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1부
어찌어찌 중간에 넘어지는 일 없이 무사히 1층에 도착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가영의 방으로 직행할 순 없었다.
식탁 위에 있는 거라고 해봐야 밤 사이 쌓인 먼지들이 전부인데 그런 상황에서 밥 먹으러 나오라며 깨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이대로 쭉 직진하면 가영의 방으로 이어지는 문이 나오건만 그럼에도 굳이 몸을 오른쪽으로 틀었던 것도 다 그래서였다.
솔직히 말하면 밥맛이라고는 단 한 톨도 없는데 아침은 뭔 놈의 아침인가 싶긴 했지만, 그게 아니면 핑계로 삼을만한 게 마땅치가 않으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잠들기 전에 미리 아침 메뉴를 결정해놓았던 게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분명 지금처럼 바쁘게 몸을 움직이기는 커녕 싱크대 앞에서 멍만 때리고 있었을테지.
아침 메뉴로 선택한 건 소세지 야채볶음과 미역국이었다.
세나가 소시지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봐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저께부터 묘하게 그게 땡겼으니까. 초딩 입맛 그 자체인 세나가 좋아할 것 같기도 했고.
쏘야에 들어갈 양념이야 재료만 있으면 눈 감고도 만들 수 있는 수준에 오른 지 오래였기에 어려울 건 딱히 없었다. 다만 소세지 끝부분에 일일히 칼집을 내주는 게 좀 귀찮았을 뿐.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었다.
칼집을 넣지 않고 그냥 볶아버리면 양념이 소시지 안까지 배어들질 않을테니까.
덤으로 소시지들이 옆구리 터진 김밥마냥 죄다 옆구리가 터져버려서 보기에도 그리 좋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도마 위로 우르르 쏟아냈던 것들에 모조리 칼침을 놔준 다음에 소시지와 함께 들어갈 양파와 피망도 큼직큼직하게 썰어주었다.
그리고는 그걸 기름 두른 팬에다가 넣고 달달달달 볶다가 야채들이 적당히 익었다 싶을 때 그 위로 미리 만들어놓은 양념을 쏟아부었다.
치이이익-
한껏 달아오른 기름과 만난 양념이 부글부글 끓며 매콤하면서도 달큰한 향기를 사방으로 훅 퍼뜨렸다. 거기에 잘 익은 양파와 피망의 향까지 어우러지니 언제 입맛이 없었냐는 듯 입 안으로 군침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게 참 웃겼다.
분명 바로 조금 전까지 물도 마시면 안 될 것 같을 정도로 속이 미친듯이 쓰렸는데 그랬던 것이 언제 그랬냐는 듯 꼬르륵하는 소리를 내며 허기를 호소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양념과 함께 끓기 시작한 것을 약불에다가 놓아두고, 미역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미역국은 사실 쏘야보다 더 쉬웠다.
미리 불려놓은 미역을 국거리용 소고기와 함께 들기름에 달달달달 볶아주다가 거기에 물 붓고 끓이면 끝이니까.
중간에 다진마늘이나 간장같은 것도 투입해서 간도 좀 잡아주고 말이다.
그런 식으로 아침 차리는 데 집중하다보니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조금씩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래..'
그깟 3천만원이 대수겠는가.
원래 세계였다면 말조차 붙여보지 못했을 미녀들과 같이 살게 되었는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슬슬 깨우러 가보실까.
이 이상 시간을 지체하는 건 좋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지체된 시간이 적지 않다보니 곧 있으면 지나가 아침 조깅을 끝마치고 돌아올 시간이었으니까.
지나의 방해없이 보상을 만끽하기 위해 일부러 기상 시간을 바짝 땡겼던 것인데 챙길 건 챙겨야하지 않겠는가.
해서 인덕션을 끄고 곧바로 가영의 방으로 향했다.
물론,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덕분에 확신할 수 있었다.
한 순간의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 말았던 그제와는 달리 어제는 확실히 잠든 상태였다는 것을.
그렇지 않고서야 그녀의 방으로 통하는 유일한 출입구를 이토록 무방비하게 방치해뒀을 리가 없었다.
뭐, 문이 잠겨있었다해도 달라질 건 딱히 없었겠지만.
"고모? 주무세요?"
첫날과는 달리 노크는 하지 않았다.
대신 가영을 부르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라고 해야할지 아직 침대에서 일어나기엔 많이 이른 시간이다보니 가영은 침대 위에 누워 곤히 잠들어있었다.
다만 첫날하고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술에 잔뜩 취해서 의도치 않게 무방비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첫날과는 다르게 어제하고 오늘은 그녀가 잘때마다 입는 베이지색 캐미솔을 몸에 걸친 채 이불을 가슴까지 끌어올려서 덮고 있었으니까.
말 그대로 온몸을 꽁꽁 싸매고 있다고 해야할까.
그럼에도 충분히 유혹적으로 느껴지는 건 그만큼 그녀의 몸매가 압도적이기 때문이겠지.
몸에 열이 많은 건 집안내력이라도 되는 건지 가영의 몸을 덮고 있는 이불은 겨울에 쓰는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얇았다.
그래서 그런 지 몰라도 가영에게서 고른 숨소리가 흘러나올 때마다 가슴까지 끌어올려 덮고 있는 이불이 가슴과 함께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미치겠네 진짜..'
얌전히 누워만 있음에도 지금처럼 입 안이 바짝바짝 마르는데 잔뜩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던 저번에는 대체 어떻게 참았던 걸까.
잘도 참았다고 생각하면서 조용히 가영이 몸을 뉘이고 있는 침대를 향해 다가갔다.
자박-
이따금씩 발바닥과 방바닥이 맞부딪히며 나는 소리가 방 안으로 울려퍼질 때마다 그렇게 긴장이 될 수가 없었다.
참으로 다행히도 고작 그 정도로는 곤히 잠든 가영을 깨우기엔 역부족이었는지 내심 우려했던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그에 안도하며 가영이 누워있는 침대 옆에 조용이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어디보자 오늘은..'
그제는 처음으로 입을 맞췄고, 어제는 그제보다 조금 더 입술을 붙이고 있었으니 오늘은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볼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했던 건 사실 키스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것들이었으니까.
키스라고 하면 모름지기 혀와 혀끼리 질척하게 뒤섞여야하지 않겠는가.
물론, 단순한 입맞춤에서 그치지 않고 거기까지 나아가버린다면 지금은 곤히 잠들어있는 가영이 거기에 반응해 잠에서 깨어날 가능성이 매우매우 크지만..
'깨도 상관없어.'
아니, 오히려 가영이 깨길 바랬다.
그래야 그로인해 그녀가 좀 더 번민하고 고뇌하게 될테니까.
말하자면 이건 벌이라 할 수 있었다.
이 세계에서 내 첫키스를 훔쳐가놓고서 결국 도망치는 쪽을 택한 괘씸하기 그지없는 여자에게 주는 벌 말이다.
그럼에도 가영은 날 어쩌지 못할 것이다.
날 멈출 수 있는 기회는 처음 그 날이 마지막이었으니까.
거기서 직시가 아닌 '회피'를 택한 시점에서 가영은 사실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내가 가영이 마음 속으로 정해놓은 선을 넘어버린다면 그것과는 상관없이 즉시 제지가 들어오긴 하겠지만.. 선이야 꾸준히 시간을 투자해 조금씩 그 수위를 높여가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고모?"
본격적으로 행동에 들어가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가영을 불러보았다.
방에 들어올 때 냈던 것하고는 달리 목소리의 볼륨을 한껏 줄인 채로.
물론, 이번에도 이렇다할 반응은 없었다.
어제 하루동안 미용실에 사람들이 미친듯이 몰려들기라도 했던 걸까.
그거야 아무래도 좋을 일이라고 생각하며 조심스레 상체를 들어올렸다. 물론, 무릎만큼은 여전히 바닥에 붙인 채였다.
그렇게 상체를 일으킨 뒤 양손으로 조심스레 침대를 짚었다.
그 탓에 가영의 무게에 이어 내 상체까지 떠받치게 된 침대가 살짝 요동치는 게 느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팔에 실린 힘이 늘어갈수록 가영의 얼굴또한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제 그랬던 것처럼 가영의 분홍빛 입술만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 순간 그대로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입술을 꾸욱하고 누르는 식으로.
여기까지는 이미 와본 적 있는 길이었다.
고작 여기서 만족할 생각은 없었으므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가기 위해 입밖으로 살짝 혀를 내밀어 가영의 입술을 조심스레 핥았다.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인의 혀가 다른 곳과 비교하면 훨씬 얇은 곳을 노니는 느낌이 생경하면서도 간질간질했던 것일까.
"으응.."
가득 차오른 잠기운 위로 달콤함이라는 시럽이 아주 살짝 첨가된 것이 가영의 입술 사이에서 새어나왔다.
그렇게 벌어진 틈 사이로 조심스레 혀를 밀어넣었다.
그리고는 자꾸만 조급해지려 하는 마음을 최선을 다해 억누르며 천천히 가영의 입 안을 혀로 훑었다.
상대가 곤히 잠든 상태다보니 호응해오는 움직임이라고는 전혀 없었지만 그럼에도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의 쾌감이 머릿속을 마구잡이로 헤집어댔다.
덕분에 잔뜩 거칠어진 숨이 가영에게까지 닿지 않도록 몇 번이고 호흡을 나뉘어 뱉어대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움찔ㅡ
서로 꼬옥하고 맞붙어있던 입술을 통해 커다란 떨림이 전해져왔다.
그 순간 직감했다.
가영이 잠에서 깨어났다는 걸.
그래서 꼬옥하고 감고 있던 눈을 아주 살짝만 떠보니 눈으로 들어온 건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가영의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전적이 있다보니 막 잠에서 깨서 비몽사몽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입을 맞추고 있는 상대가 나라는 걸 바로 알아차린 모양.
저렇게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것도 다 그 때문일 것이다.
놀라서 술렁대는 마음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을 떴다가 그 모습을 내가 보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건 그것 나름대로 최악일테니까. 가영에게는 말이다.
그래서 그녀가 내가 한 일을 모르는 척 했던 것처럼 나도 그런 그녀를 모르는 척 하기로 했다.
가영이 잠에서 깼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한 척 아주 잠시동안 멈춰놓았던 혀를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아까 하다가 만 작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가영의 입장에서는 정말 아들처럼 생각하는 아이가 자신에게 몰래 입을 맞추고 있는 것도 모자라 사랑하는 사람과 키스라도 하는 것처럼 혀까지 밀어넣고 본인의 입 안을 탐닉하고 있는 상황.
그럼에도 가영은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그저 두 눈을 질끈 감고 혹시라도 자신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스스로를 단속하는 것만이 그녀가 보인 대응의 전부였다.
말 그대로 무력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고, 그래서일까.
가학심이라 불러야 마땅할 것들이 배 안쪽에서부터 부글부글 들끓었다.
그것들이 내 귀에 대고 속살거렸다.
지금 네 밑에 깔려있는 여자를 범하라고.
그래도 이 여자는 지금처럼 아무 것도 하지 못할 거라고.
끊임없이 달콤한 말들을 속삭여왔다.
물론, 하나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아마 지금의 가영에게는 딱 여기까지가 그녀가 모르는 척 하고 넘길 수 있는 마지노선일테니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워서 맘 같아서는 평생토록 이러고 있고 싶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순히 몸을 떨어뜨렸던 건 그래서였다.
그렇게 앞으로 숙이고 있던 몸을 원래대로 되돌린 채 부족한 호흡과 여전히 배 안에서 들끓고 있는 흥분 탓에 잔뜩 거칠게 변한 호흡을 굳이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입밖으로 내뱉었다.
침대 위에 누워 잠든 척을 하고 있던 가영이 제대로 들을 수 있도록 그녀의 귀에 똑바로 시선을 고정한채로.
'이 정도면..'
오랫동안 그쪽과는 연이 없었던 가영이라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녀에게 입을 맞추며 크게 흥분했다는 걸 말이다.
그 사실을 두고 가영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게될 것인가.
현 시점에서는 알 수 없었다. 예상하기도 어려웠고.
전력질주라도 하고 난 것처럼 잔뜩 거칠어져 있던 호흡이 차츰 원래의 형태로 되돌아가는 걸 느끼며 차분히 가영을 관찰했다.
나름대로 길었던 입맞춤 때문에 호흡의 결핍을 느꼈던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일까.
얇은 이불로 덮여있던 가영의 가슴이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까보다 훨씬 더 빠르고 거칠게 움직이고 있었다.
두 눈은 말할 것도 없이 여전히 꼭 감겨있는 상태였고.
그런 가영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속으로 살짝 웃었다.
"후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크게 숨을 내쉰 뒤 아까부터 바닥과 딱 붙어있던 무릎을 그곳에서 떼어내며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고모.."
그렇게 몸을 일으키고는 마치 죄책감이라도 느끼는 사람마냥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가영을 한 번 불러준 뒤, 손등으로 입술을 슥슥 문질러 닦았다.
그리고는ㅡ
"고모, 일어나서 아침드세요."
가영의 몸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은 목소리로 그녀를 부르면서.
그렇게까지 하는데 차마 계속 자는 척을 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가영의 눈꼬리가 한 차례 파르르 경련하더니 그녀의 입에서 '으음..'하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물론, 아까 그녀의 입술을 간지럽혔을 때 튀어나왔던 것하고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그때 그게 자연스럽기 그지없었다면 방금 건 굉장히 작위적이었으니까.
"일어나셔서 식사도 하시고 출근 준비도 하셔야죠. 얼른요."
어깨를 꼬옥하고 붙잡고 있는 내 손길이 신경쓰이기라도 했던 것일까.
결국 가영이 눈을 떴다.
그런 그녀의 똑바로 눈을 맞추며 싱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일어나셨어요? 밥 다 차려놨으니까 얼른 씻고 나오셔서 식사부터 하세요."
그리 말하는 날 바라보는 가영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