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화 〉1부 (10/315)



〈 10화 〉1부

"얼른요."

"그, 그래.."


어딘가 멍해보이는 가영을 채근하며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가방을 자연스레 내쪽으로 가져왔다.

그리고는 그것을 그녀의 방에다가 내려놓고 주방 쪽으로 향하니?

그 잠깐 사이에 제 몫의 밥과 식기를 들고 합류한 세나를 포함해 세 명이 식탁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날 기다리고 있었다.


"식기 전에 드셔보세요."


우선, 허연 김을 풀풀 피워올리고 있는 김치찌개부터 권했다. 나야 하루 종일 집 안에만 있었던 탓에 추운 줄을 몰랐지만 가영은 그렇지 않을테니까.

뜨끈하고 얼큰하게 끓여낸  찌개가 추위 때문에 살짝 굳었을 가영의 몸을 시원하게 풀어줄 터.

 와중에 세나가 눈치없게 숟가락을 들고 달려들길래 김치찌개를 향해 뻗어나가는 그녀의 손을 찰싹 소리가 나도록 두들겼다.

"악! 왜?! 먹어보라며!"


"고모부터 드셔야지. 으딜 감히."


"기미 환관 모르냐? 기미 환관?"

기미 환관?

설마 기미 상궁의  세계 버전인 걸까.

느낌상 아무래도 그런 듯 해서 가당치도 않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세나를 향해 손을 휘휘 휘둘렀다.


"씨이이.."


그게 내심 섭섭했던 모양이다. 입술을 저렇게 삐죽 내밀고 있는 걸 보면.

"어디 그럼 유한이가 끓여준 김치찌개 맛 좀 볼까?"


그런 우리 둘의 실랑이를 흐뭇하게 지켜보던 것도 잠시, 숟가락을 들어올린 가영이 김치찌개를 살짝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어떻게..'

지나 기준으로도  기준으로도 합격이긴 했지만, 가영의 입에도 맞을지는 잘 모르겠다.


원래 입맛이라는 게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덕분에 심장이 기대감으로 젖어서 두근두근하고 뛰는  느끼고 있으려니 찌개를 후후 불어서 식히던 가영이 이내 그것을 조심스레 맛봤다.

"어머."


어딘가 피로해보이던 가영의 눈이 순식간에 동그랗게 변했다. 그러더니 그녀가 찌개를  숟갈 더 떠서 맛을 보았다.

'합격이구만.'


꽤 마음에 들어하는  같아서 흡족한 마음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려니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세나가 자신의 숟가락을 찌개 쪽으로 들이밀었다.


마찬가지로 한 숟갈.


그리고는 그대로 얼굴을 찌푸리길래 설마 세나의 입에만  맞는 건가 싶었는데..


"뭐야, 왜 맛있지?"

다행히 그런 건 아니었나 보다.


정말로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던 세나가 이내 송곳니를 살짝 드러내보이며 헤헹하고 웃었다.

"딱 걸렸어.  여기다가 라면스프 넣었지."


"안 넣었는데?"

"뻥치시네. 솔직히 말해라. 라면스프야 다시다야."


"둘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뻥치시네. 그런데 이런 맛이 난다고?"

이런 맛이 뭔 맛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짜로 둘다 안 넣었다.


김치찌개가 뭐 거창한 요리도 아니고 나한테는 진짜 밥먹듯이 해먹었던  중에 하나인데 그런  만드는데 굳이 치트키까지 동원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래? 근데 왜 맛있지."

"잔말말고 얼른 드시기나 하셔. 계란말이 좋아하잖아."


세나가 나와 투닥거리고 있는 동안 지나는 묵묵히 계란말이를 집중공략하고 있었다.

덕분에 내 손바닥을 두 개 합친 것보다 살짝 큰 접시 위를 가득 채우고 있던 계란말이가 어느새 반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아, 언니이..!"

"뭐."


역시 지나는 지나였다.


뭐, 노려본 것도 아니고 퉁명스러운 목소리만 냈을 뿐인데 세나가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하게 변했으니까.

말 한 마디 듣고 저럴 정도면 거의  목소리만 들어도 반응하도록 조교된 수준 아닌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가영과 지나 쪽으로 쏠려있던 접시를 세나 쪽으로 옮겨주었다.


괜히 자매가 아닌 걸까.

지나또한 계란말이 애호파였나 보다.

접시를 세나 쪽으로 옮긴 순간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묻기라도 하는 듯한 시선이 얼굴로 날아와 푸욱하고 박혀든 걸 보면 분명 그런 거겠지.

그 사실을 아는  모르는 지 세나는 그저 기쁘다는 듯 '헤헤'하고 웃기 바빴다.


'으이구..'


살짝 푼수 같아보이긴 했는데 그 모습이 또 은근히 귀여웠다.

뭐라도 더 챙겨주고 싶게 만드는 모습이랄까. 그래서 젓가락을 들고 와 세나의 숟가락 위에다가 반찬같은 걸 집어서 올려주었다.

"뭐야, 누가  줄 알아?"

"계란말이만 집어먹는 것도 그렇고 고기만 쏙쏙 골라서 먹는 거 보면 애 맞는 것 같은데?"

"뭐, 뭐래."

짜증낸  치고는 의외로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부끄럽긴 한데 그렇다고 마냥 싫어하는 것 같지도 않은 느낌?


해서 장난스러운 표정과 목소리로 한 번 더 시도해봤다.


"자자, 우리 세나. 이것도 먹어볼까? 가치무침이에요. 가지무침."


"으엑.. 아무리 그래도 가지무침은 좀.."

"왜? 맛있기만 하더만. 그리고 편식하면  써요."


타이르듯 말하며 젓가락을 이용해 집어든  이번에도 그녀의 숟가락 위에다가 올려주었다.


어느새 제 숟가락 위를 차지한 것을 뭐라 형용키 어려운 표정으로 내려다보던 것도 잠시, 세나가 눈 딱 감고 그것을 입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는 씹지도 않고 그대로 꿀꺽 삼켜버리더라.

물론, 꽁트아닌 꽁트는 거기까지였다.

적당하게 짭짤하고 적당하게 얼큰한 국물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 잠깐 사이에 한 그릇을  비우고 밥을 새로 퍼온 지나가 자리에 앉으며 던진  마디 때문이었다.

"진짜 꼴값떨고 앉아있네. 네가 애냐? 유세나."


"왜? 엄마는 보기 좋기만 한데."

"아, 밥맛 떨어지니까 그렇지."

"그런  치고는 맛있게 잘 먹던데? 벌써 두그릇째 아니니?"

"아니, 그야 뭐.. 찌개가 맛있으니까.."

시기적절하게 나선 가영의 활약 덕분에 밥상머리에는 다시금 평화가 찾아왔다.


그런데 막상 평화가 찾아오니 세나가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꾸만 날 힐끔힐끔 쳐다보는 게..

'설마 더 해달라고?'

질색이란 질색은  하더니만 은근히 편하고 좋았던 걸까.


는 아마 아닐 것 같고 내게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  했다.


그런 유한의 예상은 정확했다.

실제로 세나는 브이튜브 영상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들기 위해서 속으로 열심히 타이밍을 재고 있는 상태였다.


'지금 물어보면  것 같은데..'

분위기도 좋겠다 지금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그런데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꺼내지?

그래도 최대한 정중하게 물어보는 게 맞겠지?

"야."

그런 소망과는 달리 정작 입술 밖으로 튀어나온 건 퉁명스럽기 짝이 없는 목소리였다.

"응? 왜? 밥 더 먹게?"

"손 없냐? 네가 직접 퍼다 먹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속으로 숨을 한  고른 뒤 조심스레 입을 열어 물었다. 브이튜브에 오늘 합방 영상을 편집해서 올릴 건데 아까 잠깐 나왔던 걸 영상에 쓰는 것이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기는 했지만, 나름 어렵게 꺼내든 질문이었다.

그래서 그런 지 몰라도 심장이 콩닥콩닥하고 뛰었다.

헌데 정작  질문에 답을  건 유한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탁-

숟가락과 테이블이 부딪히는 소리가 주방 안으로 울려퍼졌다.

"야, 유세나."


그에 흠칫한 순간, 뒤이어 들려온 건 바깥에 흐르는 공기보다도 싸늘하게 식은 언니의 목소리였다.


"뭔 소리냐 그건 또?"

그 순간, 세나는 떠올렸다.

원래 살던 동네에서 공포 그 자체로 군림했었던 지나의 과거를.

유한이 분명히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질척질척하게 달라붙던 년들을 쫓아냈던 건 늘 언니인 지나였다.

그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왔기에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언니인 지나가 빡치면 얼마나 흉악해지는지를.


그것이 지금 이 순간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사실을 깨달은 순간 숨이 턱하고 막히면서 몸이 으슬으슬 떨리기 시작했다.

"뭔 소리냐니까? 응? 내  씹냐?"


이런 게 살기라는 걸까.


어쩐지 동네에서 좀 친다는 년들도 언니 앞에만 서면 유독 맥을 못추더라니.

 년만에 깨닫게 된 진실은 하나도 위안이 되질 않았다.

언니 앞에 무릎을 꿇고 엉엉 울던 년들의 모습을 떠올리기 무섭게 그년들의 얼굴 위로 자연스럽게 자신의 모습이 덧씌워졌으니까.


그런 둘의 대치아닌 대치를 유한은 제법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쩐지 좀 놀아본 것 같은 냄새를 풀풀 풍기더니만..'

학교 다닐 때 좀 쳤나 보다.


고작  한 마디 들었다고 세나가 저렇게까지 쪼그라든 걸 보면.

확실히 세나를 지그시 노려보는 지나의 모습은 살벌하기 짝이 없긴 했다. 딱히 위협적인 표정을 하고 있는  아님에도 그랬다.

그냥 왠지 모르게 이 사람하고 붙으면 내가 좆되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 해야할까.

아무튼 이대로 모르는 척 하기에는 세나가 너무 불쌍해서  사이로 잽싸게 끼어들었다.

"누나 왜 그래."

"넌 가만히 좀 있어봐."

"내가 실수한 거야. 세나 누나는 아무 잘못 없어."


그러니까 좀 참아봐라.

그런 의미로 꽈악하고 힘이 들어가있는 지나의 팔을 조심스레 붙잡았다.


내가 그렇게까지 하는데 더 화를 내긴 좀 그랬던 걸까.


힘이 바짝 들어가있던 팔에서 조금씩 힘이 빠져나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탱탱하게 돌아온 감촉을 몰래 만끽하고 있으려니..


"그래서 대체 어떻게 된 일이니 세나야?"

지나 못지 않게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던 가영이 바짝 쪼그라든 세나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그리 물었다.

그에 좀 정신을 차린 것일까.

세나의 입에서 오늘 하루동안 벌어졌던 일들이 순서대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방송 중일  스튜디오에 들이닥쳤던 것부터 시작해서 합방에서 꼴찌를 해버린 바람에 벌칙으로 나와 함께 방송하라는 명령을 받게 되었던 것까지.

그 말을 모두 들은 지나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렇다고 넌 그걸 진짜로 하냐?"

"아니.. 나도 유한이가 거절하면 끝이라고 했는데.."


"내가 괜찮다고 했어."

 순간 세나 쪽을 향하고 있던 지나의 시선이 내쪽으로 홱 돌아왔다.

'어우 씨..'

아침에 설거지할 때 봤던 것보다  배는  살벌하게 변한 모습을 한채로.

그야말로 안 쫄래야  쫄 수가 없는 모습이랄까. 덕분에  의지와는 상관없이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네가?"


"으, 응.. 세나 누나한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

"그리고 그.. 재밌을 것 같기도 했고."

잽싸게 핑계를 하나 더 덧붙여봤지만 딱히 효과는 없는 것 같았다.


찡그려진 표정이 나아지기는 커녕 지나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골치가 아프다는 듯 움푹하고 파인 제 미간을 꾹꾹 눌러댔으니까.


그렇게 지나가 잠시 침묵에 들어간 순간, 가만히 상황을 관망하고 있던 가영이 다시금 앞으로 나섰다.

"유한아."

그녀도  만류할 생각인 걸까.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잠깐의 침묵 후에 그녀의 입을 비집고 흘러나온 건 내가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의 질문이었다.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결정한거니?"


"네? 아, 네.."


"그럼 하렴."


아니, 이걸 이렇게 순순히 허락해준다고?

정말로?


"엄마!"

그럼 그렇지.


우리 극렬한 반대파께서 가만히 계실 리가 없지.


이쯤되니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대체 유한이 과거에 무슨 일을 겪었길래 지나도 그렇고 가영도 그렇고 다들 저런 반응인가 싶었으니까.

'어떻게 알  있는 방법 없나?'

이왕 서비스 해주는 김에 유한의 과거도 덤으로 얹어줬으면 참 좋았을텐데 말이다.

'빙의물 국룰 아닌가?'

소설보면 그렇던데.

그래서 막 이리저리 뒤섞인 기억 때문에 혼란같은 것도  겪고 말이다.

아니면 설마 그런 걸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막아준 건가?


감사해야할지 아니면 원망해야할지 알 수가 없어서 속으로 헛웃음만 흘리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지나야."

그 '가영'에게서 흘러나온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낮은 목소리가 주방 안을 가로질렀다.


갑자기 싹 바뀌어버린 가영의 목소리에 지나가 몸을 흠친한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왜 밥상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그러니?"

"아니, 그.."


"그리고 지나야. 유한이도 이제 22살이야. 물론, 네 눈에는 여전히 어리게만 보이겠지만 유한이도 이제 엄연한 성인이란다."


그런 내가  의지로 스스로 결정한 것을 가족이라는 이유로, 걱정이 된다는 이유로 무작정 꺾으려고 들어선 안 되는 거라며 가영이 지나를 타일렀다.

물론, 그 말에도 지나는 전혀 납득하지 못한 눈치였지만 다른 이도 아니고 가영이 그렇다는데 어쩌겠는가.

"하.. 알겠어."

정말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한채 고개를 대충 끄덕인 지나가 이내 내쪽을 돌아보며 덧붙였다.


혹시라도, 정말 혹시라도 방송 나간 후에 이상한 일같은게 생기면 숨길 생각 하지말고 바로바로 말하라고.


"알겠어."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 혹시 과거에 스토커한테 시달린 경험이라도 있는 걸까.

아무튼  대화는 거기까지인 듯 했는데..


"그러고보니까 잠깐만."

이번에는 세나 쪽으로 시선을 던지려던 지나가 다시 내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더  말이 남은 것일까.

"응? 왜?"

"유한이 너 내일부터  따라서 운동다니겠다고 하지 않았어?"

"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