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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화 〉1부 (9/315)



〈 9화 〉1부

다른 곳도 아니고 집이니만큼 지나의 복장은 굉장히 가벼웠다.


위에는 가슴을 간신히 덮는 얇은 크롭탑이 전부였고, 아래에는 아침처럼 팬티 한 장이 전부였으니까.


아침처럼 검은색 레이스 팬티였다면  좋았을텐데 회색 스포츠 팬티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아니, 어찌보면 아침보다 더 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팬티색 중에 회색이 제일 야하다더니만..'

바로 조금 전까지는 팬티는 당연히 검은색이지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개소린가 싶었는데 지금보니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평범한 회색팬티는 꼴림도가 낮다.


하지만 그것이 뭔가에 젖어있는 상태라면?


그제서야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오로지 회색 팬티만이 보여줄 수 있는 풍경이 말이다.

'어우 씨..'

덕분에 시선이 자꾸만 아래로 향하려고 해서 그걸 붙잡아두는  상당히 고역이었다.


그렇다고 윗쪽에 시선을 둘 수도 없었다.

만만치 않은 건 그쪽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


대체 무슨 운동을 했길래 저렇게 땀으로 푹 젖은 걸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지나의 피부 곳곳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개중에서도 압권인 곳은 역시 크롭탑 사이로 얼핏 보이는 가슴골이었다.

그곳에 땀방울이 두어 개 정도 맺혀있는데 맘같아서는 그걸 혀로 낼름 핥아보고 싶을 정도였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저곳에 맺혀있는 것만큼은  맛이 나지 않을까.

아무튼 확실한 건 지금의 지나는 굉장히 위험하다는 거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며 뒤로 한 걸음 정도 물러났더니 의아하다는 듯 내쪽을 쳐다보고 있던 그녀가 얼굴 위로 쓴웃음을 머금었다.

"아, 미안. 땀냄새 나지?"

그녀의 말대로 냄새가 나긴 했다. 다만 불쾌한 냄새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차라리 살내음이라고 해야할까. 아마도 그녀가 평소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바디워시의 향이 진하게 풍겨왔다.

"벼, 별로 그렇게까지는.."

고개를 가로저으니 지나가 한쪽 팔을 들어올려 거기에 코를 묻고는 냄새를 맡았다.

그러면서 드러난 겨드랑이가 사람을 또 미치게 만들었다.

잘 관리되어 매끈매끈한 것이 땀으로 젖어서 번들거리는 게 뭐랄까.. 야했으니까.

지금  순간 지나는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야짤 그 자체였다.


"그런데 진짜 왜 내려온 거야? 야식 먹으려고?"


덕분에 내 입안이 실시간으로 사막화되고 있다는 걸 아는 지 모르는 지 사막화의 주범이 아까도 던진 바 있는 질문을 재차 입에 올렸다.

"아니, 그.. 고모 출출하실 것 같아서 뭐라도 만들어놓으려고."


"그래? 철들었네."

머리를 슥슥 쓰다듬는 손길에 맞춰서 얇은 천으로 감싸인 볼륨감 넘치는 가슴이 푸릉푸릉 흔들렸다.

거기에 맺혀있던 땀방울들에게는 그야말로 갑자기 지진이 일어난 격.

덕분에 가슴골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맺혀있던 것이 그 사이로  미끄러졌다.

"나는 마무리 운동만 하고  씻어야겠다."

그리 말하며  머리에 올려놓고 있던 손을 떼어낸 지나가 총총 걸음으로 내 옆을 지나쳐갔다.


거실 한복판에 깔아둔 매트 쪽으로 향하는 그녀를 향해 흘깃 시선을 던져보니 살짝 젖은 팬티에 감싸인 그녀의 엉덩이가 날 유혹하듯 좌우로 씰룩거렸다.


그 모습을 잠시동안 훔쳐보다가 그대로 주방으로 도망쳤다.


계속 보고 있으면 몬가.. 몬가 벌어질 것만 같았으니까.


'아직, 아직은 아니야.'

역시 잡념을 쫓아내는데에는 뭔가에 열중하는 게 최고인 법.

해서 냉장고부터 뒤졌다.

'반찬은..'

있는 걸로 때우면 될테고, 그냥 반찬만 먹긴 좀 아쉬울테니까 찌개랑 메인 반찬 하나 정도만 추가하면 되겠지.

찌개라.


뭐가 좋을까.

냉장고 안에 아침 반찬으로 나왔던 제육볶음을 만들고 남은 듯한 목살이 있길래 고추장찌개와 김치찌개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김치찌개로 결정했다.

그리고 메인 반찬은.. 계란말이면 되겠지.

김치찌개하고 계란말이.

그야말로 치트키 조합 아닌가.

빨간 국물을 고기와 함께 푹 떠서 쌀밥에 슥슥 비벼준 다음에 그걸 또  떠서 한 입 크게 한 다음에 계란 말이를 한 입 베어먹으면..

'크..'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침이 줄줄 흘러나왔다.

뭐, 그것도 둘다 맛있을 때의 이야기긴 하지만, 다른  몰라도 김치찌개나 계란말이라면 자신있었다.

이래뵈도 자취 10년차니까.


혼자서 끼니를 해결해야만 했던 세월까지 합치면 그 이상이고.

'자, 우선..'

목살을 한 입 크기보다 살짝 작게 썰었다.


그리고는 키친타월 사이에 넣고 꾹 눌러서 핏물을 빼준 다음에 냄비에다가 쏟아붓고 그대로 달달달달 볶았다.

고기 겉면이 어느 정도 익은 것 같다 싶으면 그때 물을 부어주면 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넣을 게 있다면..

'이거지.'


새우젓을 한숟갈 퍼서 그대로 냄비 안에다가 털어넣었다.

이제 기다려야 한다.

고기의 지방이 국물 속으로 녹아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찌개와 계란말이에 들어갈 야채를 비롯해 두부, 김치를 쫑쫑 썰어서 한쪽에 대기시켜놓았다.


'투입.'

김치부터 넣었다.


덕분에 빨갛게 변한 국물 속으로 국간장과 다진마늘, 고춧가루를 넣어 간을 맞추었다.


'두부도.'


지금 넣어놓으면 상에 올라갈 때쯤이면 두부에 국물이 배어서 그대로  안에 넣고 씹으면 얼큰한 국물이 고소한 맛과 함께 확 터져나오겠지.

'아오 씨 침 나오네..'


양파를 넣어도 되긴 하지만, 계란말이를 일본식으로 하기로 한 만큼 오늘만큼은 패스했다.


계란말이도 달다구리한데 찌개까지 달다구리하면  그럴테니까.


단짠단짠은 지켜야지.

그래도 아주 조금 설탕을 넣어주었다. 0.3스푼 정도?


신김치 맛은 잡아줘야 하니까.

그리고는 얼큰함을 더해줄 청양고추와 맛을  깊게 만들어줄 파까지 때려부어준 뒤 그대로 뚜껑을 닫았다.

'저건 저대로 내버려두고..'


김치가 푹 익을 시간이 필요할테니 앞으로 20분 정도는 더 끓어야 했다.

그동안 계란말이를 만들면 되겠지.


준비물은 이미  갖춰놓았다.


계란 여섯 개와 쯔유, 그리고 맛술.

우선 계란 여섯 개를 모두 깨서 잘 풀어준 뒤 체에 한 번 걸렀다.

굳이 안 걸러도 되긴 하지만 이래야 완성했을 때 색이 균일하게 나오니까.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이왕 만드는  생긴 것도 괜찮으면  입맛이 돌지 않겠는가.


그렇게 걸러낸 것에다가 쯔유와 맛술을 섞었다.


그리고는 잘게 다진 야채를 섞어서 뭉치지 않도록 잘 섞어준 뒤..

'계란말이용 팬이 없네.'


그래서 그냥 팬에다가 기름을 두르고 적당량을 부었다.

이 다음부터는 단순작업의 반복이다.

계란물이 익을 때마다 말아주기만 하면 되니까.


여러  말 수도 있었지만 딱  번만 말아주었다.  편이 베어물었을  식감이 가장 괜찮더라.


그렇게 양산해낸 것을 직사각형 모양의 접시에다가 옮겨닮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뭐야? 벌써 다 했어?"

살짝 놀란 듯한 목소리와 함께 상쾌한 향이 후욱하고 끼쳐왔다.

동시에 오른쪽 어깨 위에서 약간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에 그쪽을 향해 흘깃 시선을 던져보니 눈으로 들어온  내 어깨에 턱을 괸채 입을 '오.'모양으로 작게 벌리고 있는 지나의 모습이었다.

평상시보다 거리감이 훠어어어얼씬 가까워서 나도 모르게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내가 방금 그녀의 목소리에 반응해 고개를 돌렸다면 단순히 얼굴끼리 부딪히는 걸로는 끝나지 않았을테니까.

분명 얼굴말고 다른 것도 부딪혔겠지. 얼굴 아래쪽에 있는 보드랍고 말캉한 것 말이다.

"아, 미안."


그제서야 자기가 너무 가까웠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일까.

짤막한 사과와 함께 멋쩍은 표정을 얼굴 위로 띄워보인 지나가 살짝 뒤로 물러났다.

재차 마주하게된 지나의 모습은 아까와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샤워를 끝내고 나온 걸까.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그녀가 살짝이라도 몸을 움직일 때마다 무슨 꽃향기 같기도 하고, 체리향 같기도 한 것이 후욱하고 끼쳐왔다.


촉촉하게 젖어있는 것도 모자라서 달달한 향기까지 풍겨대는 지나의 모습은 땀에 흠뻑 젖어있을 때하고는 또다른 파괴력을 뿜어냈다.

덕분에 내가 실시간으로 번뇌에 휩싸이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아는  모르는  지나가 팔팔 끓고 있던 냄비의 뚜껑을 열고 그 안에 담긴 것의 냄새를 맡았다.

그러면서 그녀의 상체가 자연스레 앞으로 기울어졌는데 덕분에 알  있었다.

저 까만 나시티 아래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평소와는 달리 잡아주는 게 없으니 그녀의 가슴이 서서히 기울어지기 시작한 몸에 맞춰서 매우 역동적인 움직임을 선보였다.

내가 그걸 구경하는데  빠져있는 사이 지나가 바글바글 끓고 있는 김치찌개 위로 손을 휘휘 휘둘러 거기서 나는 냄새를 만끽했다.


"오오.."


감탄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좋은 생각이 났다.


안 그래도 슬슬 마지막으로 간을 보려던 참이었는데 그녀와  상황을 이용하면 되겠다 싶었으니까.

"그 누나, 간 좀 봐주라."


"응? 그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길래 손에 든 숟가락을 건네는 대신 그것으로 국물을 살짝 떴다.


혹시라도 국물이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그 밑에다가 손바닥을 대기시켜둔 뒤, 허연 김을 풀풀 피워올리는 것을 입 앞까지 끌어와 바람을 후후 불어서 식혔다.

"여기."

그리고는 그것을 그대로 지나를 향해 내밀었다.


 순간 지나가 보여준 반응은 뭐랄까.. 카리스마 넘치는 외모하고 어울리지 않게 상당히 귀여웠다.


'에?'


 그리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을 한채 그대로 굳어버렸으니까.

덕분에 확신할  있었다.


즉흥적으로 생각해낸 한 방이 제대로 먹혀들었다는 걸.


"얼른."


지나가 정신을 차린 건  입에서 재촉의 말이 흘러나오고 나서였다.

"어, 어.."


어딘가 얼떨떨해보이는 표정을 한채 고개를  차례 끄덕인 지나가 이내 입을 살짝 벌려 자신의 앞으로 들이밀어진 것을 넙죽 받아먹었다.


"어때? 싱겁진 않아?"

"어? 어, 아니 마, 맛있는데?"

"뭐 더 넣어야할 건 없고?"


"아니, 지금이 딱 좋은  같아."


"흠, 그래?"


고개를 갸웃하며 자연스레 나도 한숟갈 떠먹었다.


물론, 같은 숟가락을 사용해서.


그 순간 지나의 시선이 내 움직임을 쫓은 것처럼 느껴졌던 건.. 꼭 기분 탓만은 아니었겠지.


"음, 그만 끓여도 되겠네."


그 말 뒤로 내려앉은 건 묘한 침묵이었다.

그걸 어떻게든 하고 싶었던 걸까.


"그, 도와줄까?"

"네?"

"밥상 차리는  말이야."


"그러면 나야 편하고 좋지."

그렇게 내 곁으로 합류한 지나가 나를 대신해 반찬을 꺼내 세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식기를 챙겨갔는데..


'왜 두 벌?'

뭐하려고 숟가락하고 젓가락을 하나씩 더 챙기나 했는데 자기도 먹겠단다.

"관리안해?"

"한 번 정도는 괜찮아. 괜찮아."

뭐, 본인이 그렇다는데 어쩌겠는가.

피식 웃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운동해서 배고파 죽겠는데 이렇게 맛있는 냄새를 풀풀 풍기면 어떻게 참냐고."

"아, 그러네. 내가 잘못했네."

"그치? 그러니까 먹어서 혼내준다."

 웃은 지나가 주걱으로 밥을 푹 떠서 자신의 것으로 추정되는 밥그릇에다가 꾹꾹 눌러담았다.

"그나저나 고모는 좀  걸리시려나? 슬슬 오실 때가 됐는데.."


"한 번 전화해볼까?"


"응, 식으면  되니까."

"식으면 데우면 되지."

"그래도 갓 만들었을 때 먹는  맛있잖아."


그런 식으로 지나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밥상을 차리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뭐야, 어디갔나 했더니 여기 있었.."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에서 세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더니 나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우리 둘을 보며 슬쩍 인상을 쓰는  아닌가.

"뭐야? 둘이 뭐해?"

이 야밤에 뜬금없이 밥상은 왜 차리고 있는 거냐고 묻고 싶었던 것일까.

"곧 고모 퇴근하실 시간이잖아."


"아."

그제서야 그 사실이 떠올랐는지 세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야, 왜 벌써 내려와? 방송 벌써 끝났어?"


"응, 오늘 합방이라 좀 일찍 시작했거든."


어째 세나를 바라보는 지나의 눈빛이 심상치가 않았다.

꼭 마치 잠재적인 적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


보아하니 세나가 밥상에 끼어들 걸 우려하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한 번 제안해봤다.

"누나도 먹을래?"


"뭔데?"

"김치찌개. 아, 계란말이도 있어."

계란말이에 혹했나 보다.

세나가 갈색으로 물들인  머리를 요리조리 흔들며 격하게 수락의 의사를 밝혔다.


"쯧."


그에 세나를 향해 은근히 경계심을 내비치고 있던 지나의 입술 사이에서  차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렇게 세나까지 자리에 합류하고 나서야 가영이 하루일과를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살짝 젖은 손을 앞치마에 대충 문질려 닦으며 그쪽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응? 이게 무슨 냄새야?"


"오셨어요? 출출하실 것 같아서 간단하게 드실 것  해놨어요."

"유한이 네가?"

"어쩜.."


역시나 가영은 감동한 눈치였다.


살짝 웃으며 그런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가방 이리주시고,  식기 전에 얼른 식사부터 하셔요."

그 순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아주 잠깐이지만 가영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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