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1부
예정된 합방도 얼추 끝났겠다 이제는 해산해야할 시간이었다.
이대로 헤어지긴 아쉬웠던 걸까 같이 합방을 한 멤버들이 팀랭 한 판만 돌리고 끝내자며 뒷풀이를 제안해왔지만 정중하게 거절했다.
사실 하고자 하면 못할 것도 없긴 했지만, 오늘은 좀 일찍 끄고 쉬고 싶었으니까.
"그래, 쉬어."
"언니 빠잉."
"내일 방송 기대할게!!'
"님들 저 내일 휴방이요. 치킨 딱대!"
디스코드를 종료했다.
이제 남은 건 방송을 적당히 마무리하는 것뿐.
"자, 다들 방송은 재미있게 보셨나요?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럼, 내일 방송에서 뵐게요. 트바!"
[세바]
[ㅅㅂ]
[ㄴㅇㅂㅈ]
[아 방종 그거 되게 안 좋은 습관인데;;]
[동생 분 까먹지 말고 모셔와야 돼!!]
[기다릴게!!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아 ㅋㅋ 내일 방송 기대되서 잠 어케 자누;; 낼 출근 조졌네;;]
[ㄹㅇ ㅋㅋ]
[응 연차 낼 거야~ 내일 출근 안 해~ 집에서 쉬면서 세나 방송 켜지는 것만 기다릴 거야~]
[낼 아침 강의 있는데 이 정도면 지각 사유로 인정이죠?]
[공포게임에 합방에 동생 분 게스트 출연? 이건 교수님도 인정하실듯 ㅋㅋ]
[벌써 그립읍니다..]
[8시까지 숨참겠읍니다! 흡!]
[레즈야.. 아직 20시간도 넘게 남았는데 벌써 숨 참으면 낼 방송은 어찌보누;;]
[낼 회사에서 야근한다고 세나 방송 놓치는 블랙말랑카우 쉑 없제~?]
[아 ㅅㅂ 내일 저녁에 토익학원 가야되는데;;]
[이걸 공부한다고 인생 낭비하네]
[ㄹㅇ ㅋㅋ]
[어쩔 수 없다 제꺼야지]
[그러다가 선생님 인생도 제껴지실 것 같습니다]
[아 이것만 보고 공부한다고 ㅋㅋ]
쭈르륵 올라가는 채팅들.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방송 종료 버튼을 꾹 하고 눌렀다.
그렇게 방송이 종료된 순간, 한숨을 푹 내쉬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맘 같아서는 이대로 방으로 기어들어가 침대 위에 드러눕고 싶었다.
허나 그럴 순 없었다.
스트리머 '세나'의 하루 일과는 방금 끝이 났지만, 아직 브이튜버 '세나'로서 처리해야할 일이 남아있었으니까.
의자에 반쯤 드러누운채 그새 살짝 뻐근하게 변한 팔다리를 쭉 한 번 뻗은 뒤 그대로 마우스를 잡았다.
그리고는 합방할 때 사용했던 것과는 다른 종류의 채팅 프로그램을 켰다.
"아아, 들려?"
"아, 사장님 오셨어요?"
"오늘 방송도 고생하셨습니다. 사장님."
"그래."
"그.. 오늘 방송은 어땠어? 괜찮았지?"
"어우 대박이던데요. 보다가 배 찢어지는 줄 알았어요."
"그토록 완벽한 브튭각이라니 역시 사장님이십니다."
"엣헴, 더 칭찬하도록."
"너무 자연스럽게 못하셔서 저는 연기인 줄도 몰랐다니까요? 연기 맞죠?"
"다, 당연하지. 세지컬 몰라? 세지컬?"
"아유, 알죠. 알죠."
그렇게 잠깐동안 노가리를 떨며 분위기를 풀어준 뒤, 곧바로 회의를 시작했다.
그 이야기가 흘러나온 건 오늘 합방 영상을 어떤 식으로 편집하면 좋을지 두고 게임 영상 담당 편집자와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와중이었다.
"근데요. 사장님."
"응? 왜?"
"그.. 동생 분 있잖아요."
또 유한 이야기란 말인가.
세나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진 순간, 그 사실을 알리 없는 편집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번에 올라갈 영상에.. 넣어도 될까요?"
"안 돼."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하는 걸까.
짜증이 울컥하고 솟구치며 미간에 힘이 팍 들어가는 게 느껴져서 손가락으로 그곳을 꾹꾹 눌렀다.
"말했잖아. 걔 일반인이라고. 브이튜브도 거의 안 볼걸?"
"하, 하지만.."
"하지만이고 자시고 안 돼."
조금이라도 더 높은 조회수를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는 놈들이 널려있는 게 이 판이다.
그만큼 치열한 세계였고, 조회수를 뽑기 위해 가족 얼굴 좀 파는 거야 사실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조회수 좀 뽑아보겠다고 죄 없는 동물들을 학대하다가 딱 걸린 년도 있는 데 영상에 얼굴 잠깐 등장하는 게 대수겠는가.
분명 편집자도 그렇게 생각해서 한 질문일 거다.
허나 적어도 자신은, 자신만큼은 그러기 싫었다.
"절대로 안 돼."
해서 그 주제는 그리 마무리하고 넘어가려 했건만 어째 오늘따라 다들 끈질겼다.
심지어 썸네일러까지 나서서 자신을 설득하려고 드는데 맘 같아서는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다 닥치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안 된다니까."
"너무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마시고요. 사장님.."
"말했지? 안 된다고."
"최근 들어 채널 성장이 정체돼서 고민이라고 하셨잖아요. 어쩌면 동생 분이 그 해답일지도 몰라요."
설득하려는 쪽과 설득당하지 않으려는 쪽의 대치가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던 가운데 들려온 말 하나가 마음을 혹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말에 혹한 스스로가 굉장히 역겹게 느껴졌다.
그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된다고 다짐해놓고서는 말 하나에 혹하는 꼴이라니.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말대로였으니까.
스트리머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서 시작한 브이튜브 채널은 개설한 후로 쭉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왔다.
구독자가 채 만 명이 되지 않았을 때도 그랬고, 10만을 넘었을 때도 그랬으며, 100만이라는 기념비적인 숫자를 넘어선 후에도 그랬다.
그렇게 우상향 그래프만 보여주던 것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꺾이더니 이윽고 평평하게 변해버렸다.
누구처럼 논란에 휩싸이거나 사고를 친 게 아님에도 그랬다.
솔직히 처음에는 그리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지금까지 쉬지 않고 성장해왔으니 한 번 정도는 정체기가 올 법도 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물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해서 두 손 놓고 방관했다는 뜻은 아니다.
편집자들하고 상의를 해서 영상을 편집하는 방법을 바꿔보기도 했고, 그 전까지는 시도하지 않았던 컨텐츠를 시도하기도 했으니까.
그럼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구독자가 늘어나지도, 그렇다고 줄어들지도 않는 그야말로 완벽한 정체.
그 기이하기 짝이 없는 현상이 몇 달동안 이어졌다.
그게 꼭 넌 딱 여기까지라고 속삭이는 듯 했다.
덕분에 다 자기들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며 관두겠다는 의사를 밝혀오는 편집자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했었다.
그게 고민이었다.
누군가는 그 정도면 이미 충분히 큰 거 아니냐, 그 이상은 욕심 아니냐라고 말하며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자신을 헐뜯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은 이대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허나 아무리 노력해봐도 달라지는 게 하나도 없어서 슬슬 허탈함이라는 놈이 슬금슬금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는데.. 방금 편집자가 내놓은 말 하나가 그런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흔들어놓았다.
"사장님, 아니 세나 언니."
척하면 척이라더니만 같이 일해온 세월이 어마어마하다보니 자신이 침묵하자마자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모양이다.
"언니가 뭘 걱정하시는 지는 알아요."
설득을 위해 마련된 차분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렇지만 동생 분께 의사 정도는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맞아요오."
"그리고 뭣보다.. 동생 분께서 생방 출연을 수락하신 걸 보면 어쩌면 방송 쪽에 관심이 생기신 걸지도 모르잖아요?"
"그럴 리가.."
없다.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한은 늘 자신에게 쏠리는 관심을 부담스러워 했으니까.
허나 그러지 못했던 건 그 말을 입밖으로 꺼내려던 순간 제시된 자그마한 가능성 때문이었다.
아니, 정말로 없나?
정말로?
평소였다면 그 말을 단칼에 부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오늘은 그게 되질 않았다. 유한이 방송에 출연하겠다고 말하던 모습이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있었으니까.
"씨이이.."
"고민하고 앉아계시지만 마시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시원하게 지금 당장 물어보고 오시죠."
"맞아요. 동생 분께서 거절하시면 깔끔하게 안 하는 걸로 하면 되잖아요?"
"그.. 물어보시는 김에 잠깐 출연하셨던 장면 썸네일로 써도 괜찮을지도 같이 좀 물어봐주시면.."
"아니, 이걸 이렇게 날로 먹으려고 한다고?"
"양심 실화?"
"그럼 그거보다 더 좋은 썸네일감이 있음? 있으면 말해보셈."
"어, 없기는 한데.."
"그치? 그러니까 사장님 물어보러 가실거면 잊지 말고 꼭 같이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겸사겸사 여자친구 직업으로 브이튜브 편집자는 어떤지도 좀 물어봐주시면 앞으로 편집 시작할 때마다 108배부터 박고 시작하겠습니다."
"나한테 양심 터졌느니 어쨌느니 하더니만 터진 건 느그 양심이었구연."
"앞으로 평생동안 월급 안 주셔도 되니까 사장님 올케로 재취업 가능할까요..?"
"이번달까지만 일하고 관두겠다고?"
"제성함미다.. 3초만에 사과했으니까 봐주세용.."
헤드셋을 통해 들려온 말에 피식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아오.."
그리고는 옆머리를 벅벅 소리가 나도록 긁었다.
평소에는 회의하자고 모아놓으면 투닥거리기 바쁜 년들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합이 척척 맞는지 원 누가보면 미리 짜기라도 한 줄-
'잠깐만.'
그러고보니 다들 미리 들어와서 기다리고 있었단 말이지..
"얘들아."
"넹?"
"눼?"
"혹시 너희 나 기다리는 동안 짰니?"
"..아하하, 그럴 리가요. 그만큼 동생 분께서 브튭적으로 매력적인 소재라는 거죠."
"맞아요오. 설마 저희가 사장님을 속이겠어요?"
"저희의 충심을 의심하시다니.. 섭섭합니다?"
"짰구나?"
"들켰다!!"
"튀어!!"
아주 잠깐 소란이 있긴 했지만, 결국 유한에게 의사라도 물어보는 쪽으로 결정이 났다.
다들 저렇게까지 말하니 아까처럼 무작정 거절하기가 좀 그랬으니까.
"알겠어. 물어는 볼게. 물어는."
"끼요오오오옷! 게임파트 우승!"
"젠장 하늘은 왜 날 낳고 저 년을 낳았단 말인가..!"
"꼬우면 니가 게임 파트 담당하시던가요."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사실 저는 겜 못하는 사람을 보면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병이 있어요."
"앗.. 아아.."
다들 잔뜩 신이 나서 떠들어대는게 헤드셋을 통해 실시간으로 흘러들어왔지만, 거기에 신경 쓸 겨를같은 건 없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꺼내면 좋을지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골치가 아팠으니까.
"씨이이.."
세나가 의자 위에 쪼그려앉아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그녀를 고민하게 원인인 유한은 뭘 하고 있었냐하면..
"낄낄낄."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자신과 지금 자신이 들여다보고 있는 브이튜브 채널 때문에 세나가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 중이라는 걸 꿈에도 모른 채 세나의 채널에 올라와있는 영상을 들여다보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노트북 화면 위로 재생되는 영상을 들여다보고 배를 잡고 낄낄대던 것도 잠시, 시간을 확인한 유한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구만.'
아무래도 시장조사는 여기까지 해야할 듯 했다.
가영이 퇴근하고 돌아오는 시간에 맞추려면 지금부터 부지런히 준비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시간은 어느덧 열시를 넘어선 상황.
평범한 미용실이라면 진작에 문을 닫고도 남을 시간이었지만 가영이 운영하는 샵은 이제 한창 마감이 진행중일 것이다.
동네에서도 손에 꼽히는 규모를 지니고 있다는 설정답게 매일마다 그곳을 찾는 손님 수가 상당했고, 그 탓에 동네 미용실치고는 드물게도 밤 늦게까지 영업을 하는 걸로 아니까.
그렇게 가게를 닫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매우 늦은 저녁을 먹는 것이 가영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방법이었다.
지나가 지나가듯 한 말에 따르면 그랬다.
그런 가영을 위해 미리 저녁상을 차려놓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차려놓은 저녁상 옆에 서서 가영을 맞이하는 거다. 몸에 앞치마까지 두른 채로 말이다.
그 광경이 가영의 눈에는 과연 어떻게 비춰질까.
그야 뭐, 아들처럼 여기는, 아니 아들이 고생하는 자신을 위해 효도하는 걸로 보이겠지.
가영에게 있어 유한은 남자가 아닌 '아들'이니까.
허나 과연 그것뿐일까?
앞치마를 두른 채 자신을 맞이하는 내 모습이 밤 늦게까지 고생하고 돌아온 아내를 맞이하는 남편처럼 느껴지진 않을까?
내가 노리는 건 다름아닌 그것이었다.
어쩌면 한 번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그거야 뭐 될 때까지 하면 되는 거고.
'뭘 좋아하려나.'
속이 많이 허전할테니 역시 든든하게 한식 스타일로 가는 게 맞겠지?
아니면 밤이니까 가볍게?
나름대로 치열하게 고민하며 1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는 그대로 주방으로 직행해 냉장고부터 뒤져보려고 했는데..
"응? 뭐 먹으려고?"
거실에서 운동이라도 하고 있었는지 갑자기 등장한 지나가 그런 날 멈춰세웠다.
땀으로 촉촉하게 젖은 모습으로 날 유혹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