윤정은 조연에 가까웠으니까.


그랬다.


내 기억이 맞다면 왠지 모르게 날라리같은 느낌을 물씬 풍기는  여성은 내가 썼다가 연중해버린 소설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이었다.

'어쩐지 외모가 범상치 않더라니만..'

아무래도 주인공인 유한의 특징 중 하나가 대학생이라는 것이다보니 학교에도 히로인이 한 명쯤은 있어야될 것 같아서 탄생시켰던 인물.

그렇게 태어난 이가 지금 내 눈앞에 살아숨쉬고 있었다.

'..쟤는 패스.'

그래서였다.


윤정을 모르는 척 하기로 했던 것은.

내 기억이 맞다면 윤정은 함부로 건드려선  되는 상대였으니까.

그래서 만약에 건드리더라도 윤정은 빼놓고 저 이유린인지 뭔지하는 후배만 건드릴 생각이었는데ㅡ

"오윤정이라고 합니다. 잘부탁드릴게요. 선배님."


아니, 이게 왜 같은 팀이 되냐고.


날 향해 꾸벅하고 고개를 숙여보이는 윤정을 보고 있으니  의지와는 상관없이 삐질하고 배어져나온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쭉 미끄러졌다.

"아, 예.."

"말씀 편히하셔도 괜찮아요."

싱긋 웃으며 그리 말하는 윤정의 모습은 정중한 후배  자체였다.


하지만 그녀가 탄생하는데 크게 일조한 나는 이미 알고 있는 상태였다. 저게 다 꾸며낸 모습이라는 걸.

저건 윤정이 그녀의 할머니가 낸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기 위해 만들어낸 가면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안심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


"아, 그런데ㅡ"

"응?"


"선배님 이름은 안 가르쳐주시나요?"


알려주면 안   같다는 느낌이 목덜미를 간지럽혔지만 그렇다고 입 꾹 닫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내 이름이 궁금했던 건 다른 후배들또한 마찬가지였던 모양인지 초롱초롱 빛나는 시선이 얼굴로 푹푹 날아와 박히고 있었으니까.


"이유한이야."


"그러면 유한 선배라고 불러도 될까요?"

"..그래."

"저, 저도요!"

"저도요!!"

먹이를 물고 돌아온 어미새를 맞이하는 새끼새들마냥 짹짹대기 시작한 이들을 상대로도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주니 그때부터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선배님은 혹시 학년이 어떻게 되세요?"

"혹시 어느 고등학교 나오셨는지 물어봐도 돼요?"

"서울 사세요?"

"혹시 기숙사 사세요? 아니면 자취?"

"자취하면 많이 힘들어요?"


"1학년은 기숙사 들어가는 게 좋죠?"

"추천해주실만한 강의 있으면 좀 알려주시면 안 돼요?"

"학교 근처에 맛집같은  있으면 알려주실 수 있어요?"

질문을 할거면 답할 시간이라도  주고 하던가.


서로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앞다투어 질문을 쏟아내는 신입생들의 공세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게서 먼저 대답을 끌어내는 사람이 이긴다는 규칙같은 거라도 세워진 것일까.

경쟁적으로 질문을 퍼부어대는 다른 신입생들과는 달리 정작 그러한 분위기를 탄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장본인은 첫 질문 후로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흥미롭다는 감정으로 가득 찬 눈빛을 한채로 말이다.

그래서 불안했다.


저런 모습마저도 연기같지는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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