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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화 〉1부 (18/315)



〈 18화 〉1부

무슨 조폭영화 주인공마냥 박력넘치게 문을 박차고 들어올 때는 언제고  잠깐 사이에 망부석으로 화해버린 지나의 모습을 보며 살짝 식은땀을 흘렸다.


'씨바 들키는 줄 알았네..'


아픈 것도 아픈 건데 사실 그 이유가 가장 컸다.

농담하는 게 아니고  1분 정도만 정신을 늦게 차렸어도 진짜 빼도 박도 못하고 들켰을테니까.

지금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연기를 하는 건 분명 꿈도 못 꿨을 거다.


그럴만한 시간이 없었을테니까.

그리고 지나의 얼굴 위에 '어..? 이게.. 이게 아닌데..?'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 맺혀있는 걸 보면 급조한 연기가 제대로 먹혀든 듯 했고.

속여야하는 입장에 서 있는 만큼 참 다행이 아닐 수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워낙 급하게 뒷처리를 한 탓에 나와 예리가 이 안에서 벌였던 일들의 증거가 방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상태였으니까.


그렇기에 지금  순간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바로..

"누나!! 살려줘!!"

지나를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어? 뭐야? 벌써 레슨 끝났어?"


나와 뜻이 통했던 것일까.

예리가 지나 쪽을 돌아보며 순순히 내게서 몸을 떨어뜨렸다.


멋쩍어하는 듯한 표정은 덤이었다.


"네.. 그런데.."

"아, 이거? 스트레칭 하는 법 가르쳐 드리고 있었지."


그리 말한 예리가 지나로 하여금 보란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댔다.

"그런데 몸이 엄청나게 뻣뻣하시더라고.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니까?"


그런 식으로 예리가 변명아닌 변명을 토해내고 있는 사이 나는 후다닥 몸을 일으켜 지나 쪽으로 도망쳤다.


그리고는 잽싸게 그녀의 뒤로 몸을 숨기는 척 했다.

"누나,  누나한테 배울래."


"아니, 유한 씨. 저도  가르친다니까요?"


"센터장님은 너무 스파르타에요."

"아니, 그건.. 유한 씨가 너무 뻣뻣하니까아.. 혹시 다칠까봐 걱정돼서 그랬죠."

"아무튼 싫어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격렬하게 거부의 의사를 표현해준 뒤 지나의 옷을 살짝 잡아당겼다.

여기서 계속 이러고 있지 말고 얼른 나가자는 것처럼.


"뭐.. 유한 씨가 싫다면 어쩔  없긴 한데. 지나는 바빠서 시간 내기가 쉽지 않을 걸요."


"괜찮습니다. 정 안 되면  더 일찍 출근하면 되죠."

"뭐, 지나 네가 그렇게 하겠다면야."

자긴 더 할 말 없다는 것처럼 예리가 어깨를 가볍게 으쓱해보였다.


그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해서 지나와 함께 예리의 개인지도실을 나서려하니 우리 둘이 몸을 돌리기 무섭게 다시  번 예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맞다. 유한 씨. 내 제안 진지하게 생각해봐요. 장난으로 한 말 아니니까."

"그건..  번 생각은 해볼게요."

대충 둘러대고는 지나가 그게 뭐냐고 묻기 전에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뭐야?  제안이라는 게?"

물론, 그 대가로 밖으로 나오자마자 지나의 질문을 맞닥뜨리게 되었지만.


"아, 그거? 별 거 아니야. 신경  써도 돼."


"그래서    아닌게 뭐냐니까?"

"그냥.. 나보고 혹시 모델같은 거  생각 없냐고 그러시더라."


생각치도 못한 내용이었던 걸까. 가늘어져있던 지나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


"모델? 무슨 모델?"

"뭐긴 뭐겠어. 여기 피트니스 센터 모델이지."

"아..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뭐라고 하긴, 방금 들었잖아?  번 생각해보겠다고 했지."

"그러면 하지마."


"응? 왜?"

"하지말라면 하지마."


"아니, 왜? 재밌을  같은데.."

"아무튼."


반문 따위는 받지 않겠다는 걸까.


대화를 일축하는 지나의 목소리는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애초에 그 제안 자체가 지나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키기 위한 미끼에 불과했기에 적당히 볼을 긁적거리다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응? 그리고라니?"

"또 다른 일은 없었어?"

"그것말고는 딱히 별 거 없었는데.."

"정말이야?"

"응, 누나 말 듣고 솔직히 좀 걱정하긴 했는데 진지하게 가르치기만 하시던데?"

"..그래?"

"응, 아.. 생각해보니까 있긴 있었구나. 별 일."


그 말에 반응한 것일까.

천천히 누그러지던 지나의 눈매가 다시금 날카롭게 변했다.


"뭔데. 그년이 너한테 뭐 이상한 짓이라도 했어?"

그게 뭐든 숨길 생각은 하지말고 싹다 털어놓으라는 것처럼 지나가 똑바로 내 얼굴을 응시해왔다.

두 눈을 가늘게 뜬채로.


그 모습이 꼭 이 새끼 지갑에는 과연 얼마나 들어있을까..라고 가늠이라도 하는 것같아서 압박감이 장난 아니었다.

그럼에도 거기에 쫄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다 미리 말을 준비해둔 덕분이었고.


"뭐야 못 봤어?"


"응?"


"나 완전 죽을 뻔 했잖아."

"아, 뭐야.."

"아니, 농담하는 게 아니고 진짜 죽을 뻔 했다니까? 옛날에 죄인들 고문할 때 왜 주리부터 틀어댔는지 알 것 같더라."


"아무튼  일 없었다 이거지?"

"아니, 가랑이 찢어질 뻔한 정도면 충분히 별 일 아닌가?"

"장난은 그쯤하고."

"넵."


지나가 정말 다행이라는 것처럼 몇 번이고 고개를 주억거리는 꼴을 보고 있으려니 양심이라는 것이 욱신욱신대며 통증을 호소해왔지만 가볍게 무시해주었다.

지나나 가영, 세나가 다른 여자들보다 중요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뻔히 눈앞에 있는데 그걸 억지로 무시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뭣보다 내가 예리하고  떡을 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마지막에 그녀의 배 위에다가 시원하게 싸지르긴 했지만, 그 전까지는 건전하게 서로를 마주보며 자위만 했다.


그러니 그건 나쁜 일이라고   없지.

암, 그렇고 말고.


"그래서 이제  레슨하러 가는 거야?"

"아니, 다음 레슨 시작하려면 아직 좀 더 있어야 돼."

"그럼.."


쉬는 게 좋지 않겠느냐.


라고 말하려고 했다.


지나가  발 더 빨랐지만.

"약속한대로 너 가르쳐줘야지."

"어.. 선생님, 허벅지가 많이 아픈데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플 정도로 확실하게 풀어놨으니까 더더욱 하셔야겠네요."


"앗.. 아아.."

"일단 가볍게 런닝머신부터 뛰어보자."


허벅지 아파 죽겠는데 런닝이라니.

그게 목감기 걸렸을 때 슈팅스타 쳐먹는 거하고 대체 뭐가 다른 걸까.


물론,  저항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결국 나는 지나의 손에 잡혀 무력하게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나, 나 저녁에 세나 누나 방송 출연해야 되는데..!"


"걱정하지마."


말 그대로 지푸라기라도 부여잡는 심정으로다가 최후의 발악을 시도해봤지만..

"그런 건 이제 생각조차 안 나게 해줄테니까."

내쪽을 돌아보며 싱긋 웃는 지나의 얼굴을 본 순간 직감했다.

최후의 발악이랍시고 꺼내든 카드가 역으로 크리를 터뜨렸다는 걸.

'씨발..'


그렇게 지나의 손에 잡힌 유한이 걸레 짜이듯 체력을 쥐어짜이고 있을  세나또한 체력부족을 실감하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저녁에 예정되어있는 합방 준비 때문이었다.


"헤으윽.. 미친 개 무거워."


세나가 스튜디오로 사용하는 방은 철저히 방송만을 생각하고 꾸며진 곳이었다.


그렇기에 장비나 방송세팅같은 것또한 오롯이 그녀 개인에게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오늘도 평소처럼 방송을 할 예정이었다면 힘겹게 구축을 끝내놓은 시스템을 굳이 건드릴 필요가 없었겠지만 오늘은 그게 아니지 않은가.


유한의 출연이 예정되어 있었고, 단순히 얼굴만 비추는 게 아니라 같이 게임까지 할 예정이니만큼 그에 맞춰서 방송세팅을 좀 바꿔둘 필요가 있었다.


누군가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있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이왕 하게 된 것 제대로 해야하지 않겠는가.


오늘 방송을 기대하고 있을 시청자들과 선뜻 수락하긴 했지만 속으로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을  분명한 유한을 생각해서라도 허투루 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야 방송을 보러오는 시청자들에게도 유한에게도 예의가 아니니까.


'확실하게 해야해.'

합방을 해본 경험이야 많다.


합방보다는 개인방송을 선호하는 편이긴 하지만 괜찮아보이는 기회가 있으면 굳이 거절하진 않았으니까.


허나 이렇게까지 긴장이 됐던 적은 없었다.


'고 년은 왜 괜한 이야기를 해가지구..'

애꿏은 편집자를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게 되는 건 다 그래서였다.


걔한테 어딜 들어가도 오늘 있을 합방과 관련된 얘기 뿐이라는 말을 듣지만 않았어도 직접 들어가서 둘러볼 일도 없었을 것이고, 과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몰려버린 사람들의 관심 때문에 걱정할 일도 없을테니까.

절대 그리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겠지만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오늘 합방이 망하기라도 한다면?


과할 정도로 몰려든 관심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게 될지야 솔직히 안봐도 뻔했다.

지금 이렇게 힘들어서 뒤질  같은데도 쉬는  최소로 하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있는 건 그런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을 최대한 낮추기 위함이었다.

"흐어어어.."

이렇게까지 힘들 줄 알았으면 매니저로 일하는 애들이 도와주겠다고 할 때 순순히 받아들였을텐데..

부탁하기도 전에 나선 저의가 의심스럽기 짝이 없어서 혼자서도 할 수 있다고 오기를 부렸던게 화근이었다.

그래도 소득이 아예 없는  아니었다.


헥헥대면서도 움직이는  멈추지 않은 덕분에 약 2시간만에 세팅 작업이 얼추 끝나가고 있었으니까.


이제 남은 건 새롭게  세팅이 의도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것뿐.


해서 확인을 도와줄 편집자들을 불러 테스트용 계정으로 방송을 켰다.

"아아, 들려?"

[넹 잘 들림돠]

"화면은?"


[잘 나오는 것 같은데요? 아, 그런데 오른쪽이 살짝 프레임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 왜 그러지?"

[비트레이트 살짝만 낮춰보실래요?]

"잠깐만.. 지금은?"


[조금만 더 낮추면  것 같아요.]

"오케이."


그런 식으로 디테일한 부분을 조정하다보니 어느덧 시계는 여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방송 시작이 여덟 시 정각이고, 유한을 데리고 움직이는 시간과 유한이 마음의 준비를 하는데 들어갈 시간을 고려하면?


슬슬 유한을 데리러 가는 게 맞는 상황.

"이제 문제 없지?"


[네]


[그런  같아요]

"그럼 끈다?"

[넵]

[아, 언니 어제 합방영상 하이라이트 편집본 보내드린 건 보셨어요?]

"아, 응.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올려도 될 것 같아."

[그러면 그대로 올릴게요]

"그래."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방송을 종료한 뒤, 주섬주섬 옷을 걸쳐입었다.


그리고는 차고 안에서 거의 한   방치되어 있던 것을 끌고 지나의 헬스장으로 향했다.

 한 달만에 운전을 하는 것이다보니 중간에 살짝 헤매긴 했지만, 무사히 목적지 앞에 도착해 유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데리러 왔으니까 얼른 씻고 내려오라고 말할 생각이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삐 소리가  후에는..


유한이 전화를 받질 않았다.

 보니 휴대폰을 챙기는 걸 깜빡한 모양.

"씨이이.."

잠시 고민하다가 차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언니와 맞닥뜨리게  가능성이 매우매우 크긴 했지만, 그렇다고 기껏 차까지 끌고 나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으니까.

참으로 다행히도 데스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 몇 번 본적 있는 사람이라서 거기까지는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었다.


문제는 역시 이 다음부터였지만.


'레슨 중이겠지..?'


그래, 분명 그럴 거다.


그러니 유한만 몰래 빼오면 될 터.

어디부터 뒤질까 고민하다가 공용 헬스장으로 쓰이는 5층으로 향하니 그곳에서 유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유한은 땀에 푹 절은 채 헬스장 한쪽에 비치된 의자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런 유한의 모습을 주변을 오가는 여성들이 쉬지않고 힐끔거리고 있었고.


 모습이 왠지 모르게 못마땅해서 다른 이들의 시선을 차단하며 유한의 앞에 섰다.


"야, 야."

"아, 누나.. 나 데리러 온 거야?"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니 유한이 힘없이 웃었다.


맘 같아서는 시간 없으니까 얼른 씻고 옷 갈아입고 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하도 힘들어보여서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 괜찮아? 많이 힘들어?"

"아냐.. 방금까지 뛰어서 그래.. 좀 쉬면 괜찮아질거야.."

그리 말한 유한이 손으로 의자를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근데.. 씻지는 못하겠다."

"..그래보이긴 하네."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닌 게 간신히 몸을 일으키는데 성공한 유한의 두 다리는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아니 대체 뭔 놈의 운동을 이렇게까지 시킨 걸까.

불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밖으로 내뱉지 않고 다시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런  함부로 꺼내들어선 안 된다는 것쯤은 그간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학습한 상태였으니까.

"씻는  집가서 씻어도 되니까 일단 옷만 갈아입고 나와.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으응.."

그렇게 세나가 옷만 갈아입고 나온 유한을 데리고 집으로 향하는 동안 그녀의 브이튜브 채널에는 평소 스케쥴대로 새로운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합방 중에 들이닥친 낯선 남자의 정체는?]


라는 어그로성 다분한 제목과 딱 유한의 얼굴만 모자이크 처리 해놓은, 여러모로 시선을 확 잡아당기는 썸네일을 단채 업로드 된 그 영상은ㅡ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던 세나의 채널에 '이변'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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