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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화 〉1부 (29/315)



〈 29화 〉1부
오죽하면 그런 생각마저 들더라.


물론,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다.

수습할 방법도 없는데 무턱대고 사고부터 쳐버리면 지금의 이 행복하기 짝이 없는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게될 가능성이 매우 컸으니까.


아니, 근데 이게 어떻게  둘 딸린 엄마냐고.

팬티라도 좀 수수하게 입던가 말려올라간 원피스 아래로 살짝 드러난 팬티마저도 섹시하기 그지없어서 자꾸만 시선이 그곳을 향했다.

가영이 입고 있는 팬티는 백 부분, 그러니까 엉덩이를 가려주는 부분의 절반 정도가 시스루 재질로 되어있었다.


덕분에 원래라면 보이지 않았어야할 새하얀 엉덩이의 모습이 검은색 천 너머로 고스란히 엿보였다.


저 골에다가 물건을 끼워넣고 미친듯이 비벼대면 대체 어떤 기분일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점령하기 무섭게 재빨리 가영에게서 시선을 떼어냈다. 이러다가 진짜 눈이 돌아가서 사고치겠구나 싶었으니까.


그런 내 속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엎드린 채 곤히 잠들어있던 가영이 지금의 자세가 불편하다는 듯 '으음..'하는 소리를 내며 몸을 살짝 옆으로 돌렸다.


덕분에 알게되었다.

시스루 재질이 사용된 건 뒤만이 아니었다는 걸.


'미치겠네 진짜로..'

털은 본인이 직접 깎은 걸까.


아니, 이게 아니라.


이러다가 진짜 사고 치겠구나 싶어서 눈을 질끈 감은  가영의 배만 딱 덮고 있던 이불을 최대한 넓게 펼쳐서 그녀의 몸을 가렸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가영의 몸 위로 몸을 포개듯 상체를 앞으로 숙이게 되었는데.. 그 순간 도톰하게 부풀어있는 연분홍빛 입술이 시야 속으로 훅 파고들어왔던 것은 말 그대로 우연이었을 것이다.


다른 것들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오직 그것만이 눈에 들어왔다.


해서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상체를 조금 더 앞으로 숙였다.

조금 더, 조금 더 가까이서  수 있도록.


그 말을 몇 번이고 되뇌이다 보니 어느새 나는 가영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있었다.


그 사실을 자각한 순간 뭐라 심장이 쿵쾅쿵쾅하고 미친 듯이 뛰며 뭐라 이루말할 수 없는 강렬한 쾌감이 머리를 쿵하고 때렸다. 진득하게 혀를 섞은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입술만 가져다 댔을 뿐인데 이 정도라니.  이상은 그럼 대체 어떤 느낌일까.

허나 참으로 애석하게도 그 호기심을 해결할만한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유한아!"

거실 쪽에서 날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으니까.


분명 욕실로 들어간지 얼마 되지도 않은  같은데 벌써 다 씻고 나온 것일까.

아마도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자리하고 있는 곳에서 들려온 것으로 추정되는  소리에 가영의 몸 위로 포개다시피 하고 있던 몸을 황급히 뒤로 물렸다.


그리고는 바로 조금 전까지 가영의 입술을 꾸욱하고 누르고 있던 입술을 손등으로 슥슥 문질러 혹시 묻었을지도 모르는 것을 닦아내며 다른 손으로는 곤히 잠들어있는 가영의 어깨를 잡고 조심스레 흔들기 시작했다.

"으음.."


"고모, 일어나세요. 아침드셔야죠."


확실히 많이 마시긴 했나 보다.


 정도 흔들었으면 깰만도 한데 가영은 그만 흔들라는 것처럼 허공에 대고 손을 허우적허우적하기만 할뿐 눈을 뜨진 않았으니까.

지나가 내가 손수 닫아놓은 문을 열고 방 안으로 얼굴을 들이민 것도 바로 그때였다.


"아, 여기 있었어?"


"응, 고모가  일어나셔서."

"흠, 어제 늦게 들어오시긴 했는데.."


"많이 드셨어?"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적당히 취할만큼 드시긴 한 것 같더라."


그렇다면 더 잘  있도록 내버려두는 게 좋으려나하고 생각하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으.."

잔뜩 잠긴 목소리가 뒤에서부터 울려퍼졌다.


그에 지나 쪽으로 돌려놓았던 것을 다시 그쪽으로 향하니 눈을 가영이 이제 막 잠에서 깬 듯 눈을 깜빡깜빡하며 정신을 열심히 부팅시키고 있는 광경을 확인할  있었다.


아니 저게 어떻게 애 둘 딸린 미망인이냐고 진짜.

얼굴만큼이나 귀엽기 그지없는 행동에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고 있는 사이 열심히 눈을 꿈뻑거리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하던 가영이 이내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보자마자 눈치챘다.


가영에게 그 녀석이 찾아온 상태라는 걸.


그 왜  마신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놈 있지 않은가.


그리고 가영을 찾은 놈은 상당히 독한 녀석인 듯 했다.


"으.. 머리야.."


가영이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그럼에도 어지러움이 가시질 않는 걸까. 감겨있던 가영의 눈에 질끈하고 힘이 들어갔다.


"괜찮으세요? 고모?"


"유, 유한이니?"


숙취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려서 주변에 신경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덕분에 내게 숙취로 끙끙 앓는, 나름대로 민망하다면 민망한 꼴이라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였다는 걸 깨달으니 새삼 부끄러워지기라도 한 것일까.

날 부르는 가영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다르게 살짝 떨렸다.

"네, 괜찮으세요? 많이 어지러우시면 물이라도 가져다드릴까요?"


"그, 그래 줄래? 부탁 좀 할게.."

어쩌면 사양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럴만한 상태가 아니었나 보다.

"아직  움직이기 힘들지? 여기 있어. 내가 떠올테니까."


해서 곧바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려 하니 지나가 그런 날 대신해 나섰다.

"차가운 걸로 떠다드려요?"


"..응."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도 골이 울리는 느낌인가 보다.

가영의 얼굴이 다시금 찡그려졌다.


그 사이 방 안으로 쑥하고 들이밀고 있던 고개를 뒤로 물린 지나가 그대로 몸을 돌려 주방 쪽으로 사라졌다.

"괜찮으세요? 많이 드셨어요?"

"아냐, 조금만 마셨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살짝 웃는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아침 차려놨는데 드실 수 있으시겠어요?"


"유한이가 새벽부터 열심히 만든 건데 당연히 먹어야지. 그런데 그냥 고모한테 맡기고 쉬지.."

내가 이 새벽부터 일어나서 아침을 차릴 수밖에 없도록 만든  미안했던 것일까.

숙취로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와중에도 가영은 내게 미안한 표정을 해보였다.


"오늘만 특별히 해드린 거에요. 오늘만."

"그래. 아, 그나저나 어제 방송은 잘 했니?"


"네, 세나 누나가 이래저래 신경을 많이 써줘서 덕분에 재미있었어요."

"그렇다니 다행이네."


살포시 미소를 지어보이는 가영을 상대로 어제 방송에서 있었던 일들 몇 개를 추려 이야기 하고 있으니 지나가 물이 반쯤 들어찬 유리컵을 손에 든채 방 안으로 들어왔다.

"자, 시원하게 쭉 들이키시고  드시러 가시죠."

"세나는? 일어났니?"

"아직 자는 것 같던데? 보니까  새벽까지 깨어있었던 것 같더라."


"또?"


"응, 나 새벽에 운동나갈  보니까 방에 불이 켜져있더라고."


"불 켜놓고 잠들어버린  아니고?"


"뭐, 그럴 수도 있고."

그런 식으로 지나와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간간히 손에 든 것을 홀짝이는 가영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손을 뻗어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속 괜찮으세요? 많이 쓰리시면 죽같은 거라도 끓여드릴까요?"


등을 점령한 내 손길이 못내 신경쓰이는 걸까. 가영의 표정이 어딘가 어색하게 변했다. 몸도 처음 손을 댔을 때보다 한결 뻣뻣해졌고.


"아, 아냐 유한아.. 고모 괜찮아."


"낯빛이 창백하신걸요."

"맞아. 엄마. 이제 술 좀 그만 드셔."


예전처럼 마시면 몸이 남아나지 않을 거라면서 농담을 던지는 지나를 가영이 눈으로 살짝 흘겼다.

"이게.. 또 엄마한테 까불지."

"아니 내가 언제 까불었다고.. 장녀로써 우리 유가영 여사님의 건강이 심히 걱정되서 그렇지."


그리 말한 지나가 가영에게 운동을 권했다.

"됐어. 엄마 신경 쓸 시간에 유한이나 제대로 가르쳐 줘."

"유한이는 이미 내가 특별케어에 들어간 상태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그러고보니까 어땠니? 어제 유한이 데리고 운동해보니까."

"어떻기는.. 심각하더라."


"그 정도야?"


"응, 무슨 어르신 보는 줄 알았다니까."

다른  몰라도 그 말만큼은 그냥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그래도 누나가 시킨 건 다 했잖아..!"


"아, 맞다. 유한이 모델 제안도 받았다?"

"그래?"

"응, 우리 센터장 알지? 그 사람이 유한이한테 그랬대 혹시 모델같은  해볼 생각 없냐고."


"아, 그.. 예리 씨였던가?"


"맞아. 근데 내가 딱 보니까 유한이한테 관심있어 가지고 모델 핑계로 어떻게 좀 해보려고 하는 게 눈에 훤히 보여서 거절하라고 했어."

"..그랬니?"


갑작스레 던져진 가영의 질문에 가볍게 어깨를 으쓱해보이는 것으로 답했다.

"그냥 누나가 오해한 거에요."

"아니라니까? 내가 볼 땐 분명 너한테 관심있는 거야."


"그런 것치곤  아주 죽이려고 하시던데?"

"응? 그건 또 무슨 소리니?"


"아, 그게.. 유한이가 몸이..  많이 뻣뻣하더라고."

"그래?"


그런 식으로 컵에 담긴 것을 홀짝대며 지나의 말을 들어주던 가영이 이내 우리 둘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이러다가 유한이가 기껏 차려놓은 것들 다 식겠다. 엄마는 옷만 갈아입고 나갈테니까 세나 깨워서 먼저 먹고 있어."


"응."

"네."

지나를 대신해 가영의 손에 들려있던 컵을 회수한 뒤 그대로 그녀의 방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유한과 지나가 방을 빠져나간 순간이었다.


숙취로 인한 찡그림을 제외하면 거의 평소나 다름없는 모습을 유지하고 있던 가영의 표정이 크게 흔들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유한이 충동적으로 가영에게 입을 맞추었을 때 그녀는 깨어있는 상태였으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그 전부터 깨어있었던 것은 아니고, 유한이 그녀에게  입을 맞춘 순간 그 기척에 반응해서 깨어난 것이긴 했다.

그렇기에 가영은 처음에는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누군가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 있는 상황이 말이다.


애초에 입을 맞추고 있는 상대가 유한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해야할까.


해서 속으로 살다살다 정말 별의 별꿈을 다 꾸는 구나라고 어처구니 없어하고 있었는데ㅡ 뒤이어 들려온 지나의 목소리가 그녀에게 그 모든 게 현실이라는 걸 일깨워주었다.

유한을 찾는, 꿈 속의 목소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또렷했던  목소리가 말이다.


 밖에서 들려온 그 소리가 귓속으로 흘러들어온 순간 가영은 깨달았다.

그 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 자신의 입술을 꾸욱하고 누르고 있던 것이 유한의 입술이었다는 것을.

유한이 자신에게 입을 맞추었다.

 단순하고도 명쾌한 깨달음이 가영을 그대로 패닉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남들은 그래봐야 결국 남 아니냐며 혹시 유한을 데리고 사는 게 다른 응큼한 목적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냐고 헐뜯어대기까지 하지만 가영에게 있어서 유한은 남의 자식이 아닌 내 자식이었고, 아들이었으니까.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홀로 외롭게 서 있던 유한을 데리고 오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그랬다.

물론, 유한을 기르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남자 아이인 유한을 기르는  지나나 세나를 기르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으니까.


섭섭한 게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털어놓는 편인 둘과는 달리 어린 나이에 부모를 모두 잃은 유한은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속내는 또 어떤지 쉬이 드러내질 않았다.

그것 때문에 못내 섭섭했던 적도 있었고, 유한을 꽉 끌어안고 엉엉 울었을 정도로 슬펐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유한이 자신에게 처음으로 본인의 속마음을 털어놓았을 때는 정말 세상을 다진 것만 같은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기에 가영에게 있어 유한은 '아들'이었다.

직접  아파서 낳지는 않았지만, 그 모든 과정들을 함께 헤쳐왔기에 더 소중한 그런 존재였다.

그런 존재에게 입맞춤, 아니 키스를 당한 것이었다.

그것도 잠들어있는 사이에 몰래.

패닉에 빠질 수밖에, 아니 패닉에 빠지지 않는 게 이상한 상황.

그럼에도 가영은 필사적으로 아무 일도 없는 모습을 연기해냈다.


손님을 상대하며 터득한 요령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기까지 해가면서 평소의 본인을 연기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표정관리에 실패하는 순간, 그리하여 유한이 그녀에게 몰래 입을 맞추던 순간 깨어있었다는 사실을 유한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그 뒤에 벌어질 일이야 뻔했으니까.

가족이, 그녀가 평생을 다 바쳐 지켜낸 것들이 그대로 무너져버릴테지. 파도 앞에서 스러지는 한낱 모래성처럼 말이다.


유한이 그녀를 빚어낼 때 새겨넣은 가정적인 성격이라는 설정의 영향으로 다른 무엇보다도 본인의 가정을 소중하게 여기게  가영에게 있어 그건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을 연기했지만.. 진짜 문제는 다름아닌 이 다음이었다.


'유한이를..'

이제 대체 어떤 얼굴로 봐야하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이 나올  같지 않은 물음이 가영의 마음 속에서 휘몰아쳤다.

쉬지않고 휘몰아치는 당황이라는 이름의 폭풍 속에서 가영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웅크린 무릎에다가 본인의 얼굴을 파묻는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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