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화 〉1부 (12/315)



〈 12화 〉1부

내 이름은 황지연.

나이는 26살.

하는 일은 헬스트레이너다.

일하는 곳은 다름아닌 이곳, 유앤나 피트니스 센터다.

솔직히 말하자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꽤 많이.

자격증을 따자마자 업계에서도 알아주는 평판을 가진 이곳에 도전하는 마음으로 지원을 했는데 설마 덜컥 붙을  누가 알았겠는가.

스스로조차도 면접에 필요한 서류를 접수하면서 합격을 꿈꾸는대신 유명하신 선배님들의 존안이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돈데 말이다.


덕분에 입사 4개월차를 지나고 있는 지금와서 생각해봐도 대체 어떻게 붙을  있었던 건지 아리송하긴 하지만 좋은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다만 딱 하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하나 적응이 안 되는 업무가 있다면 바로 지금처럼 안내데스크를 보는 것이었다.

어느 회사가 그렇지 않겠냐만은 보통 안내데스크라고 하면 남자 직원이 그곳을 지키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편이 방문객에게 보다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논리는 피트니스 센터같은 편의시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니, 오히려 어지간한 회사보다도 더 그 영향을 많이 받는 게 바로 피트니스 센터다.

좀 생겼다 싶은 남자 알바가 카운터를 지키고 있으면 설령 그 피시방의 사양이 다른 곳보다 딸린다 할지라도 일단 남자 알바가 있는 곳으로 향하고 보는 게 여자라는 생물의 특징이다. 고작 몇 시간 붙어있을 피시방조차 그럴진데 하물며 피트니스 센터를 결정할 때는 어떻겠는가.

당연히 여자보다는 남자를 안내데스크에 앉혀놓는 편이 손님몰이면에서는 유리하다.

이는 이미 수치로 증명된 사실이다.

남자 선생님들이 안내데스크를 담당하는 날 등록하는 신입회원의 수가 그렇지 않은 날에 비해 훨씬  많으니까.


그 점을 고려하면 안내데스크를 남자 선생님들이 전문으로 담당케 하거나 하다못해 잘생긴 남자 직원이라도 고용해서 담당케 하는 것이 자본주의적인 논리로 맞았지만.. 이곳 유앤나 피트니스 센터의 방침은 다소 특이했다.


-미남계는 쓰지 않는다. 그건 자기 실력에 자신없는 년들이나 하는 짓이다.

-우리는 일류고, 사람들의 몸과 건강을 관리해주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미래의 회원이 될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한순간의 이끌림보다는 신뢰감을 느끼게 해줘야한다.

그게 유앤나에서 '나'를 담당하고 계신 센터장님의 지론이었고, 지금 이렇게 데스크를 지키고 있는 것도 다 그것 때문이었다.

'맞는 말이지.. 맞는 말이긴 한데..'

새로 등록하려고 찾아온 이들 앞에서 몇 번 말을 절고 나니 그 생각이 싹 가시더라.


같은 여자를 대할 때는 딱히 문제될 게 없었다. 처음 몇 번이야 누군가에게 뭔가를 설명해주고 영업을 하는 행위가 익숙치 않아서 당황하긴 했지만 이제는 눈 감고도 프로그램 목록과 시설 목록을 줄줄 읊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문제는 이곳을 찾아오는 이들이 여자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유앤나에서 유를 담당하고 계신 지나쌤의 영향으로 수많은 연예인들과 모델들이 회원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고, 거기에 이끌린 적지않은 수의 남성들이 회원으로, 혹은 회원이 되고자 하루가 멀다하고 이곳을 찾곤 했다.


그리고 여중, 여고, 체대, 군대라는 최악의 테크를 밟은 자신은 남자를 대하는 게 익숙치가 않았다.

아니, 그냥 남자라는 생물 자체가 익숙치가 않았다.


그런데 남자를 상대로 '대화'를 하며 영업까지 한다?


평범한 남자가 상대라도 그러기 힘든데 하물며 이곳을 찾는 남성들은 하나같이 외모가 범상치 않았다. 다 그런 건 아니었지만 대다수가 그랬다.

회원비가 결코 싼 편이 아니다보니 이곳을 찾는 이들은 주로 건강관리보다는 외모관리 쪽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 영향이랄까.

그렇다보니 새로 회원으로 등록하기 위해 찾아온 '남성'들을 앞에 두고 버벅거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덕분에 등록을 유도하기는 커녕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돌려보내야만 했던 이들의 숫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월급 타먹고 사는 입장에서 참 양심에 찔리는 일이 아닐 수 없었고, 덕분에 그동안 느낀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다.


그래도 최근 들어서는 약간이나마 희망이라는 걸 느끼고 있었다.


괜히 사람을 두고 적응의 동물이라 부르는 게 아닌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당황스럽게만 느껴졌던 남자들의 미모가 입사 3개월차에 접어듬과 동시에 조금씩 익숙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으니까.


집에서  때마다 벽같은 곳에 미남 연예인들의 얼굴 사진을 붙여놓고 영업하는 연습을 했던 게 효과가 있었던 걸까.

아무튼 그로부터 한 달이 더 지난 지금은 상대가 아이돌 연습생, 모델 지망생이라해도 대화 정도는 버벅이지 않고 주고받을  있는 수준이 되었고 그런만큼 회원등록을 위해서 센터를 찾은 미남들을 상대로 아무 것도 못하고 허망하게 돌려보내는 일같은  이제 더는 없을 거다.


라고 생각했는데 막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온 남자의 얼굴이 시야 속으로 박혀든 순간 깨달았다.

그게  오만이었다는 걸.

'미친-'

욕부터 나왔다.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외모였다.

일전에 미남 배우로 유명한 이가 등록기한을 연장하기 위해 잠깐 데스크에 들렸던 적이 있는데 그때도 당황하긴 했지만  정도는 분명 아니었다.


어지간한 미남들은 가뿐히 씹어먹을 수 있을 법한, 아니 연예인  그 누구를 옆에 가져다놓아도 단번에 생선대가리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 법한 외모의 소유자가 지금 눈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무슨 약같은 거라도 한  같은 느낌이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먹어본 약이라고는 진통제하고 감기약따위가 전부임에도 그렇게 느껴졌다.

단순히 저 남자의 얼굴이 시야 안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심장이 쿵쿵하고 뛰고 얼굴이 미친듯이 달아올랐다. 이러다가 어느 순간 펑하고 터져버리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유산소 조지고  후에도  정도로 심장이 빠르게 뛰지는 않았었는데..

'부, 부정맥인가?'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생겼을 수가 있지?


아, 이거 혹시 꿈인가?


그래 꿈인가 보다.

그럼 그렇지.

저렇게 잘생긴 사람이 현실에 존재할 리 없잖아?

꿈이라면 얼른 깨어나야겠지.

꾸벅꾸벅 졸다가 다른 선생님들한테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만큼 쪽팔린 상황도 또 없을테니까.


그 전에 조금만 더 보고..

맘 같아서는 지금 시야에 비치는 광경을 프린트라도 해서 현실로 가져가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그런 일이 가능할 리 없지만.

'진짜 잘생겼다..'


이런 게 첫눈에 반한다는 거겠지.

'아니아니!'


이게 뭐 현실도 아니고 꿈속의 남자한테 반해봐야 후회만 남을 게 뻔했다. 그렇지만..


"헤헤헤.."

여자라면 레즈가 아니고서야 반하지 않을 수 없는 남자의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오는  솔직히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보는 이의 마음을 흐뭇하게 만들어주는 외모였으니까.

그런 지연의 행동 때문에 유한은 살짝 당황한 상태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유한의 입장에서 보면 사방에서 쏟아지는 음담패설을 피해 도망쳤는데 생전 처음 보는 년이 자길 보며 머리에 꽃달고 다니는 년마냥 헤실헤실 웃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뭐야, 쟨 또 왜 저래?'

뭐 잘못 먹었나?

그런 생각이 안 들래야  들 수가 없을 정도로 여자는 멍청해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 얼굴에 시선을 똑바로 고정한채로 말이다.


그럼에도 바깥에서 받았던 기묘하기 짝이 없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소리하고 시선의 차이 때문에 그런 걸까.


아니, 그보다는 얼굴의 영향이겠지.

평범함, 혹은 그 이하였던 바깥의 여자들과는 달리 지금 날 보며 헤실대고 있는 여자는 흔히 강아지상이라 부르는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에 비해 복장은 굉장히 가벼웠고 말이다.

'안 춥나?'

실내라고는 해도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바깥바람이  들어올텐데 말이다. 데스크에 앉아있는 탓에 아래에  입고 있는 지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위에만 봐도 충분히 추워보이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가 위에 걸치고 있는 거라고는 크롭탑 하나가 전부였으니까.

덕분에 팔하고 어깨는 물론, 상당한 노력의 흔적이 엿보이는 복부까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혹시 이 세계 여자들은 추위를 안 타는 유전자라도 가진 것일까.


어쩌면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하며 여전히 바보처럼 헤실대고 있는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담당자의 상태가 그리 좋아보이진 않았지만 어찌되었건 할 일은 해야했으니까.


그렇게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여자의 표정또한 몽롱하게 변해갔다. 마치  속을 헤매고 있는 듯한 그런 얼굴이라고 해야할까.

대미는 역시 내가 그녀의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언제 헤실거렸냐는 듯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얼굴 위에 띄운  날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갸웃한 그녀가 뜬금없이 자신의 볼을 꼬집었다.


"악!"


그리고 터져나오는 비명.


순간적으로 얼마나 힘을 줬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꽤 아팠나 보다. 저렇게 눈꼬리에 눈물이 찔끔 맺힌 걸 보면.

"그.. 괜찮으세요?"


"에? 에..? 에-?"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방금은 볼이더니 이제는 또 무릎이었다.


말을 걸기 무섭게 여자가 앉아있던 자세 그대로 몸을 들썩였고, 덕분에 그녀의 무릎과 책상이 서로 입맞춤을 하며 궤멸적인 소리를 터뜨렸다.


'어우 씨..'

소리가 어찌나 큰지  무릎이 다 시큰거릴 정도였다.


"아으으으.."


많이 아픈지 데스크 위에 엎어진  몸을 움찔움찔대던 것도 잠시,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님을 깨달았는지 그녀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아아아아, 안녕하십니까! 항상 최선을 다하는 유유유유유, 유앤나 피트니스 센터입니다! 무무무,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여기서 한  더 괜찮냐고 물어보는 건 그녀에게 실례겠지.

그나저나 뭐라고 해야한다?

유지나님 소개로 왔다고?


아니면 그냥 심플하게 지나의 이름만 대면 되려나?

"그 회원등록하려고 하는데요. 여기서 유지나라고 말하면  거라고.."


"..네?"

이게 아닌가?

"..아, 아아아! 네네!"

뒤늦게 떠올랐나 보다.

가슴팍에 황지연이라 적힌 명찰을 달고 있는 여자, 지연이 격하게 고개를 흔들어댔다. 거기에 맞춰 하나로 깔끔하게 모아묶은 포니테일이 요리조리 흔들렸다.


'강아지가 꼬리 흔드는  같네.'

생긴 것도 그렇고 하는 짓도 그렇고 참 귀여운 여자였다.

왠지 신음소리도 강아지처럼 낑낑하고  것 같달까.


'흠.'

순간 나쁜 생각이라 할만한 것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일단은 자제하기로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는 지나의 직장 아닌가.

한순간의 욕망에 눈이 멀어 일을 그르치기라도 했다간 그토록 매력적인 여자를 영영 놓쳐버리게 될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일단은..'


참아야겠지.

아마 저 여자는 지금 내가 자길 가지고 어떤 상상을 했는지 꿈에도 모를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레깅스로 감싸인 엉덩이를 보일 수 있는 거겠지.

'뭐..'

방금까지 보여준 반응을 고려하면 설령 들키더라도 싫어할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두  들고 환영하지 않을까. 방금 지연이 짓고 있던 표정은 누가봐도 첫 눈에 반한 사람의 그것이었으니 말이다.

"이, 일단 이것부터 작성해주시면 됩니다."


"아, 네. 잠시만요.."


본격적으로 손을 움직이기에 앞서 목에 두르고 있던 것부터 풀었다.


바깥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난방이 빵빵하게 돌아가는 실내로 들어오니 답답함이 장난 아니었으니까.

'대체 얼마나 칭칭 감아둔거야..'

그렇게 풀어낸 것을 대충 팔에다가 걸쳐두고 지연이 건네준 서류를 작성하려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편한 자세를 위해 상체를 살짝 앞으로 숙인 내 귀로 꼴깍-하고 군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흘깃 시선을 던지니 눈으로 들어온  내  어딘가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다시   군침을 삼키고 있는 지연의 모습이었다.

보자마자 눈치챘다.


지연이 어딜 저렇게 열심히 훔쳐보고 있는 중인지를.


'어쩐지..'


과할 정도로 칭칭 감아댄다 싶더라니만.. 이런 걸 걱정해서 그랬던 거였구만.


몰랐던 사실을 깨닫게 해준 대가로 조금 서비스를 해주기로 했다.


해서 지연의 시선을 깨닫지 못한  하며 서류의  칸을 채우는데 열중했다.

아마도  와중이었을 것이다.

"흐익..?!"

열심히 내 가슴팍을 훔쳐보고 있던 지연의 입에서 뜬금없이 그런 소리가 터져나오더니..

"어떻게  해가?"

뒷쪽에서부터 지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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