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화 〉 [후일담] 누나의 생일까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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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우우…가, 갔다 올게요.”
“후….”
화장이 번진 얼굴을 수건으로 조금 닦아내고 편한 옷을 입은 저는 동생을 방에 두고 충분히 진정한 뒤, 방문을 열었어요.
동생은 하의만 입은 채 침대에 누워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빨리 갔다오라고 손짓했어요.
배 안쪽에서는 따뜻한 게 가득 찬 느낌이, 두 다리는 부들부들 떨렸지만...그래도 엄마가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다 했으니, 가서 대화를 하긴 해야 할 것 같았어요.
동생은 제가 엄마랑 대화를 하는것도, 둘이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어요.
저도 솔직히 엄마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든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대화라기보다는...술주정이나...평소처럼 이상한 얘기를 하는 걸 내킬때까지 들어주고 보내야겠다는 쪽의,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으니 제가 알아서 처리하고 재워야겠다는 것에 가까웠어요.
제게 있어 엄마는 조금 애매한 상대였어요.
뭐라고 말하기 복잡한...취해있지 않을 때는 엄마로서 해줄 건 다 해주지만, 취하기만 하면 이상해지는 사람.
학교도 보내주고, 생활비도 보내주고, 생일이나 입학식이나 졸업식 때, 너무 아플때는 찾아와주기도 하지만, 언제나 볼일이 끝나면 사라지는 사람.
키웠다기보다는 알아서 클 수 있게 해준 사람.
금전적인 지원은 고맙게 생각하지만...딱히, 엄마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고맙기도 한데, 귀찮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그리고...좋아해보려다가 포기하기까지 한...엄마라기보다는...그냥, 집에 같이 사는 룸메이트 정도.
호적상으로는 엄마지만, 엄마가 반드시 해 줘야 할만한 일도 다 해줬지만, 어딘가 부족하고...어딘가 멀고, 멀리 하고 싶어지는 사람.
원망하고, 원하고, 결국에는 포기한 관계.
차갑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게 전부였어요.
“읏...윽...후윽….”
거실로 나오자 엄마는 소파에 엎드려서 울먹이며 술을 마시고 있었어요.
예전에는 친구랑, 지금은 동생하고 가끔 칵테일을 해 마시려고 집에 사둔 럼주를 유리잔에 부은 엄마는 익숙한 듯 안주도 없이 마시며 눈물을 닦고 있었고, 저는 몇번인가 본 관경에 한숨을 쉬며 엄마의 옆에 다가갔어요.
엄마는 밖에서 술을 마시지 않으면 이렇게 집에서 술을 마셨고, 그럴때마다 저는 적당히 좀 하라고 화를 내고는 했어요.
저는 예전부터 엄마가 술을 마시고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걸 싫어했어요.
옛날에는 엄마가 안타까워 보이기도 했지만, 엄마가 다른 남자랑 관계를 해서 이혼하게 된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는...집에 남자친구를 데려오며 섹스하게 된 이후로는, 혐오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싫어하게 되었어요.
자기가 가장 잘못해놓고 자기가 가장 상처받은 것처럼, 자꾸 똑같은 잘못만 해대면서 속상해하는게 제게는 답답하기만 했고, 볼 때마다 저를 힘들게 했어요.
이혼하고 나서부터 엄마는 이렇게 집에서 술을 마시는 날이 잦았어요.
어린 시절에 제가 그만 좀 마시라고 울면서 말하자, 언제부턴가 엄마는 밖에서 술을 마시게 되고...또 언제부턴가, 남자를 집에 데려오게 되었어요.
아무리 말해도 엄마는 뭔가에 중독된 것처럼 술을 끊지 못했고, 남자를 계속해서 집에 데려왔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술취한 엄마를 남자가 데려온 쪽에 가까웠지만...그런 엄마를 저는 날이 갈 수록 싫어하거나, 좋아하지 않게 되는게 아니라 그냥...포기하게 되었어요.
방해꾼, 가해자, 엉망진창, 구제불능, 그런데도 엄마.
제게 엄마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면서도 가족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동생과는 또 다른 무언가였어요.
“...또 술 마셔요?”
“아! 으, 응…미안....”
“하아….”
엄마는 제가 불만스러워하며 말하자 곧바로 사과하며 잔을 내려놨어요.
다행히 아직 그렇게까지 취하지는 않은 것 같았어요.
엄마는 조금 취하면 울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소심한 모습을 보였고...여기에서 더 취하면 훨씬 귀찮은 성격이 되고는 했어요.
“얘기할 거 있다면서 또 술이나 마시고….”
“미안...미안해….”
“됐어...들어가서 자요.”
“미안하다….”
저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괜히 나온건가 생각하며 엄마를 부축했어요.
엄마는 제게서 시선을 피하고 울먹이며 계속해서 사과하기만 했어요.
이럴 때 엄마는 빨리 재우지 않으면 술만 마시다가 이상한 성격이 되어 버렸어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저는 정말 몇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엄마를 소파에서 일으켰어요.
“...엄마 다음부터는 오지 말까?”
“또...하아...마음대로 하라고 했잖아요….”
엄마는 제가 대학에 입학한 이후부터 취해있을 때마다 매번 이런 말을 하고는 했어요.
제가 싫으면 안 오겠다, 언제든지 엄마가 보기 싫으면 말해라.
그럴때마다 저는 대답하기 힘든 질문에 복잡한 마음으로 짜증을 내고는 했고, 그럴때마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되었어요.
“이제는 진짜...엄마 없어도 되지 않니?”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엄마가 이어서 얘기하고 있었어요.
엄마는 엄마를 일으켜 세우던 저를 꼬옥 끌어안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제게 말했어요.
“동생하고, 잘 지내니까….”
“네?”
저는 귓가에 들린 말에 그대로 멈춰섰어요.
엄마가 동생하고 제 사이를 모를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런 의미가 아닐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엄마가 저와 동생의 관계를 얘기하는 말은 제게 무척 오싹하게 다가왔고, 몸을 얼어붙게 했어요.
저는 괜히 긴장해 천천히 엄마를 일으키던 손에 힘을 풀었고, 팔이 떨리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엄마를 다시 소파에 앉히며 물었어요.
“그게...무슨 얘기에요?”
“엄마가 미안해...미안….”
“아니...하아….”
소리가 안 나게 조심하긴 했지만, 역시...아까 그건 조금 심했던 걸까...섹스하는 걸 들킨 건 아닐까...동생하고 제 관계를 눈치채진 않았을까….
걱정하며 물은 저는 취한 엄마가 언제나처럼 사과만 하는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었어요.
어느정도 취한 엄마는 자책과 죄책감만 가득한 상태가 되어서 모든 질문에 사과하거나 울기만 해 제대로 된 대화가 불가능했어요.
저는 이대로 방에 들여보내 재우는게 좋을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정말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엄마가 동생과 제 사이를 눈치챈 건 아닌지 확인하고 싶어졌어요.
엄마는 예전부터 술에 조금 취했을 때 남이 술을 마시면 받아마시는 버릇이 있었고...특히 제가 따라주면 아무리 취해도 꿀꺽꿀꺽 마시고는 했어요.
저는 엄마를 좀 더 취하게 해서 질문하고, 뭔가 알거나 눈치챈 것 같으면 어떻게든 수습하고...아무것도 모르면 이대로 재워야 겠다는 생각에 엄마가 마시던 술잔에 술을 따랐어요.
“자.”
“어? 술...따라주는거야?”
“안 마실거에요?”
“마, 마실게! 마실게…!”
엄마는 제가 술을 따라주자마자 제 눈치를 보며 꿀꺽꿀꺽 마셨어요.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다른데서도, 남자들한테도 이렇게 술을 받아마시고...자꾸, 그런 짓을 했겠지 싶어서...엄마가 술을 마실 때마다 저는 속이 타들어가고, 답답해지기만 했어요.
“같이 마실래…?”
“저는 됐어요.”
“응...그래도 따라주니까 맛있다….”
그렇게 주면 주는대로 받아마시는 엄마한테 세 잔 정도를 따라줬을 때쯤 엄마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어요.
우는 얼굴에서 웃는 얼굴로, 완전히 취한 엄마는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실실대며 제가 따라주지 않아도 술을 마셔댔고...질문하는 거에는 전부 대답하고 질문하지 않은 것도 알아서 말해버리는 상태가 됐어요.
엄마는 애처럼...정말 아직도 어린 것처럼 활짝 웃으며 제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어요.
“우리 딸~엄마 술도 마시게 해주고 너무 착해~생일선물은 마음에 들어?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거로 사왔는데~”
“네, 마음에 들어요….”
“음~그치? 그런거 좋아할 나이지? 엄마도 그때는 구두가 너무 좋아서….”
“그것보다, 동생하고 제가 잘 지낸다는 건 무슨 얘기에요?”
저는 기분이 좋아진 엄마가 자기가 하고싶은 얘기만 계속해서 얘기하게 되기 전에 질문부터 했어요.
이렇게 된 엄마는 평소에 하지 않던 얘기도 쉽게 해줬고, 거짓말도 하지 못했어요.
엄마는 제 질문에 고개를 상체를 앞뒤로 흔들며 고개를 크게 끄덕이더니, 만족스러워하는 얼굴로 대답했어요.
“잘 지내는 거 아니니~? 다행이야 진짜...엄마때문에...”
“그러니까...잘 지낸다는게….”
“엄마는, 결국...혼자긴 한데...그래도, 혼났어도 그건 동생이 누나 좋아서 그런거니까~그치? 좋아하는거지?”
“무슨 말이에요?”
“응? 아까 나 혼내는거 못봤어? 봤는데…? 엄마 엄청 혼나서 속상한데...엄마는 근데 미움받는게 당연하니까….”
“아니...하아….”
“둘이 사이좋게 지내는거지? 그치? 엄마 없어도 둘이 잘 지내서 진짜 다행이야....”
예상하긴 했지만, 엄마의 술주정을 들어주는건 상당히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 술주정만으로도 저는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어요.
엄마의 대답에서 엄마가 저와 동생의 사이를 이상하게 보고있지 않다는 것과, 동생과 제 사이를 걱정하기보다는 오히려 기뻐한다는게 느껴졌어요.
엄마가 동생과 제가 섹스하는 사이라는걸 안다면 절대로 보일 수 없는 반응이었어요.
“그래도 엄마 있을 자리 없는건 마음이 조금 복잡하다…? 잘된 것 같기도 한데, 미안한데...되게 아쉽다? 엄마 그래서 사과하고 싶은데...사과하면 받아줄거야?”
“...얼른 자요.”
엄마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된 저는 안심하며 엄마를 다시 일으켰어요.
그러자 엄마는 어린애처럼 제 팔을 뿌리치고 떼를 쓰기 시작했어요.
예전부터 가끔씩 보이던 모습에 저는 한숨부터 쉬었고, 그런 제게 엄마는 이렇게까지 취했을 때의 모습으로는 드물게도 울먹이는 목소리를 내며 말했어요.
“받아주기 싫구나…? 엄마 다음부터 오지 말까?”
“마음대로 하라고 했잖아요...하아...진짜….”
“네가 시키는대로 할께…오지 말까?”
“엄마가 오기 싫으면 안 와도 돼요….”
“엄마는...오고싶지…그런데, 너네 둘 다 엄마 싫어하니까...오늘도....”
“하아….”
저는 엄마의 말 하나하나에 짜증이 치솟았어요.
예전부터 엄마는 이런 말을 자주 하고는 했지만, 오늘따라 더 화가 났어요.
저는 아마도 제가 더 화가 나는 이유는 동생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이제 지쳤고, 포기했으니까 괜찮지만...엄마가 자기를 싫어한다고 해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만, 동생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는 것처럼, 사과 한마디 없이, 그래도 동생 앞이니까...동생이 있으니까, 내 생일이니까 참고있는건데….
동생이 엄마를 싫어한다면, 그렇게 느낀다면...싫어하게 된 게 누구때문인데….
“그러면 오지 마요.”
저는 예전 같았으면 참았을 말을 충동적이게 엄마한테 터뜨려버렸어요.
동생이 없을때는 하지 않았던, 하지 못한 말이 넘어가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린 느낌과 함께 새어나왔고, 엄마는 제게 이런 말을 하게끔 재촉해놓고도 당황한 얼굴로 저를 올려다봤어요.
설마 제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는 듯, 그런 말은 그래도 하지 않길 바랬다는 듯.
저는 그런 엄마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저 자신도 놀랄 정도로 냉정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이어서 말했어요.
“엄마가 저랑 동생이 엄마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느낌이 들 정도면 오지 말라고요.”
“어…?”
“저도 생일마다 오는 엄마한테 매년 이런 말 듣고싶지 않으니까...오지 마요.”
“자, 잠깐...아, 아냐...미안해, 엄마...그, 그런 얘기가 아니었어…미안해, 미안해....”
“...그것도 하지 마요.”
저는 또다시 약한 사람이 되어서 잘못했다고 비는 엄마를 보며 이를 악물었어요.
지금까지 하지 못한 말이 안쪽에서 마구 부풀어 오르고, 제 입에서는 방 안에 있는 동생에게 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가 쌓여있던 한이 맺혀 젖어 떨리며 새어나왔어요.
“...엄마가 아빠 몰래 다른 남자랑 바람핀 거 들켜서 이혼해놓고, 자꾸 피해자인 척 하지 말라고요.”
어찌 보면, 이건 제가 동생하고 사귀게 되어서 할 수 있는 말이었어요.
동생이 옆에 있으니까...지금까지 붙잡던 엄마를 정말 완전히 놓아버려서, 동생하고만 살 생각을 하게 되어버렸으니까...지금까지 하지 못한 칼질을 하듯, 진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엄마가 상처받을까봐 하지 못한 말을 해버린 저는 죄책감과 후련함, 아픔과 개운함을 동시에 느꼈어요.
엄마는 그런 저를 올려다보며 술이 갑자기 확 깬듯 놀란 얼굴로 소파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나 제 팔을 붙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싫어어...엄마도, 그러려던 게...아니야….”
“그러려던게 아니면 적어도 나중에는 술을…!”
“아냐, 아냐아...몰래 바람 핀 적은 없어…! 아빠가 바람펴달라고 했단말야…!”
“...네?”