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1부
웹소설 작가로 활동한지 어연 8년째.
완결을 낸 작품 수만 따져도 벌써 다섯 개다. 중간에 연중한 것까지 따지면 더 많긴 하지만.
아무튼 그런 내게는 아침마다 꾸준히 행하는 루틴이 존재했다.
잠들어있는 동안 작품에 달린 댓글을 확인하는 것이 바로 그것인데..
오늘도 눈을 뜨자마자 어김없이 그것부터 하려고 했다. 일어나자마자 해주지 않으면 오랫동안 이빨을 안 닦은 것마냥 찝찝하니까.
헌데 그러지 못했던 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뭐지."
어느새 몸을 칭칭 휘감아버린 기묘한 위화감, 그것의 근원은 다름아닌 내 손에 쥐어진 휴대폰이었다.
"왜 커졌냐."
분명 내 휴대폰이 맞는데 오늘따라 그것이 묘하게 커보였다.
미니였던 놈이 갑자기 프로로 업그레이드 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아니, 꼭 기분 탓만은 아닌 듯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한 손으로 잡기 딱 좋은 크기였던 놈이 이제는 한손으로 잡기에도 버거웠으니까.
설마 기술 특이점에 도달해 휴대폰도 아침마다 모닝발기를 하게 되는 기술이라도 개발된 것일까. 어쩐지 어제 업데이트 메시지가 뜨더라니만, 이럴 줄 알았다면 설치하지 않고 존버했을텐데, 잡스 놈 대체 내 폰에다가 무슨 짓을..
했을 리는 없겠지.
아무래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사람하고 폰이 바뀌기라도 했나 보다.
어제 마감치는 도중에 잠깐 편의점에 다녀오긴 했는데 그때 바뀐 걸까.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휴대폰 하드 안에 잠들어있는 눈나들의 모습이 눈앞으로 아른거렸다.
밤마다, 그리고 소재가 떠오르지 않을 때마다 각별히 신세를 졌던 분들이 지금 이 순간 날 향해 작별인사라도 하듯 손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물론, 보이는대로 작별인사가 아니라 좆됐음을 알리는 손짓이었다.
남자가 죽기 전에 꼭 물에 빠뜨리고 가야할 두 개의 물건 중 하나가 타인의 손에 넘어갔을지도 모르는 상황.
이미 머릿속에서는 내 휴대폰을 주워간 여자가 그 안에 든 것을 확인하고는 질색하며 경찰서로 직행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시발시발시발시발.'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진정하자.. 단순소지는 처벌대상이 아니잖아?’
대신 많은 이들이 내 패티쉬에 대해 알게되겠지. 더불어 평범한 웹소설 작가인 척 했던 내가 사실은 야설작가였다는 것도 말이다.
'아니지. 뚫릴 리가 없잖아?'
사과폰은 무적이고, 잡스는 신이니까.
자기꺼 대신해 내 휴대폰을 주워간 사람이 어디 소설 속에나 등장할 법한 초천재해커라도 되지 않는 한 판도라의 상자가 오픈되는 일은 없겠지.
없을 거다.
없어야 했다.
없.. 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안심이 되질 않았다.
마치 게임하다가 잠깐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부모님이 내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장면을 목격한 듯한 그런 불안감이라고 해야할까.
아침 루틴이고 뭐고 일단 내 휴대폰부터 찾아야할 것 같아서 일단 누구 건지 알 수 없는 휴대폰의 화면부터 켰다.
까맣게 물들어있던 화면에 불이 들어온 순간, 자연스레 홈버튼을 향해 검지손가락을 가져갔다.
뭔가 특별한 의도가 있어서 한 행동은 아니었다.
남의 휴대폰만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또 없긴 했지만, 요즘 세상이 어떤데 휴대폰에 그 흔한 잠금하나 안 걸려있을 리 없으니까.
이건 그냥 몸에 배인 습관이었다.
"그럼, 그렇지 풀릴 리가 없.."
-잠금이 해제되었습니다.
"????"
이게 되네.
시발 뭐지.
이게 왜 되지.
'잡스 선생님?'
혼란스러운 마음에 답을 알고 있을 만한 이를 향해 질문을 던져봤지만, 죽은 자는 역시 말이 없는 법.
대답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생각치도 못한 상황에 혼란스러운 한편 마침 잘 됐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화면을 켜려했던 이유가 혹시 휴대폰 주인으로부터 연락이 도착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헌데 대체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잠금이 해제되었으니 연락처를 확인해 휴대폰 주인의 지인에게 연락을 넣거나 하다못해 내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면 이 여러모로 당황스러운 상황을 해결할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하며 일단 연락처부터 확인해봤지만 깨끗했다.
해서 꿩대신 닭이라고 내 휴대폰으로 문자라도 보내려 했다.
어쩌면 내 휴대폰을 가져간 사람하고 이 휴대폰의 주인이 서로 다른 사람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남보다는 일단 나부터 챙겨야하지 않겠는가.
해서 문자버튼부터 눌렀는데 그러기 무섭게 전화가 걸려왔다.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
물론, 내 번호도 아니었다.
이 휴대폰 주인하고 아는 사이인걸까.
그래서 그 사람의 휴대폰을 빌려서 여기로 연락을 한 것이고?
어쩌면 그런 걸지도 몰랐기에 일단 통화버튼을 눌렀다. 스팸이라면 바로 끊어버릴 생각이었다.
-일어났어?
다행히 스팸은 아닌 듯 했다.
스팸이었다면 개같은 홍보문구부터 흘러나왔을테니 말이다.
전화를 건 이는 여성인 듯 했다.
목소리만 들어보면 그랬다.
그리고 이 휴대폰의 주인하고는 꽤나.. 긴밀한 사이인 듯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어났냐고 묻는 목소리에 저렇게 꿀이 뚝뚝 떨어질리 없으니까.
거참 신기하네.
난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짜증이 치미는 몸이라 아침에 저런 목소리는 절대로 못 낼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런 감상과 동시에 난감함을 느꼈다.
딱 보니 내 예상은 빗나간 듯 했으니까.
'어쩐다..'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여기서 내가 뭐라고 말을 해야 지금 나와 통화를 하고 있는 여성이 그나마 덜 쪽팔릴까.
고민하다가 그냥 사실대로 나가기로 했다.
휴대폰이 바뀐 게 뭐 죄는 아니지 않은가.
"그, 음, 그러니까.."
다만 다짜고짜 저 님 남자친구 아닌데요라고 하긴 좀 그래서 일단 그쪽이 찾는 사람이 아니라는 티부터 내봤다.
그런데 이게 왠걸?
-많이 혼란스러운 모양이네?
답이랍시고 돌아온 건 당황한 목소리가 아니라 쿡쿡하고 작게 웃는 소리와 웃음기어린 목소리였다.
뭐지 시바.
설마 장난전화였나.
아니면 새로운 유형의 스팸전화인가?
이러다가 갑자기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저는 국민의 든든한 파트너..'라고 말하며 태세 전환을 하면 웃길 것 같긴 했다.
상대방이 칼같은 끊기와 차단에 지친 스팸 전화범들이 새롭게 개발한 영업방식이 낳은 자본주의의 괴물일지 아니면 아침부터 모르는 사람한테 장난전화를 거는 미친년일지 고민하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유승, 1995년 2월생, 웹소설 작가로 8년째 활동 중, 완결낸 작품은 다섯 개, 연중작까지 포함하면 연재했던 작품은 총 14개.
"와, 씨바 소름."
뭐지 이거.
대체 내 개인정보는 어디까지 털린 걸까.
"그래서 대출 얼마까지 되는데요. 100억도 돼요?"
-대출 전화 아닌데.
"보험 필요 없어요. 통신사 안 바꿔요."
-끊게? 흠, 후회할걸?
통화 종료 버튼을 향해 손가락을 가져가려 하기 무섭게 들려온 그 목소리에 손가락이 우뚝하고 정지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지. 화장실로 가봐.
"화장실은 또 왜요. 비데 필요하긴 한데.."
-일단 가봐. 가보면 알게 될테니까.
자연스레 귓속으로 흘러들어오는 목소리에는 묘한 마력같은 게 있었다.
왠지 모르게 말하는대로 따르고 싶은 그런 마력이라고 해야할까. 이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사기를 친다면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더라도 속어넘어갈 수밖에 없겠지.
툴툴대면서도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던 건 사실 그 탓이 컸다.
그렇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순간 깨달았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눈에 보이는 풍경은 분명 내가 알고, 또 생활하던 내 방이 맞았다.
벽지는 물론, 침대도 그대로였고, 화장실도 그대로였으며 컴퓨터나 다른 가구들의 배치도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였으니까.
딱 하나만 빼고 모두 그대로였다.
저 문.
원래라면 절대 존재할 리 없는 문.
그것이 보란듯이 버티고 서 있었다.
내 방은 화장실 딸린 원룸이었다.
그렇기에 현관문, 화장실문 외에 다른 게 존재할리 없었다.
그런데 저건 대체 뭘까.
아니, 애초에 여기.. 내 방이 맞긴 한가?
자연스레 몸에 힘이 들어갔다.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는데 저 돈 없어요."
-알아.
"아니.. 그럼 대체 왜.."
-널 납치했냐고?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것이 실체를 가지고 현실로 강림하는 현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끔찍했다.
동시에 깨달았다.
지금 통화 중인 상대의 기분을 거슬러서 좋을 게 없을 거라는 걸.
-똑똑하네. 그럼 빨리 움직여야지?
내 내심을 짐작하기라도 한 것처럼 울려퍼지는 목소리.
그에 이를 악문 채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이에요."
-거울 앞으로 가 봐.
의도를 알 수 없는 요구에 겁이 덜컥 났지만, 아까도 했던 말을 속으로 되뇌이면서 거울 앞으로 향했다.
나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고 있었는데 이 미친 사이코패스 납치범께서는 그걸 용납할 생각이 없는 듯 했다.
-눈.
짤막하게 울려퍼지는 한마디.
하지만 다른 것들보다 묵직한 그 말에 결국 감고 있던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거울에 비친 것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미친?"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생전 처음보는 아름다운 생물체가 거울 안에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채로.
-어떻게 새로운 몸은 마음에 들어?
"이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눈썹을 살짝 덮는 길이의, 살짝 곱슬끼가 도는 갈색머리. 애교살이 살짝 들어가있는 커다란 눈과 오똑한 코.
압권은 뭐라도 바른 것마냥 연하지만 또렷한 빨간색이 띈 입술과 필터라도 적용한 것처럼 뽀얀 피부였다.
처음에는 여자인줄 알았다.
보란듯이 튀어나와있는 목울대와 가랑이 사이에서 흔들리는 것 덕분에 소녀가 아니라 소년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고.
미소년.
그 단어를 현실에다가 구현해놓으면 이런 모습이 될까싶은 존재가 거울 안에 서 있었다.
그리고 내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그와 똑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고.
그 순간 깨달았다.
저건 '나'라는 걸.
"이게 무슨.."
코코낸내하고 일어났더니 내 원룸하고 꼭 닮긴 했지만 생판 모르는 곳으로 끌려온 것도 모자라 갑자기 미소년이 되어버린 상황.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게 현실이라지만 이건 좀 과했다.
"꿈이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꿈을 꿀 줄이야.
내 안에는 나조차 자각치 못했던 성형에 대한 욕망이 존재했던 것일까.
"한두 푼 가지고는 힘들 것 같은데.."
아니, 이 정도 외모를 사람의 손으로 빚어내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만큼 넋을 잃게 만드는 외모였다.
대체 왜 존재하는 건지 알 수 없었던 미소년이라는 단어가 이걸 위해 존재했던 거구나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꿈 아닌데?
초치는 말이 들려왔지만 꿈이라는 걸 깨달은 이상 더는 눈치를 볼 이유가 없었다.
어쩌면 그로인해 꿈 속에서 끔찍한 일을 겪게될지도 몰랐지만 뭐.. 어차피 일어나면 잊어버리겠지 뭐.
"에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이게 어떻게 꿈이 아니야."
-정말 그렇게 생각해?
"신기하네. 이게 자각몽인가 뭔가 하는 건가?"
실실 웃으며 볼을 향해 손을 가져갔다.
꿈에서 볼을 꼬집으면 안 아프다던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해보기 위함이었다.
"이야, 겁나 말랑말랑하구마잉."
어쩜 볼따구 마저도 이리도 완벽한지. 갓 쪄낸 찹쌀떡을 만지는 듯 했다.
감탄하면서 그것을 쭉 잡아늘렸다.
"자, 봐라. 안 아프.. 악!"
뭐지.
왜 아프지.
설마 너무 사실같은 꿈이라서 통증마저도 재현되는 것일까.
딱 그리 생각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나 보네.
한숨 소리와 함께 딱하고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울려퍼지더니..
"끄흡..?!"
어마어마한 격통이 몸을 타고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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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꺾는데에는 고통만한 수단이 또 없다.
27년만에 깨달은 진리였다.
전기의자에 구워지는 느낌이 이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끔찍한 고통을 겪고 나니 반발심은 커녕 반항할 마음조차 들지 않더라.
휴대폰을 화장실 바닥에다가 내려놓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것도 다 그래서였다.
깝친 게 있다보니 지금부터라도 잘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더라고.
그렇게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앉은 채 여성이 명심하라며 들려주었던 설명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그러면 당신이.. 신이라는 거야?"
-아아, 그렇다!
"여기는 그러니까.. 이 세계는 내가 썼던 소설 속 세계고?
맘 같아서는 존댓말까지 쓰고 싶었지만 그건 그녀 쪽에서 사양했다. 무릎은 꿇게 해놓고 존댓말은 하지 못하게 하는 건 대체 무슨 심보인가 싶었지만 뭐, 본인이 그걸 바란다니까.
-정확히는 '무단연중'했던 소설이지.
"윽.."
할 말이 없었다. 확실히 본격적으로 웹소설로 벌어먹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랬던 적이 몇 번 있었으니까.
"그럼 날 여기로 납치한 건.."
-그야 당연히 꼴받아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