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6화 〉1부 (36/315)



〈 36화 〉1부

뭘 챙겨가는 게 좋을까.

아주 잠시동안 고민하다가 그냥  정도만 챙겼다.

호텔로 간다했으니 호텔 지하든 근처든 편의점 정도는 있을 것이고, 필요한 게 있으면 거기서 사면 될테니까.

그럼에도 충분히 빵빵해진 가방을 둘러메고 밑으로 내려가니, 나와 달리 따로 뭔가를 챙길 필요가 없다보니 나보다 한 발 앞서 준비를 끝마친 지나가 소파 위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예쁘게 쭉 뻗은 다리를 과시하기라도 하듯 소파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지나의 모습은 평소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그러니까 평소에는 말 그대로 일하러가는 것이니만큼 특별히 챙겨입었다는 느낌보다는 편하게 입었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지금은 딱 정반대였으니까.


마치 누군가에게 과시라도 하려는 듯한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덕분에 도도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아우라가 지나의 몸 주변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한채 손에  휴대폰을 이용해 뭔가를 훅훅 넘겨보고 있던 지나가 내 기척을 느꼈는지 내쪽을 향해 슬쩍 시선을 던져왔다.


"다 챙겼어?"

"응?"


"가져갈  말이야."


"아, 어 다 챙겼어."

"그래? 뭐뭐 챙겼는데?"


"그냥.. 옷이랑 이것저것?"


"세면도구는 안 챙기고?"


"무거울 것 같아서 그냥 거기가서 사려고."

어쩌면 잔소리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지나는 의외로 순순히 납득했다.

"충전기같은 건?"


"아."

왠지 허전하더라니만.


그걸 안 챙겼구만.


얼른 챙겨오라길래 메고 있던 가방을 잠시 바닥에다가 내려놓고 3층으로 향했다.

그렇게 충전기까지 챙겨서 내려오니..

"다 챙겼으면 출발할까?"

세나한테서 압류한 차키를 지나가 손가락에 끼고 빙글빙글 돌리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런 그녀를 따라나서니 저번에  번 얻어탄  있는 차가 나와 지나를 반겨주었다.

"뒤에 탈거야?"

"아니."


"그럼 짐 뒷자리에 놓고."

내가 뒷자석 문을 열고 그곳에다가 가방을 쑤셔넣고 있는 사이, 한  앞서 차에 올라탄 지나가 운전석에 앉아 의자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한창 드륵하는 소리를 내며 세심하게 의자를 조절하던 그녀가 이내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대로 날 향해 손짓했다.


"다 실었으면 얼른 타. 출발하게."


차 안에서부터 들려온 목소리에 사양하지 않고 조수석에 올라타니 분명 저번에 탔을 때 조절해놨는데 그새 누가 건드려놓기라도 했는지 살짝 비좁은 듯한 감각이 엄습해왔다.

그래서 내 몸에 맞도록 의자를 조절하려 했는데 그렇게 좌석 옆으로 손을 내린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가 번뜩였다.


"벨트 매야지."


"잠깐만 의자 조절만 좀 하고."


지나의 발언에 그리 답하고는 오른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인 채 조수석 문과 지금 앉아있는 좌석 사이를 열심히 더듬는 척을 했다.

"유한아?"

"자, 잠깐만- 아니 분명 여기 있어야 되는데.."

"못 찾겠어?"

"아냐, 찾을 수 있어. 잠깐만.."


물론, 자신있게 말한 것과는 달리 계속 헤매는 척을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더는 지켜볼 수 없었던 것일까.

"잠깐만  좀 뒤로 해봐."


그  뒤로 이어진 건 달칵하고 서로  맞물려있던 것이 풀어지는 소리였다.

그렇게 안전벨트를 푼 지나가 살짝 옆으로 돌아앉더니 내쪽을 향해 상체를 숙였다. 바로 조금 전까지 내가 손으로 열심히 더듬대고 있던 곳을 노리고 팔을 쭉 뻗으면서.

뻣뻣하기 그지없는 이 몸과는 달리 각종 운동으로 다져진 지나의 몸은 굉장히 유연했다.


키도 여성치고는 꽤 큰 편이었고.

덕분에 지나의 손은 무사히 목표로 하던 곳에 닿을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지만.

셔츠 위로 도드라져있던 볼륨감 넘치는 가슴이 내 허벅지를 꾸욱꾸욱하고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나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아까 내가 손으로 더듬고 있던 곳을 탁탁 두들겨가며 더듬고 있었고.


만약 사정을 모르는 이가 이 광경을 봤다면?


저 년놈들이 대낮부터 카섹스를 하려는 갑다 생각했겠지.

틀림없이 그랬을 거다.

자세만 보면 지금 지나는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그 사이에 위치한 것을 쯉쯉 소리를 내며 빨고 있는 듯한 자세였으니까.


그 정도로 지금 우리  사이의 거리는 가까웠다.

"그.. 누, 누나 잠깐만ㅡ"


"좀 무거워도 조금만 참아봐. 찾은 것 같으니까."

"아, 아니 무겁다는  아니라 그- 몸이.."

가까워도 너~무 가까운 거리에 크게 당황한  말을 더듬고 있으니 그제서야 자신의 자세가, 자신의 얼굴 근처에 위치해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린 것일까.


지나의 몸이 움찔하고 떨리더니 그대로 굳어져버렸다.


"그, 그냥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나, 나와줘."


"으, 응."

지나가 허둥지둥하며 내게서 몸을 떨어뜨렸다. 그렇게 원래 자세로 돌아간 그녀가 고개를 슬쩍 옆으로 돌려 창문 쪽을 향했다. 그 모습이 내게는 민망함으로 물든 얼굴을 감추려는 모습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의미없는 행동이었다.


차고가 어두운 편이다보니 기껏 고개를 돌려 내게서 얼굴을 감춘 것이 무색하게도 민망함으로 발갛게 달아오른 지나의 얼굴이 창문 위로 고스란히 비춰보였으니까.

내가 지나를 따라하기라도 하듯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곳의 반대쪽을 향해 고개를 슥 돌렸던 것도 사실 창문을 통해 비치는 그녀의 얼굴을 느긋하게 감상하고자 함이 컸다.

그렇게 한쪽은 민망함에 다른 한쪽은 흡족함에 젖어있던 가운데 어색하기 그지없는 침묵이 그런 우리  사이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누군가 먼저 입을 열지 않으면 그대로 평생 이어질 것만 같았던 그 침묵을 깨뜨린 것은 다름아닌 지나였다.

"그- 미안, 갑자기 그래서 놀랬지.."

"아, 아냐.. 나 도, 도와주려고 한 거였잖아."

그리 말하고는 조심스레 덧붙였다.

"그.. 괜찮으니까 너무 그렇게 신경 안 써도 돼."

"..그래."

"그, 그럼 출발할까?"


그리 말하며 허둥지둥 벨트를 멨다.


그런  목소리에 반응해 존재하지도 않는 먼산이라도 바라보듯 창 밖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지나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몸에 안전벨트를 두르고는 차키에 달려있던 버튼 하나를 꾹 눌렀다.

지이잉-


'오..'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한 차고 문이 이내 완전히 열렸을 때, 지나가 대기시켜놓고 있던 차를 앞으로 쭉 미끄러뜨렸다.


그렇게 멈춰서있던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니 나와 지나 사이로 내려앉아있던 어색하기 짝이 없던 분위기는 그런 차의 속도를 따라오질 못했다.

시선은 전방에 고정해두고, 어색한 분위기를 쫓아버리기 위해 틀어놓았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댄스 음악에 맞춰 검지손가락으로 운전대를 톡톡 두들기는 지나를 힐끔거리다가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는 그저께 연락을 주고받았던 학생회장에게 보낼 문자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물론, 지나 보고 보라고 한 행동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제 막 여섯 글자 정도 친 참이었는데 지나가 내쪽을 향해 힐끔하고 시선을 던지며 말을 걸어왔다.

"심심해?"

"응? 딱히?"


"휴대폰 보고 있길래 지루한가 싶어서."

"아, 문자 좀 보내놓으려고."

이러면 지나는 분명 내 문자 상대에게 관심을 보이겠지.


라는 예상은 소름끼치도록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문자? 아, 저번에 말했던 그 친구?"

"응? 아닌데?"

"그러면?"


지나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살짝 낮아진 것 같은  과연 기분 탓일까.


"우리과 학생회장."

"흐음.. 여자야?"

톡톡톡톡-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딱딱 맞아떨어졌던 것이 어느새 제멋대로 널뛰고 있었다.


"글쎄? 아마 그렇지 않을까?"

"..응?"

"솔직히 잘 모르거든. 학생회장이라는 것만 알지 이름도 잘 몰라."

이런 말하려니 좀 민망하다는 것처럼 지어보인 어색한 미소 뒤로 덧붙인 대답이 꽤 마음에 들었나 보다.

바쁘게 운전대를 두들기던 검지손가락의 속도가 약간이지만 느리게 변했다.


"그런데 그 사람한테 문자는 왜?"

"아, 생각해보니까 따로  거라고 이야기를 안 해뒀더라고."


"아."


"혹시라도 나 기다린다고 출발이 늦어지거나 그러면  되잖아."

내 말을 듣고 나서야 경계를 완전히 거둔 것일까.


운전대를 두들기던 손가락이 다시 음악과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차 안으로 울려퍼지는 톡톡하는 소리를 만끽하면서 작성하다가 만 문자를 마저 완성해나갔다.

대충 난 데려다주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따로 갈테니 혹시나 안 온다고 기다리거나 그러지 말라는 내용의 문자였다.

그리고 그렇게 전송된 유한의 문자는 내심 그의 옆자리를 노리고 있었던 세린을 좌절하게 만들었다.

물론, 자기가 보낸 문자  통 때문에 한 여자가 좌절 상태에 빠졌다는  유한은 꿈에도 몰랐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유한은 다른 걸 신경쓴답시고 그런 사소한 것에 관심을 줄 틈이 없었으니까.


휴대폰을 들여다보면서 시간을 때우는 척 하며 은근히 옆에 앉아있는 지나의 모습을 관찰했다.

혹시 사고라도 날까봐 운전에 바짝 집중하고 있는 모습.


덕분에 눈쪽에 살짝 힘을 주고 있는 게 나름대로 섹시하긴 했지만 솔직히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물론, 버스 좌석에 불편하게 낑겨서 갈 필요 없이 편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는 점은 좋긴 했다.

좋긴 한데ㅡ


'이것도 나름 데이트 아닌가?'


물론, 지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을테지만 적어도 내 생각은 그랬다.


그렇기에 아쉬웠다.


이대로가면 진짜 중간에 아무 일도 없이 목적지까지 쭉 가게 생겼으니까.


모처럼 단둘인데다가 여행 비스무리한 걸 떠나는 것 같은 상황인데 그건 좀 아니지 않은가.


운전에 바짝 집중하고 있던 지나를 향해 말을 걸었던 건 다 그런 아쉬움 때문이었다.

"누나."

"응?"


"우리 잠깐 휴게소 좀 들리면 안 돼?"


"휴게소? 휴게소는 왜? 화장실 가려고?"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 배가 좀 고파서."

"아침 먹은지 몇 시간 안 됐잖아."

"혹시 멀미할까봐 조금만 먹었거든."

"아.."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겠다는  고개를 두어번 정도 끄덕인 지나가 네비게이션 쪽을 향해 힐끔하고 시선을 던졌다.

그러더니 날 향해 물었다.


"괜찮겠어? 휴게소 들려서  먹고 가면 좀 늦을 수도 있는데."


"내가 뭐 신입생도 아니고.. 오늘 안에만 도착하면 딱히 상관없지 않을까? 그리고 정 안되면 사가지고 차 안에서 먹으면 되잖아."

그리 말하고는 은근슬쩍 운전대를 향해 뻗어있는 지나의 오른팔을 손으로 꼭 잡았다.


"누나도 슬슬 출출하지 않아? 우리 딱 핫바 하나씩만 먹자."

 안에 갇힌 팔이 움찔움찔하며 경련하는게 느껴졌다.

그런 반응을 보인  팔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살짝 위를 향해 치솟은 지나의 입꼬리또한 움찔움찔거리고 있는  매한가지였으니까.


그렇게 누가봐도 기분이 상당히 좋은 상태라는  알  있는 모습을 하고 있던 지나가 '크흠!'하고 작게 헛기침을 하고는 그대로 입을 열었다.

"원래 운동할 때 군것질하고 그러면 안 되는데ㅡ"


아니 이걸 거절한다고?

"차에 냄새라도 배면 분명 세나 고 년이 그거 가지고 떽떽거릴 거고ㅡ"


좋아하는 동생하고 휴게소 데이트를 만끽할  있는 기회인데?

참으로 지나답지 않다고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으니 슬쩍 말꼬리를 늘어뜨리던 지나가 본인의 말을 뒤집었다.

"에휴, 그래. 넌 그렇게라도 좀 쪄야되니까. 가자 가."


"예쓰!"

"그렇게 좋아?"

"아니, 고속도로까지 탔으면 당연히 휴게소는 들려줘야지."


"암요, 그러시겠죠."

그런 식으로 만담을 주고받고 있으려니 때마침이라고 해야할지 차창 밖으로 휴게소 간판이 스치고 지나갔다.


"저기로 가면 되겠다."

"얼른얼른 갑시다."

5키로 남짓하던 거리가 0으로 변하는  말 그대로 순식간이었다.


평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북적거리고 있는 휴게소 안으로 차를 몰고 들어간 지나가 빈 자리를 찾아내 그곳에다가 차를 세웠다.

"화장실 갈거니?"

"아니?"


"그럼, 자."

그 말과 함께 내 앞으로 들이밀어진 건 다름아닌 지나의 카드였다.

"누나 화장실 좀 다녀올테니까 그걸로 먹고 싶은 거 사고 있어."


"응."

"혹시 모르니까 후드는 쓰고 다니고."


그렇게 내게 자신의 카드를 넘긴 지나가 혹시라도 자길 못 찾겠으면 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과 함께 그대로 화장실을 향해 떠나갔다.

어지간한 모델들은 가뿐하게 씹어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뒷태를 뽐내며 서서히 멀어져가는 지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슬쩍 눈을 빛냈다.

그리고는 음식코너들이 주르륵 늘어서있는 곳을 향해 그대로 내달렸다.


지나가 당부한대로 후드를 푹 눌러쓴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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