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1부 (3/315)



〈 3화 〉1부

유가영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딸들에 대한 기대도 컸다.

첫째이자 유명 헬스트레이너이며 코스프레라는 다소 특이한 취미를 가진 유지나와 게임 및 일상 컨텐츠로 유명한 인기 브이튜버인 둘째 유세나까지.

그 둘또한 아주 세심하게 설정을 깎아냈으니 분명 유가영에게 뒤지지 않는 미모를 자랑할 것이다.

'이유한 이 부러운 새끼..'

그런 미인들 사이에서 자라왔단 말이지..


창조주라   있는 나조차도 그런 호사는 누리지 못했는데 말이다.


곱상한 미소년이 아리따운 눈나들 사이에서 헤으응하는 모습이 머릿속으로 떠올라서 질투심이 왈칵 솟구쳤지만 금세 가라앉았다.

내가 이유한이 된 이상 이제 그 호사는  것이었으니까.

'자, 그러면..'


내려가보실까.


곱게 접은 상자를 대충 책꽂이 사이에다가 쑤셔넣은 뒤, 아랫층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어젖혔다.


현재 유가영네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은 3층짜리 주택이었다. 정확히는 2층짜리 주택에 어지간한 원룸만한 크기의 다락방이 딸려있는 구조랄까.

원래부터 이곳에 살았던 건 아니다.


둘째인 유세나가 브이튜버로 크게 성공하게 되면서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는 설정이니까.


그렇기에 두 개의 방과 화장실로 구성된 2층은 유세나의 영역이었다.


 하나는 침실 겸 자기 방으로 쓰고, 다른 하나는 스튜디오로 사용하는 식으로 말이다.


'인방이라..'


성공하기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한 번 터지기만 하면 돈을 많이 번다는 소리는 들어보긴 했다.


그런데 설마 남들은 취업하겠다고 빌빌대기 바쁜 시기에 이렇게 커다란 주택을  정도로 많이 벌 줄이야.

'한 번 해볼까?'

살짝이지만 혹했다.

원래였다면 몇  깔짝하다가 비싸게 산 장비들을 중고나라에 가져다 파는 엔딩이었겠지만 지금은 와꾸가 다르지 않은가.


아마 방송 켜놓고 얼굴만 보여줘도 돈복사 급으로 후원이 밀려들어오지 않을까.

'뭐, 그건 나중에 차차 생각해보도록 하고.'


어차피 상점에서 쓰이는 화폐인 캐쉬를 충전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돈을 벌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 선택지 중에 하나로 남겨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잠깐만.. 남캠이면..

설마 원래 세계에서의 여캠처럼 리액션으로  춤같은 것도 추고 그래야하는 걸까.

짧은 옷을 입고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모습을 상상하니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외모가 외모다보니 나름대로 잘 어울릴 것 같기는 했지만 내 안에 살아있는 남성스러움이 그걸 허락치 않을 것 같았으니까.


그나저나 유세나는 미리 내려간 걸까.


하긴 화장실 안에서 들었던 유가영의 말을 떠올려보면 나만 빼고 다 밥상 앞에 집합한  했으니까.

그렇게 텅 비어있는 두 개의  앞을 지나쳐 1층으로 내려간 순간, 비로소 확인할  있었다.

그토록 궁금해했던 유가영과 유세나의 미모를 말이다.


'..미쳤네.'


우선 유가영부터 살펴보면 싱크대를 앞에 두고 뒤돌아 서 있는 탓에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몸매가 정말 미친 수준이었다.

숨만 쉬고 있어도 남자를 꼴리게 만드는 몸매라고 해야할까.

가히 E컵은 되어보일 법한 가슴하며 순산형의 엉덩이까지.

나이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기관리에 힘쓰는 편인지 허리또한 약간의 군살 외에는 잘록한 편이었고.


몸에 쫙 달라붙은 베이지색 니트와 청바지가 가슴에서부터 허벅지까지 이르는 굴곡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데 맘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엉덩이를 부여잡고 물건을 쑤셔넣고 싶을 정도였다.

저런 몸매에다가 귀여운 얼굴이라니.


어쩌면 이유한만큼이나 사기적인 존재가 가영 아닐까.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싱크대 앞에 서서 뭔가를 조물조물거리고 있던 그녀가 내쪽으로 돌아섰다.


그 순간 나는 다시 한 번 여신을 상대로 감사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유가영의 미모는 내가 설정한 그대로였다.


살짝 처져서 순둥한 느낌을 주는 눈에 오똑한 코, 얇지만 도톰한 입술까지.

압권인  역시 입술 밑에 작게 찍힌 점이었다.


 점 하나가 그녀의 미모에 묘한 색기를 더해주고 있었다.


외모하고 몸매만으로도 태어나줘서 정말 감사하다고 절이라도 하고 싶을 지경인데 성격까지 가정적이라니.


'미쳤는데?'

그 순간 다시 한 번 결심했다.

이 세계에서의 동정은 그녀에게 바치겠노라고.


"왔니? 앉으렴."


심지어 목소리까지 완벽했다.

어딘가 포근한 느낌을 주는 목소리라고 해야할까.


저런 목소리로 내는 신음성은 대체 어떤 느낌일까.

잠깐 상상해본 것만으로도 심장이 쿵쿵하고 뛰어서 얼굴로 피가 쏠리는  주체하기 힘들었다.


그런 내 모습이 그녀에게는 이상하게 비춰졌던 모양이다.


"응? 유한아. 혹시 어디 아프니?"

"..네?"


"열이 좀 있는 것 같아보여서."

그만큼  얼굴이 새빨갛다는 소리겠지.

어떻게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일단은 아픈 척 하기로 했다.


눈나 몸매가 너무 꼴려서 그랬어요라고 사실대로 밝힐 수는 없었으니까.


"그러고보니까.. 아침에 일어날   어지러웠던 것 같아요."


그 말에 가영보다 먼저 반응을 보인 건 줄곧 휴대폰을 부여잡고 뭔가에 열중하고 있던 유세나였다.

"뭐야, 너 감기 걸렸어?"


"감기는 아닌 것 같은데.."

"뭐가 아니야. 얼굴이 빨간 게 딱 봐도 감기 같구만."


누나답게 걱정어린 한 마디라도 해주려는 걸까.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세나가 의자 째로 자리를 옮겨앉았다.


"내쪽으로 오지마."

그것도 모자라 손까지 휘휘 저어대는 게 아닌가.


흡사 파리라도 내쫓는 듯한 몸짓이라 기가  마음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럼에도 그녀가 얄밉게 느껴지지 않는 건 다 그녀의 외모 때문이겠지.


세나는 엄마인 가영의 미모를 그대로 물려받은 외모를 하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갈색으로 물들인  생머리와 가영보다는 살짝 날카로워서 어딘가 고양이를 생각나게 하는 눈매정도?

아, 그것말고도 차이점은 또 있었다.


육감적인 몸매를 자랑하는 가영과는 달리 세나의 몸매는 슬랜더에 가까웠으니까.


그렇다고 빼빼 말랐다는 소리는 아니고, 마른 몸매에 보기 좋게 살집이 붙어있었다. 덕분에 가슴의 볼륨만큼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영과 비교하기에는 택도 없었다.


'형만한 아우 없다더니만..'

아니지. 이럴때는 엄마만한 딸 없다고 해야하나?


그녀의 나이가 24살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세나가 엄마인 가영을 따라잡는 일은 영영 일어나지 않겠지.

"얘는! 동생이 아픈데 걱정은 못 해줄 망정!"


"아 왜에! 나 오늘 저녁에 합방있단 말이야! 감기 걸려서 컨디션 조지면 큰일나!"

"얘가 진짜..!"


역시 등짝 스매쉬야.


성능 확실하구만.

보기 좋았다.


세나의 등짝이 터져나가는 소리가 울려퍼질 때마다 가영의 볼륨감 넘치는 가슴이 격하게 출렁거렸으니까.


'오우야..'


덕분에 아침부터 힘이 바짝 났다.

너무 힘이 나서 위험할 정도로.

"유한아, 정말 괜찮은  맞니? 병원이라도 가봐야.."

"아니에요. 밥 먹고  먹으면 금방 괜찮아질 거에요."


"그럼, 고모가 미리 약 꺼내놓을테니까 잊지 말고 꼭 챙겨먹으렴."


"네."

결국 격침당해버린 세나가 식탁 위에 엎어져 끙끙대는 사이, 가영은 내가 설정한 그대로 자애로움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에 날 놀리다가 제대로 당한 세나의 입술이 삐죽하고 튀어나온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치이.. 엄마는 맨날 유한이만 신경쓰고. 아들내미만 챙기지 마시고 딸내미도  그렇게 챙겨주시죠? 이 딸내미는 섭섭해서 죽을 것 같습니다아-"

입술을 삐죽하고 내민 채 꿍얼꿍얼대는 모습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외모 때문에 그 모습마저도 귀엽게 느껴지긴 했지만.

"얘는.. 유한이는 몸이 약하잖니."

"저도 충분히 약하거든요?"


"맨날 컴퓨터만 하니까 그렇지."

"그거야 일하는 거잖아."


"우리 딸이 하루가 멀다하고 밤을 샐 정도로 일에 열정적인지 엄마는 꿈에도 몰랐네."


"으윽.."


그렇게 두 모녀가 투닥투닥대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하음.."


하품 소리와 함께  집의 마지막 멤버인 유지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문제는 그녀의 복장이었다.

목부분이 잔뜩 늘어나서 어깨를 살짝 드러내고 있는 새하얀 티셔츠.


사실 거기까지만 본다면 크게 문제될 건 없긴 했다.


집인데 좀 편하게 입을 수도 있는 거니까.


문제는 그 티셔츠 위로  튀어나와 있는  개의 돌기와ㅡ

'오우 쉣..'

그 밑에 보란듯이 자리하고 있는 검은색 레이스 팬티였다.

그랬다.

지나는 아래에 팬티 외에 다른 건 입고 있지 않았다.


평범한 여자가 그러고 있어도 충분히 꼴릴텐데 유명 헬스트레이너답게 모델 뺨치는 몸매를 자랑하는 지나가 그러고 있으니 농담하는 게 아니고 미칠 것 같았다.

오죽하면 책상 밑으로 숨겨놓은 손이 달달달달 떨릴 정도였다.


"후아아암.. 아침부터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그런 내 상태를 아는 지 모르는 지 지나는 태평하기 그지없었다.

어느새 티셔츠 밑으로 파고 들어간 그녀의 손이 앙증맞은 배꼽을 살짝 드러내며 배를 북북 긁어댔다.

어딘가 피곤해보이는 모습.


그래서 그런 지 몰라도 지나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연거푸 하품을 쏟아냈다.

동네에 한 명씩은  있다는 노는 누나를 떠올리게 하는 색기와 카리스마를 동시에 겸비한 외모 때문일까.

보기 좋게 그을린 피부 위로 자리한 연분홍빛 입술이 벌어질 때마다 그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지기 보다는 오히려 꼴렸다.

'미치겠네 진짜..'

어떻게 이 집안 여자들은 하나같이 꼴릿하게 생긴 걸까.

지나의 매력은 가영이나 세나의 것하고는 또 달랐다.


기 센 누나 느낌이 확 나서 묘하게 포스가 넘친달까. 동시에 그녀의 머리를 단발로 설정한 과거의 나를 상대로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샛노랗게 물들인, 목덜미까지 내려오는 단발 숏컷만큼이나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머리스타일은  없을 것 같았으니까.

오죽하면  스타일 자체가 그녀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은 그런 느낌마저  정도였다.

얼굴이 사기면 머리빨이고 뭐고 얼굴 하나로  씹어먹을 수가 있구나.

새삼스레 깨닫게 된 사실을 머릿속에다가 새겨넣는 사이, 한 발 늦게 지나의 몰골을 발견한 가영이 기겁했다.


"너, 너..!"

옷 꼬라지가 그게 뭐냐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러면서 조심스레 내쪽을 살피는 것이 날 많이 신경쓰는 듯한 눈치였다.

"왜? 집인데 좀 편하게 입고 있을 수도 있지."

아무래도 지나는 설정한대로 무뚝뚝한 성격인 듯 했다.

가영의 말에 퉁명스레 대꾸한 그녀가 정수기 쪽으로 다가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 와중에 물을 살짝 흘렸는데 덕분에  그래도 얇은 편이던 티셔츠의 앞섬이 축축하게 젖어 그녀의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에이.."


갈아입고 오긴 귀찮았는지 손으로 젖은 부분을 툭툭 닦아낸 지나가 이내  맞은 편 자리에 와서 앉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밥먹는데 옷 꼬라지가 그게 무슨.."

"뭐 어때? 가족끼린데  편하게 있을 수도 있지. 그치 유한아?"

"그, 그럼요."


 편하게 있으셔도 되는데.


순간 입밖으로 튀어나올 뻔한 말을 다시 목구멍 안으로 밀어넣고 어색한 표정을 한채 고개를 끄덕였다.

"봐봐. 유한이도 괜찬다잖아. 자자, 식사합시다. 식사."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씩 웃은 지나가 젓가락을 집어들어 상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던 제육볶음을 입안으로 쏙 밀어넣었다.


그렇게 시작된 아침 식사 자리는 내게 있어서 꽤나 고역이었다.


밥이 맛없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가사에 뛰어난 편이라는 설정답게 가영이 직접 만든 음식들은 어지간한 맛집이상의 퀄리티를 자랑했으니까.


'어떻게 가지볶음마저 맛있게  수가 있지?'

한 번 먹어보라면서 가영이 손수 내 밥 위에다가 가지볶음을 올려줬는데 차마 먹기 싫다고는 말할 수 없어서   감고 밀어넣었는데 놀랍게도 맛있더라.

이 물컹하고 차가운 것에서 이런 맛이 나다니.


하나같이 뛰어난 퀄리티를 자랑하는 음식을 앞에 두고서 거기에 집중할  없었던  다 맞은 편이 앉아있는 누구누구씨 때문이었다.


살짝 젖어서 몸에 찰싹 달라붙은 티셔츠가 가슴의 윤곽은 물론, 그 모습까지도 슬며시 드러내고 있는데 어떻게 음식따위에 집중할 수가 있겠는가.


'이유한'은 그러면 안 된다는  알면서도 자꾸만 시선이 그쪽을 향했다.

"응? 왜?"

그러다가 결국 들켜버렸고.


뭐라고 하지?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지나와 관련된 설정 중 하나가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유명 헬스트레이너라는 설정이.

"그.. 누나 혹시 나 운동 좀 가르쳐줄 수 있어?"

"운동? 갑자기 왜?"

"음, 요즘들어서 체력이 많이 떨어진 것 같아서."

아침마다 일어나기가 힘들고, 자꾸 몸이 축축 늘어지는 느낌이라고 대충 둘러댔더니 지나가 젓가락을 입에 문채 '흐음..'하는 소리를 냈다.

"하긴, 그럴만 하지. 너도 그렇고 세나도 그렇고 운동 거의 안 하는 편이잖아."


"난 그래고 간간히 하거든?"


"손가락 운동?"

"저기요. 숨쉬기 운동은 왜 빼시는 거죠?"

"쓸데없는 소리말고 티비나 틀어봐."

"늬예에."

"또 까분다."


역시 첫째라고 해야할까.

아무래도 세나보다는 지나 쪽이 가족 내에서 서열이 더 높은 듯 했다.


지나가 살짝 손을 들어올린 순간 언제 그랬냐는  세나의 태도가 고분고분하게 변했으니까.

손짓 한 번으로 세나를 거실로 쫓아보낸 지나가 다시금 내쪽으로 눈을 돌렸다.

"뭐, 네가 스스로 하겠다면야 나야 환영이지. 안 그래도 맨날 비실비실대서 걱정이 많았는데.."

"그래, 유한아. 잘 생각했어."

한 팔 거들고 나선 가영이 이내 세나에게 한 가지 지시를 내렸다.


이왕 가르치기로 한 김에 제대로 가르치라는 지시였다.


"걱정하지 마셔."


"넌 옛날부터 유한이한테 묘하게 약하니까 그렇지."

"..대체 언제적 이야기를 하는 거야."


작게 꿍얼거린 지나가 젓가락으로 밥을 한웅큼 퍼서  안에 밀어넣는 사이, 거실로 쫓겨났던 세나가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 그녀의 뒷편에 자리한 티비에서는 뉴스가 재생되고 있었다.


귀찮아서 말 그대로 그냥 틀고  온 모양.


헌데 참으로 공교롭게도..


-다음 뉴스입니다.  20대 여성이 같은 대학 동기였던  모군을 강제로 추행하는 도중 남성용 성욕촉진제를 과다하게 투여하여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해당 사건을 벌인 여성은 현재 재판 중에 있으며 줄기차게 자신이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걸 내세우며...


뉴스의 내용이 어째 심상치가 않았다.


덕분에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는 그저 편리하게 여자를 따먹을 수 있는 세계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세계 실은 남성에게 꽤나 위험한 곳이라는 걸.


'씁..'


이럴 줄 알았으면 여자가 남자보다 힘이 세다는, 쓸데없고 말도  되는 설정은 굳이 넣지 않았을텐데.

이래서야 힘만  오크년이 눈이 돌아가서 달려들기라도 하면 제대로 된 저항이나 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대충 그런 점 때문에 얼굴을 굳히고 있었던 것인데 가영을 비롯한 세 명이 보기에는 다른 것 때문에 그런 걸로 비춰졌던 모양이다.

"하여간에 쓰레기 같은 년들은 어디에나 있다니까? 어디 할 짓이 없어서.."


가볍게 혀를  지나를 시작으로 자리에 앉아있던 이들이 각자 한 마디씩을 쏟아냈다.

압권은 역시 세나의 발언이었다.

"야, 만약에 저런  생기면 쓸데없이 저항하지 말고 일단은 가만히 있다가 기회봐서 여길 봊나 세게 쳐."


그리 말하며 세나가 가리킨 곳은 다름아닌 자신의 가슴이었다.


"갑자기  소리야."


"아니, 이거 진짜 개꿀팁이라니까? 보통 저런 년들은 자기 가랑이 사이만 신경쓰지 가슴 쪽은 신경  쓰거든."

"...그래?"

"응, 근데 여기가 제대로 맞으면 진짜 뒤지게 아프거든."

아무래도 치녀퇴치법과 관련된 대화는 여기까지 해야할 것 같았다.

밑으로 딸이 두 명이나 있는 것치고는 그쪽으로 굉장히 담백한 편인 가영의 얼굴이 아까 전부터 새빨갛게 물든 채 금방이라도 터질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뭐, 기억은 해둘게."

"그래그래."

그거면 됐다는 듯 고개를 두어번 정도 끄덕끄덕한 세나가 바닥을 드러낸 밥그릇과 식기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은 지나였다.


허나 도망에 성공한 세나와는 달리 지나는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내 발언 때문이었다.


"아, 아냐. 고모가 할게."


"아니에요. 슬슬 나가보셔야 되잖아요."

가영이 평소 몇 시에 미용실을 여는지까지는 설정한 적 없어서 나야 모르지만 슬슬 어지간한 가게들은 전부 문을 열었을만한 시간이었다.

해서 그리 말하니 그럼 부탁 좀 하겠다는 듯  향해  차례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슬금슬금 제 방을 향해 움직이던 지나를 내 옆에다가 붙여준 것.


"너도 같이 해."


"아, 나 어제 야간이었어서 피곤한데.."


"유한이 컨디션도 안 좋다는데 그럼 유한이 혼자 이 많은 걸 다 하라고?"

"으으.."


솔직히 설거지 거리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4인 가족이 평범하게 식사를 했을  딱 나올 법한 양이랄까.


그럼에도 지나가 가영의 말을 끝까지 거부하지 못한  그녀의 설정 중 하나인 '날 돌봐야하는 동생으로 생각한다.'라는  때문이겠지.

"비켜봐. 내가 할테니까."


"아냐. 이건 내가.."


"몸도 안 좋다면서. 정 그러면 옆에서 헹구는 것만 도와주던가."

그리 말하며 싱크대에 걸려있던 고무장갑을 잽싸게 낚아채간 지나가 그 안에다가 제 손을 밀어넣었다.


그 사이 편안한 복장에서 출근용 복장으로 보이는, 소매 부분하고 쇄골 부분이 시스루 재질로  검은색 원피스로 갈아입고 나온 가영이 우리들 곁에 방문했다.

"유한이는 좀 있다가 약 먹는 거 까먹지 말고."


"네."

"지나 너는  방 좀 치우고.  꼬라지가 그게 뭐니."

"네네, 알겠습니다. 얼른얼른 출근 하시죠."


"아, 그리고 세나한테 빨래돌릴 거 있으면 저녁 되기 전에 내놓으라고 해. 지나 너도."


"아, 그러고보니까  드라이 맡길 거 하나 있는데."

"그래? 방에 있어?"

"아니, 소파 위에다가 올려놨을 걸?"


지나가 언급한 걸 찾아낸 것일까.


부스럭부스럭하고 뭔가를 챙겨드는 소리가 거실쪽에서부터 들려왔다.

"그리고 유한이는 방학이라고 해서 너무 늘어져있지만 말고."

"네."


"그럼, 엄마 출근한다?"


"네에, 다녀오십쇼오."

그렇게 가영이 집을 빠져나가고 졸지에 주방에는 나와 지나만이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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