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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화 〉1부 (7/315)



〈 7화 〉1부
세나가 내 빨대가 되길 자청한 이들에게 시달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나름대로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다들 프로 방송쟁이들답게  번 물은 약점을 놓아주질 않았으니까.


흥미로운 점은 그녀들에게서 사심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합방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장난으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흠.'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여자가, 그것도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이들이 내게 관심을 보이는데 기분이 나쁠 이유가 없었으니까.


물론, 그녀들을 다 합쳐도 세나 하나만 못하긴 했다.


그만큼 세나는 그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이었다.


외모도 그랬고, 게임 실력도 그랬다.


독보적으로.. 못하더라.


분명 피지컬이 안 좋은  같지는 않은데 묘하게 게임에 집중하질 못하는 느낌?

'하긴..'


생각해보면 그럴만 하긴 했다.


게임에 집중하려고 하면 그럴 때마다 정신공격이 들어오는데 어떻게 집중력을 유지하겠는가.


덕분에 합방이 끝이 났을 때 세나가 기록한 성적은 압도적인 꼴찌였다.

[세꼴꼴꼴~ 세꼴꼴꼴~ 세꼴꼴꼴~ 세꼴꼴꼴~]


[와..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ㄹㅇ 사람 아니네 ㅋㅋㅋ]


[아 진짜 웃다가 배 찢어지는 줄 알았네]


[???:얘들아 나만 믿어(실제로 한말)]

[이제 어디 가서 세나 방송 본다고 말도 못하겠누]

[다섯 글자로 웃겨드리겠습니다. '목표는 일등']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느새 나에 대한 건 싹 잊은 채 신나게 세나를 두들겨 패기 바쁜 채팅들을 보며 살짝 아쉬움을 느끼고 있으려니 아슬아슬하게 1등 자리를 차지한 '소리아'라는 이름의 스트리머가 거들먹대기 시작했다.

"어디보자.. 1등이 꼴찌한 사람한테 벌칙 지정해주는 거였죠? 뭐가 좋으려나아.."

[염색! 염색! 염색! 염색!]


[왁싱! 왁싱! 왁싱! 왁싱!]

[세족식! 세족식! 세족식!]


[제발 곰보겜.. 제발 곰보겜..]

[무적권 초코라면이지  ㅋㅋ]

비슷한 채팅이 올라오고 있는 건 그쪽 방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염색? 에이 그건 너무 평범하잖아. 왁싱은.. 방송에서 확인하기가 어렵고. 세족식은 내가 좀 그렇고.. 초코라면? 어우 그딴   먹어요?"

소리아가 시청자들이 부르는 벌칙을 하나씩 입에 올릴 때마다 세나의 표정이 점점 시무룩하게 변해갔다.

[야야 우냐? 울어?]


[얘들아 얘 운다!]

물론,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연기라는 것쯤은 보자마자 눈치채 수 있었다.

"에이, 다들 너무 가혹하시다아 다 웃자고 하는 건데에."

[나]


[락]

[나]

[락]

"그러니까 적당한 걸로 갈게요. 세나야? 듣고 있지?"

"으, 응? 드, 듣고 있어 언니."

"혹시 공포게임 좋아하니?"

그 순간 세나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덕분에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세나가 그런 쪽에는 쥐약이라는 걸.

그럼에도 다른 것보다는 차라리 그게 나을  같았던 걸까.


"어, 어.. 좋아하지."


"그래? 다행이네. 싫어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벌칙은 공포게임을 플레이하는 걸로 확정이 되는 듯 했다.


[이걸 초코라면을 안 하네]


[언니 이 새끼 웃고 있는데요?]

[공포게임? 내일 치킨 딱대]

[아 또 메모장으로 화면 가려놓고 세나 캠만 봐야겠네 ㅋㅋ]

[너도? 나도!]

[ㅉㅉ 쫄보 년들 데이터 쪼가리가 뭐가 무섭다고. 아, 내일 오랜만에 아빠 손 잡고 자야지]


[선생님 아버님은 전생에 대체 무슨 죄를 지으셨길래 선생님같은 딸을 낳은 것도 모자라 그런 수모까지 겪으셔야 하는 거죠?]

[10련아 너 어디 살아^^]

허나 말이라는 건 언제나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


"그래? 그럼 세나는 내일 공포게임 하는 걸로."

"아무거나 하면 돼?"


"당연히 아니지. 그 이번에 프리즌 나이트메어라고 출시한지 얼마 안 된 게임 하나 있거든?"

친절하게 게임까지 지정해줄 생각인가 보다.

"그런데 이게 혼자서는  수가 없어요. 세 명이서 플레이하는 거거든."

[친구 없는 사람은 게임도 못 하네 아 ㅋㅋ]

[나 저거 플레이 하려고 했는데 친구 없어서 못함 ㅋㅋ]

아, 혹시 또 합방각을 노리는 걸까.


하긴, 대기업이라고 해도  같지는 않으니까.


대기업이라 불리우는 스트리머들 사이에서도 세나는 독보적이니 당연히 이 기회를 빌어 빨대를 꽂고 싶겠지.


설정의 보살핌 아래에 있는 세나는 낭낭한 조회수를 보장해주는 보증수표나 다름없는 존재니 말이다.

그나저나  명이라.

두 자리에 저 소리아라는 여자와 세나가 들어간다 치면 나머지 한 자리는 어떻게 채울 생각인 걸까.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소리아라는 여자가 나머지 한 명의 정체를 밝혔다.


"그러니까 나랑 너랑..  동생분까지 해서 세 명이서 플레이하면 되겠다. 그치?"

네?

뭐요?

"...뭐?"

"아니이, 오늘 내가 클립을 봤는데 동생 분이 참 잘생기셨더라고오"

반응?

당연히 폭발적이었다.


[극]


[극]

[극]


[락]


[킹리아 갓리아 황리아!!]


[극]

[황리아 당신은 도대체..]


[그녀는 신이야!!]

나 때문에 끌린 어그로를 어떻게든 가라앉혀 보겠답시고 별 쌩쑈를 다했는데 그 노력이 단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린 상황.

당연히 좋은 반응이 나올 리 없었다.

"하, 아니.. 언니, 걔 일반인이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일반인을 왜 끌어들이려고 하는 거냐.

세나는 그리 말하고 있었다.

헌데 소리아라는 여자도 만만치 않았다.


"알지알지이 그러니까  말은 동생 분께 일단 물어나 보라는 거지이 혹시 수락하실지도 모르잖아?"


물어보는  정도는 할  있는 거 아니냐.


소리아의 대꾸에 세나의 얼굴이 그대로 썩어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진텐으로 빡친 것 같은데?'


저렇게까지 화를 낼 일인가 싶기는 했지만..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을 수도 있는 거니까.

세나도 그렇고 유한도 그렇고 다  설정 하에서 태어난 이들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둘의 과거를 전부 아는 건 아니었다.

표정을 구기고 있던 것도 잠시, 시청자들 중 대부분이 이미 소리아의 편을 들고 있는 상황에서 차마 정색까지 빨 수는 없었던 걸까.

"후.. 알겠어. 물어보면 되는 거지?"


"응, 거절하시면 나머지  자리는 내가 알아서 섭외할게."

"아, 진짜..!"


세나가 내가 왜 걔한테 아쉬운 소리를 해야되냐면서 짜증스레 머리를 긁었다.

"혹시 꼬우신가요? 꼬우면 아시죠?"


"야야, 화났냐? 화났어?"


[어굴하면 잘하시등가~]


[ㄹㅇ 자기가 개못해서 꼴찌한 거죠? 사실 억울할 것도 없죠?]


같이 합방을 했던 멤버들과 시청자들의 합창에 세나의 볼이 부들부들 떨렸다.


"진짜.. 다음 합방때 두고보자. 무조건 내가 1등한다."


"다움 하빵때 듀고보댜아."

"무됴건 내가 1등한댜아."

[두고보자는 사람 하나도 안 무섭죠?]

[플래그 ON]

[ㄹㅇ ㅋㅋ 오늘 개못했는데 다음 합방 되면 뭐가 달라지겠냐고~]


[스포 ㄴ]

쉬지 않고 이어지는 조롱에 꽈악하고 움켜쥔 주먹을 파들파들 떨어대던 것도 잠시, 이왕 이리된 거 지금 당장 처리해버리고 말겠다는 듯 세나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님들 화장실 가는 김에 그냥 지금 가서 물어보고 올게요."


"이요오오올 결단력 있다아."


"머찌다아."

"근데 녹음해와야 되는 거 알지?"


"노, 녹음까지 해오라고?"

[국룰이지 ㅋㅋ]

[녹음 안 하면 진짜 물어보고 왔는지 하는 척만 했는지 어떻게 알겠냐고~]


[주작하려던   걸렸죠?]

[(대충 주작 날아오르는 짤)]

"아오, 씨.."

귀찮아 죽겠다는 듯 한숨을 푹푹 내쉬던 것도 잠시, 세나가 캠화면 밖에 놓아두었던 자신의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다녀올게요."

그렇게 세나의 모습이 화면 속에서 사라진 순간, 일단 그녀의 방송부터 껐다.


그리고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적당히 시간을 때우는 척을 했다.


쿵쿵하고 누군가 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그 직후였다.

'성질하고는.'

속으로 쓰게 웃고 있으려니 얼마 지나지 않아 똑똑하고  두들기는 소리가 방 안으로 울려퍼졌다.


"야, 자냐?"


"응? 아니? 왜?"


"들어가도 돼?"

"왜?"

"그.. 할 말 있어서. 암튼 들어간다?"

"잠깐만! 나 속옷만 입고 있어!"

물론, 구라다.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굳이 거짓말을 한 건 이렇게라도 해서 내가 '이성'이라는 사실을 세나에게 인지시켜주기 위함이었고.


"아, 씨.. 빨리 좀 입어봐."

"좀만 기다려봐."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고 나서야 문을 열어주었다.


"..무슨 일인데."


이성으로 의식하게 만들기 작전이 제법 괜찮았던 걸까.

아니면 단순히 지금부터 꺼내야만하는 이야기 때문일까.

세나는 어딘가 쭈뼛거리는 모습을 한채  안으로 들어왔다.

"응? 무슨 일이냐니까?"


"아, 씨.. 좀만 기다려봐."


아직 할 말이 정리되지 않았나 보다. 머리를 벅벅 긁으며 살짝 짜증을 부리던 세나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 아까 짜증내서 미안."


바로 본론부터 꺼내들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녀의 입에서 가장 먼저 흘러나온 건 아까 부렸던 짜증에 대한 사과였다.

"아냐, 내가 잘못한 건데 뭐. 그런데  말 하려고 온 거야?"

"아니, 음, 그게 그러니까.. 씨이이.."


혼자서 씨근덕대던 것도 잠시, 세나가 다시 한 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윽고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의외로 거짓이 단 하나도 섞여있지 않은 순도 백퍼짜리 진실이었다.

'의외네.'

그토록 질색팔색을 해대길래 어쩌면 내 앞에서는 적당히 둘러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이또한 자기가 하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진지하다는 설정의 영향일까.

"그러니까 누나 말은.. 누나가 게임에서 꼴찌를 했고, 그래서 벌칙을 수행해야하는데 그게 나랑 같이 공포게임을 하는 거란 말이지?"


"어, 할래?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어느새 녹음 모드로 들어간 휴대폰을 손에  세나는 눈빛을 통해 말하고 있었다.

빨리 하기 싫다고 말하라고.

당연히 못 알아들은 척 했다.


"그래도 괜찮은 거야? 벌칙이라며?"

"벌칙 정한 사람이 네가 거절하면 상관없다고 그랬어. 그리고 정 안되면 다른 벌칙 받지 뭐."

그러니까 얼른 거절해!

세나가 무언으로 다시 한 번 속삭여왔다.

"다른 벌칙이 뭔데?"

"뭐.. 염색같은 거 시키겠지. 아,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세나의 재촉에 고민하는 척을 했다.

그러다가..

"그 혹시.. 내가 출연하면 누나한테 도움이 될까?"

조심스레 물었다.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긴 했지만 덥썩 수락하자니 뭔가 좀 그랬으니까.


그래서 살짝 돌아가는 느낌으로다가 그리했던 것인데 거절 혹은 수락만 염두에 두고 있었던 세나에게는 그런 내 물음에 상당히 의외였던 모양이다.

세나가 몸을 움찔대며 당황이라는 감정을 드러냈다.


'뭐야 이거.'


반응이 나쁘지 않은데?


"어, 어?"


"누나한테 도움이 되는 거면  딱히 상관없어."

방금과 같은 태도를 그대로 밀고 나간 건 그래서였다.

"아니면 혹시.. 민폐려나?"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세나가 답지 않게 우물쭈물댔다.

평소에는 날카로운 편인 눈매를 살짝 누그러뜨리고 있는 그 모습이 꽤 귀여웠다.

"그러면 할래."

"그그! 그래라 그럼."


무사히  대답을 받아내는데 성공한 세나가 비척비척 걸음을 옮겨 내 방을 빠져나갔다.


저러다가 계단에서 넘어지는 건 아니겠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차마 문앞을 떠나지 못하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쿵-!


"악!"

세나가 계단 코너 벽에다가 머리를 박았다.


"씨이이.."

그제서야 좀 정신이 든 것일까.

울상을 한채 양손으로 이마를 감싸쥔 그녀가 자신에게 방금과 같은 고통을 선물해준 것을 향해 시선을 던졌고..

"그.. 괜찮아? 조심 좀 하지.."


그렇게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설마 내가 지켜보고 있을 줄은 몰랐는지 눈을 크게 뜨며 당황하던 것도 잠시, 얼굴이 빨갛게 변한 세나가 남은 계단을 호다닥 뛰어내려갔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문을 닫고 침대 위에 고이 놓아두었던 휴대폰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다시금 세나의 방송에 접속해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습을 드러낸 그녀가 자연스럽게 방송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뭐어.."

[또또 뜸들인다]


[녹음본 공개할 때까지 숨 참겠읍니다! 흡!]


[어빠 목소리 들려줘ㅓㅓㅓㅓㅓ]

[죄송한데 제가  많이 급하거든요? 제발 빨리좀;;]


[이어폰 빼고 헤드셋 꼈다. 어빠 목소리 ASMR딱대.]


"응? 어떻게 됐냐니까? 하신대?"


"아, 재촉 좀 하지 마요."

"궁금하니까 그렇지."

"뭐.. 한대요."

"응?"


"출연, 하겠대요."

그리 말하는 세나의 얼굴은 뭐랄까.. 묘하게 기뻐보였다.


[이마는  어따 박고 왔누;;]

[박아? ㅗㅜㅑ]

[박는  모르겠고 잘 박힐 자신은 있는데 ㅎ;;]


이마 정중앙이 빨갛게 부어있어서 멍청해보이는 게 살짝 흠이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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