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1부
"그럼, 내가 먼저 어떻게 하는 지 보여줄테니까 잘 보고 따라해봐."
"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니 허공에 대고 양손을 탈탈 턴 예리가 이내 손깍지를 꼈다.
"우선 손목하고 발목부터 풀어줄거야."
"네."
"자, 이렇게 천천히 돌려주면 돼. 쉽지?"
고개를 끄덕이며 예리를 따라 손목하고 발목을 천천히 돌렸다.
"20초 정도 했으면 반대쪽도 풀어주고."
그렇게 반대쪽마저 풀어주고 나니 이번에는 목의 차례였다.
"우선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봐."
그리 말하며 고개를 옆으로 기우뚱하길래 그런 예리를 따라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니 그녀의 입꼬리가 순간적으로 움찔움찔거렸다.
"그 상태에서 이제 손을 귀에 가져다 댄 다음에 목 옆쪽을 풀어준다는 느낌으로 살짝 잡아당겨봐."
"이렇게요?"
라고 말하기 무섭게 목에서 뚜두둑하고 살벌하기 짝이 없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억..!"
"평소에 숨쉬기 운동 외에는 정말 아무 것도 안 하나 보구나? 괜찮아?"
"와, 목 끊어지는 줄."
"그러니까 평소에도 자주자주 풀어줘야돼. 특히나 목같은 곳은 다른 곳보다 피로가 빨리 쌓이니까.."
그렇게 목, 어깨, 허리 순으로 내게도 퍽 익숙한 동작들이 예리의 몸을 통해 재현되었다.
'언제 움직이려나..'
슬슬 본색을 드러낼 때도 됐는데 말이다.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예리가 깍지를 끼운 채 천장을 향해 들어올리고 있던 양 팔을 앞으로 쭉 내렸다.
덕분에 예리의 상체가 앞으로 굽어지며 그녀의 몸이 반으로 접혔다.
흔히 폴더 자세라고 부르는 포즈.
잠시동안 그것을 취하고 있던 그녀가 이내 앞으로 숙이고 있던 상체를 원위치시키더니 날 향해 시선을 던져왔다.
보여준대로 해보라는 뜻이 담겨있는 그 시선에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방금 그녀가 보여준 것을 그대로 재현하려 했다.
했는데..
'잉?'
진짜 무슨 폴더폰마냥 반으로 접히던 예리와는 달리 내 몸은 90도는 커녕 60정도가 한계더라.
"..다 숙인거지?"
"어.. 여기서 더 안 내려가긴 하네요."
"진짜로?"
그녀도 어처구니가 없었나 보다.
이 일을 시작한 후로 이렇게 뻣뻣한 사람은 자긴 처음본다며 감탄인지 탄식인지 모를 것을 토해낸 예리가 드디어 날 향해 다가왔다.
"기다려봐. 도와줄게."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려온 사람마냥 일말의 망설임조차 담겨있지 않은 움직임.
그렇게 성큼 걸음을 내딛어 단번에 거리를 좁혀온 그녀가 이내 내 등 위에다가 제 손을 올렸다.
"자, 잠시만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말이 안 되는데? 나이 지긋하신 분들도 이것보다는 더 내려가."
그랬다.
유한의 몸은 지독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뻣뻣했다.
"자, 잡아줄테니까 겁먹지 말고 앞으로 쭉! 뻗는다는 느낌으로."
그리고 그것은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던 예리에게 있어 상당히 좋은 구실이 되어주었다.
몸이 하도 뻣뻣한 탓에 내가 남들은 어렵지 않게 펼쳐내는, 말 그대로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동작들을 제대로 수행해내질 못하고 있으니 예리는 그걸 빌미로 삼아 터치를 일삼았다.
물론, 자세를 잡아주겠다는 명분이었다.
그런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되니?
어느새 그녀는 내 몸에 대고 자신의 가슴을 꾹꾹 밀어붙이고 있었다.
'미치겠네 진짜..'
이 자리에 있는 게 이 세계를 살아가는 평범한 남성 중 한 명이었다면 그런 예리의 행동에 부담을 느끼고 미치려 했겠지만 난 그들과는 조금 다른 이유로 미칠 것만 같았다.
지금 예리가 몸에 걸치고 있는 건 움직이기 편하도록 얇은 천으로 만들어진 운동복과 그 안에 자리한 스포츠용 속옷이 전부였다.
두 가지 것들 모두 평소 입고 다니는 것과 비교하면 종잇장처럼 얇은 것들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뭉클하기 그지없는 가슴의 감촉이 등을 통해 그대로 전해져왔다.
그런 걸 등에 대고 꾹꾹하고 눌러대고 있으니..
'이걸 어떻게 참냐고 시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물건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히 치명적이었다.
일부러 두 치수나 큰 걸 입기는 했지만, 여기서 조금 더 서면 바지 사이즈랑은 상관없이 발딱 선 물건의 윤곽이 그 위로 고스란히 드러나게 될테니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지금도 충분히 위험한 상황이긴 했다.
예리가 잠깐 다른 곳을 보는 틈을 타 살짝 힘이 들어간 물건을 옆으로 뉘이는 식으로 숨기긴 했는데 덕분에 주머니 안에 무슨 방망이같은 걸 억지로 넣어둔 듯한 모습이 되어버렸으니까.
예리가 내 뒤에 서있기 망정이지 아마 아까 시범을 보여줄 때처럼 마주보고 있는 상태였다면?
분명 살짝이지만 발기했다는 사실을 꼼짝없이 들키고 말았겠지.
만약 그렇게 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좀 궁금하긴 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좋아하지 않을까?
날 굳이 여기까지 끌고온 걸 보면 내심 나랑 떡치는 것까지 상상했다는 소린데 그런 그녀에게 있어 내가 물건을 발딱 세울 정도로 흥분해있다는 것만큼 기쁜 상황도 또 없을테니까.
"안 되겠다. 앉아서 해보자."
그런 내 속내를 아는 지 모르는 지 예리는 트레이너 역할에 몰입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적어도 겉모습만큼은 그랬다.
"편하게 앉아봐."
안 그래도 슬슬 허벅지가 땡기던 참이었기에 사양하지 않고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응, 그 상태에서 다리만 살짝 좌우로 벌리는 거야."
그리고 벌리라길래 벌렸다.
어감이 살짝 이상하긴 한데 뭐..
다만 딱 하나 문제가 있다면 서로 한 몸이라는 걸 증명하듯 하체도 상체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더럽게 뻣뻣하다는 것 정도?
내 딴에는 정말 몸이 허락하는 최대치까지 벌린 거였는데 예리가 볼 때는 영 눈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음.. 문제가 참.. 심각하네."
"그 정도에요?"
"뭐.. 남자들이 기본적으로 뻣뻣한 편이긴 한데.. 그래도 이것보다는.."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그리 놀란 목소리는 아니었다. 이미 상체에서 쓴맛을 본 덕분에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했다는 걸까.
"유한이 너 운동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
"음, 노력해봐야죠."
"말로만 그러지 말고 실제로 노력을 해야겠지?"
그리 말하며 싱긋 웃은 예리가 내 무릎 바로 윗부분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자, 잠시만요."
"자아, 조금만 더 해봅시다아."
어느새 반대쪽도 잡혀버린 상황.
그렇게 내 양 허벅지를 손으로 움켜쥔 예리가 그것을 이용해 내 다리를 좌우로 벌리기 시작했다.
"악..!"
농담하는 게 아니고 진짜로 뒤지게 아프더라.
이러다가 뚜둑 소리와 함께 다리 근육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겠다 싶을 정도로.
"많이 아파?"
"아픈 걸 넘어서 뒤질 것 같은데요-!"
"좀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조금만 더 참아봐."
"악! 미친- 끄악-!"
그렇게 고통을 이용해 내 주의를 분산시킨 예리가 무릎 쪽을 짚고 있던 손을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랑이가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그 감각은 기묘할 정도로 선명했다.
남의 집에 몰래 침입한 좀도둑이 발뒤꿈치를 들어올린채 슬금슬금 움직이듯 내 허벅지를 슬그머니 타고 올라가던 것이 마침내 그 옆에 딱 붙여놓았던 것과 접촉사고를 일으켰다.
분명 그런 목적으로 손을 움직인 것이긴 했지만 설마 이렇게 빨리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던 걸까. 아니면 내심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던 것보다 훨씬 큰 크기 때문이었을까.
물건과 맞닿은 예리의 손끝이 움찔하고 떨렸다.
그것도 잠시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위에다가 손을 포갰다.
'아니 이걸?'
이렇게 훅 들어온다고?
이건 모르는 척 해주고 싶어도 모르는 척 해줄 수가 없는데.
그 정도로 노골적인 터치였고, 그래서 다 집어치우고 정색부터 빨았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운동 중에 우연찮게 일어난 것으로 치부하고 모르는 척 해줄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이건 그렇지가 않았으니까.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물론, 쉽지는 않았다.
뒤지게 아픈 건 여전했으니까.
그걸 꾹 참아가며 간신히 정색어린 목소리를 냈는데.. 예리의 대응도 만만치 않았다.
어지간한 여자였다면?
내가 정색을 빤 순간 앗 뜨거라하며 황급히 손을 떼어냈을 것이다.
그리고 도게자를 하던 그랜절을 박던 했을 것이고.
헌데 예리는 달랐다.
"뭐하기는 운동하는데 위험하게시리 운동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신 못된 회원님을 혼내주는 중이지."
내 물건에서 손을 떼어내기는 커녕 뻔뻔스럽게 대꾸하면서 그 위에다가 포개놓고 있던 손으로 슥슥 움직여 내 물건을 문질러대기 시작했으니까.
"..미쳤어요?"
"아니? 안 미쳤는데?"
대체 뭘 믿고 이러는 걸까.
내가 이걸 가지고 신고하기라도 하면 꼼짝없이 은팔찌 신세를 지게 될텐데 말이다.
아니면 혹시 뭐 법조계 쪽에 어마어마한 빽이라도 있나?
그래서 그걸 믿고 이러는 것이고?
가능성이야 충분했다.
집안이야 당연히 잘 살테니까.
지나야 이 세계에서는 사실상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라 할 수 있는 설정의 가호를 받는 존재니 논외로 치더라도 예리처럼 젊은 나이에 스스로의 힘만으로 이만한 규모의 건물을 세울 돈을 번다?
그것도 어디 시골도 아니고 서울 한복판에?
뭐, 가능하기야 하겠지.
이 세계라고 해서 복권이 없는 건 아니니까.
물론, 한 번 가지고는 택도 없겠지만.
지나의 지분이 40퍼정도 된다고 했으니 아마 모르긴 몰라도 4번 정도 1등을 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건 현실성이 없어도 너무 없으니 그보다는 차라리 예리가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쪽을 믿는 편이 더 현실적이겠지.
문제는 그게 다 맞다고 쳐도 지금 예리가 하고 있는 짓을 설명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성욕 때문에 눈이 돌아버린 상태라면 이해라도 됐을텐데 방금 그녀의 입술을 뚫고 튀어나왔던 목소리는 이성을 잃은 사람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능글맞았다.
그럼 뭘까.
대체 뭘 믿고 이런 짓을 저지른 걸까.
설마 증거가 없다는 걸 믿고서?
"신고할겁니다."
"거짓말."
역시 뭐든 처음이 어렵다고 한 번 내 물건에 손을 대니 더는 거리낄게 없어진 것일까.
어느새 내 몸에 찰싹 달라붙은 예리가 내 등에 대고 자신의 가슴을 꾹꾹 밀어붙이며 그렇게 속삭였다.
"안 할 거잖아? 신고?"
무슨 근거로?
"솔직히 싫지 않잖아? 이렇게 만져주는 거?"
솔직히 말하자면 그랬다.
지나만큼은 아니지만 예리도 충분히 미녀 소리 들을 수 있는 외모였으니까. 몸매도 헬스트레이너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답게 보기 좋게 잘 가꿔진 편이었고.
그런 여자가 물건을 손으로 슥슥 만져주고 있는데 싫을 리가 있나.
문제는 내 귀에 대고 그리 속삭인 예리가 그 사실을 확신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야한 거. 좋아하지?"
씨바, 어떻게 알았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일반인 코스프레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럼 모를 거라 생각했어?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어쩐지.
그래서 들켰구만.
하긴, 좀 많이 쳐다보긴 했지.
"지나야 그런 쪽으로는 눈치가 아예 없는 수준이니 속여넘길 수 있었겠지만.. 난 아니거든."
슥- 슥-
내 물건을 문지르는 손길이 조금 더 빨라졌다.
"아마 지나에게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내가 좀 남자를 많이 만나 본 편이라서 말이야."
"..."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알겠더라고. 이 남자가 진짜로 순수한 건지 아니면 순수한 척만 하는 건지 말이야."
"하."
"그런데 널 본 순간 내 감이 속삭이더라?"
"뭐라고 했는데요."
"뭐라고 했을 것 같아?"
그야 뭐 뻔하지.
분명 엄청 밝히는 놈이니 뭐니 하지 않았을까.
"그게 틀렸으면요?"
"음.. 그럼 사과해야겠지?"
"사과한다고 끝날 것 같아요?"
"3초만에 사과하면 봐주는 게 국룰이라면서?"
3초는 무슨.
3초 넘은 지가 언젠데.
"이 정도면 말로만 끝내긴 힘들 것 같은데요?"
"흠, 뭐 용돈이라도 줄까?"
진짜 빠꾸 없으시구만.
돈을 원하는 거면 얼마든지 주겠다.
그 말에 혹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원래 세상에서는 대딸을 받으려면 업소같은데 가서 돈을 지불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이제는 돈을 받으면서 대딸을 받는 처지라니.
'너무 꿀이고.'
달다 달아.
너무 달아서 이러다가 이빨이 몽땅 썩는 건 아닐지 걱정마저 될 정도였다.
"됐어요. 돈은 무슨. 누굴 거지로 아시나."
"그러면?"
그리 물으면서도 예리의 손은 여전히 내 물건을 쓰다듬고 있었다.
"음.."
뭐가 좋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예리를 향해 작게 손짓을 해보였다.
그리고는 그렇게 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인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가 그녀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무, 뭐? 뭘 해달라고?"
예리의 입에서 처음으로 현재 상황과 어울리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